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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세이더 킹즈라면... 당연 예루살렘 왕국의 역사를 무시할 순 없겠죠.
기회가 될 때마다 예루살렘 왕국의 영역을 돌면서 크루세이더로 활약했던 가문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왕국 내에는 상당한 영주들과 그 가문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중 한 가문이 바로 이벨린 가문 (프랑스어로는 이블랭, d'Ibelin)입니다.
2005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이 개봉되었을 때 역사의 전환점인데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전혀 없고... 별 쓰잘데기 없는 연예사나 주절주절...
올랜도 블룸의 얼굴이 너무 아깝더군요. 모처럼 개념 잡은 주인공인데...
알고 보니 40여분 정도의 분량이 날아간 터라... 눈이 한없이 높은 역사마니아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고 망했죠. 결국 감독판이 따로 제작되어 배포되자... 마니아들은 찬양을 합니다. 대작을 넘어 걸작 중 걸작... 아마도 역사를 보는 감독의 시선이 상당히 진보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저 나름 생각합니다. 완전 제 생각...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발리앙이 성을 방어하는데 목숨을 건 모든 사람들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아버지와의 추억 속에서 기인한 기사(knight) 작위 수여... 무기를 잡은 사람이라면 모조리 기사로 만들어 주는 파격... 이런 짓 하다간 제 명에 살지 못하는 시대인데... 감독이 오버한 장면일 수 도 있지만...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민주주의식 발상을 작품 속으로 풍덩...
또한 방어전 때 왕실 주교의 말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죽기는 무서우니 잠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가 기회 봐서 도망가서 다시 개종하면 된다는... 발리앙이 주교더러 말하죠. 당신 참으로 속 편하다고...
시대의 기회주의자 전형을 보여준 주교...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되는데 자신의 몸만 보전하는...
아마 이게 죽음 앞에 둔 사람의 본 모습일껍니다.
영화 이야기는 여기서 관두고요.
이제 이벨린 가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벨린은 지역 명칭인데 자파와 아스칼론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1141년 예루살렘 왕 풀크가 축성했습니다. 이집트 군대가 매년 아스칼론을 공격했는데 전초기지로 방어를 위해 네 개의 타워를 가진 성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주를 임명하는데 그의 이름은 바리상(Barisan)이라는 기사였습니다. 그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훗날 자손들이 번창하자 샤르트르 지역의 르 푸이세 자작 가문의 후손이라고 자칭했지만... 이 주장은 위조일 것으로 보이며 바리상이라는 이름을 통해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와 리구리아 지방의 아조파르디 가문과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역사가들은 추정합니다.
이벨린 가문의 문장입니다.
아무튼 바리상은 자파의 치안 담당이 되어 유능하고 충실한 기사로 알려졌고 결국 1122년 경 헬비스(Helvis of Ramla)라는 라말 남작령의 상속녀와 결혼하면서 주요 귀족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또한 풀크 왕에게 이벨린 성을 하사받으면서 초대 이벨린 남작(Lord of Ibelin)이 됩니다.
그는 총 3남 5녀를 얻었는데 장남 위그는 에뎃사 백작 조슬랭 쿠르터네이의 딸과 결혼했으며 양친 사후 어머니의 영지였던 라말 남작령을 받게됩니다. 그리고 차남 보두엥은 이벨린 남작령을 받았는데 형이 후사 없이 죽은 후 라말 남작령도 자신의 영지로 추가하게 됩니다. 보두엥에겐 1남 2녀가 있었는데 후계자 토마스가 요절하면서 남계가 단절되자 결국 모든 가문의 영지는 삼남 발리앙(Balian of Ibelin, 1140s–1193)에게 넘어갑니다.
그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발리앙이기는 한데...1187년 '하틴의 뿔' 전투가 일어났던 당시 실제 나이는 20~30대가 아니라... 40대 중, 후반의 나이를 넘어선 중년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름은 실존이나 얼굴은 올랜도 블룸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죠.
발리앙은 막내 아들로 태어났고 형들이 남자 후계자를 얻지 못하자 모든 가문의 작위를 상속받게 됩니다.
