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분재인, 분재> 소개. 6
-어느덧 여섯 번째 <참분재인, 분재> 소개 글을 올려두었습니다.
연재 글은 6회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사진 수록은 몇 회 계속)
-마무리하면서 연재 글의 처음과 마지막 글을 이 곳에 옮겨적어 봅니다.
크게 의미 있는 글도 아니고 특별한 내용도 아닐 수 있겠지만 취미분재인들께 행여 참고가 될까 싶어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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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면서
1. 「참 분재인, 분재」소개 배경
(1) 분재를 공부하기 시작한 취미 분재인으로서 저를 비롯해 순수취미분재인과 분재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함께 분재에 대한 제반 정보와 분재 작품을 공유하며 즐겁고 행복한 분재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2) 「참 분재인, 분재」소개는 우리나라 분재계에서 존경받을 만한 분재인 몇 분을 대상으로 전국의 거주지를 직접 찾아가 촬영, 취재한 뒤 한 분, 한 분 소개하고자 합니다.(취재의 어려움이 있지만 1회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3) 소개 방법은 매년 한 분씩 선정, 대지철쭉식물마을 홈페이지 <이강산 방>과 저의 블로그 <꽃 사랑, 나무 사랑> 방에 10회 남짓 분량으로 나누어 연재하게 됩니다.
(4) 2015년 내내 심사숙고한 결과, 이 글을 올리면서 저는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먼저 밝혀둡니다.
-저는 특정 분재인을 미화하거나 분재를 광고하고자 하는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분재를 공부하는 저와 같은 수많은 분재취미인과 분재업에 종사하는 분들께서 인지하지 못한 세상의 한켠에 이런 분재인과 분재 작품이 존재하고 있구나, 하는 소식을 전하고자 할 뿐입니다.
▣ 「참 분재인, 분재」(1)
-2016년 첫 번째 소개하는 「참 분재인, 분재」인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의 <이주환 선생님>입니다.
-소개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40여 년 분재인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분재원 간판도 없이, 배양한 분재를 매매하는 일 없이, 오로지 취미 분재인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최근 70대에 이르러 건강 문제 등, 분재관리의 어려움을 겪으며 일부 분재를 매매하기 전까지는 분재 거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40여 년 분재인의 삶을 살면서 단풍 대작, 모과 대작, 소사 대작 등 분재 배양법, 분재수형 등에 자신만의 분재세계를 구축하셨습니다.
-흔히 분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분재전시회에 출품을 하고자 하지만 이 선생님은 분재전시회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분재를 만들어 왔습니다.
-분재 세계에서는 ‘일생일목’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지만 이 선생님의 분재원을 방문한 분재인들의 말씀을 정리하면 일생10목도 넘는 작품들을 30년 넘게 이루어가는 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정인의 분재 작품이 ‘좋다, 나쁘다’라는 평이나 ‘옳다, 그르다’라는 평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의미한 일인 줄 압니다.
*이주환 선생님의 분재 특징(1)~(5) : 생략
*연재를 마치면서
▣ 이주환 선생님 분재에 대한 세간의 평에 대한 생각
-5~6년 이 선생님 분재원을 드나들면서 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제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봅니다.
(물론,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 이미 앞의 연재물에서 밝힌 바 있듯이 분재의 세계엔 다양한 관점이 가능하므로 제 생각을 적절히 취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고집 센 분재인’이라는 평에 대한 생각
-일부 취미분재인과 분재업을 하는 분들이 이 선생님을 뵙고 돌아와 하는 말씀 가운데 한 가지가 ‘고집 센 분재인’이라는 것입니다.
-외람되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고집이 아니라 40년 이상 분재인의 삶을 살아온 특정 분재인의 ‘분재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만의 분재 배양법, 분재에 대한 철학 등이 담겨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해할 경우 흔히 발생하는 부정적 시각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사족처럼 밝혀둘 것은, 제가 10여 년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분재와 더불어 ‘인간관계’를 다시 배우다보니 세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었는데요, 최근 순수 취미를 목적으로 분재 공부를 다시하면서 그 내용을 다음처럼 요약해보았습니다.
-첫째, 분재 세계엔 똑똑한 선생은 많지만 정작 존경할 만한 스승은 적다는 점입니다.
분재와 관련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듯 내세우면서, 자신이 소유한 좋은 분재 (대개 전 목주가 기초를 닦아놓은 쓸 만한 분재)를 내세우며 (전 목주의 분재정신은 잊은 채) 상대 분재인과 분재 나무를 폄하하는 일이 지나치게 흔하게 목격되었습니다.
-둘째, 각종 분재 이론으로 중무장된 분재 취미인은 많으나 정작 오랜 세월 분재배양을 하면서 실제 경험으로 터득한 분재철학을 지닌 사람은 드물다는 점입니다.
-셋째, ‘익은 벼가 고개 숙인다’는 속담처럼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여 년 이상을 분재와 더불어 동고동락한 분재인은 자신을 굳이 내세우지 않으며, 오로지 분재를 아끼고 즐기며 더불어 후배 분재인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사실입니다.
-위의 세 가지 가운데 이 선생님의 경우는 세 번째에 해당하는 분이라 하겠습니다. 이 선생님의 ‘고집’은 분재로 한 평생을 살아온 한 자연인의 분재철학이라는 생각입니다.
