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애주가의 고백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끈다. 나도 나름대로 애주가로 생각하고 있지만, 애주가면 애주가 나름대로 술과 인생을 즐기면 되는 것이지 술꾼이 무슨 할 말이 많고, 그것도 고백까지 할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말이다. ‘애주가의 고백’이라고 말한데 에는 어떤 다른 의미나 깊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자 다니엘 슈라이버는 독일에서 나 베를린과 뉴욕에서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으며 뉴욕에서‘수전 손택 성령과 매력’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하고, 독일로 돌아와서는 잡지사 편집장을 맡다가 2014년 8월에 이 책을 발표하자 독일에서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후〈집〉,〈당신에게 속한 것〉등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으며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글쟁이다.
책은 단지 저자가 음주로 인한 알코올중독 사실을 고백하고 금주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책이 아니다. 책에 대한 언론들의 찬사를 보자.‘당연히 올해의 책이다. 정직하고 힘이 넘치는 에세이다. 진정한 힘은 인간의 약점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있다.’(타임)‘결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책이다. 이야기집이나 가이드북이 아니다. 인문이면서, 문학이면서도 에세이다.’(모르겐 포스트),‘책은 술의 의존성에서 벗어날 힘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첫걸음이 될 것이다.’(데일리메일)
저자의 고백을 들어 주는 것으로 독자는 책 읽는 재미를 찾을 것이고 그래서 몇 군데를 옮겨보기로 한다.“나는 친구가 많았고 전 세계를 무대삼아 취재를 다니며 살고 있었다. 술 한 잔을 들이키며 내 삶이 매우 순조롭게 굴러간다고 호기롭게 말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날의 첫 번째 술잔은 내 앞에 있었다. 저녁이나 주말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술은 수고한 나에게 주는 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휴식방법이었고, 이런저런 일의 불만을 잠재우는 최고의 보상이기도 했다. 일상의 작은 불만과 미련을 갖게 해 주는 망각의 배일이기도 했다.”(15쪽)
“친척이나 친구들, 여러 지인은 인생이 망가지는 걸 잘 알면서도 어째서 알코올중독자들이 술을 계속 마시는지 내게 묻곤 했다. 이들이 보기에 술주정뱅이는 내면의 광기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하찮은 충돌조차 견디지 못하는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알코올중독의 원인쯤으로 보고 있었다. 혹은 이런저런 수양으로 치유될 수 있는, 자기 성찰의 문제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알코올 의존증은 흉악한 질병이다. 그것은 단지 모든 신뢰와 관계를 망가뜨리며 가족을 갈가리 찢어 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문제를 안은 채 살아갈 수 있으며 상실을 감당할 수 있다고 아무리 자위하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척해도 결코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명확한 질병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사회가 암이나 결핵을 이해하게 된 것처럼 언젠가는 알코올중독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될 날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재까지 알코올성질병은 수치심을 가져다주는 질병에 불과하다. 비극적인 일이다. 이 질병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우선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를 스스로 내야 하니 말이다.”(76쪽)
“마약의 오용이나 남용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었다. 조지 6세도 그 중 한 사람이었고, 교황 레오 13세, 정치가인 벤자민 프랭클린, 오토 폰 비스마르크, 윈스턴 처칠, 과학자인 토마스 에디슨, 예술가인 빈센트 반 고흐도 여기에 속한다. 알코올과 술은 언제나 슬프거나 지루하거나 화난 사람들에게 출구가 되어 줬다. 가혹한 삶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더 잘 견딜 수 있게 하며, 불안한 미래와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줬다. 망각 속으로의 탈출은 인간본능의 특징이다.”(140쪽)
“진정한 도전은 우리의 일상에 있다. 실제로 우리는 하루 동안 흔한 단절과 상실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가능성과 노화, 질병, 사고와 이별, 상실을 경함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면에 일렁이는 작은 상처들과 트라우마*를 극복해야만 한다.”(172쪽)
* Trauma : 신체적 외상보다는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심적·정신적 외상을 의미하는 말. 트라우마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이나 사고, 자연 재해, 폭력, 강간 등 심각한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 나타나는 불안장애의 일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실패의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가 세상의 끝은 아니며 야망에 찬 목표를 내려놓음으로써 가벼워질 수 있다. 절대로 가보지 않은 길이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만약 모든 목표가 이루어진다면 자신과 잘 어울리거나 잘 맞는 나만의 특별한 해법 같은 건 찾아낼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일도, 자신의 믿음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생각해 볼 일도 없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동그라미 속을 평생 맴돌게 될 것이다.
실패란 동시에 자유를 의미한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죄의식을 견디기 위해, 불안함과 자책을 덜기 위해, 자신에 대한 커다란 기대와 스스로의 하찮음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건 완전히 어리석은 전략이다. 술은 삶의 어떤 경험, 어떤 경력, 일 혹은 책과도 상관이 없다. 삶은 그 자체로 항상 충분하다.”(206쪽)
저자는 책 마지막 후기(감사의 말)를 통해 이렇게 쓰고 있다.‘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몰랐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알았다면 절대 글쓰기를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쓰며 종종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느꼈다. 친구들과 동료들-술을 끊었건 그렇지 않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난 1년 반이라는 시간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