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居正 서거정 1420-14881420(세종 2)~1488(성종 19). 서거정은 대구生으로 호(號)를 사가정(四佳亭) 정정정(亭亭亭)이라함. ▷서거정은 6세에 독서하고 詩를지어 신동이라 불렀고, 19세(1438년) 에 진사과와 생원과에 합격했다. ▶ 25세(1444년)대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박사 관직으로 벼슬을 시작 ▷ 세종~성종代 69세 생애동안 6조 판서와 한성부판윤, 대사헌 대제학 을 지냄. ★ 시비(詩碑) 이미지 : 지하철7호선 사가정역 -> 400M 용마산 입구 공원에 세워진 시비(詩碑)입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권근(權近)의 외손자.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 후 집현전박사 등을 거쳐 1457년(세조 3)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공조참의 등을 지냈다.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에 올랐으며,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다.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고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文風)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다. 당대의 혹독한 비평가였던 김시습과도 미묘한 친분관계를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했으며, 그 자신도 뛰어난 문학저술을 남겨 조선시대 관인문학이 절정을 이루었던 목릉성세(穆陵盛世)의 디딤돌을 이루었다. 〈경국대전〉․〈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 ․〈동문선〉 편찬에 참여했으며,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언해했다. 그의 저술서로는 〈역대연표 歷代年表〉, 객관적 비평태도와 주체적 비평안(批評眼)을 확립하여 후대의 시화(詩話)에 큰 영향을 끼친 〈동인시화〉, 간추린 역사․제도․풍속 등을 서술한 〈필원잡기 筆苑雜記〉, 설화․수필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이 있으며, 관인의 부려호방(富麗豪放)한 시문이 다수 실린 〈사가집 四佳集〉 등이 있다. 명나라 사신 기순(祁順)과의 시 대결에서 우수한 재능을 보였으며 그를 통한 〈황화집 皇華集〉의 편찬으로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그의 글씨는 충주의 화산군권근신도비(花山君權近神道碑)에 남아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대구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秋日 추일 가을 날 徐居正 서거정 1420■1488 茅齋連竹逕 모재연죽경 띠집은 대 숲길로 이어져 있고 秋日艶晴暉 추일염청휘 가을 햇살 맑고 곱게 빛나네
果熟擎枝重 과숙경지중 열매가 익어서 가지는 늘어지고 瓜寒著蔓稀 과한착만희 마지막 남은 덩쿨에는 오이도 드무네
遊蜂飛不定 유봉비부정 여전히 벌은 날개 짓 그치지 않고 閒鴨睡相依 한압수상의 한가한 오리는 서로 기대어 졸고 있네
頗識身心靜 파식신심정 참으로 몸과 마음 고요하구나 棲遲願不違 서지원불위 물러나 살자던 꿈 이루어졌네
山居 산거 산에 살면서 徐居正 花潭一草廬 화담일초려 개성 땅 화담에 초가 한 간 瀟灑類僊居 소쇄유선거 신선처럼 맑고 깨끗하게 산다네
山簇開軒面 산족개헌면 앞쪽 창 열면 뭇 산들이 모여들고 泉絃咽枕虛 천현열침허 샘물은 베개머리에서 거문고처럼 노래하고
洞幽風淡蕩 동유풍담탕 골이 깊으니 바람소리 맑고 시원해 境僻樹扶疎 경벽수부소 사는 곳 구석지니 나무 울창하구나
中有逍遙子 중유소요자 이 가운데 한가하고 자유로운 사람 있으니 淸朝好讀書 청조호독서 청명한 아침 책 읽기를 좋아한다네
三伏 삼복 초여름 서거정 一椀香茶小點氷 일완향다소점빙 한 주발 향그런 차 조그마한 얼음 띄워 철來端可洗煩蒸 철래단가세번증 마셔보니 참으로 무더위를 씻었네 閑憑竹枕眠初穩 한빙죽침면초온 한가하게 竹枕 베고 단잠이 막 드는 차에 客至敲門百不應 객지고문백불응 손님 와서 문 두드리니 백번인들 대답 않는다네
小雨 소우 보슬비 서거정 逆旅少親舊 역려소친구 나그네 길에 친구는 적은데 人生多別離 인생다별리 인생길에는 이별이 많구나 如何連曉夢 여하연효몽 무슨 까닭인가, 새벽 꿈에 연이어 未有不歸時 미유불귀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은
獨坐 독좌 홀로 앉아 서거정 獨坐無來客 독좌무래객 오는 손님도 없이 홀로 앉았자니 空庭雨氣昏 공정우기혼 빈 뜰은 빗기운으로 어둑하구나 魚搖荷葉動 어요하엽동 물고기가 흔들어 연잎이 움직이고 鵲踏樹梢飜 작답수초번 까치가 앉으니 나뭇가지 흔들리네
琴潤絃猶響 금윤현유향 거문고가 젖었어도 줄은 울리고 爐寒火尙存 노한화상존 화로가 싸늘해도 불씨는 남았구나 泥途妨出入 이도방출입 진흙길이 나들이를 방해하니 終日可關門 종일가관문 종일토록 문에다 빗장을 걸어두리
閑中 한중 한가로움 속에서 서거정 白髮紅塵閱世間 백발홍진열세간 속세에서 백발이 되도록 살아오니 世間何樂得如閑 세간하락득여한 삶속에서 어떤 즐거움이 한가로움 같으리 閑吟閑酌仍閑步 한음한작잉한보 한가히 읊고,한가히 술 마시며,한가히 걷고 閑坐閑眠閑愛山 한좌한면한애산 한가히 앉고 잠자며 한가로이 산을 즐겼네 홍진에 묻혀 백발이 되도록 세상을 살아왔는데 세상살이 가운데 어떤 즐거움이 한가로움만 같으리 한가로이 읊조리고, 술 마시고 또한 한가로이 거닐고 한가로이 앉고 한가로이 잠자며 한가로이 산을 사랑한다네
自笑詩 자소시 웃으며 서거정 一詩吟了又吟詩 일시음료우음시 시 한 수를 읊고 나서 또 한 수를 읊어 盡日吟詩外不知 진일음시외부지 하루가 다하도록 시 읊는 일뿐 閱得舊詩今萬首 열득구시금만수 지난 날, 지어 둔 시 지금은 만 수 진知死日不吟詩 진일사일불음시 죽는 날에 가서야 읊지 않으리라
가을 더위〔秋暑〕 -서거정(徐居正) 맹렬한 더위에 가을 기운 겸하니 / 酷暑兼秋氣 혹서겸추기 숨은 사람 감회에 젖기도 쉬워라 / 幽人易感懷 유인역감회 물빛은 맑고 또한 넘실거리는데 / 水光晴更? 수광청경? 산색은 석양에 더욱 아름답구나 / 山色晩尤佳 산색만우가 벽에 기대어 둔 것은 적등장이요 / 倚壁赤藤杖 의벽적등장 당 위에 오르는 것은 청초혜로다 / 上堂靑草鞋 상당청초혜 향 사르고 하루 종일 앉았노라니 / 焚香坐終日 분향좌종일 재계하는 태상의 모습과 흡사하네 / 酷似太常齋 혹사태상재 [주1]적등장(赤藤杖) : 남방의 산중에서 난다는 적색 등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말한다. [주2]청초혜(靑草鞋) : 볏짚이나 풀의 줄기를 엮어서 만든 신을 말한다. [주3]태상(太常) : 종묘의 제사를 관장하는 관명(官名)이다.
차부뚜막/서거정
采采金露芽 (채채금로아) 조在水中央 (조재수중앙) 聊以活火煎 (료이활화전) 便覽聞天香 (편람문천향) 따고 또 따는 금빛 노아차 부뚜막은 물의 한복판에 있네. 즐겨 솟는 불꽃으로 차 다리며 바로 향그런 향기 맡기를 살피네
* 서거정은 조선왕조 초의 유명한 학자로 자는 강중 호는 사가이다. 세종대왕 이후, 오조를 역임한 분으로 그는 천재라 일컬어져 천문.지리.어학.복서 등에서 능통하였다. 저서로서는 동국통감, 필원잡기, 서찬동국여지승람 등이 있으며 시호는 문충이다.
