민수기 제33장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천신만고 끝에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 도착하여 가나안 정복의 교두보를 확보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동편의 땅을 요구한 세 지파와의 갈등 때문에 내분으로 비화할 뻔 했지만 이를 지혜롭게 처리함으로 가나안 정복의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본장은 애굽을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게 된 기나긴 여정을 돌아보고 그 숙영지를 중심으로 광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40년간 여정 중에 41곳에 숙영하였는데 라암셋으로부터 시내 광야의 여정, 시내 광야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여정,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이 순차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모든 거리는 성인의 걸음으로 일주일 정도 걸리는 매우 가까운 거리이다. 그런데 40년이나 허비한 후에 비로소 여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반역이 빚어낸 결과이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41개의 처소명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40년간의 이스라엘의 영욕의 역사, 곧 그들의 범죄로 인한 고난과 갈등, 눈물과 절망,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점철된 순례의 역사인 것이다.
이는 오늘 날 하늘 가나안으로 향하여 가는 우리들의 행군의 역사이며 광야 같은 순례의 길을 걸어야 하는 신자들의 고난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 영구히 정착할 수도 없고, 세상을 온전히 벗어날 수도 없는 중간지대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날마다 거룩한 긴장이 요구되며 순간순간 범죄하며 동시에 회개하며 전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1. 출애굽 여정 서언 (33:1-2절)
가나안 정복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모세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에 앞서 광야 40년간의 온갖 역사를 총결산하게 된다. 본문은 그 서언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모습으로 출애굽의 여정을 진행해 나갔는지 소개하고 있다.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
직역하면 ‘그들의 군대들로서’이다. 이 말은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승전한 군대처럼 대장이신 여호와가 이끄시는 대로 씩씩하게 애굽을 떠나온 것이다.
그들은 애굽의 군대의 눈치를 보며 숨을 죽이고 도망치듯이 나온 것이 아니라 애굽의 신들을 한꺼번에 파멸시키고 바로의 교만을 여지없이 짓밟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어 승리자로서 당당하게 나온 것이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가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행진하고 있는 것이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하셨던 여호와께서는 요단을 건너기 전에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여정에 대해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숱한 어려움을 헤치고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당신의 권능과 신실하심을 그들에게 영영히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 기록은 단순한 여호와의 행적을 기념하는 기록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거에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현재와 미래에도 동일한 보호와 사랑을 베풀 것에 대한 약속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2.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33:3-49절)
여기에 제시된 지명들은 출애굽기 12:37절 이하부터 본서에 이르기까지 언급하고 있는 모든 지명을 요약한 것인데 특히 호르마 참패 이후에 침묵하고 있는 약 38년간의 여정을 언급한 중요한 자료들이다.
‘그들이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정월’은 유대 민간력으로는 7월에 해당하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념하여 출애굽한 그 날은 신정 국가 이스라엘의 건국 원년으로 삼게 하시고 새로운 월력 곧 종교력을 만드셨다.
라암셋은 고센 지방의 한 성읍으로 노예로 전락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건축된 국고성인데 이곳에서 애굽 생활을 처음 시작하였고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애굽을 떠난 것이다. 출애굽은 애굽의 해방 정책이나 이스라엘의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권능의 산물이었다.
애굽 사람들은 출애굽의 전 과정을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고 여호와의 능력에 완전히 압도 당하고 말았다. 그때 저들은 장자들을 장사 지내는 동안이었으며 애굽의 신들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은 저들이 섬기는 우상들 즉 태양, 나일 강, 개구리, 가축, 농경의 신, 다산의 신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진을 쳤는데 애굽의 비돔 근처였다. 이스라엘은 숙곳을 출발하여 7일 동안 시내 광야를 가로질러 광야의 끝에 있는 에담에 도착했다. 에담은 애굽 동쪽 국경지대이며 ‘성벽’ ‘방벽’ 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에담이 수에즈만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카바만 북쪽에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국경선을 막 넘어서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히 에담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을 쳤는데 에담에서 아라비아에 있는 미디안 땅으로 곧장 갈 수 있는 것을 남쪽으로 비하히롯으로 돌아서 내려간 것이다.
‘비하히롯’은 직역하면 ‘하히롯의 입구’라는 뜻으로 하히롯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말하는 것이다. ‘믹돌’은 문자적으로 ‘망대’를 뜻하며 높은 곳으로 전략의 요충지였다. 믹돌을 지나면 바닷가에 있는 하히롯 해변에 이른다.
이때 바로가 전차를 타고 맹추격을 해왔으며 이스라엘은 하히롯 앞을 떠나 홍해 건너편에 있는 바알스본 즉 에담 광야를 바라보고 바다를 건너갔다. 애굽의 전차와 기병과 모든 군대가 몰살한 것이 하히롯 바다였던 것이다.
에담 광야 즉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지나 마라에 진을 쳤으며 물이 쓰기 때문에 ‘마라’라고 불렀다. 이곳을 떠나 엘림에 이르렀는데 샘물 열둘과 종려나무 칠십 그루가 있었다. ‘큰 나무’라는 뜻을 가진 엘림은 무성한 나무로 둘러싸인 오아시스였다.
엘림을 떠나 아카바만 동쪽 홍해 가에 진을 치고 홍해를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진을 쳤는데 신 광야는 아카바 만 동쪽으로 팔레스틴의 최남단이다. 이곳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신 광야를 떠나 돕가에 진을 치고, 돕가를 떠나 알루스에 진을 치고, 알루스를 떠나 르비딤에 진을 쳤다.