그가 활약할 당시 예루살렘 왕실은 무척이나 암울했죠. 연대기처럼 일이 잘 안풀려...
선왕 아말릭 1세(Amalric I of Jerusalem, 1136-1174)는 두 번 결혼을 했는데 첫 아내는 쿠르트네이 가문의 조슬랭 1세의 딸 아그네스(나중에 정략적으로 이혼)로 보두엥 4세와 실비아를 얻었고 비잔틴의 콤네누스 가문과의 동맹을 위해 이혼 후 마리아(Maria Komnene, 1154-1217)와 재혼을 합니다.
두 번째 왕비인 마리아는 사이프러스 공작 요하네스의 딸로 제국의 황관에 대한 클레임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2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딸 이사벨(Isabella I of Jerusalem, 1172-1205)만이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그녀는 나중에 기 드 뤼지냥과 실비아 드 앙주의 뒤를 이어서 예루살렘 여왕이 되는 여성이죠.
게임 스타팅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발리앙입니다. 역시 늙은 발리앙이죠..
1174년 갑작스러운 아말릭 1세의 죽음으로 보두엥 4세(Baldwin IV of Jerusalem, 1161-1185)가 13세 나이로 즉위하게 됩니다. 보두엥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이혼을 강요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기도 했는데 가장 문제는 나병에 걸리면서 부터입니다. 어린 나이인데 불구하고 죽음을 먼저 생각해야 했습니다.
즉위 직후 당숙이었던 트리폴리의 레이몽드가 왕국의 섭정이 되었고 1175년 살라딘과 협정을 체결하면서 일시적인 평화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문제는 자신의 나병으로 후계 문제가 꼬인다는 점이죠. 당시 누이들인 시빌라(Sibylla, Queen of Jerusalem, 1160-1190)와 이사벨라를 두고 상당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죠.
그때 1177년 계모 마리아가 이벨렌과 라발의 남작 발리앙과 결혼하게 됩니다. 즉 어린 이사벨라에겐 강력한 지원군이 생긴 것입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자신과 자신의 딸의 권리를 지켜줄 왕국 내 강력한 귀족과 결혼하여 그것을 보장받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리아는 알렉시우스의 후손입니다. 그녀의 족보 덕분에 아마 왕비족이 되는 건 아닐지...
어떻게든 황제의 혈통이니까요. 더구나 제국 역사상 이름난 명군의 후손이기도 하니...
발리앙과 마리아 사이에는 4명의 자녀가 출생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헬비스, 쟝, 마가레트, 필리프였고 장남인 쟝(1179–1236)이 아버지의 후계자가 됩니다.
문제는... 모든 사건은 외부로부터 나옵니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게임상 나오는 이벨린 가문의 계보입니다.
읽어가면서 참조하세요.
당시 발리앙은 시빌라의 두 번째 남편인 기 드 뤼지냥과 반목 중이었습니다. 그는 시빌라의 첫 번째 남편의 동생인 트리폴리 백작 콘라도(Corrado de Montferrat, 1140-1192)를 후원했습니다. 콘라도는 발리앙의 의붓딸인 이사벨라와 결혼해서 왕관에 대해서 기 드 뤼지냥과 동등한 권리를 확보하고 있었죠. 그래서 왕국 내엔 상당히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보두엥 4세는 조카 보두엥 5세(1177-1186, 시빌라와 그의 첫 남편 Guglielmo de Montferrat의 자식)를 공동 왕으로 임명하면서 후계자 문제를 확실히 챙겨둡니다.
내 의지로... 조카 보두엥이 진자 후계자다... 알간...?
당시 발리앙은 보두엥 4세의 시종장(Chamberlain)으로 보두엥 5세의 대관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집사장이었던 에뎃사 백작 조슬랭 3세는 발리앙의 형수(위그의 아내)와 오누이 간이었고 왕의 장군은 제라드(Gerard de Ridefort)로 Knights Templar의 그랜드 마스터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충성했기 때문에 이러한 궁정 내 포진은 보두엥 5세의 즉위를 기정사실화 하였고 잉글랜드 왕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기 드 뤼지냥의 힘을 축소시키고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두엥 5세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외부로부터 지원이 필요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이는 친조부였던 몽페라토 후작 굴리엘모 5세뿐이었고(그는 직접 대관식에 참석) 프랑스왕과 잉글랜드왕, 신성로마황제, 교황 등은 그저 관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답변은 정당한 후계자만이 예루살렘을 이어야 한다는 소리만... 즉 시빌라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죠. 아마도 이들의 속내는 기 드 뤼지냥을 후원했던 것 같습니다.