돼지가 삼킨 폭포[저끽폭포猪喫瀑布] 한 조관(朝官)이 일찍이 진양(晋陽) 고을의 수령이 되었다. 그는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심하여 비록 산골의 과일과 채소까지라도 그대로 남겨 두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절간의 중들도 그의 폐해를 입었다. 하루는 중 하나가 수령을 찾아가 뵈었더니, 수령이 말하기를, “너의 절의 폭포가 좋다더구나.”라고 하였다. 폭포가 무슨 물건인지 모르는 중은 그것도 또 세금으로 거두려고 하는가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저의 절의 폭포는 금년 여름에 돼지가 다 먹어 버렸습니다.”라고 하였다. 강원도 한송정(寒松亭)의 산수 경치가 관동 지방에서 으뜸이었으므로 구경꾼이 끊이지 않고 말과 수레가 사방에서 모여 들었다. 고을 사람들은 그 접대하는 비용이 적지 않았으므로 항상 푸념하기를 “저 한송정은 어느 때나 호랑이가 물어 갈까.”라고 하였다. 어떤 시인이 다음과 같이 두 구(句)의 시를 지었다. 폭포는 옛날에 돼지가 먹어 버렸네만, 瀑布當年猪喫盡 한송정은 어느 때에 호랑이가 물어갈꼬. 寒松何日虎將歸
大邱十景(대구십경)
第一景 : 琴湖泛舟(금호범주, 금호강의 뱃놀이) 第二景 : 笠巖釣魚(입암조어, 입암의 낚시) 第三景 : 龜峀春雲(귀수춘운, 거북산의 봄 구름) 第四景 : 鶴樓明月(학루명월, 금학루의 밝은 달) 第五景 : 南沼荷花(남소하화, 남소의 연꽃) 第六景 : 北壁香林(북벽향림, 북벽의 향림) 第七景 : 桐華尋僧(동화심승, 동화사의 중을 찾음) 第八景 : 櫓院送客(노원송객, 노원의 송별) 第九景 : 公嶺積雪(공영적설, 팔공산에 쌓인 눈) 第十景 : 砧山落照(침산낙조, 침산의 저녁노을)
大邱十景을 노래한 徐居正의 七言絶句 十首가 傳해오고 있다. 원래 十詠인 것을 大丘十詠, 大丘十景, 達城十詠, 達城十景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당시는 大丘로서의 邑城이 축조되지 않았고 達城(현재의 달성공원일대)이 그 堡障이 되어 慶尙道都觀黜陟使(경상도도관찰출척사)가 巡察할 때이며, 大丘邑에는 知事를 두고 있던 때이다. 일찌기 達城이 達城徐氏의 世居地였음을 지금의 달성공원 경내에 1971년에 세워진 達城徐氏遺墟碑(달성서씨유허비)가 그 來歷을 말해주고 있다.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의 字는 剛中, 號는 四佳亭 또는 亭亭亭이다. 世宗 2년(1420)에 태어났고, 太宗의 王權確立에 佐命一等功臣인 陽村 權近의 外孫이기도 한 그는 世宗 26년(1444) 式年文科에 오른 후 9代 成宗까지 6朝의 임금을 섬기는 동안 6曺判書를 두루 지냈으며 兩館大提學과 左贊成에 佐理功臣三等으로 達城君에 封해지고 諡號(시호)는 文忠이다. 그의 학문은 天文(천문), 地理(지리), 醫藥(의약), 卜筮(복서), 星命(성명)등에 능통한 대학자로 海東의 奇才라 일컬을 만큼 국가의 高文大冊이 거의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이니 歷代年表(역대년표), 經國大典(경국대전), 東國通鑑(동국통감), 筆苑雜記(필원잡기), 東文選(동문선), 新撰輿地勝覽(신찬여지승남), 四佳集(사가집) 등외에도 많은 저서가 있다. 大邱의 十景은 成宗 12년(1481), 王命에 의해 盧思愼(노사신)등이 중국 明나라의 大明一統誌(대명일통지)를 본 떠서 만든 各道의 地理誌인 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승람)을 中宗 25년(1530)에 역시 왕명에 의해 보완하여 증보한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大邱(대구)는 이른바 內凌盜地(내릉도지)로 新川을 軸으로 하여 北東部의 八公山 줄기와 南의 最頂山(최정산) 및 琵瑟山(비슬산)줄기로 둘러 싸여 있고 西쪽으로 약간 트여 있는 나팔모양을 하고 있다. 新川은 비슬산 줄기에서 發源하여 南部山地의 谷口인 嘉昌(가창)에서 龍頭부리(용두방천)를 거쳐 시내로 들어 와서 배나무 샘(지금의 梨泉洞)과 水道山(대구수도관리소가 있는 산, 기린의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기린산이라 했음) 동쪽 기슭을 스쳐 건들 바위를 지나 이곳에서 한바퀴 돌아 깊은 물 구비를 만들고 다시 連龜山(연구산, 제일여중이 있는 산), 蛾眉山(아미산, 대구 향교가 있는 산, 모양이 나비눈썹 같다고 하여서) 밑으로 해서 東山(신명여고 일대의 산)을 지나 달성공원 앞으로 해서 날뫼(飛山洞)로 하여 達川(達西川)으로 흘러 八達津(팔달진, 팔달교부근)에서 琴湖江(금호강)과 合流하던 것을 正祖 1년(1777)에 大丘判官(대구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1778년에 사재를 들여 해마다 겪는 대구지방의 물난리를 막고자 물길을 지금의 新川으로 돌렸고 新川을 현재의 백사부리(서변 잠수교와 침산교부근)에서 琴湖江으로 流入되게 하였다.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그가 죽은 3년 후인 1797년에 李公堤碑(이공제비)가 세워지고 지금까지 매년 1월 14일에 대백프라자 부근인 중구 봉덕 1동 655번지의 新川堤防(새내둑)에 移建된 李公堤碑閣(이공제비각)에서 방천시장 번영회가 중심이 되어 祭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新增東國輿地勝覽(이하 新輿覽이라 약칭함)의 山川條(산천조)에서 笠巖(입암, 삿갓바위)을 「在新川中其形如笠故名(재신천중기형여립고명)‥‥‥」이라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新川은 무엇이며 248년 후인 正祖 2년(1778년)에 判官 李淑(이숙)가 私財를 들여 대구의 수로를 변경하여 당시 교동에 있었던 孔子廟(공자묘, 향교)의 侵水 위험까지도 막았다던 新川은 무엇이냐 하는 의문이다. 新川이 되기 이전의 내 이름을 알길 없어 1778년 이후의 新輿覽의 重刊 과정에서 이미 굳어진 新川으로 改字했는지 아니면 1530年의 新輿覽에서도 대구의 수로를 변경한 적이 있어 新川이라고 하였고 그 후의 李判官(이판관)의 수로 변경도 新川이라고 아울렀는지, 아니면 「새내」의 뜻에서 다른 뜻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나마 大邱十景(대구십경)이 있었기로 근 500년 전의 大邱風光(대구풍광)이 이러했으리라고 나름대로 그 情景을 그려볼 수 있게 됨은 다행한 일이다.
第一景 : 琴湖泛舟(금호범주, 금호강의 뱃놀이)
琴湖淸淺泛蘭舟(금호청천범난주) 금호강 맑은 물에 조각배 띄우고 取此閑行近白鷗(취차한행근백구) 한가히 오가며 갈매기와 노닐다가 盡醉月明回棹去(진취월명회도거) 달 아래 흠뻑 취해 뱃길을 돌리니 風流不必五湖遊(풍류불필오호유) 오호가 어디더냐 이 풍류만 못하리
蘭舟(난주) : 本蘭(본란) 木蓮(목련)으로 만든 조각배 取此(취차, 次(차)) : 차츰, 점차 五湖(오호) : 중국의 큰 호수로, 陽湖(파양호), 靑草湖(청초호), 洞庭湖(동정호), 丹陽湖(단양호), 太湖(태호) 또는 격호, 조호, 財湖, 貴湖를 말함. 琴湖江은 그 根源이 둘인데 하나는 慶州(경주)의 母子山에서, 또 하나는 新寧(신녕)의 普賢山(보현산)에서 發源(발원)하여 永川(영천) 雙溪(쌍계)에서 合流(합류)하고 河陽(하양), 半夜月(반야월)을 지나면서 구비마다 아름다운 景勝을 이루니 蛾洋樓(아양루)가 있는 東村유원지 일대가 그렇고 檢丹(검단)의 蒼壁(창벽)과 花潭(화담)의 진달래, 砧山 落照(침산 낙조)와 櫓院(노원)의 白沙場(백사장), 臥龍山(와룡산)의 玉沼岩(옥소암), 江倉(강창)의 절벽을 둘러 江停(강정)나루에서 洛東江(낙동강)으로 流入하는 大邱의 젖줄로서 江岸(강안) 곳곳에 樓臺亭舍(누대정사)와 景勝地(경승지)가 많아 時人墨客(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第二景 : 笠巖釣魚(입암조어, 삿갓바위의 낚시)
烟雨空?澤國秋(연우공몽택국추) 이슬비 자욱히 가을을 적시는데 垂綸獨坐思悠悠(수륜독좌사유유) 낚시 드리우니 생각은 하염없네 纖鱗餌下知多少(섬린이하지다소) 잔챙이야 적잖게 건지겠지만 不釣金驚鉤不休(부조금오조불휴) 금자라 낚지 못해 자리 뜨지 못하네
空(공몽) : 이슬비가 보얗게 내리거나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어둑침침한 모양 垂綸(수륜) : 낚시줄을 늘어뜨림, 낚시질을 함 纖鱗(섬린) : 작은고기 金驚(금오) : 금자라 笠巖(입암) 역시 新川과 마찬가지로 논란이 있어 왔는데,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15번지에 있는 속칭 건들바위를 말한다. 큰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는데 건드리면 건들건들 한다고 건들바위라 이름하였다 한다. 높이 3m, 너비 1.6m의 이 바위가 영험하다 하여 지금도 매년 정월초가 되면 부인들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워 치성을 드리고 있다. 그런데 新輿覽에 「在新川中 其形如笠故名 世傳星隕爲石」즉 新川 가운데에 있고 그 모양이 삿갓 같아서 이름을 삿갓바위라 한 것까지는 수긍이 가나, 별의 운석이 된 돌이라 하는데서 지금의 건들바위는 운석이 아니기 때문에 삿갓바위가 아니다는 疑問이 提起된다. 그래서 일설에는 지금의 新岩橋(신암교) 건너 북쪽에 西洋月山이 있는데 이 山아래 新川쪽에 큰 바위가 높이 솟아 사람이 갓을 쓰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삿갓바위등이라 이름하고 山밑에서 옛날 羊을 많이 먹였기 때문에 양지동이라 칭하였다 하나 알 길이 없다. 이 바위는 일제시대 신천의 범람을 막기 위한 호안공사를 하면서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 버렸다 하니 아쉬운 일이다. 여하간 앞서의 新川과 이 삿갓바위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第三景 : 龜峀春雲(귀수춘운, 거북산의 봄 구름) 峀 산굴 수
龜岑隱隱似驚岑(귀잠은은사오잠) 거북뫼 아득하여 자라산 닮았고 雲出無心亦崙心(운출무심역유심) 구름 토해냄이 무심한 듯 유심 한 것이 大地生靈方有望(대지생령방유망) 온땅의 백성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可能無意作甘霖(가능무의작감림) 가뭄에 단비 만들어 주려 함이네
鰲岑(오잠) : 鰲山, 자라산, 中國에 있는 神仙이 산다는 山 生靈(생령) : 生民, 百姓 甘雲(감운) : 오랜 가뭄 뒤에 내리는 장마 龜岑(귀잠, 거북산)은 運龜山(운귀산), 午砲山(오포산), 자래방우산 등으로 불리어온 대구광역시 봉산동의 제일여중이 있는 連龜山(연귀산)을 말한다. 純宗(순종)때 大邱府民에게 午正을 알리기 위해 이 곳에서 포를 쏘았기로 午砲山이라 한 것이다. 新輿覽에 「連龜山 在付南三里 鎭山 諺傳建邑初 作石龜 藏于山春 南頭北尾 以通地脈 故謂之連龜」라 하여 대추의 진산이 되는데 산등에 돌거북을 만들어 지맥과 통하도록 머리는 南쪽, 꼬리는 北쪽으로 하여 묻고 이를 連龜(연귀)라 하였다는데 막상 현재의 돌거북은 언제부터인가 머리는 東으로 꼬리는 西로 하여 地脈(지맥)과 관계없이 제일여중 교정 한 모서리 철책 속에 갇혀 있다. 학교 건축시에 옮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이라도 바로 잡았으면 한다. 또 이 連龜山을 지금의 大德山(대덕산)이라 하고 安逸寺(안일사)가 있는 안지랭이골을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이의 근거는 극히 희박하다. 또 돌거북을 만들어 둔 곳이 옛 서낭당이라는 기록도 있고 보면 이곳에서 祈雨祭(기우제)를 지냈던 것 같고 徐居正의 時도 기우제의 祈禱詞(기도사)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처럼 大邱十景은 거의가 景勝(경승)과 風光(풍광)을 노래하면서도 그 밑바탕에는 國泰民安(국태민안)의 祈願(기원)을 담고 있어 四佳亭(사가정)의 愛民精神(애민정신)을 살피게 한다.
