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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봄'오나
2006 새로운 도약 3박자 착착 ▶천연잔디 시공▶지하철 3호선 개통 ▶펠릭스 호세 영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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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호세 |
'천연잔디, 지하철 3호선, 그리고 펠릭스 호세!'
야구도시 부산이 2006년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올해까지 24년간 연고지와 구단명이 한번도 바뀌지 않은 팀은 롯데와 삼성 뿐이다. 84년과 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롯데는 2001년부터 4년 연속 최하위(프로야구 최초)의 멍에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
구단과 팬 모두의 염원이었던 세 가지 과제가 동시에 해결됐기 때문이다.
첫째는 천연잔디 시공이다. 부산시는 내년 1월초 사직구장의 낡은 인조잔디를 걷어내고 천연잔디를 시공한다. 올시즌 초반 롯데가 단독 3위를 유지하며 돌풍을 일으킬 때 롯데팬들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천연잔디를 깔아달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이를 적극 수용해 천연잔디를 시공하기로 결정했다. 빠르면 내년 4월 홈개막전서 눈부시게 푸른 '꿈의 잔디'를 볼 수 있다.
두번째는 지난 11월 28일 개통된 부산지하철 3호선이다. 지난 97년부터 1조739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지하철 3호선은 사직구장을 찾는 관중들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야구장을 찾는 시민들은 종합운동장역에서 내려 도보로 야구장까지 갈 수 있다. 상습적인 교통난이 해소되고, 야구장의 접근성이 좋아져 사직구장 인근 경제가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펠릭스 호세(40)의 컴백이다. 롯데팬들, 특히 부산지역의 야구팬들에게 호세는 각별한 존재다. 롯데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호세를 다시 영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녹슬지 않은 기량에다 엄청난 관중동원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 구단과 롯데팬은 프로야구 전체 흥행구도를 좌우할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내년 4월은 다시 찾아온 '부산의 봄'이다.
"나는 호세를 이렇게 기억한다!"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40)가 5년만에 롯데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됐다. 현재 롯데 타자 중 99년과 2001년 호세와 함께 뛰었던 선수는 포수 최기문(32) 뿐이다. 99년에 부산 대천중 1학년이던 투수 이왕기(19)는 호세의 열렬한 팬이었다. 또 2년 동안 호세의 통역을 맡았던 조현봉 과장(34)도 있다. 이들은 호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한 마디로 완벽한 선수였다. 내 기억엔 약점이라는 게 없는 타자였다. 타이론 우즈(전 두산)의 파워와 제이 데이비스(한화)의 정교함을 모두 갖췄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한 경기에서 좌,우 타석 홈런을 모두 기록한 첫번째 선수가 호세였고, 두번째가 나였다. 호세가 오면 우리팀 공격력이 크게 살아날 것 같다. 빈볼 시비 때문에 배영수를 때리긴 했지만 호세는 배영수의 공을 아주 잘 쳤다. 99년 10월17일 플레이오프 5차전서 3-5로 뒤진 9회말 삼성 임창용에게 끝내기 스리런홈런을 날린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99년은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친구들과 사직구장에 자주 놀러갔다. 롯데팬이라서가 아니라 호세와 박정태(코치 연수중)를 보기 위해서였다. 99년 플레이오프 5차전을 보러 사직구장에 갔는데 끝내기홈런은 못 봤다. 9회까지 2점차로 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끝나는 줄 알았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끝내기홈런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워서 땅을 쳤던 기억이 난다.
통역이던 나는 하루 24시간을 호세의 그림자처럼 함께 다녔다. 당시 미혼이던 나는 한동안 호세와 함께 살기도 했다. 술에 취해 잠든 호세를 경기 시작 직전에 끌어낸 적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99년 관중석 방망이 투척 사건이다. 그날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동해 맥주를 한잔 했는데 호세가 자기 잘못을 시인했다. 옆에 있던 내가 미처 말리지 못한 책임도 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