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가족과 친지를 잃고 슬픔에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딸 죽음의 소식을 듣고, “최고야!”를 외친 아버지 환호가 귀에 생생하다. “고통 없이 죽는 게 지금 최고 선택지이지.” 하면서 흐느끼는 모습이라니…. 이렇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절망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 고통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면서 혹은 팔레스타인을 비난하고 혹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세계의 보통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연민하면서 자연스러운 감정을 분출하고 있다. 혹은 동정하며 혹은 분노하면서….
그런데 이런 사람들도 있다. 이번 사태가 세계 경제에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는 사람들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세계정세는 불안해지고 그러면 안전자산인 달러가 오르고 유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면 가뜩이나 빈국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은 가중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빨리 이번 사태가 해결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선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시기에 어떻게 하면 자기 재산을 지키거나 혹은 재산을 증식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사태가 미국 국채 금리, 달러 가치, 유가, 증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면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는 게 유리한지를 따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악한 사람들일까?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것은 경제 활동 일부이고, 특별히 그것이 자기 주업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치 분석가들은 하마스가 이번 일을 벌인 정치 의도를 분석하느라 바쁘다. 특별히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관계 개선이 자기들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계산하고 하마스가 이번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혹은 음모론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세계 최고 정보력을 갖춘 모사드와 CIA가 그런 대규모 공격에 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사태를 자기 정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는 정치가들도 있을 것이다. 그 대표로 이스라엘 강경파 지도자 네탄야후가 그런 계산을 할 수 있다. 이런 외부의 적은 부패 스캔들로 시달리는 정치 지도자에게는 가장 반가운 일이다.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은 이번 사태가 자신의 외교력에 치명상이 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비행기를 타고 이스라엘로 날아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강대국 지도자들은 뭔가 한마디 말이라도 섞어서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 할 것이다. 한편 주변국들과 유럽 국가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발생할 난민 유입을 걱정할 것이다. 그들이 이번 사태 조기 종식을 바라는 중요한 까닭 중 하나가 그것이기도 하다. 이집트는 이미 이스라엘 내부 혼란으로 대규모 난민을 받아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국제 정치 비전문가인 내 눈에도 이런 일들이 간단하게 보인다면 그 방면의 전문가들은 거기서 얼마나 더 많은 일을 보겠는가?
성경을 믿는 신자들에게도 이번 사태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신자들은 이 일 배경과 역사의 연원을 알고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했다가, 주후 2세기에 완전히 나라를 잃고 온 세상에 방황하다가 약 2000 년이 지난 후에 그 땅을 다시 차지한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런데 그런 일은 발생했고, 오늘날 문제 배후에 바로 그 일이 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이것을 하나님 섭리로 믿는 어떤 신자들은 여기서 말세 징조를 보거나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어떤 메시지로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으로서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관리 대상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다. 세대주의나 전천년주의자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생각이다. 이스라엘 민족 역사가 하도 특별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11장에서 가르친 민족 이스라엘의 존재 의미에 관한 상이한 해석 문제도 있다.
하지만 어떤 역사의 사건에서 하나님 섭리를 인정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 의미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기서 말세 징조를 볼 수는 있지만, 그러니 종말이 앞으로 몇 년 후에 올 것이라는 식으로 발전하면 안 된다. 국제적으로 대규모 혼란이 일어나면 사람들 불안을 이용해 돈벌이하려는 종교 사기꾼들이 꼭 출현하게 돼 있다. 그러함에도 이 일은 하나님 섭리 속에서 발생한 일이므로 믿는 사람은 거기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으려 시도하게 된다. 도대체 이런 일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가장 먼저 마귀의 생생한 활동을 볼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하마스가 한 일이나 이스라엘이 하는 일은 제정신이 아니다. 하마스가 그렇게 참혹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가는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무지막지한 폭격으로 몇 배나 많은 민간인을 죽이는 이스라엘 행위는 악마적이다. 마귀의 사주를 받고 정신이 뒤집히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음으로 인간의 죄악과 무지함을 볼 수 있다. 그 작은 땅에 서로 다른 민족이 공존할 길을 찾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울까? 사실 그들 모두는 아담과 하와 부부의 후손으로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다. 나아가서 거기에는 아브라함을 공통의 조상으로 한 이삭의 후손, 이스마엘의 후손, 야곱의 후손, 에서의 후손이 뒤섞여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된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악과 무지 때문이다. 그것으로 사람들은 이런 참상을 자초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것은 큰 규모이지만 작은 규모로 보면 사소한 일에서조차 사람들은 공존의 길을 찾지 못해 다투고 미워하면서 고통당하고 있다.
이런 일 앞에서 신자는 한편으로 그런 교훈을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고통에 참여할 길을 찾아야 한다. 자기가 누릴 것을 어느 만큼 희생하고 그들과 나누는 것이다.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지만 착잡한 심정이다.
동시에 신자는 이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 밑에 있음을 믿는다. 거기서 많은 악과 고통이 자행되지만, 선으로 악을 이기시는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더 큰 선을 이끌어 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눈앞의 일을 보고 고통스러워하지만, 최후의 승리를 믿는다. 눈물로 이 세상에서 씨를 뿌리지만 기쁨으로 추수할 것을 확신하면서. 그래서 신자는 궁극적으로 항상 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