第四景 : 鶴樓明月(학루명월, 금학루의 밝은 달)
一年十二度圓月(일연십이탁원월) 일년에 열 두 번 둥근 달이야 뜨지만 待得中秋圓十分(대득중추원십분) 기다리던 한가위 달 한결 더 둥그네 更有長風秋雲去(갱유장풍추운거) 긴 바람 한바탕 불어 구름 쓸어내니 一樓無地着纖紛(일루무지착섬분) 누각엔 티끌 한 점 붙을 자리 없구나
纖紛 : 먼지, 티끌, 흉한 기운 鶴樓(학루)는 琴鶴樓(금학루)를 말한다.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50번지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던 舊 達城館(달성관, 客舍) 東北쪽 모퉁이에 世宗 7년(1425) 당시 大邱邑知軍事(대구읍지군사)였던 琴柔(금유)가 세우고 慶尙道都觀察黜涉使(경상도도관찰출섭사)였던 拙齋(졸재) 김요가 記文(기문)을 썼는데 『옛사람이 사물의 이름을 지을 때는 그 地名에 따르거나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된다. 巴陵(파릉)의 岳陽樓(악양루, 중국 악양현에 있고 洞庭湖(동정호)의 아름다운 경치를 俯瞰(부감)할 수 있는 누각)는 그 地名을 땄으나 醉翁亭(취옹정)은 저주지사인 醉翁(취옹, 宋나라 歐陽修의 別號)의 이름을 땄듯이 이제 琴候(금후)가 邑에 부임했고, 邑에 琴湖(금호)의 이름도 있고 보니, 그 이름과 樓의 모양이 鶴(학)이 춤추듯 하여 樓에 오른 즉 一琴(일금)에 一鶴(일학)이라, 世俗의 티끌을 털어내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상쾌한 氣象이로다. 거문고 소리에 은은히 和答하고 南風에 세상의 시름 풀어주는 즐거움이 있으니 그 이름을 琴鶴樓(금학루)라 함이 可하도다.‥‥‥』라 하여 樓의 이름이 지어진 경위를 말해주고 있다. 琴鶴樓(금학루)를 두고 읊은 詩, 姜進德의 〈日僧龍章 琴柔〉에서 樓高(누고), 鈴閣(영각), 朱欄(주란), 明月(명월), 雲鶴(운학), 淸香(청향) 등의 詩句로 미루어, 그 규모와 情趣(정취)를 짐작할 수 있겠다.
第五景 : 南沼荷花(남소하화, 남쪽 연못의 연꽃)
出水新花疊小錢(출수신화첩소전) 새로 나온 연꽃 포갠 동전 같더니 花開畢竟大於船(화개필경대어선) 꽃 다 피고 나니 배(船)보다 더 크네 莫言才大難爲用(막언재대난위용) 감(才) 커서 쓰기 어렵다 말 것이 要遣深?萬姓悛(요견심아만성전) 고질병에 긴히 써서 온 백성 고치리
小錢(소전) : ①청나라 때 쓰던 黃銅錢(황동전) ②얇은 날의 작은 가래 深?(심아) : 고질병.沈痼(침고). 萬姓전(만성전) : 만백성의 병을 고침 南沼(남소)란 남쪽 못이란 뜻인데 聖堂池(성당못)를 가리킨다. 지금 靈仙市場(영선시장)이 들어선 靈仙池(영선지 또는 靈信池)라는 설도 있으나 이는 옳지 않다. 영선지는 일제시대인 1923년에 넓이 10,017평으로 판 貯水(저수) 灌漑用(관개용) 못이었다. 따라서 聖堂池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東北쪽에 있는 第六景 道洞(도동) 香林(향림)을 『北壁林(북벽림)』이라 한 것과 대칭되게 南沼(남소)라 한 것 같기 때문이다. 聖堂池는 성댕이못이라고도 불렀는데 땅골(당곡)이라하여 성당동에서 으뜸되는 마을에 八聖堂이 있어서 八聖堂里 이를 줄여서 聖堂, 聖堂里 하였으나 그 뒤 八聖堂을 헐고 대구 判官 金魯가 못을 팠으니 이것이 현재 花園(화원) 방면으로 나가는 大路邊에 있는 주위 약 2Km의 못이다. 한 때 그 부근의 도축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로 오염되었으나 지금은 두류공원의 경내가 되었으므로 南沼荷花를 다시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또한 이 시에서도 백성의 무병을 바라는 四佳亭의 소망이 역력하다.
第六景 : 北壁香林(북벽향림, 북쪽 절벽의 향나무 숲)
古壁蒼杉玉?長 (고벽창삼옥삭장) 옛 벽에 푸른 측백 옥창같이 자라고 長風不斷脚時香(장풍부단각시향) 그 향기 바람따라 철마다 끊이지 않네 慇懃更着栽培力(은근갱착재배력) 정성들여 심고 가꾸기에 힘쓰면 留得淸芬共一鄕(유득청분공일향) 맑은 향 온 마을에 오래 머물리
玉?(옥삭) : 옥으로 된 창 淸芬(청분) : 맑은 향기, 깨끗한 德行 北壁(북벽)의 香林(향림)은 대구광역시 도동 180번지 일대의 절벽산에 자생한 側柏樹林(측백수림)을 가리킨다. 대구천연기념물 제1호이기도 한 측백나무는 常綠僑木(상록교목)으로 원래 중국의 특산으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의 丹陽(단양), 英陽(영양), 蔚珍(울진) 및 安東 等의 山地에서도 자라고 있는데, 북벽의 향림은 측백이 자랄 수 있는 분포지역의 南方限界地(남방한계지)로 植物地里學(식물지리학)상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이 북벽향림 이후 이 산을 香山이라고도 하였는데 19세기 초엽 인근에 살았던 아홉 노인의 詩會를 기리는 후손들이 중국 白樂天(백락천)의 香山九老會(향산구로회)를 본떠 1933년 3월에 이 산 낭떠러지 중턱 10여 평 남짓한 터에 3樑 맞배집을 짓고 九老亭(구로정)이라 하여 지금도 남아 있다.
