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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하나님이 사용하신 시청각자료/ 이사야 6장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afJOy1XOEBc
본문의 사건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일어났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때는 유다에는 위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웃시야 왕은 유다의 영웅이었습니다. 웃시야왕은 남유다의 10대 왕으로 52년간 통치했습니다. 웃시야는 경건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태평성대였습니다. 위대한 왕의 죽음은 국가적인 위기였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음은 이사야에게도 위기였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의 사촌이었으며 궁중 제사장으로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기는 했지만 고난은 몰랐고 배가 부르고 편안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웃시야의 죽음은 이사야에게도 위기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사야는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사야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주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스랍천사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날개가 여섯 개였습니다. 날개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둘로는 날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스랍의 찬양 소리로 성전의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 안에는 연기가 충만하였습니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이사야에게 자신의 부정함이 보였습니다.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스랍 천사가 제단에서 가져온 숯불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말했습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이사야가 들으니 주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유대인들에게 보내시지만 그들이 귀를 막고 마음을 닫고 회개하기를 거부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주님은 유다가 멸망할 것이며 사람들은 이방에 사로잡히고 가나안 땅은 황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13절입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유대인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목꾼이 나무를 베듯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남은 자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사건에는 몇 가지 시청각 자료가 나옵니다. 오늘은 이 사건에 나오는 시청각자료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오늘 설교는 제 과거 설교에서 많은 부분 인용했습니다.
1. 높이 들린 보좌
1절입니다. 이사야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를 통해서 하나님이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웃시야 왕은 죽었으나 하나님은 영원한 왕이시고, 자신이 온 세상 통치자로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계시하셨습니다. 보좌는 통치권입니다. 시 47:8입니다.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하나님은 높은 보좌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국가를 다스려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특별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설계에 의하여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승만이라는 지도자를 세우셔서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이승만기념관 웹사이트에 보면 ‘이승만의 기독교 입국론’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곳에 실린 글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1945년 10월 5일 뉴욕 공항에서 이승만의 귀국길에 프란체스카 여사와 미국인 친구들, 그리고 구미위원부 임원들이 배웅 나왔다. 역사적인 귀국길에 오르면서 이승만은 말했다. “나 한 사람은 오든지 가든지, 죽든지 살든지 일평생 지켜오는 한 가지 목적으로 끝까지 갈 것이다.” 그 한 가지 목적은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승만 집권 시기의 가장 중요한 종교적, 문화적 특징은 기독교와 기독교 문화의 확산이었다. 20대 초반 한성감옥 시절 사형수 이승만은 “동양 최초의 기독교 국가 건설”을 꿈꾸었다.
그가 1903년 9월 신학월보에 올린 글 <두가지 편벽됨>에는 이런 글이 있다. “정치는 항상 교회 본의로서 딸려나는 고로 교회에서 감화한 사람이 많이 생길수록 정치의 근본이 스스로 바로잡히나니 이럼으로 교화로써 나라를 변혁하는 것이 제일 순편하고 순리된 바로다. 이것을 생각지 않고 다만 정치만 고치고자 하면 정치를 바로잡을 만한 사람도 없으려니와 설령 우연히 바로 잡는다 할지라도 썩은 백성 위에 맑은 정부가 어찌 일을 할 수 있으리오. 반드시 백성을 감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한 후에야 정부가 스스로 맑아질지니 이 어찌 교회가 정부의 근원이 아니리요.”
그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하나님을 언급하고 기도의 기회를 만들었다. 1946년 3.1절 기념행사에서 한민족이 하나님의 인도 하에 영원히 자유 독립의 위대한 민족으로서 정의와 평화의 복을 누리도록 노력하자고 연설했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개회할 때, 이승만은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종교 사상에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또 국회의원이자 목사인 이윤영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가지고” 민족의 대표가 되었음을 고백했다. 최초의 국회의원들이 모두 일어서서 기도를 올리는 가운데 이 나라 국회가 시작된 것이다.
