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關仝)
관동은 섬서성 서안 사람으로서 오대에서 송 초에 활동하였다. 생몰년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산수화를 관가산수(關家山水)라고 부르면서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였다. 스승인 형호와 함께 북방 산수화를 연 화가로 일컬어진다.
관동의 산수화는 형호의 운중산봉(雲中山峰)의 양식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산봉은 가파르게 솟아 오른 형호의 양식을 답습하였다. 나무와 돌도 평원으로 그리는 전통 양식을 따랐다. 인물을 작게 그리므로 인물의 산수의 배경 역할을 하는 양식으로 그렸다. 이것은 당시의 풍속화가 산수화에 미친 영향으로 보지만 일반 풍속화와는 다르다. 이때의 인물 정경은 시골에 묻혀서 유유자적하며 사는 은일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관동은 근본적으로 산수화가이지 인물화가가 아니다. 관동은 산수화에서 준법(峻法--그림을 그릴 때 특정의 표현을 위하여 붓을 사용하는 방법) 사용을 스승보다 많이 하였다. 스승을 뛰어 넘었다는 평을 듣는다.
관동의 작품으로 전해오는 것에는 관산행려도, 산계대도도, 추산만취도가 있다. 추산만취도의 경우 어두운 절벽으로 오르는 길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제일 높은 산봉우리 너머로 멀리서 탑의 제일 꼭대기 부분이 보인다. 산은 아주 단단하게 보인다. 빽빽하게 들어 찬 나무들이 울울창창하다. 바위 산을 그린 산수화는 북방 산수화의 전통을 분명하게 부여주고 있다.
최근에 10세기 후반의 고분을 발굴하면 더러 벽화에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산수화의 양식이 관동의 산수화와 유사하였다. 중국의 북방 지역에는 관동의 산수화가 유행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관동의 산수화는 오대와 송초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북방 산수화라는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첫댓글 중국 산수화에는 산 속에 절이나 도관이 있고,(행려도에도 봉우리 아래에 바위 뒤에 가린 건물이 보입니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이 나무와 바위에 가리어서 보이다가, 숨다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중국 산수화를 보면, 길을 찾은 것이 하나의 취미(? 재미)로 하고 있습니다. 관동의 '여산행려도'에서도 길을 찾아보십시오.
마지막 도판 그림을 (여산행려도의 전체 그림) 올린 이유는 길을 찾아보시라고 올려보았습니다. 길을 찾아가 보면 선경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느껴집니다.
길찾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첫번 째 그림 보기에, 윗 부분에 절집 같은 것이 보이지요ㅣ 그 바로 아래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길이니, 거기서 출발하여 찾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