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톡톡] 세계 각국 여행서를 펴내는 <론리 플래닛-Seoul>편에는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이 쓰러져 가는 것들로 가득한 좌충우돌의 도시"라고 서울을 묘사했다. 얼마 전 일시에 사라진 종로 피맛골을 떠올리며 그 문구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었다. 종로의 낙원상가와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 마트 낙원시장을 알기 전까지는...
1960년대 낙원동에서 초고급 주상복합건물인 낙원상가 아파트가 들어선다. 당시 한 건물 안에 상가와 시장·영화관·아파트가 들어간 복합건물은 당시 시민들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다. 재래시장이 지하로 들어간 것도 전에 없던 발상이었다. 건물 아래로 도로가 지나가는 개념도 놀라웠다.
1969년 기사에 낙원상가아파트는 삼풍삼원아파트, 외인아파트와 함께 서울에서 가장 호화로운 아파트로 등장한다. 그런 화려한 역사를 지닌 낙원상가는 근래 서울시민들에게는 악기상가로만 알려져 있다. 주머니가 팍팍한 어르신들도 2,000원이면 클래식 무비를 감상할 수 있는 실버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과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지하 마트인 낙원시장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실버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
낙원상가가 생겨난 1969년에 문을 연 '허리우드 극장'은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과 함께 종로 극장가를 대표하는 극장이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긴 90년대부터 위기를 겪었다. 단성사는 문을 닫고 피카디리는 재건축을 통해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변신했다. 허리우드는 스크린 3개를 갖춘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
이런 '한물간' 극장의 잠재력에 주목한 극장주(김은주 대표)는 근처에 인사동, 탑골공원 등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많은데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허리우드'란 추억이 남아있다는 것에 착안, SK케미컬의 지원을 받아 2009년 실버영화관으로 새로이 단장을 마치고 문을 열었다.
기획은 좋았으나 초기엔 손님이 늘지 않았다. 매달 적자가 2,000만 원씩 났다. 김 대표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차를 팔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그동안 해오던 방식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에 눈높이를 어르신들께 맞추기 시작했다. 영화 상영 전엔 직접 나가 인사를 하고 '실버영화관'을 소개했다. 컴컴한 극장 통로엔 어르신들이 언제든 붙잡고 일어설 수 있게 봉을 설치했다. 옛 영화들이라 잘 안보이던 자막을 극장 맨 뒷자리에서도 잘 보이도록 새롭게 만들고, 고르지 않던 음향도 잘 들리도록 작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어르신들을 감안해 극장에 음식도 들여올 수 있게 했다. 입소문이 나자 관객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현재 이 극장의 연평균 객석 점유율은 60~70% 사이로 30~40%에 머무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점유율을 크게 웃돈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아닌 옛 작품을 틀어주고도 인기몰이를 하는 300석 규모의 이 작은 실버영화관이 우리나라 좌석 점유율 1위의 극장이다. 실버영화관이 어르신들의 호응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경기도 안산에도 실버영화관이 생겨났다. 이에 실버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에 '성공한 국내 첫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1호'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극장 안 로비로 들어서자 올드팝 'Moon River'가 흘러나오고 있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웠다. 극장 로비엔 고전 영화들의 포스터 외에 어르신들에게 편리한 제품을 만들어 전시 판매하는 중소기업 제품관과 어르신 전용 200원 짜리 커피 자판기가 눈길을 끌었다. 추억의 영화, 다시 보고픈 명작영화를 상영하는 실버영화관은 실버세대들에겐 특별한 공간이다. 단돈 2천 원에 영화를 통해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물론, 조조관객에게는 500원 할인권을 증정하여 4매를 모으면 영화 한 편을 공짜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 마트 낙원시장
무심코 지나쳤던 낙원상가 지하에는 전혀 상상도 못하던 곳에 시장과 식당들이 있다. 상가 건물 지하에 자리한 작은 시장이지만 각종 농수산물 가게, 방앗간, 정육점, 쌀집, 생선가게, 먹거리 식당들까지 일반 시장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래된 낙원상가 지하시장엔 악기수리 장인이 있는가 하면,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 방송에서 처음 지정한 '착한식당 1호점'이 있다. 주 메뉴는 청국장인데 밥을 미리 지어놓지 않고 주문할 때마다 새 밥을 지어 고슬고슬하게 먹을 수 있다.
시장 한쪽에 예닐곱 정도 모여 있는 국수집도 빼놓을 수 없다. 주문과 동시에 삶아 쫄깃한 면발을 자랑하는 잔치국수가 단돈 2,000원! 멸치육수에 유부, 김 가루 고명까지 올려 맛까지 훌륭한 잔치국수는 천하장사가 먹어도 배부를 정도의 양을 자랑한다. 이 가격에 국수를 팔 수 있는 비결은 역시 많이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다.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없어 서서 국수를 먹는 사람들도 있단다.
머리고기가 가득 들어간 순댓국도 단돈 4,000원이다. 이렇게 맛있고 싸게 파는 식당에서 무한리필이라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시장이다. 다른 손님들도 그런 마음인지 다 먹은 국수그릇과 찬그릇을 손수 식당 주방에 반납한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시민들에게 낙원상가는 말 그대로 낙원이었다.
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쾌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
[ 출처 : 서울시 ]
첫댓글 이곳에 가면 신천지가 아닌가도 싶을정도로미진진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