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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부정(擧棋不定)
바둑돌을 들고 두지 못한다는 뜻으로, 바둑을 둘때 포석할 자리를 정하지 않고 두면 이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확고한 주관이 없거나 계획이 수시로 바뀌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이다.
擧 : 들 거
棋 : 바둑 기
不 : 아닐 불
定 : 정할 정
(유사어)
유예부결(猶豫不決)
유의부결(猶疑不決)
우유과단(優柔寡斷)
(상대어)
당기입단(當機立斷)
춘추(春秋) 좌전(左傳)에 나온다.
奕者擧棋不定, 不勝其耦, 而況置君而弗定乎, 必不免矣.
혁자거기부정, 불승기우, 이황치군이불정호, 필불면의.
바둑을 두는 자가 둘 곳을 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다간 상대를 이길 수가 없는 법인데, 하물며 군주를 정하는데 이러하니 어찌 화를 면하겠는가.
전국시대(戰國時代) 위(衛)나라 헌공(獻公)이 성격이 잔혹하여 백성들의 고초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하였던 영혜자(寧惠子)가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헌공을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나중에 영혜자가 중병이 들어 임종을 앞두고 아들 영도자(寧悼子)를 불러 유언하였다. “헌공이 포악하여 쫓아냈지만 이제 생각하니 후회가 되는구나. 장차 역사를 쓰는 사람이 틀림없이 이 일을 기록으로 남길 터인데…, 아무래도 수치스러운 일로 남겠구나. 내가 죽은 후 네가 헌공을 다시 군주로 모시게 된다면 이러한 나의 걱정이 풀리겠다.”
부친의 직위를 이어 받아 정권을 장악한 영도자는 줄곧 부친의 유언을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헌공이 사람을 시켜 돌아가고 싶다고 영도자에게 요청하였을 때 두말도 하지 않고 그 요청을 받아 들였다.
이때 대신 대숙의(大叔儀)가 듣고 타당하지 않은 일이라며 비판하였다. “헌공이 포악한 군주라서 우리가 이미 내쫓았는데 왜 다시 모시려고 하는가? 영도자는 부친의 유언만 중하게 여겼지 백성들의 고초는 소홀히 한 처사다. 군주를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바둑을 둘 때 손에 돌을 들고는 있지만 어디에다 놓아야 이길 것인지 모르게 되면 결국 지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한 나라의 군주를 모시는 것을 이처럼 주관이 없이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정하는 데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내가 보기엔 영도자도 이렇게 하다간 조만간 멸족을 당할 운명에 놓이게 될 텐데 걱정이다.”
과연 왕의 자리에 다시 오른 헌공은 영도자가 전권을 쥐고 좌지우지하는 것에 대하여 늘 불만을 갖고 있다가, 결국 어느 날 한 기회를 잡아 영도자를 죽이고 그 가족도 몰살하였다.
이와 같은 유래로 만들어진 이 성어는 훗날 확고한 주관이 없거나 계획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 또는 주견이 없이 자기의 생각을 자주 바꾸는 것을 비판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유사한 성어로 유예부결(猶豫不決)이 있다. 딱 잘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 우유부단하다, 주저주저하다는 뜻이다.
인생은 크고 작은 결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결정은 일종의 부담이다. 그나마 인생살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작은 결정은 차치하더라도, 삶 전체를 좌우할 중대 결정 앞에서 그 누가 주저함이 없겠는가?
결정에는 때가 중요하다. 결정을 질질 끌면 이것보다 큰 손실이 어디 있겠는가? 빈센트 반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무것도 시도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면 인생은 대체 무엇이겠는가?’라고 했다.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결정(決定)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평소의 생활에서 넥타이나 스카프를 하나 고르는 간단한 일에서부터 자기 인생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직업의 선택은 물론 평생 동반자를 고르는 결혼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결정들을 수없이 해야 한다.
특히 국가의 명운을 거는 지도자로서의 결정은 더욱 중요해서 결정 이상의 탁월한 초능력이 요구되기도 하다. 이렇게 결정이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인생을 결정의 연속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이러한 결정에는 반드시 결과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운 좋게 만족스러운 결과도 있겠지만 때로는 실패에 의한 후회스러운 쓴잔을 맛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최상의 결정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결정과 실패는 양면성이어서 실패가 어떤 결과를 낳은 과정을 거꾸로 추적해 들어가는 것이라면 결정은 시작부터 결과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순차적으로 추적한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할 때 기획이나 행동 같은 것은 표면에 드러나지만 갈등과 제약 같은 것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결정이란 결정 당시의 사고력과 판단력을 총동원해서 명확한 분석을 내린 다음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곧 결정이다.
