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트 / 권누리
우리는 시외의 천문대로 향했다 천문대에는 사람이 많았고 비치된 좌석에 사람들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대해 별과 별 사이의 거리에 대해 우주와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완전히 놓친 것에 대해
말했지만, 우리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사람들은 일어섰다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랐다 벽에는 행성의 이미지가 프린트되어 붙어 있고 우리는 그것의 이름을 우리의 언어로 알고 있었다 옥상에는 낮고 작은 천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줄을 섰다 사람 뒤에
사람이 서고 그 뒤에 또 사람이 서고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사람들은 차곡차곡 얌전히 겹쳐지고
허리를 구부려 접안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고 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아마 노랗고 하얗게 빛나는 것이다
― 시집 『한여름 손잡기』(봄날의책, 2022)
* 권누리 시인 1995년 대구 출생. 숭실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9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한여름 손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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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너를 다시 만나면 네가 있는 우주에서 깨어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함께 있는 동안에 다 웃고, 다 울고. 너무 환한 우주 복판을 천천히 걸어 다니며, 따뜻한 밀크티와 단단한 복숭아 조각을 나눠 먹으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겠다고 다짐했어.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서 가만히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사랑에게도 일러주어 나는 여전히 신실한 나의 사랑을 데리러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 더는 아무도 죽지 마.
말하고 나면 조금씩 단단해지는 지상의 빛들.
2021년 초겨울 권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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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햄버거 가게나 커피숍에는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는 ‘키오스크’라는 전자단말기가 설치돼 있다. 키오스크(kiosk)란 본래 이집트 등 지중해 인근 국가들에 있던, 휴게 정자(亭子) 역할의 고대 건축물 명칭인데, 시간이 흘러 음료 스낵을 파는 가판 상점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정자와 가판대의 유사성은 이해할 만하나, 그저 계산만 해주는 무뚝뚝한 전자기기와는 어떤 닮은 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 가볍게 한 끼 때우려고 들어간 가게에서 쩔쩔매고 있던 노인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았다. 버튼 몇 개 대신 누르는 거야 일도 아니었지만, 정작 나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너무 무식해서 미안해요”라는 그의 말 한마디였다. 어째서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하는 것이 ‘무식’이며 ‘미안’할 일인가. 그런 사실은 노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끔, 이 불친절한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끔 사회가 강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려운 것은 노인뿐이 아니다. 키가 작은 어린이도, 신체가 남과 다른 장애인도 이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말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타인에 대해 잘 모른다. 우리는 별과 별만큼 아득하게 떨어져 있는 사이다. 이를 인정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경제적 장치’의 형태나 방식을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함께 삶’에 대한 고민을 더 담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편리가 아닌 불편에 불과하겠다.
-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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