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지(鄭麟趾)
정인지는 (1397~1478) 술만 마시면
옷을 홀라당 벗은채 자는 습관이 있는데
전날 퇴청(退廳)하여
기억(記憶)이 안 나도록 술을 마신 후
다시 궁안의 집현전으로
되돌아와 잠을 청했다.
세종의
아침 순시중에 딱 걸려버렸고
홀딱 벗고 자는 모습에
화가 단단히 난 세종은
하옥(下獄)을 명령(命令)
근신(謹愼)토록 조처했다.
•••
출옥(出獄) 후
정인지는
한동안 술을 끊으며
자숙(自肅)하며 지냈었는데
그의
심한 술버릇을
집현전에서 함께 일하던
수양대군이 깨우고 말았다.
•••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나이의 정인지를
기방으로
정중히 모신 수양대군은
뜻밖에
그의 술주사에
면박을 당하고 만다.
인지 : 세자의 반만 따라가라!
수양 : 제가 반도 안됩니까?
인지 : 반은 커녕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해!
반말을 하며
무례를 거듭하는 정인지를
어지간히
신뢰(信賴)했나보다.
그일이 있은 뒤에도
수양대군과 정인지는
끈끈한
밀월(蜜月)관계를
유지(維持)하게된다.
•••
계유정란으로
수양대군이 권좌에 오르자
정인지는 곧바로
영의정에 추승되었다.
•••
세조는
자주 신하들과 함께
술을 마시곤 했는데
항상
영의정인 정인지의
술주사가 문제가 됐다.
세조 : 짐이
간경도감 설치하여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고자 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인지 : 조선의 근간은 유교인데
그것을 행하는 것은
근간 을 흔드는 것이니
나는 반대합니다.
세조 : 불경을 통해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코자 하는데
그게 잘못된 일인가?
인지 : 애초에 사람을 죽이지
말았어야지 !
세조 : 너 지금
짐에게 반말한거냐?
인지 : 니는 부처를
극진히 모시니
극락(極樂)가겠다!
정인지의 조롱에
세조는 화를 참지못해
주안상을 엎어버렸고
즉시 그를 하옥(下獄)시켰다.
다음 날
어제의 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듯
세조가
단단히 뿔난 얼굴로
감옥(監獄) 속의
정인지를 직접 심문했다.
세조 : 어제 무슨 생각으로
그따위 말을 했나?
인지 : 취해서
기억이 안나옵니다.
세조 : 공자의 도와
부처의 도가
뭐가 다른지?
그가
대답(對答)을 못하자
세조가
불같은 역정을 내며
호통 쳤다.
세조 : 임금이 묻는데
대답을 안하다니
이런 싸가지없는
넘을 봤나?
의금부에
다시 하옥됐지만
7일만에 다시 풀어져
그를 신뢰하는
세조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斟酌)이 간다.
•••
출옥(出獄) 후(後)
얼마 안되
임금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물만 마시는
정인지가 불쌍해
세조가
어떠한 주사를 부려도
용서(容恕)할테니
술을 마시라 권했고
이에 화답(和答)하여
마셨다가
두사람은
또다시 논쟁에 휩싸였다.
당시
풍수(風水)에 대해
논쟁(論爭)을 벌였는데
이론(理論)에
해박(該博)한 정인지와
대군시절부터
세종대왕,소헌왕후,
문종,의경세자 등
장례에
두루 관여하여
자칭 풍수의 전문가라
자부하던 세조는
초반(初盤)부터
팽팽하게 대립(對立)했다.
그러다
술이 어느정도
취한 정인지가
세조를 경시하는
말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인지 : 더 들어가면 전하께서
이해를 못하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세조 : 넌 얼마나 잘나서
그리 깔보냐?
술주정이지만
임금에 대한 도발이라
신하(臣下)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처벌할 것을
주청(奏請)했지만
세조는
약속(約束)한바도 있어
손을 흔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정인지는
애주가(愛酒家)답게
항상 입버릇처럼
술을 예찬(禮讚)했다.
"아기들이 젖으로
생명을 키워나가듯
막걸리 역시
노인의 젖줄이다~!!!"
"술은
사내의 인격(人格)과
도량(度量)을 넓혀주는
약(藥)이다~!!!
애주가이자
애주가인
정인지 자신도
주사(酒邪)때문에
엄청난
고민(苦悶)을
한 흔적(痕跡)이
야사(野史)곳곳에 나온다.
하루는
절친(切親)이자
후배(後輩)인
신숙주가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혼자
안주(按酒)도 없이
술잔을 홀짝 홀짝
비우고 있었다.
숙주 : 웬술을 안주도 없이
혼자 드세요?
인지 : 이거 맹물이야~!!!
술을 마시고
싶은데 주사가 심해서..
심한 주사에도
불구하고 세조는
정인지를 자주 불러
술자리를 함께 했고
•••
그러다
큰 사단이 나고 말았다.