결정에는 기본적으로 사람, 재화, 시간, 운(運) 등의 요소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객관적인 요소다. 운은 자신의 팔자나 품성, 체험, 환경, 취향 등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다. 그래서 결정 능력은 경험, 정보, 노력 등에 의해 크게 확대된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결론뿐만 아니라 그 결정에 이르게 된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분석하는 훈련을 쌓아야 결정 능력이 커진다. 단 한번의 결정으로 엄청난 결과를 이끌어 내 희비가 엇갈리는 사례들도 있다. 그래서 지나치게 신중한 나머지 소극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결정에 대한 최대의 적으로 망설임이란 것이 등장한다. 즉, 우유부단해 결정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동안 잃는 시간과 기회 손실은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결정과정을 미리 분석하면 기획 내용과 판단방식 속도가 달라져서 기획의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경비가 크게 절감된다. 결정의 확신이 내려졌다면 모험심을 발휘해서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론에 의존하는 경향도 더러 있다. 그렇다고 결정이 어떤 이론적 접근방식에 의한 정립된 내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에 너무 의존하면 조직의 사고가 경직되고 창의성을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성공적인 결정을 위해서는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표 달성 과정을 가상 연습을 통해 여러 차례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대체적으로 모든 결정은 도박을 꼽는다는 점이다.
최선을 다해 엄격한 검증을 거쳐 결정을 내렸는데도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실패할 때가 적지 않다. 결국 운도 중요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까지의 결정이론이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결정론에 집착한 나머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을 예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정이론은 행동의 성공 확률을 최대화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성공의 필요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상황은 절대 없다. 모든 제약 요소를 파악했다면 일단 시작하라고 강조한다. 결정이론은 행동의 성공 확률을 최대화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결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문화와 기술의 창조에 둔다. 지금 우리는 외래 문화에 쉽게 물들어져서 정체성을 외면하고 문화의 왜곡 현상으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외래문화를 중시하고 자국의 문화를 경시하는 풍토는 위험스러운 발상이다.
예를 들어 찢어진 청바지가 유행인 것처럼 무분별하게 받아 들여진 국적 불명의 문화라든지 지금 젊은층에서 만연되고 있는 서구식 문화의 추종은 하루속히 벗어나 우리식의 전통문화가 뿌리를 내린 그 바탕 위에서 새롭고 독창적인 문화와 기술을 만들어 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엘리트로 평가 받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찾아갔습니다.
케네디가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고 해도 대통령직은 처음부터 잘 수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의 정책 하나에 미국 국민들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니 케네디 대통령은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케네디에게 아이젠하워는 여러 가지 말 보다 딱 한마디의 조언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임무는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비단 대통령의 임무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 자체가 결정의 연속입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로 인한 결과물을 겸허하게 받아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실수가 두렵다고 해도 선택자체를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올바른 선택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혹여 잘못된 선택이라도 교훈과 깨달음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라는 말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므로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인생에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12가지 원칙들을 소개해 본다. 이하에서 소개하는 12가지 결정의 원칙을 따른다면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1.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결정도 있다. 비가 오는 것, 첫눈에 반하는 것, 풀이 자라는 것 등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런 일들은 그냥 주어진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하며, 그것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한 결정만이 필요할 따름이다.
2.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결정에 따라야만 한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으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결정으로 사정없이 휘둘리게 된다.
3. 두 가지 결정 방향에서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하나를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한쪽으로 결정하는 순간 종종 다른 쪽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두 가지 다 보완하는 완벽한 선택은 없다. 그러나 더 나은 선택은 분명히 있다.
4. 이성이 계속 생각하는 동안 감정은 벌써 오래전에 결정을 내린 상태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결정하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때론 그 길이 더 힘든 것처럼 보여도 말이다. 불편한 길은 종종 예기치 않은 놀라운 일들을 예비하며, 마지막에는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유익을 선사한다.
5.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결정은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결정하는 데는 용기와 행동력이 필요하다. 결과를 누리고 새로운 일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옛 습관을 버리고 불필요한 짐을 확 줄여야 한다.
