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벗님 여러분!
즐거운 추석 잘 보냈는 지요.
어릴적에는 추석하면 그저 놀고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즐겁기만 했는데
나이들어 노인이 되고보니 즐거운 것만은 아닌 듯 했다.
나의 추석일기를 늘어볼까요. 심심한데
설이나 추석에는 막내의 신분이라 고향의 큰 형님댁 처럼 많은 부담을
느끼지 않은 그런 입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함에도 집사람은 1,2주 전부터 걱정을 하는 듯 합니다.
고향에 가는 일, 서울의 자녀들이 왔다 가는 일
좁더 먹이고 많은 보따리를 만들어 보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였습니다.
이 나이에 이제는 편안하게 그냥 있어도 될 것을 미리부터 바쁘게 움직이느라
몸은 파짐치가 되어 아낌없이 만들고 먹여 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성애는
이해가 가지만 그 과정속에 이 영감님에게는 안중에 없는 듯 하여 서운하기도
했다오.
그것은 좋은데
아이들이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부터 언제오느냐? 출발했느냐? 찻길을 어떠냐?
누구와 오느냐? 등을 포함해서 차에 실은 물건이나 주변 상황을 다 파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대단한 모성애.
나의 경우는 물론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적인
행태로서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출발후 8시간만에 대구에 도착했다는 아들, 딸들은 오자마자 반가운 인사에 이어
바로 안방에 들어가 잠에 나가떨어져 버린 것이다.
엄마, 아버지 찾아 먼길을 왔것만, 오는 길이 하도 막혀 그대로 누워 곤히 자버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엄마는 먹일 것이라고 잔뜩 해 놓은 먹거리들을 먹이지 못해
또 종종걸음을 하고 있다.
한참후에야 잠들이 께었는지 거실이 와짜지껄하다.
그러나 나는 잘 시간이다.
모르겠다. 그냥 떠들어내는 소리들이 약해지는 듯 그대로 잠이들었다.
아침 일찌기 고향 제사모시러 가는데 또 교통혼잡이 장난아니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앞으로 나가지를 아니한다.
발빠르게 먼길을 돌아서 평소에 한산하다싶은 길을 찾아 가보았지만
거기도 마찬가지다. 그대로 갈걸하고 또 후회를 해 보았지만
초조한 마음들은 달랠수 없었다.
고향가까이 가서 전화를 하고 길이 막혀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을 전하고 달리기를 계속 하였다.
진수성찬에 온 집안 친척 가족들이 함께 즐거운 해후를 하고 조상님게
제사를 정성스럽게 지냈다.
고향가는 길에 용을 쓰다가 배도 출출하여 음복으로 나오는 음식을
신나게 먹으며 모처럼 만난 형제자매 일가친척들과 즐거운 얘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배가 어느정도 차고나니 또 걱정이다.
오기는 했지만 갈길을 또 걱정해야 한다.
출발! 이라는 함성과 함께 대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사이엔가 큰 형수님이 고향에서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며 호박, 고추, 밤, 등
신토불이 먹거리들을 한가득 차에 실어둔 것을 보고 고향에 계신 큰 형님내외분
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뜻을 느끼면서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할텐데 하는 사이
고향은 점차 멀어지고 차량행렬은 오는 길보다 더 심한 정체현상을 보이기 시작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구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우리집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른집에 비해서 우리 전용주차창이 다른집에 비해서 꽤 큰 펀인데
대문입구까지 차량 5~6대가 여유공간 없이 들어차 있지 않은가.
전화를 해서 집집마다 비상을 걸가 하다가 집을 빤히 보고도 후진을 해서
인근 아파트 담장 밑에 겨우 주차를 하고는 다시 집까지 무거운 짐을 운반
을 하면서 추석기분이 좋을리는 없었다.
내집에 겨우 도착한 가족들은 또 파김치가 되어서 들어누워 자기시작했다.
고향와서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늘어져 자는 취침시간이 대부분
이라고 안달을 하면서도
다시 서울을 떠나보내기 전에 준비된 음식을 포함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모아두었던 많은 먹거리들을 한까득 차안에 올려놓아 돌아설 자리도 없이
해놓고는 자는 아이들에게 서울 출발이 늦어 졌음을을 다그치며 잠자리를
깨웠다.
출발전 배불리 먹어야 한다고 아직 아까 먹은 것이 소화도 덜 된 것 같은데
또 한상을 차려와서 맛이게 먹어라고 제촉을 한다.
엄마의 성화에 허리끈을 늦추면서 까지 많이 먹든 듯 흉내를 보이면서 서울
길로 출발을 했다.
차량속도와 함께 따라가면서 잘가라는 전갈을 한번더 강조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아이엄마의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상 그데로 였다.
한 두시간 후쯤 되었을까.
나는 컴 앞에서 이것 저것 보고있는데 또 집사람이 울상을 하면서 하는 말
아직도 칠곡 인데 가다서다하면서 서 있는 시간이 많다나요.
그러니 어찌하겠나?
그대로 모른체하고 있다가 잠이 들어 이튿날 오전까지 늘어지게 자버린 것이다.
낮 12시쯤에 기동을 해서 안마당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또 집사람이
울상이 되어있다.
뭣이냐고 했더니
아니 글세, 오늘 낮 정오 조금전에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들었데요.
그런데 문제는 차속에 한까뜩 넣어든 추석음식이 뜨거운 날씨에 장시간에
다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빨리 연락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도록 해보라고 했더니
아무리 전화를 해도 잠에 떨어졌는지 전혀 응답이 없다는 것이다.
아~ 중추가절!
멋진 행사였을까.
문명의 이기가 아무리 심해도 추석은 나에게 즐거운 명절로
기억 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기억되기를 원한다.
오솔길 벗님 여러분!
즐거운 추석이 되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from Chung-Am
첫댓글 청암 그동안 집지키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소식없이 뚝 그친것 죄송합니다. 아참 추석 치례 잘하셨지요 늘 즐겁게 사세요
어쨋거나 추석 명절만 같아라는 말 있잖아유. 긴 연휴에 한가위 모두모두 잘 지내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