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의원들의 국정감사 활동이 한창인데 여야가 뒤바뀌어 첫 국정감사장에 나선 의원들은 국정을 질책하거나 옹호하는 판세가 뚜렷하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진보정권 10년의 '좌편향' 정책 실정을 폭로하고 시정해 나가겠다고 밝혔고, 이에 맞선 민주당에서는 현재의 경제위기로 인한 정권초기 국정 난맥상을 신랄하게 추궁하고 있다.
한나라당 모 의원은 "참여정부 때인 2004년 설치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의 예산은 5년간 27조8천억원에 달했으나 정책목표가 불분명한 것으로 지적됐다"며 포문을 열었고, 반면 민주당 중진의원은 "현재 실시하는 국감은 과거 참여정부에 대한 국감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감"이라며 현 정부의 실정(失政) 추궁 방침을 분명히 하는 등 정치권의 대립이 날카롭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에서 국정을 수행하든 아니면 국회에서 국감이나 의정활동을 하든 간에 정치논리만 요란하였지 고사(枯死)직전에 있는 지방자치를 활성화시키려는 시도는 없었다. 또한 지역균형개발이라는 거창한 구호만 남발했지 열악한 환경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 오지지역 주민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잘 살게 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행정안전부가 2008년도의 전국 230개 기초자치단체의 재정을 분석하여 발표한 것이 눈길을 끌고 있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3.9%이며, 시군구의 지방세 수입으로 자체공무원 인건비를 주지 못하는 지자체가 131곳으로 전체의 57%에 이른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지원해주지 않으면 지방자치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충분한 입증이 된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8 대 2이고, 지방세의 구조가 광역 자치단체와 기초 자치단체에 양분되어 있으니 시군사정은 정말 열악한 편이다. 그러함에도 정부에서는 지방재정자립도를 높일 국세와 지방세간의 합리적인 세목 조정 등 지방세 확충방안은 구상하지 않은 채로 부족분에 대해 국가보조금이나 지방교부세로 지원하는 등 임시처방의 땜질식 재정 충당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지방자치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영수회담을 열고 여러 가지 국정현안 가운데 행정구역 개편에 합의했다. 즉 시도를 없애는 대신 시군을 확대하여 광역시 형태로 기초자치단체를 통합함으로써 지방행정체계를 2단계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행정구역 개편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되는 것이지만 개편에 앞서 생각해볼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자율적인 지방자치가 제대로 피어날 수 있도록 풀뿌리 민주주의 토양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서 잘 가꾸어 열매 맺게 하는 일이다.
우선적으로 지방재정을 튼튼히 하는 일이다. 현행 우리나라의 조세는 국세 80% 대 지방세 20% 분포로 국세에 치중되어 있다. 지난해 지방세 16개 세목을 합한 총 세수가 43조원 규모로 이는 국세 중 1개 세목인 부가가치세(40조9,000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니 이런 구조하에서는 행정구역을 개편해도 지방자치가 재정난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는 원천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지방소비세 등 새로운 세목의 신설이나 지방세 성격이 강한 국세의 지방세 전환, 공동세 제도 등도 고려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부익부빈익빈 (富益富貧益貧)현상으로 흐르는 도시집중화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되어져야 한다. 적어도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이 6 대 4 정도로 지방세가 증대되어져야 만이 지자체에서 지방공무원의 인건비를 충당하고 지역개발사업비에 사용할 수 있어 지방활성화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다음으로 지방고유사무의 확충과 자치입법의 강화이다. 온전한 지방자치가 되려면 고유업무가 많아야 하는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현행 법령상 배분된 사무를 기준으로 볼 때에 지자체가 수행하는 사무 가운데 자치사무는 27%에 불과하고 위임사무가 73%를 점한다. 자치사무 중에서도 위임사무가 3%, 공동사무가 9%를 차지하고 있으니 순수한 고유사무는 15%에 그치고 있다.
지자체가 수행하는 위임사무의 예는 국가계획에 의한 하천관리, 광역교통계획, 선거, 경찰 등의 사무가 주종을 이루는데 앞으로 지방특별행정기관을 확대할 경우에는 중앙정부에서 위임사무마저 회수해 가게 되므로 자치행정의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는 입장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는 자치입법권을 갖고 있지만 제한적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법령을 위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지방의회가 조례를 만들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방자치법에서 ‘법령이 정한 범위 내에서’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의 개선도 필수적인 사항이다.
다시 말해 법령에서 정하고 있지 않으면 지방사무의 증가나 주민복리를 증진하는 자치입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지방자치를 제한하는 규정들이 행정구역 개편과 동시에 개선되어져야 지방자치가 활성화되고 주민들의 복리가 신장되는 등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편에서도 언급하였거니와 중앙정부-광역시-읍면동으로 이어지는 지방행정체계의 단순화는 행정비용과 예산낭비를 줄이고 국민편의를 증대하는 효과가 크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새로운 국정과제에 행정구역 개편을 추가로 정하고 백년대계를 위한 지방행정체계의 개편 준비를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여야도 합의해놓은 상태다.
다만 지방공무원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유리 또는 불리함을 따지는 등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한 편이다. 어느 신문사에서 시도지사 의견을 청취한 결과 한 두 개 지역을 제외하고서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시피 시도에서는 반대하는 입장이 많다. 이와는 달리 시군에서는 광역시 체제에 따른 직급 인상이나 상위직 자리의 증가 등으로 호기가 될 것이며 광역화에 따른 업무는 공직에 매력도를 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고무적인 입장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회구조가 더욱 복잡해지는 가운데 인터넷 이용국민이 77%라고 하는 오늘날, 국민들의 요구가 날로 새로워지는 최첨단시대를 맞이하여 과거 100년 전 농경문화에 적합하게 만들어 놓은 현재의 행정구역으로서는 국가경쟁력이나 비전이 없다. 그러므로 국가발전과 주민생활의 변화에 큰 획을 긋는 행정구역 개편은 일대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행정구역 개편은 시대적 소명이다. 마냥 이대로 갈 수 없지는 않은가. 정치인만을 위한 논리가 아니라 지방이 중심이 되고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지방자치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개편되어져야 한다. 미래발전을 위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한 행정구역 개편이 준비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