6.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 결정의 첫걸음이다. 이것만은 아니야, 난 결코 그걸 원하지 않아라는 명확한 거부는 명확한 결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7. 놓쳐 버린 기회 같은 것은 없다. 내리지 않은 결정만이 있을 뿐이다. 오랜 소망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시간은 없다. 우리는 결정을 통해 매시간 자신의 삶을 스스로 형상화해 나갈 수 있다.
8. 마지못해 결정을 내리지는 않겠다는 것도 결정이다. 곧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성숙과정이 필요한 일들이 있다.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 보는 것도 거기에 속한다.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도 일종의 결정이다.
9. 잘못된 결정은 없다. 기껏해야 목표로 가는 길에 약간의 우회를 감수해야 할 따름이다. 결과에 대해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중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는 결정이라도 결정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런 결정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런 경험들은 다음번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0. 결정이 초래하는 결과를 눈으로 그려라. 자신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결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상상해 보라. 결론을 내리기가 한층 쉬울 것이다.
11. 모두에게 좋은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좋은 결정을 내릴 수는 있다. 각자 스스로 결정하여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왕왕 다른 사람들에게는 못마땅한 결정이 될지라도 말이다.
12.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극복하는 사람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미지의 것과 변화에의 두려움은 결정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은 새로울 가능성으로 충만한, 변화무쌍하고 흥미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미국 남북전쟁 때의 이야기입니다. 밤에 보초를 서던 병사 하나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때 마침 최전선을 시찰하던 링컨 대통령이 그 현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에서 내렸습니다. 그러고는 곯아 떨어진 병사의 총을 들고 대신 보초를 섰습니다.
얼마 후에 잠에서 깨어난 병사는 자기가 잠을 잤다는 사실과 누군가가 자기 대신 보초를 서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더구나 보초를 서고 있는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고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잠에서 깨어나 쩔쩔매는 사병에게 총을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자네는 오늘의 과오로 이미 죽은 사람이다. 이제부터 자네의 생명은 자네 것이 아니라 나의 생명으로 살아야 하네.”
병사는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해주는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서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각하 저는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지금부터 제 생명이 아니라 대통령 각하의 생명이므로 각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전선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최전방으로 용감하게 돌질하는 병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병사는 큰 부상을 당한 몸으로 마지막 사선을 넘어가면서 곁에 있던 전우에게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 “링컨 대통령 각하에게 나는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켰노라고 꼭 전해주게.”
그리고 그 병사는 눈을 감았습니다.
무명의 병사는 대통령을 만나 후 다시 시작하는 삶을 살다가 장렬하게 생을 마쳤습니다. 환경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초고속 승진을 한 것도 아닙니다. 죽을 자리에서 대통령을 만난 후 삶과 정신이 달라졌고 결심이 달라졌습니다. 사는 목표와 삶의 의미가 새로워졌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Life is C(Choice) between B(Birth) and D(Death).”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 선택(Choice)의 연속이라는 뜻입니다. 풀이하자면,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는 뜻입니다. 그만 큼 선택이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제한된 환경에서 크고 작은 숱한 갈림길에 놓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어떤 선택이 바른 선택일까요?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B와 C 사이입니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때까지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인생은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매 순간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음식을 먹을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친구와 약속이 겹칠 때도 직장을 구할 때도 심지어 저축을 할 때도 매 순간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바로 당신의 선택, 이 선택들로 인해 인생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나의 인생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성된 인생은 없다. 바른 선택들을 한 사람이 좀 더 만족된 삶을 사는 것이다.
아주 하찮은 선택의 기로에 있더라도 앞으로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소하고 하찮은 선택들이 모여 당신의 인생이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 남을 탓하지 말고 내 인생을 만드는 바른 선택을 하길 바란다.