국회의장 자격의 <맹세문>에서 “하나님과 애국선열과 삼천만 동포 앞에” 선서했으며, <국회 개원식 축사>에서는 “하나님과 삼천만 동포 앞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맹약했다. 이승만은 기독교 국가들의 선례에 따라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
이승만이 꿈꾸었던 나라는 선진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이었습니다. 그런 나라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나라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 북한 공산주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유독 교회를 핍박했으며, 정치인들은 반성경적인 포괄적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하나님이 설계하셔서 세우셨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옷자락
1절에 보니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데, 하나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만 앉아 계시지 않으시고 이 땅의 교회에 함께 하시며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죽어서만 만나는 신앙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동행 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마 28:20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성령으로 믿는 사람들 속에 오셔서 개개인에게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저기서 흑인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북군이 패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패전의 소식은 흑인 웅변가 더글라스가 연설하고 있는 곳에도 전해졌습니다. 흑인들에게는 낭패의 소식이었습니다. 참으로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더글라스도 울고 많은 흑인들이 울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까?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까?” 그 노인은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약한 자를 도와주십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고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교회에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학교 등 어디에서든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 코람데오의 삶이고 그런 의식이 신전의식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어디든지 계십니다.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체험적으로는 교회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신약적인 표현으로는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함께 하십니다.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은 주로 교회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자주 찾아와야 합니다. 주일 낮 예배만 와 가지고는 건강한 믿음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후 예배도 참석하시고, 수요일에도, 금요일에도 오셔서 하나님을 만나 깊은 교제를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3. 스랍들의 여섯 날개
2절에 보면 스랍 천사들은 여섯 날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스랍들의 날개로 우리에게 시청각 교육을 하십니다.
①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살라. 2절에 보면 날개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타나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타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는 말입니다. 고전 10:31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공부하는 목적이 뭡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목적은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결혼의 목적은요? 사업의 목적은요? 목회의 목적은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연합회 활동 중에 보면 자기 얼굴이 드러나야만 협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모임에서 어떤 순서를 맡아야만 후원하고 참여를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자기 얼굴을 가려야 하는데 자기 얼굴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스랍과 반대 되는 모습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입니다.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약 25년 전에 어떤 권사님이 강대상을 했습니다. 그분이 강대상을 사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저는 그분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광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시험에 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기가 강대상을 했는데 어떻게 목사님이 광고도 안 해주냐며 저를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 중에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강대상 참 좋지요. 이 강대상을 이00권사님이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유치한 사건입니다.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열심히 일하고 많이 섬기지만 자기의 얼굴을 가리기를 축복합니다.
②자기의 길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라. 천사가 날개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습니다. 이 말은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야 한다는 영적인 메시지입니다.
제가 금요기도회에서 사용한 예화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정치적인 모임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습니다. 술 한 잔씩을 들고 선창하는 이가 외쳤습니다. “주전자!” 모든 사람이 잔을 들고 “주전자”를 외쳤습니다. 목사님이 어떤 분에게 주전자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람은 주체 의식이 있어야 하고,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고,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전자가 있어야 합니다. 주는 주님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전은 그들과 같은 전문성입니다. 그런데 그 전문성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전문성입니다. 자는 자부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체 의식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시간과 건강과 물질과 재능과 몸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주인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잘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마 16:24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를 내려놓는 훈련입니다. 죽을 때까지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③열심히 일하라. 스랍은 나머지 날개 둘로는 열심히 날개 짓을 하며 날았습니다. 이 날개는 일하는 용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성경 잠언은 지혜의 책입니다. 잠언의 지혜는 의인화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잠언에서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잠 9:10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잠언은 이 말씀으로 풉니다. 진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이 뭐냐? 그것을 펼쳐서 보여주는 것이 잠언 1-31장입니다. 잠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생활이 다양하게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 일곱 가지입니다. ➀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➁말씀대로 살라. ➂겸손하라. ➃깨끗하라. ➄경건하게 말하라. ⑥정직하라. ⑦부지런 하라.
잠 11:16입니다.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사람은 덕이 있어야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됩니다. 넉넉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 누구든지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근면해야 재물을 얻습니다. 근면은 부지런할 勤에 힘쓸勉입니다. 부지런히 힘써 일해야 합니다. 골 3:23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을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을 섬기듯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열마나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4. 성전 문지방 터
3절에는 천사의 찬송이 나옵니다. 4절에는 천사의 찬송으로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했습니다. 연기가 충만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초점은 성전 문지방 터입니다. 천사의 찬송과 하나님의 임재로 문지방의 터가 요동했습니다.
성전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신자의 마음 문을 상징합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은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입니다.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는 것은 마음의 감동입니다. 신앙생활은 감동은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감동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감동을 달리 표현하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마음의 부담감이 생기면서 내가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일종의 감동입니다.
