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범거사의 생애는 모두에게 낯설지 않다. 아시다시피 그의 일생은 운곡선사를 만나면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요범사훈』의 기록에 의하면 그전에 그의 운세는 공노인孔老人의 『소자황극경세邵子皇极经世』에 의해 점쳐져 예측된 결과와 추호의 어긋남도 없었다. 이에 그는 낙담하고 숙명에 굴복하여 아무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활동도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한들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요범거사는 남경南京 서하산栖霞山에서 운곡선사를 만났다. 선사께서 그의 상황을 알고 나서 일부나마 불교이론을 알려주면서 숙명론을 부정하고 운명을 바꾸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운곡선사가 전수한 중요한 두 가지 방법에서 하나는 선행을 하고 잘못을 참회하며 겸손하게 덕을 지키며, 또 하나는 준제주를 지송하는 것이었다. 원요범은 직접적인 실천으로 원래의 운명을 철저히 바꾸었다. 공노인孔老人의 점괘에 의하면 요범선생은 52세밖에 살수 없으며, 작은 현관직에 머물러 있을 것이며, 자식도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운명은 바뀌었고 74세까지 장수하고 높은 관직에 올랐으며 아들도 보았다. 그의 아들은 재덕이 겸비하여 진사进士에 급제하면서 가문의 영광을 지속하였다.
선행을 하여 덕을 쌓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나위 없지만 진언 지송에 관하여 많은 불교법문佛敎法門 중에 대비주와 같은 진언도 세간 복덕을 구할수 있는데 운곡선사께서는 왜 준제주를 전수했을까? 대체로 아래의 몇 가지 원인이 있다.
(1) 그 당시에 마침 준제주가 유행하여 많은 선종 대사 들이 준제주를 추앙하였다 준제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주우문씨周宇文氏 천축삼장天竺三藏 사나궐다闍那崛多(527~604년)가 번역한 『종종잡주경種種雜呪經』 중의 ‘칠구지불신주七俱胝佛神咒’이다. 그때 수나라에 순수밀교체계가 수립되지 않았지만 준제주는 이미 번역되었다. 이어 현장대역사玄奘大译师(600~664년)의 다섯 진언 중에 ‘칠구지불주七俱胝佛咒’가 번역되었다. 이는 현장대사가 생전에 임금의 명을 받아 번역한 마지막 유작이라고 한다. 그후 개원삼대사开元三大士께서도 준제법수행을 하셨으며, 선무위대사善无畏大师께서는 바다를 건널 때 준제주로 위험을 면했고, 금강지대사金刚智大师께서도 준제법으로 기우祈雨 하였다고 한다.
요나라 때에 이르러 도대사道大师께서 『현밀원통성불심요집』(1065~1101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짐)을 저술하신 후 준제법의 법류法流는 점차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명나라 때는 더욱 선종禅宗의 특별법문特別法門으로 명나라 말기 네 분의 대사 중 연지대사莲池大师(1535~1615), 감산대사憨山大师(1545~1623), 우익대사蕅益大师(1599~1655) 모두 준제법을 수지修持 및 전수하신 기록이 있다. 천계각랑선사天界觉浪禅师께서도 “관음과 준제의 구세救世는 제일 영험하다.”고 하셨으며, 명나라의 현교도显教徒들도 적지 않게 준제법을 수지하였으며, 명나라 말기에는 수지자修持者가 더욱 많아졌다.
