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국회법 제24조에 들어 있는 국회의원 선서 내용이다. 1960년 국회법에 포함된 이래, 개원식에서 선서하고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 관례압나다.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의원은 임기 시작 후 첫 본회의에서 선서한다. 임기를 시작한 지 40일도 넘게 지났지만 제22대 국회의원은 아직 선서를 하지 못했습니다.
거야(巨野)의 폭주에 끌려가던 여당은 순직 해병대원 특별검사법 강행 처리를 계기로 폭발해 5일 예정됐던 개원식 불참을 결정했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개원식을 연기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월 초 “법대로, 신속하게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라며 “민주주의 제도는 다수결이 원칙이다. 소수가 몽니를 부리거나 부당하게 버틴다고 해서 끌려다니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수장의 뜻을 철저히 받들었습니다. 민주당은 야당 최초로 국회의장, 국회운영위원장, 법제사법위원장을 독식했고, 여당이 몇 차례 협상 카드를 제시했으나 민주당은 애초 협상할 뜻이 없었습니다.
민주당이 ‘일’을 명분으로 세워 절차를 무시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4년 전 21대 국회 개원식은 7월 16일에 열려 민주화 후 가장 늦었으나, 민주당은 그보다 13일 전에 제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한 바,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서를 별 의미 없는 절차로 치부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서는 단순히 선언적·상징적 행위에 그치지 않을 겁니다. 국회의원 선서는 법률에 있으나 취지는 대통령 선서와 다르지 않습니다.
헌법은 국회의원의 청렴 의무, 국익 우선 의무, 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이라는 책무를 규정하고 있고, 선서는 이를 구체화하고 강조한 실체적 내용입니다.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보다 ‘특정인의 안위와 특권’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이익’보다 ‘정파 이익’을 우선해 ‘양심’이 아닌 ‘당리당략’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민주당이 선서를 홀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방탄의 사전적 정의는 ‘날아오는 탄알을 막음’이다. 즉, 총으로 공격하는 것에 대한 방어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방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인물의 보호를 위해 다른 인물이 대신 공격을 받거나, 각종 제도를 앞세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치적 방탄이 대중화한 것은 ‘방탄총리’가 시작이다. 과거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던 시절, 총리는 형식상 정부의 2인자였지만, 실제로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각종 기념식에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하여 축사를 읽는 ‘대독 총리’,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고 등이 있을 때 대통령을 대신해 책임지고 물러나는 ‘방탄총리’라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요즘은 방탄총리보다 방탄국회가 더 많이 거론된다. 방탄국회라는 말은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불법 혐의를 받는 의원의 체포를 피하려는 것을 지칭하며, 국회의 다수당이 임시국회의 소집 및 회기 연장, 체포동의안의 부결 등을 통해 국회의원을 체포해 수사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무리한 입법, 무리한 주장을 반복하면서 ‘이재명 방탄’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정국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심지어 여야 간의 공방을 넘어서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공격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면서 이재명 방탄이 당분간 정국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방탄 개념에는 부정적 평가가 담겨 있다. 방탄총리, 방탄국회, 이재명 방탄을 막론하고 방탄이라는 말 자체에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인물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난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치는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는 책임정치이다. 이러한 책임이 선거 등에 의해 확인되는 정치적 책임만은 아니다.
국민의 대표자는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되며, 만일 불법이 있다면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는 책임정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요청일 뿐만 아니라, 헌법 제11조 제1항이 규정한 ‘법 앞의 평등’의 요청이기도 하다.
‘방탄총리’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 것은 대통령의 책임을 국무총리가 대신 지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총리가 대신 지고 사임하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비난을 희석시키려는 것은 민주적 책임정치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방탄국회’에 대한 비판도 유사하다. 최근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가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고, 여야 정당들에서 특권 포기에 관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방탄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 때문이었다.
애초에 국회의원들의 면책특권 및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 개개인의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회의 원활한 기능에 장애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국회의원 개인의 보호를 위해 오남용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이재명 방탄’에 비할 바는 아니다. 오로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축소·회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탄 활동이 미치는 범위 및 부작용은 방탄총리나 방탄국회에 비할 바가 아니며, 더욱이 이재명 개인을 위해 법질서가 왜곡되고 있다는 점에서 ‘법 앞의 평등’에 대한 침해도 더욱 심각하기 때문이다.
방탄총리, 방탄국회, 이재명 방탄의 공통점은 헌법상의 제도를 왜곡하며, 법 앞의 평등을 깨뜨린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방탄은 법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방탄은 법치뿐만 아니라 민주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이재명 방탄의 경우에는 최근 제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직후이기 때문에 마치 이재명 방탄이 국민에 의해 인정된 것처럼 착시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총선 당시에 비해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재명 방탄이 국민적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재명 방탄은 법적 책임의 회피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기도 하다. 국민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정치가 민주정치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문화일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출처 : 문화일보. 오피니언 시평. ‘법 앞 평등’ 깨뜨리는 이재명 방탄
중국의 옛 기록 산해경에서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인 구미호는 청구국에서 산다고 언급하는데, 여기서 청구국이란 과거 중국에서 한국을 이르던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10일 대표 경선 출마 선언은 예상대로 대선 출마 선언과 흡사했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라면서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밝혔다는데, 문제는 이 대표와 민주당의 행태는 그런 취지와 크게 배치된다는 사실일 겁니다.
기업이 잘되게 하느냐가 먹사니즘 시금석입니다. 민간단체 ‘좋은규제시민포럼’ 분석에 따르면, 민주당이 주도한 제21대 국회는 684개 법안을 가결해 1216개의 규제 조항을 만들었고, 22대 국회 들어서도 규제 러시입니다.
개원 후 한 달간 규제 법안 283건이 발의돼 지난 국회 같은 기간의 2배에 육박했습니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 사회 갈등과 기업 부담을 야기할 법안이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폐기됐던 악법들도 속속 재등장했다는데, 친(親)기업 법안은 뒷전이라고 합니다. 상속세제 개편, 배당 확대 기업 세액공제 등은 민주당의 관심 밖이고,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도 마찬가지이며, ‘노란봉투법’은 더욱 독소 조항이 강화돼 발의됐습니다.
쌀값 하락 때 정부 매입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 1인당 25만∼35만 원을 지원하는 민생지원금 특별조치법 등 포퓰리즘 법안들도 7월 내 처리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아니면, 어떻게 앞뒤가 다른 소리를 웃으면서 할 수 있겠습니까? 속는 사람만 바보일 뿐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