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누가 창제하였는가? 1443년 12월 한글 창제가 공식화된 시기까지 집현전 학사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또한 한글 창제의 부당함을 상소한 것도 최만리 등 집현전의 핵심 학사들이었으니, 과연 누가 한글을 만들었단 말인가?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누군가가 세종대왕의 밀지(密旨)를 받아 한글창제 비밀 프로젝트 를 주도했을 것이다. 과연 그가 누구일까? 그리고 숭유억불이 본격화 되던 세종 때부터 연산군 때까지 한글로 발간된 문헌의 65%이상이 불교관련 서적이고, 유교관련 서적은 채 5%가 되지 않는 당혹스러운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에 월인석보의 첫 머리에 실린 세종의 한글 어지(御旨)가 정확히 108자며, 월인석보 제1권의 페이지 역시 불교의 상징 수인 108쪽이 된 것은 그저 우연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연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글을 창제한 주역은 집현전 학사들이 아니라 당시의 고승 법주사 복천암의 신미(信眉)대사(1403~1480)였던 것이다. 세조가 즉위 후 천리 길을 행차하여 법주사 복천사까지 찾아가 법문을 청한 고승이며,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한 대학자 혜각존자 신미대사는 누굴까? 학계 일각에서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의 주역이라는 논문이 간헐적으로 나온 바 있고, 현재 복천암에 주석 중인 월성 큰스님이 신미대사의 선양작업에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신미대사는 우리에게 생소한 인물이다. 신미대사의 훈민정음 창제 미스테리를 밝힌 강상원 박사.
한글창제에 얽힌 숱한 미스터리를 푸는 특별강좌가 지난 4월 2일 ‘우리는 선우’ 주최로 장충동 우리함께 빌딩 법당에서
열렸다. 이 분야의 권위자이며, 동서문명의 전문가인 정음학술원 총재 강상원(姜相源) 박사를 특별 초청한 강좌였다. 강상원 박사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우리말의 뿌리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 못한 속에서, 한국어는 범어 태초의 연원이 며 범어가 동서문명의 연원이라는 사실을 주장해 학계의 눈길을 모은 인물이다. 또한 불경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과정 에서 우리말의 뿌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당사자로 알려져 있다. 이 분의 강의 내용을 다루기 전에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신미(信眉)대사의 한글 창제설에 대해 살펴보자. 신미(信眉, 사진)는 속성(俗姓)이 영산김씨(永山金氏)이고, 속명(俗名)은 수성(守省)으로서 조선초 유불(儒彿)학자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김수온(金守溫·1409~1481)의 맏형이기도 하다.
영산김씨 족보를 추적해보면 ‘집현원학사(集賢院學士)’로 ‘득총어세종 (得寵於世宗)’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집현전학사’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집안 내에서는 신미가 집현전 학사였다고 내려오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집현전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없다. 불교 승려는 무대 뒤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대였던 것이다. 세종은 죽기 전에 유언으로 신미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렸다. 하지만 유생들의 줄기찬 반대로 인해서 ‘우국이세’(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했다)라는 표현은 삭제되고, ‘혜각존자’라는 단어만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신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범어(梵語)와 티베트어로 된 불교경전에 정통했던 대학자였으므로 혜각존자라고 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인물이니까 세종 사후에도 세조(世祖)가 불교승려인 신미대사를 만나러 직접 속리산까지 찾아갔을 것이다. 한글이 창제(1443)되고 나서 불과 몇 달 후에 집현전 실무 담당자인 부제학 최만리를 중심으로 한 유학자들이 적극적으 로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다. 그 반대 배경에는 훈민정음의 원리적 근거가 유교가 아닌 불교였기 때문이고, 그 불교의 한가운데에 신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한글 창제 무렵에 간행된 국가적인 번역사업이 불교경전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24권 분량의 ‘석보상절(釋譜詳節)’이 그렇고,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도 그렇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도 찬불가(讚佛歌)에 해당된다. 숭유억불의 조선에서 쉬운 한글을 만들었으면 ‘논어(論語)’‘맹자(孟子)’와 같은 유교경전들을 번역해서 백성들이 읽게 했어야지, 왜 하필이면 불경을 번역했을까. 이유는 한글창제의 주역이 신미대사였기 때문이다. ‘월인석보’는 세종의 어지(御旨)가 108자이고, ‘훈민정음’은 28자와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에서 아침저녁으로 종을 칠 때 그 횟수는 28번과 33번이다. 하늘의 28수(宿)와 불교의 우주관인 33천(天)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신미 창제설’의 결정적인 근거는 신미가 당대 최고의 범어전문가였고, 한글이 범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상원 박사의 4월 2일 우리는선우 초청 특강에는 많은 불자들이 참석, 믿기지 않을만큼 놀라운 강의를 들었다.