(2) 준제주와 한지漢地와의 깊은 인연관계 밀법(密法, 밀교 수행법)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후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당밀唐密이 몰락하였고 몇몇 수행이 편리한 단존법류單尊法流만이 선종으로 전해졌다. 준제법은 그 중 하나이며 티벳밀교에서는 비교적 적은 사람들만 전문으로 이 진언과 법을 수행하며 수지보급(推广受持) 또한 적었으나 동쪽 한지漢地와는 특별히 깊은 인연이 있다. 선문禪門에서는 매일 아침ㆍ저녁 일과에서부터 총림丛林의 결재주結齋呪로 모두 준제주를 염송한다. 선문禪門의 일과에서는 준제주를 매일 필수적으로 지송해야 하는 10개 진언에 포함시켜 발우공양 후 회향시 준제주를 지송하며, 밀교의 아귀 시식施食에서는 법사法师, 상사上师의 첫번째 수인手印을 준제수인으로 할 정도여서 이 진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또한 역대 선종 조사의 추앙과 수지로 볼 때에도 이 진언이 불문에서 널리 전해진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현밀원통성불심요집』의 출시와 전파에 따라 지위가 별로 대단하지 않았던 준제신앙은 원나라 명나라 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다. ‘심요’의 출시는 준제법의 전파에 신기원을 열어 중국식 밀법의 방식으로 전해져 내려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3) 준제주는 재가거사들의 수지에 적합하다 준제법은 수행이 쉽고 성취가 용이하다. 계율의 문턱이 없고 오염과 청정을 가리지 않으며 재가자나 출가자, 음주육식, 처자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모두 지송 가능하며, 이는 계율을 지켜야 지송할 수 있는 다른 진언과 다른 점이다. 또한 준제법은 전승傳乘이 필요치 않으며 널리 보편적으로 전하여 경전에 따라 지송하기만 하면 불모님께서는 당연히 가지加持 하신다. 수지자修持人와 불모님 사이에는 중간의 사법전승자司法传承者 혹은 영매가 필요치 않아 타종파의 상사上師의 가르침에 의지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준제법은 모든 사람이 수행 가능하고 전수 가능하다.
(4) 준제주 공덕은 수승하며 감응이 신속하다 세존께서 애초에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설하신 《준제다라니》는 미래세의 악업박복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악업을 짓고 악도에 떨어지기 쉬운 중생을 위하여 죄를 멸하고 복을 얻으며 성불하게 하는 수승한 법문(殊胜法门)이다.
준제주는 일체진언을 포함하며, 일체 진언은 준제주를 포함할 수 없다. 마치 바다는 백 갈래의 하천을 섭수할 수 있지만 백 갈래의 하천은 바다를 섭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준제주 하나를 수지하면 모든 진언의 공덕을 모두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여의보주와 같아서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준제주는 해행화합解行和合으로, 가르침에 의해 믿음이 생기고 믿음으로 이해를 하며 이해에 의해 행을 하고 행으로 과를 얻을 필요가 없이, 단지 지송하기만 하면 도과道果를 얻을 수가 있다. 준제주를 지송함으로 모든 일이 뜻대로 되고 모든 죄업은 소멸되므로 당연히 범속을 초월하여 성지에 이를 수 있다.
(5) 준제주는 수명을 연장하고, 복과 관록을 구족하는 기능이 있다 준제독부법에 의하면 : “복덕상福德相이 없고 관직을 구할 때 뜻대로 안 되면 거울을 마주하고 이 진언을 항상 지송하면 복덕과 관직이 모두 뜻대로 된다.” 한족계(漢系) 문화는 유가사상의 영향을 받아 모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흉금을 가져, 모든 것은 하품下品이고 오직 공부만이 최고라고 여졌다. 그리하여 정치를 제인이세濟人利世를 위한 선택으로 여겼으며, 특히 고대의 사대부는 비교적 존경을 받았다. 준제주는 관직을 얻게 하고 복덕을 증장시키는 공덕이 있어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유생들의 치국평천하와 부합되었다.
시대배경과 준제주의 원융특성 등의 요인으로 운곡선사께서는 준제주를 원요범에게 전수하여 불법에 대한 신심을 세우게 하였다. 『요범사훈』에 의하면 운곡선사를 만나기 전 원요범은 불법에 대해 깊은 탐구가 없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으로 인생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었고 운곡선사께서 요범거사의 이런 상황을 관찰하여 그가 불법에 대한 개념이 없고 숙명론을 믿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그리하여 불법이론으로 일깨우고, 원요범이 그의 불법이론을 믿도록 하기 위해 우선 준제주를 가르쳐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한 것이다. 불법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운곡선사께서 먼저 신심을 일으키고 변화의 효과를 보여야 하기에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며 준제주를 지송하게 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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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