르비딤에는 마실 물이 없었는데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였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며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 시험했기 때문이다.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진을 쳤는데 시내 산에서 신정국가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B.C 1446년 애굽의 고센 지역인 라암셋을 출발한 이스라엘은 마침내 그해 3월15일 만 2개월 만에 시내 산에 있는 시내 광야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기서 다음 해인 B.C 1445년 2월 20일 이곳을 떠나기까지 정확히 11개월 5일 동안 머물게 된다. 그리고 각종 율법 제정, 성막 건립, 제사제도 완비, 인구조사 실시 등의 중요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내 광야를 떠나 기브롯 핫다아와에 진을 쳤는데 이는 ‘욕망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메추라기를 먹고 죽은 백성을 그곳에 장사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그곳을 떠나 하세롯에 진을 쳤다. 하세롯은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했던 장소였으며 이 일 때문에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려 7일 동안 진 밖에서 지내야 했다.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12정탐꾼을 올려 보내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다. 당시의 사건을 13장 26절에서는 ‘바란 광야 가데스’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곳을 가데스 바네아라고 부르는데 본문에는 이 사실이 나타나지 않고 하세롯을 떠나 릿마에 진을 쳤다고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가데스를 릿마와 동일한 지역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38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에 다시 왔을 때 본문 36절에서는 ‘신 광야의 가데스’라고 함으로 38년 전의 ‘바란 광야의 가데스’와 일치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스라엘은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진을 쳤고 그곳에서 모세는 12정탐꾼을 올려 보냈기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은 바란 광야의 릿마였으며, 모세는 40일 후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기 위해 가나안 남쪽에 있는 가데스로 갔던 것이다.
정탐꾼들의 보고를 가데스에서 받았고 그곳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이 컸던 까닭에 이후로는 릿마보다는 가데스로 더 알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둔했던 중심지는 릿마가 분명하다.
릿마를 떠나 두 번째 가데스에 도착할 때까지 38년 동안의 여러 숙영지가 열거되고 있지만 그 중에 아카바만 북쪽에 있는 에시온게벨 외에는 장소가 분명하지 않다. 이스라엘은 릿마 즉 가데스를 출발하여 아카바 만을 향하여 나아갔고 그 일대의 광야에서 주거했다.
에시온게벨은 항구 도시로서 솔로몬 당시 오빌과 해상 무역을 하였으며 솔로몬이 건축한 제련소도 있었다. 에시온게벨을 떠나 신 광야 가데스에 진을 쳤는데 이곳에서 미리암이 죽었고 가데스를 떠나 에돔 땅 변경의 호르 산에 진을 쳤으며 아론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5월 1일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서 12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호르 산을 떠나 가나안 전쟁의 전초 기지로 삼은 모압 평지에 이르는 동안 숙영지들이 기록되고 드디어 아바림 산을 떠나 여리고 맞은편 요단강 가 모압 평지에 진을 쳤는데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까지 이르렀다.
벧여시못은 ‘사막의 집’이라는 뜻으로 모압의 유명한 성읍이며 비스가 산 근처, 사해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벨싯딤은 ‘아카시아 나무의 목초지’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브올을 섬겼으며, 나중에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이곳을 싯딤이라고 부른다.
3. 가나안 민족 전멸 명령 (33:50-56절)
약속의 땅 가나안 정복에 관련된 내용들과 특히 유념해야 할 사항들을 명령하고 있다. 이는 세 가지인데 가나안 원주민을 철저히 몰아낼 것, 우상을 제거할 것, 제비를 뽑아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것 등이다.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이 명령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철저히 축출하고 그 다음에 땅을 차지하라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거룩한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상과 죄악에 찌든 무리들을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수탈이 목적이 아니라 종교적 성결의 과정이었다. 따라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원주민들을 철저히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훗날 수많은 고초를 겪게 되는 것이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돌로 만든 우상이나, 부어 만든 석상이나,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서 그 위에 금속으로 칠한 것이나, 모든 것을 파멸하여 그 흔적조차도 없애야 하는 것이다. 또한 산당 역시 훼파하고 신전도 파괴시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유로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민족을 몰아내고 내쫓은 후에 그 땅을 기업으로, 산업으로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며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었다.
‘너희의 종족을 따라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눌 것이며’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각 지파의 수효에 따라 그 넓이가 결정되었으며, 제비를 뽑아서 그 땅의 위치가 결정되었다. 곧 가나안 땅은 12지파와 각 지파의 자손들의 가족 단위로 땅이 분배되는 것이다.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신체 중 가장 예민한 부분인 눈에 여러 개의 가시가 들어갔을 경우에 당할 고통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원주민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복 전쟁에서 관용 정책을 베풂으로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에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더욱이 원주민들의 우상을 섬김으로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가장 강력한 경고로 끝맺음으로써 이스라엘이 가나안 원주민을 몰아내지 않으면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엄중한 형벌을 당할 것이라고 천명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죄악이 관영한 가나안 족속들에게 파멸과 축출을 계획하셨는데 만약 이스라엘이 이를 거역할 경우 그 심판의 화살을 이스라엘로 돌리시겠다는 것이다.
이 경고의 메시지는 훗날 여호수아를 통해 다시 한 번 전달되지만 이스라엘은 이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쓰라린 역사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