제7경 : 桐華尋僧(동화심승, 동화사의 중을 �O음)
遠上招提石逕層(원상초제석경층) 멀리 절로 오르는 좁은 돌층계 길 靑藤白襪又烏藤(청등백말우오등) 푸른 등나무 하얀 버선 검은 지팡이 此時有興無人識(차시유흥무인식) 지금의 이 흥은 아무도 모르리라 興在靑山不在僧(흥재청산부재승) 흥은 청산에 있고 중은 간 곳 없네
招提(초제) : 절, 사찰 靑藤(청등) : 푸른 등나무 白襪(백말) : 흰버선 烏藤(오등) : 검은 등나무, 검은 꼬부랑 지팡이 여기서 承句(승구)의 靑藤(청등)이 新輿覽과 英祖年間에 편찬된 大丘邑誌(대구읍지)에는 靑藤(청등, 푸른등나무)으로 되어 있고 純祖 32년(1832)의 慶尙道邑誌(경상도읍지) 중의 大丘府邑誌(대구부읍지)와 高宗 32년(1895)의 嶺南邑誌(영남읍지) 중의 大丘府邑誌(대구부읍지)에는 「靑鞋(청혜)」(푸른 짚신)으로, 日帝下 1924년에 나온 大邱府邑誌(대구부읍지)와 達城徐氏派譜(달성서씨파보)에는 靑衫(청삼, 푸른적삼)으로 나와 있다. 新輿覽의 靑藤(청등)대로함이 마땅하나 「푸른 등나무 흰 버선에 검은 등나무」 또는 「푸른 등나무 흰 버선에 검은 지팡이」보다는 「푸른 적삼 흰 버선에 검은 지팡이」가 보다 形(형)의 具象化(구상화)를 위해 더 좋을 것 같은데 고증할 길이 없다. 그리고 桐華寺(동화사)는 大邱의 東北쪽 18km 지점인 道鶴洞(도학동) 八公山 기슭에 있는 新羅(신라)의 古刹(고찰)로 炤智王(소지왕) 15년(493)에 極達和尙(극달화상)이 創建(창건)하여 처음 瑜伽寺(유가사)로 하였다가 340년 후인 興德王(흥덕왕) 7년(832)에 憲德王子(헌덕왕자) 心地王師(심지왕사)가 重建(중건)할 때 簡子(간자) 8개를 던져 그 떨어진 곳에 佛堂을 이룩하니 지금의 籤堂(첨당) 뒤 작은 우물이 있는 곳인데 때마침 겨울인데도 오동나무 꽃이 피었다 해서 桐華寺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비로암, 양진암, 염불암 등의 부속 암자는 물론, 동화사입구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43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 극락전 삼층석탑(보물 제246호),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호), 동화사 당간지주(보물 제254호), 도학동 석조부도(보물 제601호) 등 보물 6점과, 金剛杵(금강저), 泗溟大師(사명대사)의 眞影(진영)등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경내에 1992년에 완공된 統一藥師大佛(통일약사대불)의 위용(높이 33m, 둘레 16.5m)이 동화사를 더욱 유명하게 하고 있다.
第八景 : 櫓院送客(노원송객, 노원에서의 송별)
官道年年柳色靑(관도년년류색청) 한양 길 버들잎은 해마다 푸르고 短亭無數接長亭(단정무수접장정) 줄지은 주막들이 길게도 늘어섰네 唱盡陽關各分散(창진양관각분산) 이별의 노래 그치고 객 흩어진 뒤에는 沙頭只臥雙白據(사두지와쌍백거) 빈 술병만 짝이 되어 모래밭에 뒹구네
短亭長亭(단정장정) : 작은 숙사와 큰 숙사, 옛날에 五里마다 단정을, 십리마다 장정을 두었음. 陽關(양관) : 중국의 關門名(관문명)으로 지금의 甘肅省(감숙성) 敦煌縣(돈황현)에 있고, 王維(왕유)의 渭城曲(위성곡)으로 有名하며 送別의 상징으로 쓰임. 櫓院(노원)은 大櫓院의 약칭인데 당시 大邱의 북쪽 關門(관문)인 이곳 大櫓院에서 惜別의 情을 노래한 것이다. 원래 도로 연변에 행인들이 쉬어가게 해 놓은 곳을 院 또는 亭(정)이라 하였는데, 거리가 먼 곳을 長亭(장정), 가까운 것을 短亭(단정)이라 했고, 이곳이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의 첫 나루터여서 길손들이 쉬어 감은 물론 이별과 만남의 哀歡(애환)이 교차되던 곳이다. 이 大櫓院 앞이 八達津(팔달진, 팔달교가 놓이기 전의 금호강 나루)이어서, 그곳이 大邱의 關門(관문)으로 되어 있었다.
第九景 : 公嶺積雪(공령적설, 팔공산에 쌓인 눈)
公山千丈倚峻層(공산천장의준층) 팔공산 천길 높이 가파르게 솟아 있고 積雪漫空沆瀣澄(적설만공항해징) 쌓인 눈 하늘 가득 이슬 되어 맑구나 知有神祠靈應在(지유신사영응재) 사당 모시니 신령님 應感 있어 年年三白瑞豊登(연년삼백서풍등) 해마다 서설 내려 풍년을 점지하네
沆瀣(항해) : 이슬기운 三白瑞(삼백서) : 정월에 오는 서설 豊登(풍등) : 오곡이 많이 잘 여묾, 풍작 八公山은 大邱盆地(대구분지)의 東北部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산줄기이다. 新羅 때는 아버지의 산, 즉 父岳(부악)이라 하였다가, 나라의 중앙에 있다 해서 中岳(중악)이라고 불렀고, 또 여기서 나라의 公的儀式(공적의식)인 祭天壇(제천단)을 설치하게 되어 公山이라 하였다. 그 후 후삼국시대에 王建(왕건)과 甄萱(견훤)의 이곳 공산 전투에서, 王建이 포위당하여 죽게 된 것을 申崇謙(신숭겸), 金樂(김락)등의 여덟 공신이 장렬히 전사하고 王建을 구했다 해서 八公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최정상인 비로봉이 해발 1,192m로 중앙에 우뚝 서 있고, 좌우로 염불봉, 삼성봉이 양어깨처럼 펼치고 東西로는 동봉, 서봉이 東南으로 관봉, 노적봉, 인봉, 수봉, 북으로 시루봉, 西로 파계봉을 너머 가산에 이르는 環狀山脈(환상산맥)을 이루어 영천, 달성, 군위, 칠곡을 깔고 앉은 靈山(영산)이다. 동화사, 파계사를 비롯하여 부인사, 송림사, 갓바위 등의 크고 작은 사찰, 암자와 기암절벽 및 계곡, 폭포로 사시사철의 절경을 이루고 또한 정상 바로 아래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는 등, 대구 시민에게는 가장 큰 휴식처와 등산로를 제공해 주고 있다.
第十景 : 砧山落照(침산낙조, 침산의 저녁 노을)
水自西流山盡頭(수자서류산진두) 물줄기 서로 흘러 산머리에 닿고 砧巒蒼翠屬淸秋(침만창취속청추) 침산의 푸른 숲은 가을 정취 더하네 晩風何處春聲急(만풍하처춘성급) 저녁 바람 타고 오는 방아 소리는 一任斜陽搗客愁(일임사양도객수) 노을에 젖은 나그네 시름 애끓게 하네
蒼翠(장취) : 푸른빛, 푸른 물총새 春聲(춘성) : 방아나 절구 찧는 소리 砧山은 대구의 新川河口(신천하구)를 지키는 속칭 水口막이 山이라 하고, 방망이를 닳았다 하여 일명 방망치산이라고도 하였다. 높이 144m의 平地에 솟은 獨山(독산)으로 조선시대 때는 大丘府의 女祭壇(여제단)이 있었다 하는데 없어지고 지금은 침산공원이 되어 있다. 白沙부리라 하여 북쪽에 있는 마을 앞에는 흰모래가 많았으니 침산에서 바라보는 저녁 노을은 푸른 숲에 물든 단풍과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노원 나루에서 팔달교로 흘러 들어가는 금호강의 금빛 물결과 어울러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女祭壇이란 동네 수채나 水溝(수구)쪽에 돌이나 흙으로 단을 쌓고, 그 위에 방아를 Y자 모양으로 거꾸로 세운 뒤, 여자의 속곳을 뒤집어 입혀 놓고, 묽은 팥죽이나 수수밥을 올려, 문둥병이나 못된 돌림병을 퍼뜨리는 女鬼, 惡鬼(악귀)를 쫓는 액막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 곳에 女祭壇이 있었던 것은 新川(신천)이 琴湖江(금호강)으로 流入(유입)되는 水溝가 이곳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거정은 가고, 대구는 남아 있으나, 그 모습은 많이 변하였다.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바둑시 서거정은 성품이 원만하고 술과 바둑을 좋아하여 다양한 인물들과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귀었다. 그의 문집에 보면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바둑을 두며 읊은 시가 나온다.
김자고가 자기 집에서 바둑을 두자고 초청하기에 찾아갔더니, 먼저 시 한수를 부탁하기에 즉석에서 차운하여 읊었다.
세상일이 해가 갈수록 새롭게 교활해지니 그 유래를 살펴보면 당국자가 정신이 혼미해지기 때문이다. 그대는 승패가 모두 운수소관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지고 이기는 것이 사람에 달려있다고 말하노라. 개보(介甫)는 인연 따라 도매시(賭梅詩)를 지었고 사안(謝安)은 바둑으로 별장을 내기하면서 친척 중용을 혐의하지 않았네. 어쩌다 공무 없을 때면 서로 방문하여 놀세나. 다만 바둑 두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질까 두렵네.