이날 특강을 한 강상원 박사의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연구 논문들은 국내보다도 미국 하버드나 코넬, MIT, 영국의
옥스포드 등 유명 대학의 도서관에 오래 전에 들어가 있다. 강 박사는 이들 대학으로부터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감사장을 여러 번 받기도 했다. 고조선 역사, 72위 국가천황, 싼스크리트어 7음사성원리와 한글 등은 우리 한국인 학자들만 제대로 모르고 있지, 이미 외국의 연구기관에서는 다 꿰차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강 박사의 설명이다. 강상원 박사는 이날 강연 중에 ‘반야’라고 해석되는 ‘프라즈냐(Prajna)’에 대해 설명한다. 범어인 ‘프라즈냐’의 의미를 우리는 ‘지혜’ ‘완전한 지혜’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말의 ‘빠르자나(잖아)’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강 박사에 따르면,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알아차리는 지혜라는 뜻인 프라즈냐는 우리말의 ‘빠르잖아’의 음사다. 이밖에도 우리말의 ‘∼부터’의 범어 표현은 ‘Bhutia’이고, 우리말 방바닥이란 말에서 ‘∼바닥’의 범어 표현은 ‘pada puti’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한국어가 범어 태초의 연원이며 범어가 동서문명의 연원’이라는 주장의 근거다. 영어의 게임(game)은 이리 가고 저리 간다는 ‘가메’라는 우리말에서 비롯된 것이며, 시간을 뜻하는 타임(time)은 우리말의 ‘틈’이 어원이라는 주장이다. 결정을 의미하는 디사이드(decide)는 우리말의 ‘됐어’에서 나온 것이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거시기’는 영어에서 추측을 의미하는 ‘guess’로 변했으며, 여자(女子, niye-ja)는 ‘니’라는 우리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니’가 문장 앞에서 사용될 때에는 왕을 의미하는 극존칭이었으며, 이것은 여성중심의 모계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모계사회에서 여자는 왕 또는 하느님과 통했으며, 우리가 윗사람과 대화할 때 사용하는 ‘네, 네’(ni, ni)는 ‘왕이여, 왕이여’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대답을 할 때 ‘예, 예’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고 ‘네, 네’가 맞다는 것이다. 강 박사는 또 훈민정음에서 韓을 표기할 때, ‘ㅎ’을 ‘ㆅ’, 즉 전탁음(全濁音)을 사용한 것은 ‘ㆅ’=kha, 즉 ‘칸’을 말하는 것이며, 칸은 ‘징기스칸’에서 보듯이 왕을 의미하고, 극 한국이란, 왕의 나라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므로 한글의 표현은 ‘ㆅ'을 사용한 한글이 맞다는 것이다. 강 박사는 이처럼 우리말의 원리가 산스크리트의 뿌리와 닿지 않으면 우리말이 전혀 풀어지지 않는다며, 그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상원 박사는 실담어(범어)도 훈민정음처럼 음소교합문자를 이루며, 또한 평행하거나 상하로 자유로이 교합하여 글짜가 이루어진다며, 영어의 알파벳이나 일본어의 알파벳은 나열하는 특성만 갖고 있을 뿐 교합문자가 못된다고 지적했다. 강 박사는 훈민정음 28자와 실담어, 라틴어는 자모체계가 거의 일치한다며 특히 한자도 중국의 독창적인 문자가 아니라 하나라때 서역에서 유입된 실담어를 모방하여 고안한 한민족의 문자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한글학자 강상원(姜相源) 박사 프로필]
本名 姜平洙(강평수)
한글학자, 동양철학자, 사학자, 번역가
1. 약 력 1938 충남 천안출생 1963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 1963. 8. 31. 공군소위임관 1967. 8. 공군전역 1989. 9. 1. 뉴욕 시립대학교(석사학위) 1994. 3. 동국대학교(철학박사학위, 원효 대사의 중도사상연구) 2. 경 력 주한 미국대사관 근무(1969-1971) 뉴욕 평생대학-학장 및 뉴욕 TV 영어강사 콜롬비아대학 교수 1993~1998. 전 중앙승가대학/한국불교대학/동국대학교 강사 2000. 5. 대한불교현수복지 재단 부설 한국 세종한림원 창설 2003. 4 한국세종한림원 학회장 현 경주박물관대학- 초청강사 3. 저 서 천축실담 상형문자주석( 2001.12.3.) 한글 고어사전채담어 주석(2002.6.14) 왕손정통언어실담어 복원 주석(2003.4.25) 훈민정음28자어원적신해석(2005.4.28) 한자는 동이족 문자 주석(2007.2.20) 세종대왕창제 훈민정음 주역 혜각존자 신미대사(主役 慧覺尊者 信眉大師)(2008.9.27) 우리말 불휘(根) 실담어어원대사전 법화경 영역 금강경 영역 4. 주요논문 소끄라데스 국가론, 플라톤 교육론(석사논문) 노자의 도덕관/ 스피노자 도덕적 자유/ 니체의 신론/외 다수. 5. 우리 글에 대한 우수성 1)만년의 신비 "천축실담 상형성문자(天竺悉曇象形文字)주역" 2) 한글 고어사전 싦담어 주역. 3)왕손정통 언어복원(王孫正統言語復元)실담어 주역 등 세권의 저서를 펴내면서 강박사는 우리 글에 대한 우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다.
