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의 유래와 가톨릭의 십일조
창세기 14장 17절 이하의 내용을 보면 성조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기고 되돌아오자
멜키체덱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들고 그를 마중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때 멜키체덱 사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은 “그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고 전합니다.
이것이 십일조에 관한 성경의 첫 번째 기록입니다. 십일조를 걷는 관습은 고대 중동
지방에서는 매우 보편적이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14세기경 우가리트 문서에는 왕이
십일조를 거두어서 자신의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세금으로 묘사합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기원전 6세기의 문서도 신전 유지를 위하여 걷는
십일조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위 아브라함의 사례뿐만 아니라, 야곱도 에사우를 피해 가던 도중,
베텔에서 제단을 쌓고 모든 소득의 십 분의 일을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 기록도
있습니다. 레위기에도 하느님께 땅에서 나는 모든 소출과 가축의 십분의 일을 하느님께
바치라고 되어 있습니다(레위 27,30-33).
민수기에도 사제 직분을 차지한 레위 지파는 땅을 받지 않는 대신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를 받고, 그 십일조에서 또 십일조를 떼어 주님께 바치는 예물로 올려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4장에는십일조가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신명 14,28-29).
이렇게 십일조에 대한 근거가 성경의 여러 군데에 있으므로 지금도 십일조의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 할까요? 사실 구약시대는 제정일치 사회여서 이스라엘 백성은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납세의 의무를 거의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오늘날 교회법은 십일조를 규정하지는 않지만
“신자들이 교회가 하느님 경배, 사도직과 애덕의 사업 및 교역자들의 합당한 생활비에
필요한 것을 구비하도록 교회의 필요를 지원할 의무가 있다.”(222조 1항)라고 정합니다.
즉, 모든 신자는 “교무금”을 납부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정의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기 수입의 ‘삽십분의 일’은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한 달 30일 중 적어도 하루만큼의 수입은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십일조 규정들을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그 의미는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수입의 일부를 바침으로써 우리가 받는 모든 것이 사실 하느님의 것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기쁘게 바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 가진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수원주보] 이규용 유스티노 신부, 교구 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