金子固邀至其第圍棋先寄詩卽次韻戱之 금자고요지기제위기선기시즉차운희지
世事年來機巧新 세사년래기교신 由來當局尙迷神 유래당국상미신 君言勝敗皆關數 군언승패개관수 我道輸?只在人 아도수?지재인 介甫隨緣聊作戱 개보수연료작희 聊 힘입을료, 애오라비료, 귀울료 謝安賭墅不嫌親 사안도서부혐친 墅 농막서 偶無公事宜相訪 우무공사의상방 只恐秋聲震四隣 지공추성진사린
*개보(介甫): 중국 북송시대의 문인 왕안석(王安石). 그가 일찍이 항주사람 설앙과 지는 쪽에서 매화시 한수를 짓기로 내기 바둑을 두었는데, 설앙이 바둑을 지고도 시를 짓지 못하므로 왕안석이 대신 시를 지어줬다는 고사가 있음. *개안(謝安): 중국 남송 비수전투 때 그는 자기의 친조카인 사현을 장수로 임명했다. 이에 반대파 인물들은 사안이 공무를 사사로이 처리한다고 비난했으나 사안은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사현이 출정을 앞두고 숙부인 사안을 찾아가자 사안은 조카에게 별장을 걸고 내기 바둑을 두자고 청했다. 평상시에는 조카인 사헌의 바둑실력이 강해서 항상 이겼으나 이날은 전쟁을 앞두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여 사안에게 지고 말았다. 숙부의 의연한 태도를 보고 안심이 된 사현은 전장에 나아가 대승을 거뒀다.
서거정이 바둑친구인 광원군 이극돈(李克墩)에게 바둑을 두자며 초청장을 보냈는데 편지 대신 시 한수를 지어 보냈다. (墩 돈대돈, 평지보다 약간높게된곳)
광원군에게 바둑을 두자고 초청한 시
둥근 연잎이 동전처럼 작은 연못에 점을 찍은 것 같다. 훈훈한 남풍이 한바탕 불더니 부슬부슬 비가 오네. 긴긴날 그윽한 서원에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어 홀로 앉아 바둑돌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본다.
邀李廣原圍棋 요이광원위기 (邀 맞을요, 초대하다, 오는 것을 맞이하다)
荷葉如錢點小池 하엽여전점소지 南薰一陳雨絲絲 남훈일진우사사 日長深院無人到 일장심원무인도 獨坐敲棋有所思 독좌고기유소사 敲 두드릴고
사가 서거정이 노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야인생활을 할 때 하루는 찰방(察訪: 조선조 때 각도의 역참 일을 맡아보는 외직) 윤예경(尹禮卿)이 경치 좋은 숲속 정자에서 술잔치, 바둑잔치를 벌여 놓고 사가를 초청해서 대접하므로 대취해서 돌아왔다. 그 이튿날 사가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 몇 수를 지어 윤예경에게 보냈다.
그 누가 퇴직한 즐거움을 말했나. 한가롭게 살다보니 사는 곳이 점점 외진 데로 옮겨간다.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산수의 경치는 즐길 만하다. 바둑 한판으로 소일하고 술 석 잔으로 근심 씻는다. 의관을 마음대로 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무엇하러 다시 벼슬을 구하랴.
誰信休官樂 수신휴관락 居閑地轉幽 거한지전유 風塵相隔絶 풍진상격절 山水可優遊 산수가우유 一局棋消日 일국기소일 三杯酒洗愁 삼배주세수 衣冠已隨意 의관이수의 簪?復何求 잠?복하구 簪 비녀잠, 신속하다,
가을밤 / 서거정(徐居正,
山月皎如燭 松風喧似溪 산월교여촉 송풍훤사계 幽人坐不寐 鳥驚猶未栖 유인좌불매 조경유미서 皎 달빛교 喧 의젓할 휀 寐 잠잘매 栖 깃들일 서
조경유미서 산달은 등불인양 환하고 솔바람 냇물처럼 들리네. 나는 잠 안 와 앉았고 놀란 새 둥지에 못 드네.
높이 매단 등불처럼 산달이 밝다. 숲 사이 갈피마다 훤히 비춘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소리가 물 불어난 시냇물 소리 같다. 대낮 같이 밝은데 잠이 오겠나. 귀가 시끄러운데 잠을 자겠나. 나는 그저 오두마니 앉아 눈감고 솔바람 소리를 듣다가, 물이 너무 불어난다 싶으면 감았던 눈을 뜨고 마당에 가득 고인 달빛을 바라본다. 태풍을 몰아오는 바람소린가? 새도 놀라 방황하며 둥지 둘레를 퍼득이며 난다.
睡起 잠에서 깨어나
簾影深深轉 렴영심심전 발 그림자는 깊숙이 들어오고 荷香續續來 하향속속래 연꽃 향기는 끊임없이 풍겨오네. 夢回孤枕上 몽회고침상 꿈에서 깨어난 외로운 목침 맡에 桐葉雨聲催 동엽우성최 후두둑 오동잎에 빗소리 재촉
*睡 잠잘 수/ 簾 발 렴 / 荷 연꽃 하 / 催 재촉할 최 [출전] 《大東詩選》: 한국 역대의 시가(詩歌)를 모아 엮은 책. 필사본. 12권 6책. 편자 ․연대 미상. 삼국시대의 고가(古歌)를 비롯하여 40여 명에 달하는 역대 문인들의 각체시(各體詩)를 분류 ․편찬한 시선집이다. 기자(箕子)의 것이라는 《맥수가(麥秀歌)》와 《열수가( 水歌)》, 고구려 유리왕(琉璃王)의 《황조가(黃鳥歌)》, 신라 진덕여왕의 《대당태평송(大唐太平頌)》 등 고가와 최치원(崔致遠)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이황(李滉) ․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 ․김시습(金時習) 등 많은 명인들의 시가가 수록되어 있다. <두산백과>
[작품해설] 집안은 텅 비어 있고 낮잠을 즐기다가 소나기가 후두둑 오동잎을 때리는 소리에 잠을 깬 순간의 포착이 산뜻하다. 이러한 정경 묘사는 음악이라면 상징할 수 있어도 그림으로 잡기는 어렵다. 놀라움이 맑게 상이 잡히는 시다. 깊은 사상이나 강한 이념이 전달되는 시는 아니나, 그저 아름다운 심상을 표출하는 재주가 번뜩이는 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적 감흥의 포착은 깊은 관조의 여과로만 얻어지는 라고 본다 -이종건의 “서거정 시문학 연구”.
서거정의 시는 대체로 “ 容富艶”(찧을용, 얼굴용, 풍성할부, 고울염) 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 작품 역시 館閣 文人의 여유와 멋을 풍기고 있다. 잠깐 낮잠에 빠졌다가 비소리에 깨어난 시인의 모습이 몽롱한 여름 정경과 잘 어우러져 있다. 기구는 발그림자가 시간이 감에 따라 길어지는 것을 深深轉으로, 승구는 연꽃향이 솔솔 풍기는 것을 續續來로 표현하여, 깊어가는 여름 오후를 靜中動의 미감으로 잘 그려내었다. 전구와 결구에서 오동잎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에 낮잠을 깬 시인이 비소리를 듣는 시인 자신의 모습조차 여름 정경 속의 일부인 듯하다. 허균의 “개미둑과 같은 비좁은 곳에서도 몸을 잘 움직이니 또한 좋다”는 평은 평범하고 자그마한 제재를 가지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정경을 만든 시적 능력을 지적한 말이다. -“허균이 가려뽑은 조선시대 한시”중에서 춘일(春日)-서거정(徐居正)
金入垂楊玉謝梅 금입수양옥사매 금빛은 수양버들에 들고 옥빛은 매화를 떠나는데 小池新水碧於苔 소지신수벽어태 작은 연못 새 빗물은 이끼보다 푸르다 春愁春興誰深淺 춘수춘흥수심천 봄의 수심과 봄의 흥취 어느 것이 더 짙고 옅은가 燕子不來花未開 연자불래화미개 제비도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는데
1, 2구를 보자 金入垂楊玉謝梅 금입수양옥사매 금빛은 수양버들에 들고 옥빛은 매화를 떠나는데 小池新水碧於苔 소지신수벽어태 작은 연못 새 빗물은 이끼보다 푸르다
작가는 지금 작은 연못가(小池) 가에 서있다. 연못에는 수양나무도 있고, 매화나무도 있다 가지를 드리운 수양버들(垂楊)에 환한 금색 봄볕이 비춰든다(金入). 나무는 순간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린다. 마치 누런 금이 번적이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동시에 작가는 연못가의 매화나무를 본다. 바람이 불어 옥같이(玉) 흰 매화꽃이 시들어 떨어진다. 매화꽃이 떨어지는 것을, 매화꽃이 매화나무(梅))를 떠난다(謝)고 했다. 버드나무의 흔들림과 햇볕의 어울림이 빗어내는 시각적 효과와 흰 매화꽃이 바람에 날이어 떨어지는 시각적 효과가 대조되어 묘사된다.
