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즙 / 김성신 당신이 누굴 상대해야 하는지 알지 한낮이 모호해진 빗줄기 더듬이 끝이 부풀어 오른 귤빛 부전나비 두 눈을 자유자재로 뒤집는 바람에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어요 뼈끼리 맞닿으면 살 냄새가 번져 오고 세상에 잠시 가려진 당신은 주름으로 깊어진 동굴 밟고 솎을수록 의지는 샘솟아 새들의 손을 탈 때 어금니 감추며 멈추지 않는 다짐 축, 늘어진 곤한 시간들이 얼굴에 봉해져요 네 탓으로 돌린 변명에 귀 붉어져 목젖만이 골목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통로죠 잠든 척 누워 손을 뻗으면 먼 곳까지 맞닿는 기분 꿈틀거리던 옆구리를 없애 누군가 내던진 돌멩이를 맞고도 목이 터져라 탄성을 지르죠 달다, 시다는 사실 어둠으로 이루어진 은어 누군가 그곳에 또렷한 잇자국을 남길 때 밤의 뾰족한 태도를 나눠 갖거나 붉게 오그라드는 정수리처럼 시가 되지 않으려 몸서리쳐요 무엇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나를 쉼 없이 죽이고도 새로 태어나 결국, 중독 5조 23항 위반죄로 당신은 체포되죠 ㅡ 계간 《문예바다》 2023년 겨울호 --------------------------
* 김성신 시인 1964년 전남 장흥 출생. 원광대 한문교육과 졸업.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2016년 원주 생명문학상, 2022년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