'만고의 고전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의거' 상고 시대부터 우리민족이 연면(連綿)히 사용해온 전통 토속어인 사투리, 즉 왕족언어의 뿌리를 실담어로 복원하므로써 우리 한민족의 언어가 동서문명의 뿌리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확증하였다. 1527년(중종22)당대 한학의 석학 최세진 선생의 저술인 훈몽자회 속에서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전통토속어의 뿌리를 발견하였다. 우리는 한문만을 숭상한 나머지 우리말과 문화, 역사의 뿌리를 외면하면서 방언(方言)이니 사투리라 하여 경멸하여 온갖 문화의 뿌리가 역사에 묻히게 되었다. 질시와 경멸을 당해도 끈질기게 우리들의 혀 밑에서 은거하면서 말의 뿌리가 보존되여 왔다. 다시말하면 범어가 인도의 고대어가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상고(上古)시대의 언어요 오늘날까지 우리 국민의 혀밑에서 나오는 사투리(왕족언어)라는 반증이다. 세계 학계에서는 우리 한민족 언어의 근원인 실담어의 한갈래 범어(梵語), 산스크릿뜨)를 인도 유럽언어의 근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자의 뜻을 주석한 그 전통 토속어가 바로 왕족의 실담어임을 보여주는 예문은 다음과 같다.
수(水 물슈, mrsu:Water) 부(父 아비부, avai:father) 왕(王 님금왕, nimekam:king) 화(花 꽃화, kosi, kosa:flower)
이상의 예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자의 주석은 모두 일만여 년전의 실담어와 일치하며 범어(데바나가리어)와 상응한다는 사실이다. 훈몽자회와 동국정운(東國正韻)은 민족의 뿌리를 찾을 수 있게 저술한 우리민족 최고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동서문명의 뿌리를 찾도록 제시한 찬란한 문화의 횃불이다. 560년전(1443, 세종25년) 세종대왕께서 독창적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시고 80여년(1527년 중종22)만에 훈몽자회를 비롯한 동국정운 등을 펴내시어 훈민정음의 문법을 익숙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그 속에 서린 민족의 얼을 높이 흠모하고 세종대왕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경배 하면서 '왕손정통언어복원 실담어주석'을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6. 평 론 동서 철학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강상원 박사는 20년전 심오한 불교 교리에 심취되어 법화경을 영어로 번역 하였다. 그 과정에서 범어사전을 참고하는 등 연구를 하던 중 수천년 동안 해독하지 못한 일만년(一萬年) 전의 실담상형문자(悉曇象形文字)를 해독(解讀)해 우리 언어와 사상의 뿌리를 발견하고 확증하여 우리말이 세계 언어중 으뜸으로 최고의 말이며 실담어의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국문학자와 인류학자 그리고 철학자들은 정확하게 우리말이 어디서 어떻게 전래되었으며 언어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우리말의 뿌리(연원 淵源)을 알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체계적인 연구가 매우 미흡하였다고 한다. 그런 것을 이번에 끈기 있는 집념으로 한국어는 실담어의 태초의 연원이며 실담어는 동서문명의 연원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불경(佛經)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우리말의 뿌리가 있었다는 사실의 발견이라 하겠다. 우리 한글의 뿌리를 찾는 일에서 '훈민정음 28자회 신미대사학회'를 창립하고 , 한자를 실담어로 음역한 저서 "한자는 동이족문자 주석"을 발간하였고, 세종대왕 창제 훈민정음의 주역 혜각존자 신미대사" 라는 책을 발간하여 신미대사가 당시 산크리스트어(실담어)를 연구하여 한글창제에 관여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하여 학회의 지대한 관심을 기울리게 하고 있다. 한국세종한림원 훈민정음28자회 신미대사학회 명의로 발간한 "한자는 동이족 문자 주석" 저서는 우리말 뿌리, 불교어 실담어 등 동서문명의 연원을 탐구하여 우리 겨레 언어의 뿌리를 찾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저서는 유네스코를 비롯한 미국 하바드, 예일대학교 및 각 연구소 등 세계 유명 대학 도서관과 국내 100여개 대학 도서관에 기증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