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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교 시절 읽을 거리에 목말라 하던 때 새 학기가 되면 교과서를 배급 받으면 먼저 국어 책을 펼치고 산뜻한 인쇄 냄새를 맡으며 재미있는 글부터 읽어 나간다. 하교 길에도 읽기를 멈추지 않아 전봇대에 머리를 부딛친 적도 있다.
그 때 주옥같은 글들은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정비석의 '산정무한', 이양하의 '신록예찬', 천관우의 '그랜드캐년' 등이다. 제목만 기억할 뿐 내용은 희미하게 아른거려 언제 시간이 나면 국립도서관에 가서 그 옛날 국어교과서를 대여하여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차 몇일 전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간 손자 녀석 축하겸 점심을 사주고, 아들 집에 들려 커피와 과일을 먹다가 우연히 손자의 국어교과서를 보게 되었다. 요즘은 교과서를 학교 사물함에 두고 오는데 손자 놈도 나를 닮아서인지 책 읽기를 좋아해서 주말에 국어책을 보려고 집에 가지고 왔다 한다.
국어 책을 들추다가 눈에 번쩍 뛰는 수필이 눈에 들어왔다. 민태원의 '청춘예찬'이었다. 믿어 지지를 않았다. 60년 전에 실린 글이 지금도 국어 책에 건재하다니 놀람 그 자체였다. 내가 너무 좋아했던 글이었고 지금도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이성은 날카로우나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속에 든 칼이다' 등 몇 문장은 기억하고 있다. (요즘 국어 교과서는 27종이나 된다고 한다. 따라서 학교마다 채택되는 교과서가 다르다고 한다.)
민태원(1894~1935)의 호가 우보(牛步)고 고향이 충남 서산이어서 더 반가웠다. 그는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김억, 변영로, 염상섭 등과 함께 <폐허>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하였다. 동아일보 사회부장,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여러 소설을 쓰기도 했다. 1918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애사(哀史)'라는 제목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국어 책에 실린 민태원의 '청춘예찬' 을 옮겨 본다.
<청춘예찬> 민태원[ 閔泰瑗 ]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람의 풀이 돋고, 이상(理想)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운다.
사랑의 풀이 없으면 인간은 사막이다.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 보이는 끝끝까지 찾아다녀도, 목숨이 있는 때까지 방황하여도, 보이는 것은 모래뿐인 것이다. 이상의 꽃이 없으면 쓸쓸한 인간에 남는 것은 영락(榮樂)과 부패뿐이다. 낙원을 장식하는 천자 만홍(千紫萬紅)이 어디 있으며,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온갖 과실이 어디 있으랴?
이상!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이것이야말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크고 작고 간에 이상이 있으므로 용감하고 굳세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석가(釋迦)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雪山)에서 고행을 하였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방황하였으며, 공자(孔子)는 무엇을 위하여 천하를 철환(撤還)하였는가? 밥을 위하여서, 옷을 위하여서, 미인을 구하기 위하여서 그리하였는가? 아니다. 그들은 커다란 이상, 곧 만천하의 대중을 품에 안고, 그들에게 밝은 길을 찾아주며, 그들을 행복스럽고 평화스러운 곳으로 인도하겠다는 커다란 이상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길지 아니한 목숨을 사는가 싶이 살았으며, 그들의 그림자는 천고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현저하여 일월과 같은 예가 되려니와 그와 같지 못하다 할지라도 창공에 반짝이는 뭇별과 같이, 산야에 피어나는 군영(群英)과 같이 이상은 실로 인간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라 할지니, 인생에 가치를 주는 원질(原質)이 되는 것이다.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상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의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이다. 뼈 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의 소리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 시대다. 우리느 이 황금 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 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이렇게 수식이 현란하고 풍부하며 힘찬 호흡의 문체는 요즘 수필에서는 찾아 보기 힘들다. 정말 수작이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문장이나 핵심어를 간단히 영탄으로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고, 자칫 딱딱해지기 쉬울 수 있는 석가와 예수 등 성인들을 이끌어 온 단락에서는 자문자답의 장치를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무리없이 전개하기도 한다.
청춘 얘기가 나오니 내가 노년이 되면서 가장 좋아하는 시,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그냥 넘어 갈 수 없다.
청춘
- 사무엘 울만 -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장밋빛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뜻한다
때로는 스무살 청년보다 예순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
나이를 더해 가는것 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서 늙는 것이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게하지만
열정을 잃어버리면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예순이든 열여섯이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로움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인생에 대한 즐거움과 환희가 있다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마음 한가운데 무선탑이 있다
인간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그러나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싸늘한 냉소의 눈에 덮히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스물이라도 인간은 늙는다
머리를 높이 쳐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여든이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고려시대 王의 평균수명은 42세,
조선시대 27명의 임금님 평균수명은 47세였고,
민초들의 평균수명은 조선시대 24세,
한일합병이 되던 1900년은 36세,
4.19혁명이 나던 1960년은 52세였다.
의학의 발전과 개인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1970년 평균수명은 남자 58.6세, 여자 65.5세
20년이 지난 1990년에는 남자 67.2세, 여자 75.5세 이었던 것이
또 20년이 지난 2010년에는 남자 77.2세, 여자 84.0세로 올라 갔다.
이 추세로 보아
앞으로 20년내에
100세 시대가 분먕히 실현 될 것이다.
인생 70은 시작에 불과하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열정과 젊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고사에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란 말도 있지 않은가...
원참 13.03.05. 09:23
아침에 들어 그 열매가 실한 글을 만나게 되니 기쁩니다. 청춘 좋지요.
이미 70 고개를 넘은 노인이 100세 시대에 청춘이라시니, 참으로 큰 노익장이십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