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의 ‘대모’로 알려진 신조야(여·59) ㈔고려인마을 대표는 21일 고국 방문단의 고려인 마을 방문 취소 소식을 접하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광산구 월곡동 주변 고려인 마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대체로 하남공단과 소촌공단 등 인근 공단에서 근무하며 한 달 평균 100만원 안팎의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빈손으로 러시아 등을 떠나온 이들은 대체로 3∼4평 남짓한 원룸과 낡은 주택에 딸린 좁은 방을 빌려 겨우 생계를 연명하고 있다.
보증금 100만원과 월세 30∼40만원을 감당하기 힘든 고려인 일부는 월곡동 고려인센터에 마련된 3개의 좁다란 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옛소련 붕괴 후 생활고와 차별을 극복하지 못하고 ‘코리안 드림’을 쫓아 한국으로 건너온 고려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어 장벽과 ‘외국 사람’이라는 편견이 바로 그 것이다.
한국 말도 서툴고 변변한 기술도 없었던 고려인들은 인근 중소기업과 건설 현장, 식당 등을 떠돌며 채 1년을 못채우고 직장을 옮겨다니고 있다. 노동자가 1년을 근무하면 지급하도록 돼 있던 퇴직금 제도도 고려인에게는 불이익이 되고 있다.
퇴직금 지급을 꺼린 사업주들이 근무 1년을 앞두고 고려인을 해고하고 있고, 이는 동일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하면 얻을 수 있는 재외동포 비자 습득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마을 쉼터서 만난 이니꼴라야(50)씨는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할 수 없는 까닭에 단기취업(H-2) 5년 체류비자가 만료되는 8월 다시 빈손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야할 상황”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고려인 정착을 돕는 이천영(56) 새날학교장은 “고려인 마을에 체류하는 고려인 10명 가운데 3명만 추후 영주권 획득에 유리한 재외동포 비자를 취득하는 실정”이라면서 “고국을 찾아 빈손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위해 지자체는 물론 정부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