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알베르토 신부
주님 봉헌 축일
말라키 3,1-4 히브리 2,14-18 루카 2,22-40
어느 늙은 예언자의 기도
시메온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의롭고 독실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될 때를
평생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항상 시메온과 함께하였는데,
성령께서는 시메온이 구세주를 뵙기 전에는 그가 죽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후 정결례를 바치기 위해 예수의 부모는 아기 예수를 정해진 율법대로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결례를 바치기 위한 제물을 바치려
성전에 들어왔을 때 시메온은 아기 예수와 그의 부모를 만나게 됩니다.
꿈에도 그리던 구세주를 만난 시메온은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던 구세주를 직접 만나게 되는 감동의
순간을 맛보게 됩니다. 노인이었던 시메온은 아기 예수를 두 팔에 안아 들고 하느님께
감동의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루카2,29-32)
평생 구세주를 만날 생각으로 매일 같이 성전에서 기도를 바치던 늙은 예언자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 시메온은 아이의 어머니였던 마리아에게 예수가 지닌 구원자로서의 삶과 고통에 관해
예언합니다. 예수께선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이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반대를 받게
될 것이고, 결국 어머니의 가슴이 칼에 꿰 찔리는 고통을 얻게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밖으로 드러날 것임을 예언합니다.
가장 축복받을 은총의 순간에 가장 고통스러운 메시지를 받은 성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봉헌 역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 수있습니다.
축하와 축복의 순간에도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예수.
그분의 삶에 비추어 우리 자신도 겪게 될 고통과 죽음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거룩한 교회는 성무일도의 끝 기도에서 매일 밤 자기 전에 바치는 기도로
이 늙은 예언자의 기도인 ‘시메온의 노래’를 바칩니다. 교회는 우리 신앙인들이 매일 밤, 잠들기 전
어떤 기도를 바쳐야 하는지 후렴구를 통해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낮 동안 우리를 활기 있게 해 주신 주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니, 자는 동안도
지켜주시어 편히 쉬게 하소서.”
주님 봉헌 축일은, 우리 신앙인에게 예수의 부모가 당신의 어린 아들을 하느님께 정결하게 바쳤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을 봉헌된 삶으로 이끌어 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주님 봉헌 축일이 단순히 축성된 생활을 수행하는 성직자나 수도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축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봉헌된 삶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하느님의 초대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주님 봉헌 축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과연 지금까지 하느님께 무엇을 봉헌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봉헌하며 살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자기 삶을 돌아봅시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될 때, 우리는 구세주를 평생 기다려온 늙은 예언자였던
시메온이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 자신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루카 2,30) 아멘.
인천교구 황창희 알베르토 신부
2025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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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교 스테파노 신부
주님 봉헌 축일
말라키 3,1-4 히브리 2,14-18 루카 2,22-40
내가 할 수 있는 봉헌은?
'주님 봉헌 축일'에는 본당과 가정에서 일 년 동안 사용할 초를 미사 중에 축복합니다. 예로부터,
초는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거룩한 전례에 쓰일 초를 축복하는 오늘, 초의 의미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초는 무엇보다 어둠을 뚫고 이 세상을 밝히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 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우리 역시 이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촛불은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드러내는 표지이며 동시에,
세상 의 빛으로 살아갈 것을 약속하는 우리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두 번째로, 밀초는 죄 없이 순결한 성모님을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벌들은 꿀 을 보관하고 알과 애벌레를 키우기 위해 벌집을 짓는데, 이때 벌들이 만드는 순수한
물질을 '밀랍'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밀초의 재료인 밀랍의 순결함 안에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세 번째로 초가 스스로 타면서 빛을 내듯이, 이 초는 당신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결한 희생을 상징합니다. 전례와 기도 안에서 초를 봉헌하는 우리는,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사랑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초를 켤 때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함과 희생을 본받아 우리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 안중근에게 어머니 조마리아가 수의와 함께
보냈다는 편지 내용이 떠오릅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세상 어떤 어머니가 아들에게 죽으라고 할까요?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아들을 하느님께, 아들을 나라에 봉헌했습니다. 그 결과, 안중근 의사는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가장 소중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 시메온의 예언을 듣고 두려워 예수님을 봉헌하지 않았더라면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봉헌되십니다. 이에 우리도 합당한 봉헌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하고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수원교구 김준교 스테파노 신부
2025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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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철 바오로 신부
주님 봉헌 축일
말라키 3,1-4 히브리 2,14-18 루카 2,22-40
참된 봉헌은 자기비움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지 40일째 되는 날로써 아기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것을 기념하는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지금껏 많은 신자분과 면담을 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받은 질문이 ‘주님께서는 언제쯤 제 기도를
들어 주실것 같습니까?’라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다음이 ‘주님께서는 제 기도만 들어 주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에 대해 일정 부분 이해가 되는 면도 있기는 합니다.
특히 삶의 역경을 겪고 있거나 병고의 아픔이 닥쳐왔을 때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여겨지기에 그 마음을 이해해 주려 하고, 함께 아파하며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주님께 대한 좀 더 굳건한 믿음과 확고한 의탁이 부족하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우심을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함에 못내 아쉬울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자칫 잘못하면 청원기도나 예물 봉헌을 하는 것이 자기만족이나 자기보상 혹은
세속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방편 혹은 수단으로 여기게 되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그들이 믿는 신에게 바치고 신의 마음에 들어 그에게 어떤 혜택을 준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청원과 봉헌에 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봉헌을 통하여 인간이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이 변화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청원기도나 봉헌은 나의 능력으로 하느님을 움직여 원의를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겠다는 겸손된 기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봉헌에 따른 원의의 실현은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신 그때를 믿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확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기다려온 시메온 예언자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주님께서 하신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어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정성 어린 봉헌의 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봉헌이 손해 보는 것 같이 느껴지고
바보처럼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된 봉헌은 자기만족과 성취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희생이며 자기를 내어줌으로 이미 주님께 받은 것을 되돌려 드리는 비움임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제대에 쓰일 초를 봉헌하는 날입니다. 정성된 봉헌을 통하여 세상의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모두 자신을 녹이며 세상의 빛으로 타올라야 할 것입니다.
부산교구 장훈철 바오로 신부
2025년 2월 2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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