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원
안희연
피나무는 밀원蜜源식물이다. 꿀벌이 꿀을 찾아 날아드는 나무.
간밤엔 어느 소설 속에서 벌을 불러내기 위해 꿀단지를 들고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을 마주쳤는데*
스스로 밀원이 되겠다는 마음, 다쳐도 상관없다는 동작의 끝까지 말없이 따라가 보았다. 벌에 쏘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에도 벌은 없었어요. 하지만 따끔했고 부어올랐어요. 분명한 날갯짓 소리를 들었거든요. 누군가 백지 위에 내상內傷이라는 글자를 적었던 건지도 몰라요.
내가 피나무로 존재한다면, 벌들을 불러낼 수 있을까. 나의 피나무가 그럴 수 있을까.
피나무의 피는 혈액이 아닌데 나는 자꾸 피나무를 피가 흐르는 나무로 읽는다. 피 흘리는 나무라고도 읽는다. 피나무의 피나무다움을 흠결 없이 지켜줄 수는 없을까.
타오르는 모든 것은 빛과 열을 동반한다. 나는 다시 피나무 곁으로 가본다. 멀리서 보면 불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보일 것이다
* 폴 윤, 「벌집과 꿀」
_계간 시인수첩 (2026년 가을호)
_안희연 시인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신동엽문학상, 상화시인상 수상 시집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당근밭 걷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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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밀원이 되어 타자를 품으면서도 끝내 자기다움을 지키려는 마음이 오래 남습니다. 좋은 시 감사히 감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