그리고 나무와 연꽃의 배경이 되는 연못 그곳에 봄이 되어 새로 가득한 못물(新水) 물빛이 너무 잔잔하고 푸르다. 그 푸른 물빛이 파란 이끼(苔)가 깔린 것 같다. 아니 차라리 푸른 비단 같다고나 할까 이끼보다(於苔) 더 부르다(碧) 그래서 푸른 비단 화폭에 버드나무와, 황금빛 햇볕 그리고 흰 매화꽃이 바람에 나부낀다. 이것들이 이루는 동적인 움직임과 시각적인 모습이 그림 같다. 결국 1, 2구는 봄날의 고요하고 화려한 연못의 풍광을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3, 4구를 보자 春愁春興誰深淺 춘수춘흥수심천 봄의 수심과 봄의 흥취 어느 것이 더 짙고 옅은가 燕子不來花未開 연자불래화미개 제비도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는데
틀림없이 작가도 살아있는 사람인가 보다. 작가는 갑자기 봄의 흥취(春興와 봄의 수심(春愁)을 떠올린다. 슬픈 일과 기쁜 일이 반복되어 나타남이 인간의 삶 아니던가.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의 경치에서 왜 수심을 떠올리는가. 작가는 알고 있는 것이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고, 슬픔 뒤에 기쁨이 온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자연 경치가 아름다워도 그 속에 있는 작가의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그것은 차라리 깊은 비애감을 자아내게 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작가는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 화려한 봄날에 의욕과 기쁨에 잠긴 사람이 많겠는가. 실망과 수심에 잠김 사람이 많겠는가를 묻고 있다(誰深淺) 이러한 물음 속에는 기쁨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수심 속에 잠겨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물론 자신의 경험도 섞여 있을 것이다 남들이 다 즐기는 봄날이지만 자신만은 어떤 슬픔을 간직한 채로 우울하게 보낸 봄날이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아마도 노년에 지은 작품일 것 같다 그만큼 깊고 노숙한 면이 전편에 묻어나고 있다
마지막 4구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덧붙여 여운을 남긴다. 아직 제비도 날아오지 않고(燕子不來) 봄꽃도 피지 않았는데(花未開)..... 이는 결국 제비 날아와서 마음껏 지저귀는 아름다운 소리와 벌레를 잡는 역동적인 몸짓과 날개 짓을 보고 봄꽃이 피어나 화려한 색과 향기가 봄 공간을 장식할 때, 그 흥취와 수심의 깊이는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작가는 이 시에서 1, 2구에서 화려한 봄의 풍광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3, 4구에서 <인생의 기쁨과 근심의 문제>를 관조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오랜 기간 문형을 잡은, 관각적인 학자요 문학자로서의 특징이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陰崖積雪 그늘진 절벽에 쌓인 눈
깊은 겨울엔 얼음이 골짝에 가득하고 봄 중간엔 물이 계곡에서 나오나니 자연 형태는 때를 따라 달라지는데 인정은 늙으면서 헷갈리려 하누나
冬深氷滿壑 동심빙만학 壑 골학, 골짜기 春半水生溪 춘반수생계 物態隨時異 물태수시이 人情老欲迷 인정로욕미 -서거정(徐居正)『사가집(四佳集)』
서거정(徐居正)/이양우 ~서거정에 시를 감상하고서~
사랑아, 날 이별하여 어디로 가려는가? "은술병 한 쌍" 보기 애처롭다 하였듯 성문 앞 버들 가지 꺾기 어려웁다 하였듯 너와 나 청실홍실 끊기 어렵지 않은가!
사모(思慕)의 네 그림자 잊을 수 없어서 물구나무 서서는 물위에 잡고 늘어져 기다려 눈물짓는 내 모습을 아는가?
*서거정의 시 故人別我歌遠遊 何以送之雙銀? 고인별아가원유 하이송지쌍은? 都門楊柳不堪折 芳草有恨何時休 도문양류부감절 방초유한하시휴 去年今年長參商 富別貧別皆斷腸 거년금년장삼상 부별빈별개단장 陽關三疊歌旣? 東雲北樹俱茫茫 양관삼첩가기? 동운북수구망망
稷山 濟源樓(직산 제원루) 四佳亭(사가정) 徐居正(서거정) 百濟遺墟草自平(백제유허초자평) 백제의 남긴 옛터 잡초들이 무성하네. 我來憾慨一傷情(아래감개일상정) 나 여기 감개에 젖어 안타까워 하노니... 五龍爭罷天安府(오룡쟁파천안부) 다섯 용의 다툼은 천안부에 끝났건만, 雙鳳鳴殘慰禮城(쌍봉명잔위례성) 두 봉황 울던소리 위례성에는 남은듯해... 始祖祠深紅樹合(시조사심홍수합) 온조사당 깊숙히 단풍으로 우거지고 聖居山擁碧雲橫(성거산옹벽운횡) 성거산을 감싸고 푸른구름이 비꼈어라. 登樓多少秋風思(등루다소추풍사) 누에 오르니 가을바람따라 시름도 많은데, 何處吹殘鐵笛聲(하처취잔철적성) 어디선가 태평소의 여운이 들려오누나...!
*사(思)=추회(追懷); 옛 일을 생각하며 그리워 함. *철적(鐵笛)=태평소(太平簫). 날라리. 처음에는 군악(軍樂)에 쓰이고 뒤에 종묘제향악, 농악(農樂)등에 두루 쓰임.=호적(胡笛). - 四佳集
前茶/서거정
선다의 현묘함을 몹시 좋아하여 어려서 부터 영외로 왔네 깨끗한 병에 맑은 샘물 길어와 옛솥에 다리니 우뢰 소리 같구나 茶를 그늘에 말리니 봄은 아직 이르고 남가의 헛된꿈 불러 깨우네 나는 옥천자와 같아서 석잔의 차로써 시를 짓고 싶구나
김시습과 서거정과의 우정 괴팍하고 신경질적이었던 김시습인데도 불구하고 서거정은 김시습의 천재성을 알았는지 그를 몹시도 좋아했었다는 것을 다음 일화를 통해 더 알 수 있었습니다~
강중(剛中)이! 편안한가?”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스님이 대궐로 들어가는 대감의 행차를 막아섰다. 한 나라의 재상인 서거정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 설잠. 오래간만이네. 여기는 어쩐 일인가?” 서거정 대감이 걸인같은 스님에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닌가(설잠은 김시습의 법명이었다). 장안은 온통 이 스님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어디 그뿐인가. 김시습이 머무는 셋집에는 많은 유생들이 찾았다. 그 중에는 재상인 서거정 대감도 끼어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15년이나 아래인 김시습은 방바닥에 벌렁 누워서 발장난을 하는데, 서거정 대감은 꼿꼿이 앉은 자세로 응대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도 서거정은 김시습을 여전히 찾아오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가였던 한명회가 쓴 현판을 붓을 꺼내 서슴없이 고치기도 했다. 김시습은 수락산 근처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는 제자 선행과 함께 농사를 지었으나 늘 먹을 것이 모자랐다. 그는 자신을 중국의 도연명과 비교하며 콩과 조, 칡죽을 끓여서 먹었다. 김시습은 걸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얻어먹는 것도 괴로워 하루는 서거정을 찾아갔다. 그가 내놓은 진수성찬 앞에서 정작 김시습은 찬물에 말아 죽을 만들어 먹었다. “이것이 소승의 한끼 끼니옵니다.” 답답한 세상에 김시습의 굳은 지조가 새삼 그립다. 김시습은 몇 차례 환속을 했다. 그는 이상과 현실에서 수없이 갈등했고 고민했을 것이다. 김시습은 그 시대의 신경성 우울증 환자와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그의 기질 탓도 있겠지만 그 시대의 사회상이 그를 더욱 그렇게 몰고 갔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였기에 한편으론 거만했고 예의를 몰랐던 김시습이었지만 서거정은 연민반 존경반으로 그를 좋아했으리라..
寄淸寒 기청한
我愛岑禪者 아애잠선자 내 설잠선사(金時習)를 사랑하노니 本來面目眞 본래면목진 본래 참된 사람이라네. 道從惠能出 도종혜능출 그대의 도는 혜능에서 나왔고 詩與無本親 시여무본친 그대의 시는 무본(賈島)과 가깝다네. 高誼已聞主 고의이문주 높은 義는 이미 임금이 들었고 淸談能動人 청담능동인 청담은 능히 사람을 감동시키네. 交遊多自幸 교유다자행 사귐에 스스로 다행하게 여김이 많으니 更結後生因 경결후생인 후생의 인연을 다시 맺었으면. (서거정이 김시습에게 준 시) <四佳集卷十三. 十一>
畵竹(화죽) 대나무를 그림-徐居正(서거정)
此君無曲性 차군무곡성 이분은 결코 굽히는 성질 없어 由來大節名 유래대절명 예로부터 큰 절개로 이름 있네. 獨立天地間 독립천지간 천지 사이에 우뚝 서 있어 斯爲聖之淸 사위성지청 곧 성인중의 맑은 이로 되었네.
