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님의 카톡 메일
【2025년 04월 30일 [Wed.】 Good Morning!
▣【Sri Lanka. 허공 위의 학교.】
희망의 집은 모래 위에 세워지고 삶의 터전은
허공 위에 놓여 있다네. - A.J Arberry의 Hafez 중에서
네팔의 어느 술집 위성 TV에서 섬나라 스리랑카에
밀어닥친 대참사를 보았다. 거대한 지진 해일,
쓰나미가 몰아치기 두어 달쯤 전에 나는 그곳에 있었다.
평화롭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던 해변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랜 내전 탓에 그때마저도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은
거의 부재했지만 그래도 부족함 하나 없이 펼쳐진
터키석 빛깔의 바다와 말 그대로 유독
하얗게 빛나던 백사장, 이젠 그 모두가 폐허가
되어 있을 것이다. 화면으로 접한 그곳은 내가 알던
곳이 아닌 듯 보인다. 그 섬나라에서 보낸 몇 개월이
이제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이미 사라진 시절처럼 여겨졌다.
나는 탁자 위에 술잔을 내려놓고 쓸쓸함도 없이
냉랭하게 페르시아 운문양식의 하나인 하페즈의
한 구절을 되뇌어본다.
"희망의 집은 모래 위에 세워지고 삶의 터전은
허공 위에 놓여 있다네."
스리랑카의 거대한 노란 꽃나무 그늘 아래서 마주쳤던
오후의 어느 텅 빈 학교 생각이 난다. 이번에는
페르시아 하페즈 한 구절을 이렇게 바꾸어 읊조려 본다.
희망의 학교는 모래 둔덕 위에 세워지고 꽃들은
허공 위로 흩어지네. 사실 이 시구는 이슬람의
종교성이 깊이 밴 페르시아 글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생의 모든 것들이 無爲에 서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단지 감상적인 허무가
아니라 근본을 바라보는 마음, 신에 대한 겸허,
그리고 이 생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깊은 신뢰.
꽃들이 쉼 없이 져 내리고 있었다. 내가 알던 스승은
늘 세상밖에 있었고,
그는 때때로 가르침을 멈추고 먼 곳을 응시하곤 했다.
'누군가는 이 세상 이후를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희망의 학교는 그래서 늘 세상 속에서,
세상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생이 허공 위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는 힘, 꿈을 꾸는 힘.
현실의 모순을 자각하는 일, 새 세상을 도모하는 일.
누군가는
그렇게 꿈을 꾸고 있어야 한다.
시냇물 너머 절벽에 작은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아이들이 장작을 패는
아비와 어미 옆에서 손을 흔들어주고 있다. 나는 허공 위에
세워진 학교에 홀로 남아 그들에게 손짓을 보낸다.
안녕하세요. 이곳은 허공의 학교입니다. 어서 이곳으로
놀러들 오세요.
생활의 터전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 이들에게 허공은
거짓이 아니다. 차라리 그 어떤 척도로도 감히 참과
거짓을 분별해 낼 수 없는 거대한 무위(無爲), 그리고
어떤 권력으로도 함부로 휘둘러댈
수 없는 청정지대. 희망의 학교는 그 속에 다리
하나쯤은 걸치고 있어야 한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이 학교에는 하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가득 찰 것이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며 다시 한번 더 차창 밖으로
꽃들이 져 내리는 희망의 학교를 바라본다. 학교는
금세라도 제 윤곽을 지워버리고
사라져 버릴 듯 희미하다. 내 근거 없는 여행의
시간들이 저 허공의 학교 곁에서 잠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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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용 지음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여행 생활자】
- P. 182 ~ 190 중에서
옮긴 이 : S. I. AHN (정수님,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