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면 피서여행을 떠나듯 나는 혹한이 되면 따뜻한 나라를 찾아 피한여행을 떠난다. 자식들이 어렸을 때부터 첫 눈이 오면 가족 모두 스키를 즐겼으나 몇 년 전 손자들을 데리고 스키장을 찾았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뒤에는 눈이 괜히 싫어졌다. 심통이 난 것이다. 늙으면 잘 삐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눈에 억하심정이 쌓인 것이다.
그래서 눈이 오면 눈을 다 치을 때까지 부득이 한 경우를 빼면 집에서 칩거생활을 한다. 집에서 인터넷하고 거의 하루 종일을 놀다가 저녁을 먹으면 그 때부터 TV를 연인인양 밤 늦게 까지 끼고 산다. 어린 시절 흰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신이 나서 친구들과 눈 싸움도 하고 눈 사람도 만들며 밥 먹으라고 어머니가 찾아 오실 때 까지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연애 시절 처음 본 영화가 줄리 크리스티 주연의 '닥터 지바고'였다. 팔장을 끼고 데이트를 즐길 때이면 둘이서 이 영화의 OST인 '라라의 테마(Somewhere My Love)'를 흥얼거리며 거리를 쏘다녔다. 첫 애를 낳을 무렵 하버드대학 교정 가득히 내린 눈위에서 찍은 에릭 시걸 원작의 '러브 스토리'를 보았다. 이것이 태교가 되어서인지 큰 아이가 의사가 되어 하버드대학에 가 있다.
금년은 유독히 추웠다. 동남아나 어디 따뜻한 나라에 가서 한 몇 주 지내고 오자고 마누라를 유혹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발리나 몰디브 그리고 푸켓에 가자고 해도 오불관언이다. 나와 반대로 아내는 더운 것은 지독히 싫어한다. 그러지 않아도 얼굴에 기미인지 저승의 꽃이라는 검버슷 비슷한 것이 생겨나는데 일사광선은 싫다는것이다. 50%짜리 썬크림을 바르면 괜찮다고 설득해도 씨가 먹혀 들어 가지 않는다. 이것도 늙어간다는 일반적인 현상이리라. 나이가 먹으면 먹을 수록 나는 점점 작아지고 내 주장은 무시되기 일수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친구들에게 해남도에 골프여행을 가자고 꼬셨다. 해남도는 남한의 1/3정도의 크기로 중국의 최남단에 있는 섬인데 중국에서는 제일 큰 섬이다. 대만보다는 조금 작다. 연중 평균온도가 20도 안팎으로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며 중국 부자들이 이곳에 집중 투자하면서 골프장과 호텔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해남도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휴양지로서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는 그런 섬이다.
중국에서 소동파가 죽음을 각오하고 귀양온 바 있는 오지로 하늘끝 바다끝이라는 뜻의 천애해각(天涯海角)이라는 말이 유명하다. 중국의 흑진주 또는 동양의 하와이라는 별명이 명불허전이 아니었다. 가로수는 야자수 등으로 잘 정비되있고 드넓고 수 많은 비치는 잔잔한 파도에 수영하기 쾌적하였으며 수 많은 호텔과 레스토랑은 모두 최근에 지은 것이라서 깨끗하고 간판도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아름다웠다. “녹회도”라는 곳에 올라가 시가지를 내려다 보니 발굽모양의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도로와 가로등 그리고 각종 건물 등에서 내뿜는 네온사인은 마치 여름 하늘의 은하수를 보는 듯 불현듯 서울에 떼어 놓고 온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방문목적은 관광보다는 골프이기에 도착 다음 날 골프장을 찾았다. 골프장 페어웨이는 카펫트를 깔아 놓은 것 같이 아름다웠고 25℃정도의 온도에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쾌적하기 짝이 없었으며 수많은 야자수 나무가 열대에 온 기분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곳곳에 갈대숲이 무성하고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을 끼고 도는 링크스 코스는 이런 저런 번뇌와 고민은 모두 바다에 모두 씻어 보내 주었고, 오랫 간만에 서비스 받아 보는 1인 1백(Bag)의 캐디는 순수하고 명랑하기 짝이 없어 즐거운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고희를 넘긴 동반자들의 여유있고 유쾌한 농담, 쾌담, 치담, 재치있는 말말말들은 플레이를 더욱 즐겁게 하여 주었다. 어느 골프장이나 여자 2명 남자 2명 씩 한 조를 이루어 봉사를 하고 있었으며 캐디들은 대부분 해남도 출신이었다. 여자들은 대부분 이족으로 키가 조그만 것이 베트남 여자를 연상케 하고 나이를 물어 보니 대개 18세나 19세였다.
70년대 초 한국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일본 경제는 한참 뻗어 나가고 있을 때 일본인들이 한국관광을 와서 한 행태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런데 그때 일본은 탄탄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지금 실업률 증가, 저성장, 투자위축 등 온갖 경제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나는 진보주의자는 아니지만 수구론자도 아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뜯어 고치고 삐틀어진 것이 있으면 피고 막힌 데가 있으면 뚫자는 주의다. 구체제를 혁명적 방법으로 일거에 뒤엎는 방식은 찬성하지 않는다. 80/20 이론과 같이 지금의 불황에서도 20%는 배에 기름이 끼어있고 그 중 몇 %는 여러가지 형태로 퇴폐적이고 반사회적인 작태를 벌리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지난 해 월스리트에서 극열한 데모를 벌리던 시위대의 주장인 1%의 부자가 부를 독점하고 있다는 절규도 심각하게 귀를 기울려야 할 것이다. 역사를 보면 이런 절규에서 혁명의 씨앗이 태동되었던것이다. 물론 이 순간에도 거금을 자선단체, 장학금, 병원등에 기부하고, 저금통 깬 돈으로 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내놓는 사람도 있다.