서거정의 유머 조선시대의 학자 서거정도 유머 감각이 뛰어났던 인물입니다. 어느 날, 그가 구두쇠로 소문난 친구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동안 잘 지냈나? 자네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네." "아이고, 이게 얼마 만인가?어서 오시게." 친구는 서거정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술상을 차려 왔습니다. 그런데 상에는 달랑 나물 하나만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서거정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친구에게 고작 나물이라니..... 이 친구, 소문대로 정말 지독한 구두쇠로군.' 친구는 서거정의 얼굴을 살피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아, 글쎄 요즘 살림이 어려워서 이렇게 산다네." "그런가?" "자네가 오는 줄 알았다면 미리 장에 나가서 고기라도 좀 사 왔을텐데 말일세...허허." 그런데 서거정이 마당을 둘러보니 꽤 많은 닭들이 먹이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괘씸한 친구 같으니...' 서거정은 거짓 변명을 늘어 놓는 구두쇠 친구가 괘씸했지만, 시치미를 딱떼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그럼 내가 타고 온 말이라도 잡아 안주로 하세, 어떤가?" 그 말을 들은 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마, 말을 잡아 안주로 하자고? 그럼 자네는 돌아갈때 뭘 타고 가려나?" 그러자 서거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습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네. 자네 집에 있는 닭 중에서 가장 통통하게 살찐 놈을 타고 가면 되지 않겠나? 허허허~" "뭐라고!" 서거정의 뼈 있는 유머에 친구는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결국 구두쇠 친구는 가장 통통하게 살찐 닭 한마리를 잡아 안주로 내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잠상인에게 작설차를 받고(김시습) ---서거정 (徐居正)---
스님은 긴긴 세월 산중에 사니 산중의 즐거운 일 무엇이더뇨. 불 우뢰 울지 않고 동물은 겨울 잠 깨기도 전에 산차는 파릇 파릇 새싹이 돋는다오. 흩여놓은 구슬인양 황금단인데 알알이 참으로 구환단 같다오. 스님은 수레타고 지팡이 끌면서 푸른 대 바구니 가득 따 담았다오. 돌아오는 길에 혜산천 길어다가 알맞게 되는 불에 손수 달인다오. 색과 향기 그 맛은 참으로 뛰어나니 상쾌한 가슴 신기도 하다오. 스님은 속객을 생각하나니 십년 와병의 오랜 갈증을 계림의 설색지로 곱게 곱게 싸서 두서너 글자로 차이름을 썼다오. 열어보니 낱낱마다 봉황설일세. 약간 말려 곱게 가니 옥가루 날리누나 아이 불러 차솥 골고루 씻어내고 좋은 물로 차 달이고 생강도 곁들이네 해안이 그침에 어안이 생기고 때로는 지렁이 소린양 파리 소린양 들리다. 한 모금에 만년 찌든 가슴 씻어내고 두 모금에 십년 고질 녹아 내리네. 어찌 노동의 찌든 가슴에서 나온 글 오천이랴 이백의 비단결 가슴에서 삼백편의 시도 나올만하네. 필탁은 부질없이 술독아래 잠들고 여양은 술 실은 수레보고 차 삼키리 이 좋은 차 한 두 잔 마셔 겨드랑에 날개 돋아 봉래산에 나르려나 어느 때에 도사의 복장 펼쳐 입고 스님 찾아 산 중에 돌아가 깨끗한 안식 창문 또한 밝을 적에 돌 솥의 솔 바람 소리 함께 들으리.
새 달 이 넘실 넘실 구름 끝에 나오니 빙륜(氷輪)이 둥그런데 금물결 무늬 일렁거리네 잠깐새에 하늘 중앙에 달려 있으니 구주(九州)와 사해(四海)가 모두 밝은 빛이네 잔을 들어 달에게 물어도 달은 응하지 아니 하는데 돌아보니 토끼가 나의 청광(淸狂)맞음을 비웃고 있구나!
-이 서거정의 詩 처럼 아직 지지 않는 달은 강물 위에 떠있고 그 달 속에 토끼가 웃고 있다 청광(淸狂)<마음이 깨끗하여 청아한 맛이 있으면서도 하는 짓이 상식에 벗어난 광인(狂人)> 미친것이 아니 면서도 일부러 미친척 하는 광풍(狂風) 그렇타 우리의 人生이란 한바탕의 일진광풍(一陳狂風)이 아닐런가?.................
南至後二日入淸齋寄子深知院 서거정 1420-1488 남으로 온지 이틀 심지원 청제에게 의탁함
老 病 情 懷 已 索 然 로 병 정 회 이 색 연 靑 銅 曉 攬 感 流 年 청 동 효 람 감 유 년 日 南 至 後 初 添 線 일 남 지 후 초 첨 천 風 北 來 時 欲 折 ? 풍 북 래 시 욕 절 면 紙 帳 遮 寒 成 獨 坐 지 장 차 한 성 독 좌 木 爐 倫 暖 穩 長 眠 목 로 투 난 온 장 면 詩 家 風 味 依 然 在 시 가 풍 미 의 연 재 喚 取 龍 團 雪 水 煎 환 취 용 단 설 수 전
(七言律時 .然. 年. 綿. 眠. 煎은 평성 ‘先’운) 情懷;품은 마음. 索然(삭연);쓸쓸함 曉;새벽 효 攬;잡을 람 添;더할 첨 遮;막을 차 偸;훔칠 투 暖;따뜻할 난 喚;부를 환 龍團雪;떡차를 뜻함
늙고 병든 마음 이미 쓸쓸하거니, 새벽에 청동화로 끌어 안고 빠른 세월이구나 해는 남으로 넘어 정오가 지났도다 북풍 불어와 솜옷을 찢으려 하고 문풍지 발라 추위 막으며 홀로 앉았는데 나무화로 따슨 기운 빌려 편히 푹 잤노라 詩家의 멋은 의연히 여기 있나니 아이 불러 용단 가져다 雪水에 달인다.
林亭晩?次岑上人韻(임정만금차잠상인운) 서거정 해질녁 임정에서 잠상인(김시습의 호)이 지은 시의 운을 따라 시를 읊어 화답하다
城 市 那 無 隱 者 家 성 시 나 무 은 자 가 林 亭 幽 絶 隔 塵 譁 임 정 유 절 격 진 화 年 年 爲 種 幾 多 樹 년 년 위 종 기 다 수 續 續 自 開 無 數 花 속 속 자 개 무 수 화 白 蟻 戰 ? 山 雨 至 백 의 전 감 산 우 지 黃 峰 衙 罷 谿 日 斜 황 봉 아 파 계 일 사 移 時 軟 共 高 僧 話 이 시 연 공 고 승 화 石 鼎 松 聲 送 ? 茶 석 정 송 성 송 자 차
(七言律詩 平起式 ‘麻’韻→家 譁 花 斜 茶) *那;어찌 나 隱者(은자);속세를 떠난 사람 家(가);집 가 亭;정자 정 絶;끊을 절 隔;멀어질 격 塵;속세 진 譁;시끄러울 화 種;심을 종 幾; 얼마나 기 樹;나무 수 續續;잇달아 속속 蟻;개미 의 ?;한창 감 .빠질 감. 衙罷;병영 아 . 관청 아 . 일을 끝냄을 뜻함. 罷;쉴 파 谿;시내 계 斜;비낄 사 移;변할 이 軟;?의 속자 연할 연. 부드러울 연 鼎;솥 정 送;보낼 송
성벽도시라도 어찌 隱者의 집이 없으랴 숲의 정자는 저자에서 떨어져 있어 시끄럽지 않네 해마다 수 많은 나무를 심고 심어 잇달아 무수히 꽃이 저절로 핀다네 흰 개미가 한창 싸움에 빠져있는데 산에 비가 내리고 누른 벌떼는 통으로 들어가고 계곡으로 해가 기우네 다른 날 소곤 소곤 고승과 이야기 할 때에 돌솥에 솔바람 소리 내며 차다려 보내리 (칠언율시 평기식 ‘마’운 →가 화 화 사 차)
선다묘 仙 茶 妙 선다의 묘미 몹시도 좋아하여 絶愛仙茶妙 절애선다묘 어려서부터 영외(嶺外)로 왔네 幼從嶺外來 유종영외래 깨끗한 병에 맑은 물 길어다 澈甁新汲水 철병신급수 옛솥에 다림에 우뢰소리 같도다. 古鼎故鳴雷 고정고명래 그늘에 말림에 봄이 깊었고 北焙分春早 북배분춘조 남가의 헛된 꿈 불러 깨운다 南柯喚夢回 남가환몽회 내 옥천자와 같아서 我如王川子 아여왕천자 석 잔의 차로 시 짓고 싶구나 三椀要詩催 삼완요시최 (四住詩集 卷52)
西瓜 서과
瓊漿 玉液 舌瀾飜 種出 西方 品可論 경장 옥액 설란번 종출 서방 품가론 莫說 張郞 多好事 世間 不乏 渴文園 막설 장랑 다호사 세간 불핍 갈문원
*張郞 : 수박에 관계된 사람인 듯한데 누구인 지 모르겠다. "혹시 포도를 들여온 張騫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는 분이 있으시면 질의응답란이나 이메일로 좀 알려 주십시오. " *渴文園 : 文園令을 지낸 司馬相如가 燥渴症이 나서 물을 만이 먹었음.
원문 풀이 맛있고 단 것은 사람의 혀를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는데, 이 씨앗은 서쪽 지방 곧 서양에서 온 것으로 그 품질이 좋기도 하다. 수박을 들여온 장랑 같은 이는 참으로 좋은 일을 한 사람이구나. 세상에는 조갈증이 난 사마상여 같은 이가 없어지지 않을 것을.
冬暖 동난 冬暖 如春暖 半陰 兼半晴 동난 여춘난 반음 겸반청 嬌雲 飛不定 輕雪 落無聲 교운 비불정 경설 낙무성 自可 科頭坐 何妨 跣足行 자가 과두좌 하방 선족행 豊穰 應有兆 拭眼 看升平 풍양 응유조 식안 간승평
*科頭 : 전쟁에 나갈 때 머리에 투구를 쓰지 않고 나가는 것을 이르는 말이었는데 이것이 뒤에 관을 쓰지 않았다는 뜻으로 전의 되었음.
원문 해설 <따뜻한 겨울> 겨울 날씨가 봄처럼 따뜻한데, 반은 흐리고 아울러 반은 개었네. 아리따운 구름은 정처없이 날아가고, 가볍게 나리는 눈은 소리없이 떨어진다. 다음해 풍년들 징조가 나타났으니 눈을 닦고 좋은 세월 바라보려네.