역시
불경(佛經)을
언해(諺解)해서
편찬(編纂)하겠다는
세조의 방침이
논쟁의 불씨가 됐고
급기야(及其也)
만취한 정인지가
실언(失言)을 퍼부면서
사단이 시작(始作)됐다.
인지 : 너가 그리하고
싶으면 해라~!!!
난 안한다.
세조 : 너 지금
나한테 말까는 거지?
인지 : 나이가
한참위인데 까면 어때?
세조 : 죽고싶냐?
인지 : 전하야~!!!
아니 곧있으면 물러나니
상왕(上王)전하야 ~!!!
세조 : 너 지금 머라고 했냐?
신하가 그렇게
벌 주라고 간해도
끄덕없던 세조는
이제는
기고만장하여 기어오른듯한
정인지의 태도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세조 : 불사를 일으켜
비명횡사한
영혼을 위로한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거야?
인지 : 그래서 안된다는 거야?
옛날부터 유학(儒學)의
도리(道理)를 모르니
불사로 한다는 것 아냐~!!!
나도 이제 지친다 지쳐~!!!
세조 : 불사로 영혼을
위로 하는 일은
좋은일 아닌가?
인지 : 죽여놓고
무슨 영혼을 위로?
애초에 죽이지말던가?
세조 : 너 지금
나를 능멸하는 건가?
인지 : 능멸은 무슨 능멸?
기어코 조카까지 죽여야했나?
반말까지 곁들여
세조의 아픈 상처인
단종의 사사까지 건들자
신하들은 일제히
참수형을 주창했지만,
역시 그는
서울 인근의 지역,
그의 고향인 부여로
유배(流配)보내는 걸로
마무리했다.
단, 정인지에게
조그마한 금속잔을
직접 하사하면서
엄중(嚴重)히
경고(警告)했다
세조 : 하루에 이잔으로
딱3잔이다~!!!
어길시
목숨을 거둘것이다~!!!
유배지에서
세조가 하사한 술잔은
정인지의
성에 차지를 않아
그를 곤혹스럽게 했다.
하긴 말술을
마시던 사람이
간장종지만한
술 3잔으로 떼우려하니
얼마나
감질이 났겠는가?
인지 : 간에 기별도 안가니
입맛만 버렸네! (쩝)
세조는
신하(臣下)를 보내
정인지가
자신이 명령(命令)에
잘따르는지를 알아보라
명(命)했고
10여일후에
그를 독대(獨對)했다.
세조 : 갔더니
머하고 있던가?
신하 : 만취(滿醉)해
잠이들어
있었습니다~!!!
세조 : 만취(滿醉)?
세조는
불같이 화를 내며
펄쩍 뛰었고
내금위장을 불러
명령을 내리려다
신하의
급(急) 발언(發言)에
멈칫했다.
신하 : 전하의 명령대로
3잔을 마셨습니다~!!!
세조 : 3잔을 마셨는데
어떻게 만취해?
신하 : 그..그게...!
다소
우물쭈물하는
신하의 태도에
세조는 불같이
역정을 내려다
이내 보고(報告)를 받았고
받자마자
호방(豪放)한 웃음을 터뜨렸다.
세조 : 머라구?
잔을 두들겨 대접처럼 만든다음
그걸로 3잔 마셨다고~!!!
푸~하하하~!!!
결국 정인지는
3개월만에 풀어져
역마(驛馬)를 타고
상경(上京)했으니~
사람을
밥먹듯이 주살했던
세조에게
술김이지만
반말하고 조롱하며,
능멸(凌蔑)하여
살아난 사람은
그가
유일(唯一)할 것이다.
세조가
그를 얼마나
총애했는지(?)를
또다시
짐작(斟酌)이 간다.
세조와
정인지에 관한
역사드라마를 보면서
그의 술주사에 대한
고민(苦悶)에
공감(共感)이 많이 갔다.
정인지는
1411년 생원시에
합격(合格)했고,
1414년 문과에
시험을 봤는데,
이때
일화(逸話)를 하나 남겼다.
시험(試驗)
감독관(監督官)을 맡았던
하륜 등이
태종에게
3개의 시험 답안을
가져와서
장원(壯元)을
뽑아달라고 청했다.
감독관들의
평가(評價)는 ...
"두 답안은
엇비슷하고
하나는
조금 처집니다"였다.
태종은
'내가 집는 것이
장원(壯元)이다'
라고 말한 다음
두 시권을
받치도록 하여
능숙한 솜씨로
그 하나를 잡으니
바로
정인지였다는
구절(句節)이 있다.
그러나
신하들이
조금 쳐지는
하나의 답안(答案)은
미리
배제(排除)해뒀을
가능성(可能性)도 있다.
즉
정인지의 답안이
조금 더 훌륭했던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한마디로
태종은 답안지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하나 집어 그것을
장원으로 삼아버렸다.
그
답안지(答案紙)의
주인공(主人公)이
바로
정인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