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禹吾無間然矣 菲飮食而致孝乎鬼神 惡衣服而致美乎黻冕 卑宮室而盡力乎溝洫 禹吾無間然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우(禹)임금은 내가 흠잡을 데가 없으시다. 평소의 음식(飮食)은 간략하게 하시면서도 제사(祭祀)에는 효성(孝誠)을 다하시고, 평소의 의복(衣服)은 검소하게 하시면서도 무릎 덮개와 면류관에는 아름다움을 다하시고, 궁실(宮室)은 낮게 하시면서도 밭의 도랑에는 있는 힘을 다하였으니, 우(禹)임금은 내가 흠잡을 데가 없으시다.”라고 하셨다.
間 罅隙也 謂指其罅隙而非議之也 菲 薄也 致孝鬼神 謂享祀豐潔 衣服 常服 黻 蔽膝也 以韋爲之 冕 冠也 皆祭服也 溝洫 田間水道 以正疆界 備旱潦者也 或豐或儉 各適其宜 所以無罅隙之可議也 故再言以深美之 間이란 빈틈과 틈새로서, 그 빈틈과 틈새를 지적하면서 비난하는 것을 말한다. 菲란 薄이다. 귀신에게 효도를 다한다는 것은 제사를 풍성하고 깨끗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의복이란 평상복을 말하고, 黻이란 무릎 덮개인데,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冕은 면류관이다. 이것들은 모두 제사용 복장이다. 溝洫이란 밭 사이의 봇도랑으로서 강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고, 가뭄과 홍수에 대비한 것이다. 우임금이 혹은 풍성하게 하고 혹은 검소하게 하여, 각자 그 마땅한 바에 나아갔으니, 이 때문에 시비를 걸만한 틈새가 없었다. 그래서 두 번 말함으로써 우임금을 깊이 찬미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書云 奉先思孝 此云致孝 必廟焉而人鬼享之鬼神 신안진씨가 말하길, “서경에 이르길, 선조에게 제사를 받듦에 있어 효도를 생각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효도를 다함에 반드시 묘당에서 제사를 지내어, 人鬼가 흠향한다고 하는 귀신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韋熟皮也 祭服謂之黻 朝服謂之鞸 주자가 말하길, “韋는 무두질한 가죽이다. 제사복은 일컬어 黻이라고 말하고, 朝服은 일컬어 鞸이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黻其色皆赤 尊卑以深淺爲異 天子純朱 諸侯黃朱 大夫赤 후재풍씨가 말하길, “黻은 그 색이 모두 赤색이나, 그 尊卑는 짙고 옅음으로써 다른 것을 삼는다. 천자는 順朱색이고, 제후는 黃朱색이며, 대부는 赤색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冕冠上板 前低後高 因俛而得名 호씨가 말하길, “冕은 관의 상판 앞이 낮고 뒤가 높아서, 이 때문에 앞으로 굽어있어서 이 이름을 얻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或問溝洫之制 朱子曰 見於周禮 遂人匠人之職 詳矣 蓋禹旣平水患 又治田間之水 使無水患之災 所謂濬畎澮距川 是也 혹자가 구혁의 제도에 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주례에 드러나 보이는데, 왕성 밖 100리 이외의 땅을 관리하는 관리 匠人의 직분이 상세하다. 대체로 우임금이 이미 물난리를 평정한 다음 다시 밭 사이의 물을 다스려서 물로 인한 재해가 없도록 하였는데, 이른바 봇도랑를 준설하기를 냇물로부터 멀게 하였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匠人職云 九夫爲井 井間有溝 十里爲成 成間有洫 洫深廣 皆八尺 溝半之 夏制當不異也 旣用以定經界 又旱則瀦水 潦則泄水也 호씨가 말하길, “주례 장인직 편에 이르길, 9夫를 1정으로 하고, 井 사이에는 溝가 있으며, 10里를 1成으로 하되 成 사이에는 洫이 있다. 혁은 깊이와 넓이가 모두 8척인데, 溝는 그것의 반으로 하였다. 하나라의 제도도 마땅히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이용하여 이미 경계를 획정하였고, 또한 가물 때는 물을 저장하였고, 장마 때는 물을 빼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 楊氏曰 薄於自奉 而所勤者 民之事 所致飾者 宗廟朝廷之禮 所謂有天下而不與也 夫何間然之有 양씨가 말하길, “자신을 봉양하는 것에는 야박하면서도, 힘쓰는 것은 백성의 일이었고, 치장하는 것은 종묘와 조정의 예였으니, 이는 이른바 천하를 소유하였으면서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릇 시비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胡氏曰 禹之自奉常薄 而宗廟朝廷之禮 百姓衣食之源 則未嘗不盡心 所以不容於非議也 호씨가 말하길, “우임금이 자신을 봉양하는 것은 항상 박하였지만, 종묘와 조정의 禮나 백성들이 입고 먹는 財源에 대해서는 일찍이 마음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비난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舜稱禹克儉於此見之 授禹以執中 亦於此見其能行之 集註以爲或豊或儉 各適其宜 卽各適其中也 若能儉而不能豊 則墨氏之儉 非中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순임금은 우임금이 능히 검소할 줄 안다고 칭찬하였는데, 여기에서 그것을 알아볼 수 있고, 우임금에게 中道를 붙잡으라고 전해주었으니, 또한 이곳에서 그가 능해 그것을 행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주에서는 혹은 풍성하고 혹은 검소하였으나 각자 그 마땅함에 나아갔다고 여겼으니, 곧 각자 그 中道에 나아간 것이다. 만약 능히 검소할 줄 알지만 풍성할 줄 모른다면, 곧 이는 묵자의 검소함이니, 중도가 아닌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禹素履儉勤 不以位爲樂 有天下而不與之實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우임금은 평소 검소함과 근면함을 실천하였고, 천자의 지위로써 즐거움을 삼지 않았는데, 이는 천하를 소유하고도 그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의 실체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