1186년 보두엥 5세는 9살로 죽었고 그의 어머니 시빌라가 여왕이 됩니다. 그리고 시빌라는 남편 기 드 뤼지냥을 공동 왕으로 만들었다가 왕관을 그냥 넘겨버립니다. 그리하여 기 드 뤼지냥이 예루살렘 왕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살라딘은 어린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1187년 7월 4일 자신의 군대를 하틴으로 움직입니다.
즉... 예루살렘을 공략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게 되죠. 평화는 끝났다... 이제 성지를 넘겨달라...
살라딘은 기 드 뤼지냥의 그릇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리석고 교만하고 욕심만 많은... 이런 성격의 그를 ‘하틴의 뿔’로 유인 한 것은 바로 한 여름의 날씨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함이었죠. 기병을 움직이려면 많은 물이 필요한데... 하틴의 여름은 마른 잔디로 뒤덮힌다고 합니다. 머리 나쁜 기 드 뤼지냥이 알 리가... 절대 없죠.
살라딘이 움직이자 기 드 뤼지냥은 보두엥 4세 및 5세의 섭정이었으며 왕국 내 가장 많은 군대를 가졌던 트리폴리 백작 레이몽드를 압박하여 당장 군대를 거느리고 나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중군이 되어 하틴으로 진격하죠. 살라딘의 함정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당시 발리앙은 후위에 배치되었는데 나중에 포로로 잡히지 않고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아무튼... 1187년 7월 3일과 4일, 여름날 단 이틀 만에 예루살렘의 군대는 전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기 드 뤼지냥 자신은 어이없게 포로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죽지도 못하는 깜냥... 싸우다 전사하는 군주는 정말 위대합니다.
하틴의 뿔에서의 전투는 이미 수적으로도 열세였던 예루살렘 군의 대패로 완결됩니다. 잔여 군대를 거느리고 철수한 발리앙은 성의 수비대장이 되어 방어를 시도하지만 이미 멸망의 순간은 눈앞에 다다랐죠. 결국 살라딘과 협상에 들어가 온존히 예루살렘을 넘겨주는 대신에 성안에서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무조건 보내주는 것으로 일단락 맺습니다. 실비아와 발리앙은 약속대로 아크레로 철수하였고 살라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발리앙은 모든 영지를 상실합니다. 아니 예루살렘 왕국 자체가 붕괴하게 되죠. 이 소식을 듣은 서유럽의 군주들은 경악을 하고 다시 십자군을 조직합니다.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된 기 드 뤼지냥은 잔여 영지를 수습하지만 남은 것은 거의 없죠. 이 패전 소식을 듣게 된 교황 우르반 3세는 쇼크를 먹고 곧 죽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죠.
그리하여 프랑스의 필립 2세,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중동으로 떠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발리앙은 패전 후 모든 영지를 상실했고 겨우 잔존하게 된 트리폴리 백국으로 처와 자식들을 데리고 도망을 갑니다. 1190년 시빌라가 딸만 남기고 죽자 다음 계승 문제가 발생합니다. 발리앙은 의붓딸 이자벨라를 추대하였고 그녀는 예루살렘의 여왕이 되죠. 발리앙은 이른바 king-maker로 부상합니다. 이자벨라가 콘라도가 암살되자 샹파뉴의 앙리 2세와 재혼하게 되었고 앙리는 발리앙을 중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왕국의 중신이 된 발리앙은 진격해 온 리처드 1세와 살라딘 사이의 협상을 중재하여 해안가 영토를 확보하게 되죠. 어떻게라도 왕국을 부활시켜야 했으니까요.