(註 : 어쩌면,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재취미인이나 분재업을 하는 분 가운데 저의 글을 다 읽기도 전에 이 글의 내용과 글을 싣는 저를 향해 부정적 견해를 떠올리고 계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정답이 없는 분재 세계’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혹여 제 글이나 이 선생님의 분재에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게시판의 반론이나 댓글을 통한 대화를 언제든지 기다리겠습니다.)
2. ‘분재값이 비싸다는 평’에 대한 생각
-(최근 이 선생님 분재원을 방문하시는 분재인들께서 분재 매매를 논하였음에도 거의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은 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극히 일부의 분재를 매매한 경우도 있긴 합니다.) 그와 관련해 분재 값이 비싸다는 평에 대한 생각도 새로운 시각에서 해봅니다.
-제 생각은 국숫발이나 손가락만한 소재를 20년~ 40여 년 이상 배양하여 이루어낸 분목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의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분재 매매를 하지 않고 분재의 세계를 걸어온 순수 취미분재인, 목주로서 당연한 처사라는 생각입니다.
-20~40여 년 남짓 배양한 분재를 평소 교분도 쌓지 않은 취미인이나 분재업자가 불쑥 찾아와 분양을 원한다면 우리나라 분재계에서 선뜻 분재를 양도할 분재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봅니다. 더구나 분재 값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싼값에 분양받아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분재원을 찾아와 분양을 원하는 사람에게 이 선생님은 거절의 의사 표시로 “제가 보면서 지낼 나무입니다.”라곤 합니다.
-(그동안 이 선생님 대화를 녹취하며 곁에서 지켜본 바로 미루어 짐작할 때) 그 말뜻은 ‘아직 완성되지 않고 배양 중인 나무라 팔 수 없습니다.’를 넘어서서 ‘아직 당신은 분재를 잘 모르는 사람이요. 그런 까닭에 내 나무를 분양 받아 가면 오랜 세월 가꾸어온 나무가 잘못될 우려가 있습니다.’, 라는 뜻이 담겨 있거나 또는 ‘당신은 분재를 아끼고 즐기는 게 아니라 이득을 남기려는 장사꾼이요.“라는 뜻이 담겨 있을 것 같습니다.
-위의 어느 경우든 분목을 품고 싶었던 분들에겐 섭섭한 말씀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 역시 당연히 그 섭섭함을 경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이 선생님께서 30여 년 데리고 사셨던 목백일홍 한 점을 분양받는데 꼭 2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세간에서 말하는 완성목이라든가 작품이라든가, 그런 평가와는 무관한 나무임에도 선생님이 반평생 동고동락한 나무였던 탓에 그만큼 애착이 컸음을 짐작할 만합니다.
(註 : 오해의 소지도 있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적인 말씀을 드리자면,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얼마 전, 10년 쯤 뒤에 선생님의 나무 한 그루를 분양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께서 나무를 충분히 즐기신 뒤, 생(生)과 나무를 당신 품에서 풀어놓을 즈음에 제게 분양해주십사 정중히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미소를 지을 뿐,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저는 가당치 않게도 염화미소(拈華微笑)를 떠올리며, 앞으로 10여 년 선생님과 분재를 끊임없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 연재 글을 마무리하면서
-몇 회 더 이주환 선생님의 분재 사진을 올리겠습니다만 덧붙이는 글은 오늘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오늘 마지막 부분의 ‘註’를 적어 올린 연유는 최근 분재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바로잡으며 깨달은 점 때문이었습니다.
-분재는 나무를 향한 내 자신의 ‘인내’와 ‘정성’뿐만 아니라 나무와 더불어 뭇 사람을 상대로 하여‘비움’과 ‘배려’의 정신이 무르녹은 ‘덕행’을 쌓는 일.
-(분재 서적에서 읽었던) 그와 같은 분재의 미덕과 의미를 공주의 유구사랑교회 뒷골목집을 드나들며 절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십 후반에 이르도록 (저의 직업상)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겪은 바, 자연인 <이주환> 선생님을 만난 것은 분재를 떠나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그 분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깨닫고 더 넓고 깊은 나무와 사람의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으니, 저는 영원히 갚지 못할 빚을 지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하찮은 일이라도 지극히 정성을 다 하는 사람만이 자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중용』 23장의 말씀을 떠올려봅니다.
*그동안 미천하고 거친 글을 읽어주신 여러 분재인 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단 한 분이라도 끝까지 읽으실 분이 계시리라는 믿음으로 제 딴엔 최대한 정성껏 글을 올리려고 노력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분재인 님들의 분재생활이 더욱 깊어지고 행복해지시길 기원합니다.
저 역시 분재 취미생활을 통해 어제보다는 즐겁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끝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6. 2. 11(목)
이강산 올림
*글과 사진 전편 수록 : <대지철쭉식물마을> 홈페이지 <이강산 방>,
블로그(http://blog.naver.com/lyb5929)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글 읽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일천한 분재 지식으로 공연히 소란을 피운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이 선생님을 욕보이는 일이 아니었기만을 소망합니다.
처음과 끝이 보이지 않는 분재의 길....
조선 시대 문인화 속에 등장하는 분재를 이따금 들여다봅니다.
문명 이전의 시대, 자연의 한 풍경으로서 분재를 즐기던 선인들의 풍류와 분재의 참맛을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