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인 / 박소란
너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
어제는 앉은뱅이만큼 오늘은 책상 서랍만큼
서랍 속에 숨어 숨죽이고 있다
나는 종일 책상 앞에 있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작은 것들을 궁리하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한 글자 ,글자와 글자 사이 희미하게 찍힌 점 같은것
언젠가 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책 속에 살게 될까
너를 찾기 위해서 나는 그 미지를 모조리 찢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 , 나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무엇으로도 머물지 않을 너를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럴수록 나는 조금씩 커지고 있다
거인이 되고 있다 더는 네 앞에 설 수 없는 흉측한 몰골이 되어
너를,
너를 닮은 것을 붙들고 자꾸만 달아나려는 그것들을
책상 곳곳에 묶고 가두며
나는 종일 책상 앞에 있다
책상은 조금씩 낡고 있다
그럴수록 나는 조금씩 커지고 있다 ,나의 거인은
빈 책상을 지금 맹렬히 사랑하고 있다
박소란/ 1981년 서울 출생. 2009년 문학수첩>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 등이 있다.
해설
마음속 거인 만나기
작은 일 하나에도 행복할 때가 있다. 작은 일 하나에 희망을 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그 과정은 삶에 활력소를 주기에 충분하다. 그 만족감은 또 다른 희망을 불러오고 그 욕망은 사람의 에너지가 되어, 보다 진화된 방향으로 나가게 한다. 그러나 정작 충분히 만족치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마음속에 '타아'라고 불리는 또 다른 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타아(他我)란 '나'의 자아에 대한 다른 자아, 다시 말하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를 말한다. 시인은 이를 '나의 거인' 이라고 말한다. 시 속에서는 '너'라는 존재로 명명된다, '너'는 거인 임에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는 내 안에 있는 '나' 즉 타아이기 때문이며, 그 실체는 커다란 욕망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시를 쓰는 존재인 것 같다, "종일 책상 앞에" 앉아 "보일 듯 말 듯 한 글자, 글자와 글자 사이 희미하게 찍힌 점 같은 것"을 궁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좋은시를 쓰려는 욕망의 존재 '타아'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만나야 한다."어제는 앉은뱅이만큼 오늘은 책상 서랍만큼/서랍 속에 숨어 숨죽이고 있는" 거인인 '너'를 만나는 위해 "나는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아는 자아가 직접적으로는 알 수 없는 타아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 해명이다. T.립스의 감정이입설*에 의하면 타아의 마음은 자아의 마음을 타아에 직접 이입함으로써 알 수 있는 것으로, 타아는 외부에 객체화된 자아임을 발설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인은 '자아'와 '타아'의 공재(Mitsein)라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의 하이데거(M. Heidegger)는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자아'와 '타아'의 공재(Mitsein)라고 말해왔다.
박소란의 '나의 거인'은 시를 쓰는 행위는 '마음속 거인 만나기'에 다름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시인이야말로 시쓰기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치료하고 남을 치료해 주는 셀프 카운슬러가 아닐까
"언젠가 너는/내가 알지 못하는 책 속에 살게 될까/너를 찾기 위해서 나는 그 미지를 모조리 찢어버릴지도 모"르지만, "너를 닮은 것을 붙들고 자꾸만 달아나려는 그것들을/책상 곳곳에 묶고 가두며//나는 종일 책상 앞에 있다/.....중략....나의 거인은/빈 책상을 지금 맹렬히 사랑하고 있다" 시적 메타포가 메아리치는 이 구절을 읽으며 마음 속 깊이 잠들어 있는 거인을 깨워야 하는 시인의 숙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강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