한신대 총장을 지내신 오영석목사님이야기입니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인 그분은 너무나 가난해서 중학교 진학을 못했습니다. 그는 친구들이 학교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부러워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도 중학교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한 번은 감동이 와서 40일 새벽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40일 작정 기도가 끝날 때쯤에 또 감동이 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전상서를 올려라.” 그래서 감동대로 편지를 썼습니다. 봉투에는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라고 쓰고 내용은 하나님께 자기도 학교에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문이었습니다.
우체부가 우편물 분리를 하는데 주소도 없이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라고 쓰여 있으니 속으로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은 목사님이니 목사님한테 갖다 주자’라고 생각하고 해남읍 교회를 담임하시는 이준묵 목사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목사님도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 오영석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불러다가 목사님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같이 지내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를 시켰습니다. 한신대학을 나오고 스위스로 유학을 다녀와서 한신대 교수를 하고 총장까지 했습니다. 오영석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따라 살다가 인생 대박이 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감동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마음이 부드러워야 합니다. 호 10:12입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묵은 땅은 단단해지고 거기에 잡초들이 무성하면 씨를 뿌려도 소용없습니다. 씨를 뿌리려면 먼저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땅을 뒤집어야 합니다. 잡초와 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듯 우리는 마음을 기경해야 합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잡초와 돌과 같은 죄악을 하나님께 낱낱이 아뢰고 예수님의 피로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보들보들한 땅처럼 마음이 기경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잘 받을 수 있고 그 결과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5. 제단 숯불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을 만나니 자기의 부정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5절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6,7절에서는 스랍 천사가 제단에서 핀 숯을 가지고 와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숯불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①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어느 자매가 방언 받기를 기도해 달라고 해서 제가 그 자매에게 준비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이 임하시기 전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행 1:14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제자들은 성령 받기 위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그들은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그 자매에게 준비 기도를 하라고 했던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 기도로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달리려면 내연 자동차는 기름이 있어야 하고, 전기 자동차는 전기가 충전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은 성령님이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천국의 삶을 당겨서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롬 14:17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신앙생활 하면서 천국은 소망하는데 마음은 지옥이 되면 안 됩니다. 천국을 바라보며 살면서 동시에 마음의 천국이어야 합니다. 행복한 신앙생활, 천국을 당겨서 누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충만히 역사하셔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야 합니다. 천국은 성령 안에서 누립니다. 천국을 누리려면 반드시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②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제단의 숯불은 제단에서 제물을 불사르다가 생긴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를 드릴 때는 제단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불태웠습니다. 그 제물에서 피가 떨어져 제물을 태우는 숯에 묻습니다. 천사는 피 묻은 장작 중에서 가져온 숯불로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단 숯불에서 예수님의 피를 유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 시간에는 참회의 기도가 있습니다. 제가 그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요일 1:7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씻어냅니다. 오직 그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피만으로 사람은 죄사함을 받습니다. 엡 1:7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이 피를 흘리신 이유는 우리의 속량을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를 믿고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 속량 곧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6. 그루터기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시는데, 그 사역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외쳐도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마치 벌목꾼이 밤나무와 상수리나무를 베듯이 하여 황무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그 땅의 그루터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루터기를 통해서 두 가지 메시지를 주십니다. ①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매를 맞아 고통을 당하고 죽어서는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집니다. 히 9:27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좋겠으나 죽음 후에는 반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 심판을 이기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고 심판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지옥에 들어갑니다. 마지막 심판을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잘 오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교회만 나오셔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임이며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②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진노 중에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남은 자입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거룩한 씨를 그 땅의 그루터기로 남기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남은 자가 됩시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도 우리는 끝가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깁시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미혹으로 하나님을 떠납니다. 육신이 원하는 길을 가느라고 하나님을 떠납니다. 또 고난과 환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남은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웃시야 왕이 죽자 위기를 느낀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난 사건에서 사용된 시청각자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1. 높이 들린 보좌 - 인간 왕인 웃시야는 죽었으나 하나님은 영원한 왕이시고 이 세상 통치자로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2. 하나님의 옷자락 - 하나님은 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3. 스랍들의 여섯 날개 - ①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살라. ②자기의 길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라. ③열심히 일하라.
4. 성전 문지방 터 - 성전 문지방 터가 요동하듯이 우리는 마음의 땅을 기경하여 감동을 잘 받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바랍니다.
5. 제단 숯불 - ①신앙생활은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②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6. 그루터기 - ①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②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긍휼을 베푸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