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내몰리거나, 미국 국경을 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들은 불법 마약의 원료 농작물을 생산하는 유혹에 직면해 있고, 이는 폭력 범죄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 주교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세상의 어떤 시스템도 죽음을 초래하는 한,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결코 전례 거행이나 형식적인 설교의 틀 안에 갇혀있어선 안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기적인 안락함과 수동적 자세에 머무르기를 용납하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나서도록 촉구한다."(나프타에 대한 멕시코 주교단의 성명, 2008년 2월)
나프타를 맺은 지 8년 되는 해에 캐나다 주교들은 ISD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캐나다는 공해산업으로부터 자국의 환경을 보호하려는 조치가 미국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고, 미국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소송에서 패배함으로써 벌금을 물거나 캐나다 국내 환경보호 조치를 해제해야 했다. 결국 나프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권보다 국제기업의 이윤을 우선하고, 국가의 미래 환경을 팔아넘긴 셈이라고 캐나다 주교단은 천명했다..........
2001년 4월 4일 캐나다 주교회의는 퀘벡에서 열린 미주대륙정상회의에 즈음하여 정상들을 향한 성명을 발표했다. 캐나다 주교들은 각국 정상들이 가난한 이들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전제하는 사회정의에 입각하여 경제의 세계화를 조정하고, 국제적인 공동선을 증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함을 강조했다. "경제통합 그 자체가 공동선을 증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이익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효과도 동반한다. 각 국가의 공식 기구들도 미주대륙의 국가들 안에 상당수의 국민들이 수입의 큰 차별과 가난을 경험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삶이 갈수록 더 불안해지고 불평등한 사회로 바뀌고 있으며, 미래의 행복을 건설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
캐나다 주교단은 미주대륙 국가들이 추진하는 경제통합정책이 지닌 부정적인 전망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을 인용했다.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신자유주의'라고 알려진 체제가 더욱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순전히 경제적 인간관에 바탕을 둔 이 체제는 수익과 시장법칙들을 유일한 지침으로 여기며, 개인과 민족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존엄과 존중을 해치고 있습니다. 때때로 이 체제는 사회와 정치 영역에서 어떤 태도와 행동들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여 사회의 약한 구성원들을 소홀히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공정하지 못할 때가 많은 특정한 정책과 구조들의 희생자인 가난한 사람들이 실제로 점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하여 복음에 바탕을 둔 가장 좋은 대응책은 참된 정의를 얻을 목적으로 연대와 평화를 증진하는 것입니다."(아메리카 교회 56항)
캐나다 주교들은 이 성명에서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나프타 협약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이 낙수효과를 볼 것이라는 기대는 오직 신자유주의 이념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음을 많은 이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 길을 계속 내달리기 전에 우리는 나프타를 통하여 대체 누가 득을 보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것을 두말할 나위 없이 북쪽 나라에 본부를 둔 거대한 다국적기업들이다. 그들은 어느 국가에도 충성하지 않으며, 시장을 무제한으로 휘저으려고 엄청난 로비를 전개한다. 우리가 사목하는 신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이들이 벌인 일들은 공동선 원칙에 입각하여 인간도 생태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교회는 예로부터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만 재산권이 누구에게나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님을 일찍부터 가르쳐왔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네 것을 가난한 이에게 희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것을 그에게 돌려주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도록 주어진 것을 네가 독점했기 때문이다. 땅은 모든 사람의 것이지 결코 부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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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권은 어디까지나 사회 공동선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보장되는 것이지, 무제한으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역대 교황들은 거듭 지적해왔다. 따라서 자유무역의 자유도 사회정의가 요구하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정당성을 지닌다.......
"(국내 경제와 국제 경제에서)두 가지 저울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국내 경제에 대해서 지키고 선진국가들 간에서 허용되는 동일한 거래
원칙이 선진국 대 후진국 사이의 통상 관계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말이다. 경쟁 시장을 아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공정하고 도의적인, 따라서 인간다운 것이 되게하는 방법으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들 사이의
통상관계에서는 조건이 너무나 다르고 능력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인간적이고 도의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 사회정의가 요구하는 바는
국제무역에서 경쟁자들에게 적어도 어느 정도 공정하고 평등한 이들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민족들의 발전61항)..........
세계화 현상과 함께 전세계의 경제를 주름잡아온 신자유주의 경제관은 국제무역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모든 종류의 관세장벽과 규제의 철폐를 압박하여 시장자유화를 추진해왔고, 오늘날 우리 정부가 각국과 맺으려고하는 FTA는 그러한 시장자유화의 최종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국제통상전문가들은 FAT를 맺음으로써 서로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FTA를 맺은 대부분의 나라가 외형상의 경제 규모는 커졌을지 몰라도 극소수의 대기업과 자본가들만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중산층이 몰락하여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무한경쟁의 구도 안에서 안정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국민의 과반수가 임시직과 비정규직에 종사하여 최저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위한
복지혜택도 못 받고, 최저생계비를 버는 것도 힘든 가혹한 빈곤을 강요당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오늘의 현실을 관찰하고, 또다른 한편으로 복음이 명하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하는 선택과 모든 사회활동에서 최종적인 기준으로 공동선을 가르쳐온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전통을 고려한다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FTA를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할지
자명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 강우일주교(녹색평론123권 'FTA를 묻는다'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