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75)
병자호란
셴양에 끌려갔다 돌아온 숙정댁
딸과 하인 춘삼이 데리고 사라져
1636년 12월28일,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셴양에 집결한 12만 청나라 군대의 선봉대는 압록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조선 땅을 휩쓸고 내려왔다. 밤낮없이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물밀 듯 내려온 청군은 셴양을 출발한 지 불과 열흘 만에 한양에 입성했다.
방어하기 좋은 강화도로 피하려던 인조(仁祖)는 문무백관에 둘러싸여 허겁지겁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한양에서 강화로 가는 길은 이미 청군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12만 청군이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인조. 잘난 임금은 아닐지라도 나라님이 청군에 포위되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는 소식에 방방곡곡 관찰사들이 오합지졸 관군을 정비하여 남한산성으로 진격했다. 학가산 남향받이 산자락에 평화롭게 살아가던 선비촌에도 전쟁의 불똥이 떨어졌다. 집집마다 장정 한명씩 징집령이 떨어졌다. 류 대감의 외아들 류 진사가 새파랗게 질렸다. 류 대감이 벙어리 하인 춘삼이를 불러 앉혔다. “너는 오늘부터 류헌풍이다. 알았지?” 춘삼이는 날 때부터 말은 못하지만 말귀는 알아들었다.
춘삼이는 갑자기 류헌풍이 되어 경상도 관찰사 아래 근왕병으로 창을 들고 용감하게 나라님을 구하러 갔다. 몇날 며칠을 걸어 문경새재에 왔을 때 피비린 냄새가 코를 찌르고 기세 좋게 울려 퍼지던 함성은 북풍 된바람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청군 별동대의 고함이 밤공기를 찢어놓았다. 달빛에 칼날이 번쩍이고 아비규환과 울부짖음만이 새재를 덮었다.
바위틈에 처박혀 낙엽을 덮고 덜렁거리는 왼팔을 넝쿨로 묶었다. 방방곡곡에서 각도의 관찰사가 군대를 끌어모으고 부랴부랴 징집하여 오합지졸을 이끌고 나라님을 구하겠다고 남한산성을 향했지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리멸렬 흩어졌다. 청태종 홍타이지는 남한산성을 포위만 하고 있었지 서둘러 공격하지 않았다. 성안에 비축 식량이 얼마 남았는지 손금 보듯이 훤했다.
1637년 2월24일,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인조는 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홍타이지 앞에 꿇어앉아 이마를 땅에 찧는 굴욕을 당했다. 전쟁이 끝났다. 벙어리 춘삼이는 설상가상 외팔이가 되어 선비촌 류 대감댁으로 돌아왔다.
가짜 류헌풍이 돌아왔는데 진짜 류헌풍이 보이지 않았다. 점령군 청군은 조선팔도를 뒤져 약탈을 일삼아 반반한 젊은 여자는 겁탈한 후 청나라로 데려가고 남정네는 잡아서 짐꾼으로 부려 먹다가 역시 청나라로 데려가 노예로 팔았다. 류 대감의 아들 류헌풍은 집에서 십여리나 떨어진 내성천 가 절벽 동굴에 숨었다. 육포와 굴비 명태를 걸어놓고 밥을 손수 지어 먹었다.
류 대감 며느리, 류헌풍의 처 숙정댁은 아침에 일어나 들기름에 절어 있는 검댕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머리를 풀어 짚북데기를 덮어쓰는 게 화장이다. 동굴에서 류헌풍 부탁을 들은 춘삼이가 숙정 마님에게 닭백숙을 해서 손수 들고 오라는 말을 전했다. 이튿날 숙정댁은 씨암탉 백숙을 싸 들고 몰래몰래 몸을 숨겨 동굴로 갔다. 류헌풍이 얼굴의 검댕을 씻고 오라 일렀다. 내성천으로 내려가 얼굴을 씻고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졌다. 그렇게 대낮에 부부가 피란처 동굴 속에서 만났다.
빈 그릇을 싸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숙정댁이 이번에는 청군에 붙잡혔다. 양반집에서 화초처럼 자라 류씨댁에 시집온 숙정댁은 생사기로에서 의외로 강단이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 청군 타타라에게 이끌려 셴양으로 끌려갔다. 적으로 만났지만 청나라로 가는 길에 숙정댁을 챙겨줄 때도 있었다. 물을 건널 때 신발을 벗고 숙정댁을 업기도 하고 식사할 때 맛있는 반찬을 먼저 숙정댁 입에 넣어줬다.
셴양에서 타타라는 꽤 높은 계급의 군인으로 본처가 있었다. 숙정댁은 첩이 되었지만 살림집도 번듯했다.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타타라가 전사하자 타타라의 아버지는 묵직한 전대를 주며 고향으로 돌아가라 일렀다. 일곱살 난 딸의 손을 잡고 두달 만에 학가산 자락 집으로 돌아왔더니 모두가 동짓달 서릿발처럼 싸늘했다.
남편 류헌풍은 새장가를 갔다. 사람들은 숙정댁을 손가락질했다. 그나저나 일곱살 고운 딸이 류씨네 딸인지 타타라의 딸인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숙정댁은 딸과 벙어리 외팔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첫댓글 가장 띨띨한 조선 왕중에 한명 "인조"
왕이라 부르기도 아깝다
아픈 역사네요
선조, 인조... 한 명 더 윤가...
슬픈 역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