夏日獨坐 하일독좌 雨入 方塘 水政肥 深深 院落 暑猶微 우입 방당 수정비 심심 원락 서유미 荷飜 有影 魚跳出 花落 無聲 燕蹴飛 하번 유영 어도출 화락 무성 연축비 未可 暫時 辭酒盞 頗宜 長日 不巾衣 가 잠시 사주잔 파의 장일 불건의 牛毛 萬事 人間世 五十 九年 念念非 우모 만사 인간세 오십 구년 염염비
<여름날 홀로 앉아서> 비내리자 연못은 물이 불었고, 깊은 골짜기 집에는 더위가 오히려 가볍게 느껴진다. 연잎이 번득이는 그림자에 물고기 놀라 뛰어오르고 소리없이 떨어지는 꽃을 제비가 발로 차고 날아간다. 잠시도 술잔을 사양할 수가 없으니. 긴긴 날을 의관을 쓰고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쇠털같이 많은 일이 일어나는 인간 세상에 오십 구년 생활을 돌아보니 생각할수록 잘못된 것이군.
槐陰晝枕 괴음주침 老槐 偃蹇 如(규)龍 綠陰 滿地 涵淸風 노괴 언건 여(규)용 녹음 만지 함청풍 珠箔 錦幕 深復深 淸晝 睡味 如粥濃 주박 금막 심부심 청주 수미 여죽농 又 우 一夢 賭得 南柯天 南柯 日月 無中邊 일몽 도득 남가천 남가 일월 무중변 枕上 片時 百年樂 不必 羽化 登神仙 침상 편시 백년락 불필 우화 등신선
*(규) : 蟬-單+叫-口=뿔달린 새끼용 규 *규룡 : 뿔달린 새끼용 *南柯 : 옛날 邯鄲 사람 盧生이 괴화나무 남쪽 가지 밑에 있는 뿌리를 베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그는 槐安國이라는 나라의 공주와 결혼을 하여 온갖 연화를 누리다가 잠을 깨니 꿈이었다. 이리하여 세상의 부귀영화는 한낱 꿈과 같이 무상하다는 뜻으로 '南柯一夢'. '盧生之夢'.'邯鄲之夢'이라고 함.
원문 해설 1.<괴화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늙은 괴화나무 뿌리가 가로 뻗어 마치 용과 같은데, 짙은 그늘 땅에 가득하여 맑은 바람이 스며들었네. 구슬발 은 장막 같이 깊고 또 깊었네, 대낮에 자는 낮잠 죽처럼 맛있네. 2. <또 읊음> 꿈속에 南柯國에 들어갔더니. 남가국의 세월은 중간도 끝도 없구나. 베개머리에 한 때가 백년 동안의 즐거움을 누리니 굳이 날개를 달고 신선의 세상에 갈 필요는 없는 걸.
秋日卽事 추일즉사 秋容 濃淡 坐開窓 舊恨 新愁 未易降 추용 농담 좌개창 구한 신수 미이강 細聽 隔枝 鶯(전)百 閑看 掠水 燕飛雙 세청 격지 앵(전)백 한간 약수 연비쌍 花開 (함)菖 (비)紅霧 酒潑 葡萄 漲綠江 화개 (함)창 (비)홍무 주발 포도 창녹강 把筆 題詩 時遣興 江湖 歸夢 繞漁(쌍) 파필 제시 시견흥 강호 귀몽 요어(쌍) *(전):口+轉=지저귈 전.(함):艸+函=연봉우리 함 (비):雨+非=펄펄 내릴 비.(쌍):舟+雙= 배 쌍
<가을날에 보고 느낀 것> 가을 모습이 짙어지는데 창문을 열고 앉았으니 묵은 한과 새로운 근심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나무가지에 가려 요란스레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 자세히 들으며, 물을 차고 나르는 제비의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본다. 꽃핀 연꽃과 창포에 붉은 이슬이 내리고, 술을 먹은 듯한 청포도는 푸른 강물이 불어난 듯하다. 붓을 잡고 시를 쓰느라고 때때로 흥을 돋우고, 시골로 돌아가고 싶은 꿈은 고깃배를 향해 맴돈다.
中秋十五夜詠月 중추십오야영월 端正 中秋月 明光 此夜多 단정 중추월 명광 차야다 初看 開玉鑑 漸覺 (염)金波 초간 개옥감 점각 (염)금파 皎潔 渾淸氣 晶英 絶點瑕 교결 혼청기 정영 절점하 羞將 雙白髮 獨坐 對嫦娥 수장 쌍백발 독좌 대항아
*(염):水+艶=물결 출렁거릴 염. .嫦娥 : 달나라에 있다고 전해오는 여자. 옛날에는 하늘에 있는 옥황상제가 달나라에 別宮을 두고 거기에 항아를 살게 한 뒤에 때때로 달나라를 찾아 갔다고 함.
원문 해설 <팔원 보름날 밤에 달을 보고> 한껏 둥글어진 中秋의 달은 이날 밤에 그 빛이 가장 밝구나. 처음에는 옥으로 만든 거울을 보는 것 같더니, 차츰 금빛 물결이 퍼짐을 깨닫겠구나. 밝고 깨끗한 모습은 맑은 기운이 감돌고, 수정 같은 얼굴에는 티끌하나도 없구나. 흰머리와 가지고, 홀로 앉아 항아를 상대하기가 부끄럽군.
三田渡箭郊途中 삼전도전교도중
江水 澄澄 潑眼明 箭郊 如掌 望中平 강수 징징 발안명 전교 여장 망중평 半竿 落日 蹇驢影 萬里 長空 孤雁聲 반간 낙일 건려영 만리 장공 고안성 蘭芷 已香 秋漸老 溪山 如畵 雨新晴 난지 이향 추점로 계산 여화 우신청 南來 北去 成何事 辜負 平生 白鳥盟 남래 북거 성하사 고부 평생 백조맹
<삼전도의 활터로 가는 도중> 강물은 맑고 맑아 바라보는 눈을 밝게 하고, 활터는 마치 손바닥같이 생겨서 가운데가 평평해 보인다. 떨어지는 해는 낚시대 반쯤 남았는데 절룩거리는 노새의 그림자를 지우고, 만리나 되는 먼 공중에는 외로운 기러기가 울며 날아간다. 난초와 지초는 향기를 뿜으니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시내와 산은 그림처럼 아름다운데 비는 금시 그쳤다. 남쪽으로 북쪽으로 왔다갔다 하지만 무엇을 이루었는가? 내 한평생 백조와 벗하며 살겠다는 맹세만 어겼구나.
廣陵村墅 광릉촌서 家在 廣陵 江水湄 簧茅 (첨)外 紅槿籬 가재 광릉 강수미 황모 (첨)외 홍근리 王維 早歲 輞川畵 杜甫 殘年 夔府詩 왕유 조세 망천화 두보 잔년 기부시 白髮 悠悠 不長往 靑山 黙黙 無盡思 백발 유유 불장왕 청산 묵묵 무진사 急流 勇退 已辜負 廣受 乞骸 當有時 급류 용퇴 이고부 광수 걸해 당유시 *(첨):竹+詹=처마 첨
*輞川畵 : 唐 詩人 王維가 자기 고향을 그린 그림. 화명은 '輞川別莊圖'임 *夔府詩 : 두보가 사천성 파동군의 정경을 표현한 시. 夔府詩는 본래 '夔州十絶句'를 말함.
원문 해설 <광릉 마을에 있는 별장에서> 우리집은 광릉의 강물 가에 있는데, 누런 풀로 이은 초가지붕 밖에 붉은 무궁화 울타리가 있었지. 중국 시인 왕유가 젊었을 때 살았다는 망천의 그림과 같고, 역시 시인 두보의 고향 기부시의 내용과 같다. 흰머리가 되도록 오랜 세월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였는데, 푸른 산은 말없이 한없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구나. 급한 물결같은 세상에서 용감하게 물러나는 일은 이미 늦었는데, 집에서 편안히 죽게 해달라는 청을 허락 받는 것도 다 때가 있는 것인 걸.
自夢村將如諸富墅途中有作 자몽촌장여제부서도중유작 秋光 濃淡 雨新晴 閑跨 驢兒 緩緩行 추광 농담 우신청 한과 여아 완완행 野老 盤廻 山窈窕 村田 高下 水縱橫 야로 반회 산요조 촌전 고하 수종횡 鋤禾 處處 人相語 沃麥 家家 杵有聲 서화 처처 인상어 옥맥 가가 저유성 回望 廣津 靑似染 風帆 一幅 夕陽明 회망 광진 청사염 풍범 일폭 석양명
몽촌 : 몽촌 土城이 있는 곳인 듯. *제부 : 제부촌이 그 근처 어디에 있는 듯함.
원문 풀이 몽촌에서 제부촌에 있는 별장으로 가는 도중에 지음. 비가 새로 개자 가을 강물 빛은 유달리 맑은데, 한가로이 노새를 타고 천천히 길을 간다. 시골 늙은이는 어정어정 거닐는데 산은 고요하고, 마을 밭들은 높고 낮은데 따라 물이 이리저리 흐르는구나. 벼를 매는 곳곳에 사람들은 떠들어대고, 집집마다 일찍 거둔 보리를 찧느라고 방아소리가 들린다. 광진 나루를 돌아보니 마치 푸른 물감을 들인 듯한데, 바람따라 떠가는 돛단 배 하나 석양에 비쳐 밝게 보이는 구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