그 과실로 국부가 올라가자 땅장사로 돈 번 자, 아파트전매로 돈 번 자, 농지가 수용되어 거액의 보상금을 받은 자 그리고 각종 투기로 돈 번 자들이 돈 좀 있다고 해외를 휘젖고 돌아다니며 온갖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는 것을 보자니, 더구나 해남도 골프여행객의 80%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들으니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수준이 어느수준까지 올라갈 때 까지는 그리고 경제가 좋아질때 까지는 다시는 해외골프여행을 가지 않겠노라고 스스로 다짐을 하면서 귀국길에 올랐다. 한 겨울에 꽃이 이렇게 활짝 피는 해남도...
부자엄마 13.03.03. 15:38 옳은 말씀입니다 열변에 읽는이도 따라서 피가 끓을라 합니다 감사합니다
┗
![]() 공감하셨다니 감사합니다.
피가 끓어 오르시다니 부자엄마님은 열정이 있으시네요. 그러나 너무 열을 올리지는 마세요. 혈압에 나쁘답니다.ㅎㅎㅎ ![]() 좋은여행 하셨습니다 아프리카나 남미등에도 유럽이나 미국의 여행자들이 상당한걸 보면 한국인들만 여행을 많이한다고 단정할순 없지만 서양인들은 대부분 검소하게 하는데 반하여 한국인들은 그처럼 졸부근성이 심한경우가 허다한것 같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지난달인가 지난분기인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여행수지적자가 일천억달러라 합니다
┗
![]() 서양인들은 대부분 은퇴한 분들이 여행을 많이 하지요.
그들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은퇴 후의 노후생활을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려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여행을 하더라도 낭비는 하지 않고 알차게 하더군요. 이것은 제가 뉴욕에 근무할 때 휴가를 이용하여 미국인들과 함께 단체 해외여행을 가서 느낀 점입니다. ![]() 구구절절 너무나 우리나라의 현실을 직시하느것같습니다. 너무나 안타갑습니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보면, 참으로 안타가운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올챙이때 생각은 하지않고,, 우리가 언제 잘살았더고 아직도 빗더미에서 살고있으면서....... ┗
![]() 하루 빨리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일부 한국인들의 실상을 보면 아직도 80년대를 못 벗어난 것 같아요. ![]() 아주훌륭한글을 여기서도 보게되는군요. 역사방에서 아주좋은역사 이야기를 제시하시면서 역사방의 면모를 갖추게하시드만 수필자작방에서도 훌륭한글로 수필방을 채우고 계신것같습니다. 한국의 역사적인면그리고 경제적인사항 여러가지면에서 현실을 직시하셨군요 .선생님의 필력은 대단하십니다. 60대카페에서 좋은글로 교화가 되겠습니다
![]() 백설영 선배님의 댓글에 한표를 찍습니다 ... 해외 여행을 하다보면 정말 눈쌀찌프리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 아직도 문화수준이 그만 못하다고 느끼지요...
우리 젊은 시대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 뒤돌아봐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 친구들끼리 우리는 대접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리고 이렇게 노후에 여가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할때도 있습니다 정말로 앞만 보고 뛰어왔습니다 공무원생활 하면서 박봉에 여가 생활도 즐기지 못하고 일에만 묻혀살았지요 낮에는 국가발전에 밤에는 집안 살림에 ㅉㅉㅉ 정말로 열심히 살아왔기에.. 골프같은 여유도 즐겨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어요ㅉ ![]() 골든에지님의글을읽고 댓글을 답니다 골든 에지님도 삶이 참 부러울 정도로 사십니다
그러한 삶을 여유자적한 생활이라 하겠지요 우리가 이나이쯤 살고보니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길에서 살더군요 바르지못한길을 간사람은 반드시 후회 할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제 할줄하는 그런것이 인격이겠지요 우리들의 양심 정직하게 사는것 내가 하는 짓에 뒤 안 돌아 볼수있는당당함 그렇게 살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좋을글 잘보았습니다 ![]() 다같은 물을 독사가 마시면 독이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는 이야기를 돈에 대입해 보면 여기에도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금동서에 돈,술, 계집이 언제나 나를 망치는 요인들이었습니다. 누굴 타하랴 우리모두의 책임인 것을 .
┗
![]() 자고로 남자는 세 뿌리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혀, 손, 허리 아래인데, 구지 말하면 술은 혀요 허리 아래는 계집이고 돈은 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골프를 접으신줄 알았는데 아직도 하시는군요. 해외원정을 다시 가기 전까지라도 녹슬지 않게 계룡회에 나오시지요?
|
첫댓글 골프를 접으신줄 알았는데 아직도 하시는군요.
해외원정을 다시 가기 전까지라도 녹슬지 않게 계룡회에 나오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