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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연휘선 기자] "내가 교만했던 거지".
배우 박은수가 '전원일기2021'에서 '전원일기' 일용이보다 더 기구했던 굴곡진 인생을 고백했다.
2일 밤 방송된 MBC '다큐플렉스-전원일기 2021'(약칭 '전원일기2021')에서는 드라마 '전원일기' 속 일용이를 연기했던 박은수가 등장했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 동안 방송돼 국내 최장수 드라마로 사랑받은 작품이다. 이 가운데 박은수는 풍파 많은 소작농의 아들 일용이를 연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박은수의 실제 인생 또한 일용이 못지 않게 기구했다. '전원일기' 종영 6년 후 박은수가 사기 혐의로 피소되더니 두 차례 구치소 생활 후 긴 자숙의 생활을 보낸 것이다. 심지어 그는 70대가 된 최근 돼지농장에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알려져 충격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자아냈다.
'전원일기'에서 긴 시간 일용 아내로 호흡한 배우 김혜정도 박은수의 근황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전원일기2021' 출연을 끝까지 고심한 이유 또한 박은수였다. 이에 김혜정은 "드라마지만 20년 가까이 연기를 하지 않았나. 그런 것들이 정으로, 지나온 세월로 가슴 안에 쌓여있었다"라며 박은수에 대한 애틋함을 밝혔다.
정작 박은수는 김혜정과 만난 한 식당에서 "우리 혜정이 더 예뻐졌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혜정은 "세월이 어디인데"라고 웃으면서도 쉽게 박은수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이에 박은수가 먼저 "살 많이 빠지지 않았냐.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은수는 '전원일기2021' 제작진에게 "나는 요샛말로 '학교'도 다녀온 사람"이라며 "10년 이상을 일 하나 없이, 10년이 뭐냐 15년 이상을 그렇게 보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내가 성격도 팔팔하고 그래서 '어떤 놈이나한테 해코지를 하겠어?'라고 생각했다"라며 "그런데 나는 10원짜리 구경도 못했는데 사기를 쳤다고 하더라"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심지어 그는 "내가 다 솔직히 말하면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을 해서 그 돈으로 몇 개월 살았다. 그래도 그거 타는 재미로 우리 집사람이 그거 타는 시간만 기다렸다. 그거 얼마 안 된다. 백만원도 안 된다. 그거 갖고 시장 갈 날만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였다"라고 털어놔 애잔함을 더했다.
김혜정은 박은수에게 어렵게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근황을 묻기도 했다. 박은수는 "한 달 정도 일했다. 힘이 따라와줘야지 힘이 못 쫓아가는 순간 주인한테 얘기했다. 인터넷에 뜨고 시끄러워지니까 농장에 해가 될까봐 '못 하겠다’하고 나왔다"라고 밝혔다. 이에 김혜정은 주위에서 자신에게까지 박은수의 근황을 묻는 이야기를 전하며 "반듯하게 일어나셔야지. 너무 많은 분들이 선배님을 사랑한다"라고 했다.
또한 선배의 초라한 모습을 굳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심경을 반영하듯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고, "선배님 만나기 전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마음이 아팠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선배님은 좀 나쁘다. 선배님이 들리는 얘기로 자꾸 그러니까 마음이 아프다. 그립기도 했지만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화가 나서. 왜냐하면 다 나한테 물어봤다. 내가 바로 서야 하는 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을 위해서다"라고 조언했다.
이에 박은수는 "나는 구질구질한 건 남한테 보이기 싫으니까 일체 구석에 처박혀서 나 혼자서 있었다. 불암이 형한테도 연락을 못했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은수는 모두가 인정하는 자존심 강한 사람이었다. 일용 엄마 역으로 호흡했던 배우 김수미 또한 박은수에 대해 "차비 천원만 꿔달라고 할 바에야 걸어갈 사람"이라고 평했을 정도. 그럼에도 김수미 또한 박은수의 근황에 대해 "참 미안한게 한 식구로 몇 십년을 했는데 내가 못 찾아본 게 참 미안하다"라고 거듭 말했다.
그런 박은수가 안타까운 것은 베테랑 중견 연기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극 중 일용의 딸 어린 복길이로 활약했던 노영숙이 박은수와 김혜정을 보기 위해 '전원일기2021'을 찾았다. 특히 노영숙은 '전원일기' 출연했을 당시 자신의 나이만한 어린 딸을 데려와 박은수와 김혜정을 놀라게 만들었다. 박은수는 노영숙의 딸만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했고, 노영숙은 김혜정에게 '가짜엄마'라고 적은 손편지를 건네며 여전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노영숙은 박은수의 근황에 대해 "저는 알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 많이 짠했고 속상했다. 11년 동안 살 부대끼고 가족같이 생활하다 보니까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아팠다"라며 울컥해 감동을 더했다.
주위의 응원과 격려 속에 박은수는 담담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는 "내가 그렇게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라며 "나이 먹고 이런 거센 파도를 맞을 줄 몰랐다'라고 했다. 다만 그는 "내가 교만했다. 건방지고 교만했던 건 있다"라며 "이제 뭘 실수 했는지 아니까. 그런 전철을 밟으면 안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드라마 속 캐릭터 '일용이'보다 더 기구한 삶을 산 박은수. '전원일기'는 끝났지만 드라마와 캐릭터가 준 향수는 여전한 터. 박은수 또한 건강한 추억으로 대중 앞에 설 수 있길 기대한다. / monamie@osen.co.kr
[사진] MBC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