▶ 擧(거)는 회의문자로 举(거), 挙(거), 㪯(거)는 통자(通字), 舁(거)와 동자(同字), 举(거)는 약자(略字)이다. 擧(거)는 음(音)을 나타내고 더불어 같이하여 정을 주고 받는다는 與(여, 거)와 손(手)으로 물건을 들어 올린다는 뜻이 합(合)하여 들다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할 위(爲), 옮길 이(移),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온 나라 모두를 거국(擧國), 온 국민이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치어 하나로 됨을 거국일치(擧國一致), 일에 나서서 움직이는 태도를 거동(擧動), 어떤 사람의 이름을 초들어 말함을 거명(擧名), 손을 위로 들어 올림을 거수(擧手), 스승과 학인(學人)이 만나는 일을 이르는 말을 거각(擧覺), 기를 쳐듦을 거기(擧旗), 바둑을 두는 데 포석할 자리를 결정하지 않고 둔다면 한 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거기부정(擧棋不定), 살받이 있는 곳에서 화살이 맞는 대로 기를 흔들어 알리는 한량을 거기한량(擧旗閑良), 머리를 들어 얼굴을 맞댐을 거두대면(擧頭對面),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음을 이르는 거석이홍안(擧石而紅顔),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거세개탁(擧世皆濁),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히 남편 앞에 가지고 간다는 거안제미(擧案齊眉), 이름 난 사람의 장례 때, 사회 인사들이 모여서 통곡하고 장송하는 일을 거애회장(擧哀會葬), 한 가지를 들어서 세 가지를 돌이켜 안다는 거일반삼(擧一反三), 모든 조치가 정당하지 않음을 거조실당(擧措失當), 다리 하나를 들어 어느 쪽에 두는 가에 따라 무게 중심이 이동되어 세력의 우열이 결정된다는 거족경중(擧足輕重), 명령을 좇아 시행하는 것이 민첩하지 못하다는 거행불민(擧行不敏) 등에 쓰인다.
▶ 棋(기)는 형성문자로 棊(기), 㯦(기), 碁(기)와는 동자(同字)이다. 木(목)과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작다(子)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其(기)로 이루어졌다. 棋(기)는 작게 자른 나무쪽의 뜻으로 장기(將棋)의 말(馬)을 말한다. 용례로는 바둑 돌을 기석(棋石), 장기와 바둑을 아울러 이르는 기박(棋博), 바둑을 두는 판을 기평(棋枰),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에 그 승부에 대한 형편을 기국(棋局), 바둑이나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을 기사(棋士), 걸출한 바둑의 명수를 기성(棋聖), 바둑 예절을 기도(棋道), 바둑 실력을 기력(棋力), 바둑 두는 법을 모아서 엮은 책을 기보(棋譜), 바둑 경력을 기력(棋歷), 바둑을 잘 두는 재능을 기재(棋才), 바둑을 두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맞서는 적수를 기적(棋敵), 바둑 또는 장기의 승부를 겨루는 일을 기전(棋戰), 바둑 두는 사람을 기객(棋客), 바둑판에 놓인 바둑돌과 같이 여기저기 무수히 흩어져 있음을 기포(棋布), 기사의 독특한 방식이나 개성을 기풍(棋風), 장기나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의 세계를 기계(棋界), 장기나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의 활동 분야를 기단(棋壇), 바둑을 즐겨 두는 사람이 조직(組織)하는 단체를 기원(棋院), 바둑돌을 넣어 두는 그릇을 기기(棋器), 바둑에 관한 속담을 기언(棋諺) 등에 쓰인다.
▶ 不(부/불)은 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란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不(부)는 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이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도달하지 못함을 부도(不到), 서로 같지 않음을 부동(不同), 정당하지 않거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부당(不當), 어떤 일이나 힘이 활발하게 움직여 떨치지 못함을 부진(不振),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 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경기가 좋지 못함을 불황(不況), 허락하지 아니함을 불허(不許), 어떠한 자리에 참석하지 아니함을 불참(不參), 순수한지 않음을 불순(不純),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定(정)은 형성문자로 㝎(정)의 본자(本字), 顁(정)과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정(正)의 고자(古字)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正(정; 바르다, 정돈하다)과 사당이나 집 안(宀)의 물건을 정돈하여 넣기 위해 자리를 정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정하다를 뜻한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움직이지 않는 안정된 상태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정할 전(奠)이다. 용례로는 정해진 값을 정가(定價), 작정한 시각을 정각(定刻), 일정한 규례를 정례(定例), 규정에 의하며 미리 정해진 인원수를 정원(定員), 일정한 방식을 정식(定式), 일정한 수효나 수량을 정수(定數), 정한 기한이나 기간을 정기(定期), 일정한 시기나 시간을 정시(定時), 결정된 안건을 정안(定安), 일정한 직업이나 업무를 정업(定業), 어느 곳에 자리잡아 오래도록 사는 것을 정착(定着), 예정한 계산을 정산(定散), 죄를 판단하여 결정함을 정죄(定罪), 일정한 액수를 정액(定額), 일정한 분량을 정량(定量),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이부자리를 보살펴 안부를 묻고 따뜻하고 서늘하게 한다는 정성온청(定省溫淸)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