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76)
외동딸과 송아지
하루종일 함께하던 송아지
빚 갚을 길 없어 넘겼는데…
살둔에 사는 노 서방은 걱정이 태산이다. 배가 동산처럼 부풀어 오른 암소가 출산일이 가까워졌는데 먹지도 않고 설사만 계속 해대더니만 급기야 일어나지도 못하고 드러누워버렸다. 봄이 왔다지만 아직도 새벽에는 살얼음이 끼는 날씨라 노 서방은 가마니나 멍석으로 찬 바람이 못 들어오게 외양간을 막고 그래도 송송 난 구멍은 짚으로 막았다. 설사를 멎게 하기 위해 소죽을 끓일 때 솔잎을 따서 넣었다. 외양간에 소죽 아궁이가 있어 밤새도록 쪼그리고 앉아 불을 지폈다. 마침내 암소가 산통을 시작했다.
노 서방 마누라 막실댁은 관솔 횃불을 들고 누워 있는 암소 사타구니 밑에 이불을 깔았다. 노 서방은 윗옷을 벗어젖히고 한 손을 자궁 속에 넣어 출산을 도왔다. 새끼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미 소를 살리는 데만 신경 쓰느라 내팽개쳐뒀는데, 송아지가 ‘음매’ 하고 울었다. 이불로 둘둘 말아 안방 아랫목에 눕혔다. 어미도 살고 송아지도 살았다.
소죽 솥에 콩을 삶아 먹이고, 남향받이 밭둑의 보드라운 새싹을 잘라 와 어미에게 먹여도 젖이 나오지 않았다.
노 서방은 산 넘고 물 건너 홍천장으로 갔다. 젖 짜는 염소 한마리를 봤는데 수중의 몇푼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염소 주인과 대서방에 갔다. 석달 내로 염소값을 못 갚으면 송아지를 주기로 약정하고 대서방 안 생원이 염소값을 치렀다. 노 서방은 염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에 내다 팔 콩을 삶아서 염소에게 먹였더니 젖이 잘 나왔다. 삐쩍 말랐던 송아지가 살이 붙기 시작하더니 깡충깡충 마당을 뛰어다니고 노 서방 곁을 떠나지 않았다. 노 서방이 마실을 가도 따라가고 잔칫집에 가도 따라가고 장에 가도 따라갔다. 장날이면 홍천장의 명물이 돼 두부집에서는 콩비지를 한바가지 먹여주고 국밥집에서는 손님들이 남긴 밥을 퍼다가 먹여줬다. 노 서방을 졸졸 따라다니는 게 재미있어 사람들은 허허 웃었다.
눈코 뜰 새 없는 농사철이 왔다. 콩 농사꾼 노 서방은 화전에 콩씨를 심었다. 장끼란 놈들이 콩을 파먹을세라 새벽같이 콩밭에 나와도 송아지는 따라왔다. 밤에 잘 때만 어미 곁에 있지 온종일 노 서방 곁에 붙어 있었다. 밭에서 땀을 흘리던 노 서방이 삼베 보자기에 싸 온 점심을 먹고 한숨 눈을 붙일 때면 송아지는 베개가 된다. 그래도 밤이 되면 외양간에서 젖도 나오지 않는 제 어미 젖을 물고 잤다.
막실댁은 분주했다. 무남독녀 후남이 시집갈 날이 보름 앞으로 다가와 혼수 장만에 밤을 새우다시피 등잔 앞에 붙어 있다. 틈틈이 장만해놓은 혼수도 있고, 사돈집도 노 서방네 형편을 잘 아는지라 크게 걱정하지 않는데, 문제는 후남을 떠나보낼 생각만 하면 막실댁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삼십리 떨어진 홍천 장터에서 국밥집을 하는 사돈댁이라 지긋지긋한 콩농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놓이지만, 후남이 곁을 떠나간다는 것 자체로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다. 후남은 어릴 적부터 착하고 예뻤다. 콩밭에서 제 어미가 돌아오면 벌써 저녁상을 차려놓고 어미 다리를 주무르고 어깨를 두드렸다.
이태 전 가을, 노 서방이 바리바리 콩 가마니를 소 등에 얹어 홍천장에 내다 팔고 마누라와 후남을 데리고 국밥집에 갔더니 일하던 국밥집 아들이 첫눈에 후남한테 반해 죽기 살기로 매달려 혼사가 이뤄진 것이다.
노 서방은 잠이 오지 않아 애꿎은 담뱃대만 두드린다. 염소값을 갚을 길이 없어 약정대로 송아지를 대서방 안 생원에게 넘겨줘야 할 판이다.
혼례를 올리고 불과 이레 만에, 노 서방은 아침에 콩을 두바가지나 넣고 소죽을 만들어 송아지에게 먹이고 이제는 훌쩍 자란 송아지를 안 생원에게 넘겨줬다. 그러고 울적한 마음에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그믐달을 보면서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부터 어미 소가 눈물을 흘리며 ‘음매 음매’ 울어댔다. 장날 다음날은 국밥집이 쉬는 날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딸과 사위가 신행을 왔다. 장인·장모가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어 사위가 놀라서 연유를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막실댁은 딸이 보고 싶어 병이 났고 노 서방은 송아지가 보고 싶어 병이 났다.
그때 밖에서 ‘음매’ 하고 송아지가 사립문을 밀고 들어왔다. 노 서방이 맨발로 뛰어나가 송아지 목을 껴안았다. 사위가 비싸게 송아지를 다시 샀다.
첫댓글 영상쨈납니다
이쁜 딸과 사위
잘 살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