분투하던 발리앙은 1193년에 죽었고 그의 장남 쟝은 예루살렘의 섭정이 되니다. 그는 왕으로부터 새로운 영지를 하사받아 베이루트 남작(Lord of Beirut)이 됩니다. 이벨린은 더 이상 이들 가문의 영지가 아니었죠.
쟝 이후 그의 장남 발리앙의 자손들은 대대로 베이루트 남작이 되었고 쟝의 증손녀 이사벨라가 종가의 마지막 일원이 되어 사이프러스 왕 위그 2세의 왕비가 됩니다.
발리앙의 아들 쟝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차남이었던 쟝이 왕에게 아르수프 남작령(Lord of Arsuf)을 받아서 분가해 나갑니다.
발리앙의 막내아들인 필리프는 왕국의 기사로 활약하였고 그의 아들 쟝(1215-1266)은 아스칼론과 자파의 백작이 됩니다. 그의 아내는 아르메니아 왕가의 일족으로 아르메니아 왕의 누이이기도 했습니다. 이 가문도 14세기 까지 예루살렘과 사이프러스 왕국의 귀족으로 유지해 나갑니다.
발리앙의 자손들은 사이프러스 왕국이 성립하면서 이른바 왕비족으로 성장합니다.
가장 먼저 왕비가 된 가문원은 발리앙의 형 보두엥의 딸이었던 에쉬프(Eschive d'Ibelin, 1160–1196)로 기 드 뤼지냥의 형이었던 사이프러스 왕 알라릭 2세(Amalric II of Lusignan, 1145–1205)의 왕비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위그 1세(1194-1218)였고 그의 손자 위그 2세(1252-1267)의 왕비는 발리앙의 장남 가문인 베이루트 여남작 이사벨라(Isabella of Ibelin, 1252-1283)와 결혼합니다. 2번째 왕비가 된 가문원이네요.
예루살렘 왕 위그 1세(1235-1284, 안티오크의 보헤몽 4세의 손자, 모계로 왕위 획득)의 왕비 이사벨(Isabella of Ibelin)이 이 가문의 왕비가 됩니다. 자식을 11명이나 낳아서... 이후의 왕들은 모두 발리앙의 외손들이 되겠네요.
3번째 왕비가 된 케이스... 입니다.
네 번째 왕비는 알릭스(Alix of Ibelin, 1304-1386)로 사이프러스 왕 위그 4세(1293-1359)의 왕비가 되었고 후계자인 피에르 1세를 낳습니다. 그러니 그의 후손들이 대접받는 건 기정사실...
이 가문의 마지막은 사이프러스 왕국과 함께 합니다. 토지와 지위를 모두 상실하면서 역사서에는 더 이상 언급이 되지 않죠. 다만 사이프러스 왕실을 통해 각 유럽의 왕실로 혈통이 전달되었습니다. 사보이나 프랑스, 바이에른, 합스부르크, 로렌, 모나코 등 가톨릭 계열 왕가에는 거의 전달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이 가문의 역사는 300여년을 지속해 왔고 십자군 전쟁의 시작에서 끝까지... 갑니다.
그야말로 크루세이더 킹즈의 전형적인 가문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이 영화 때문에 이 가문의 소개가 이루어 진 것은 아닙니다. 게임의 스토리상... 퍽~
이제부터는 하틴의 전투에 대해 언급할까 합니다. 이미 많은 연구가 되어 있지만 이 가문을 소개하는 시점에서 꼭 소개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입니다.
바로... 이 게임 하다가 저를 중독시킨 배경음악 하나가 있습니다. 지금도 거의 매일 듣고 있지만...
가톨릭으로 플레이하면 거의 중독되죠. Horns of Hattin and Aftermath
제목을 직역하자면 “하틴의 뿔과 여파”... 도대체 뭔 소리여...???
음악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187년 6월에 살라딘은 3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다마스쿠스를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향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왕 기 드 뤼지냥은 2만의 군대를 집결시켰습니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살라딘의 티베리아 공격은 광활한 사막지대로 십자군을 유인해내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죠. 멍청한 기는 걸려들었습니다. 이곳 수비대의 요청으로 예루살렘 군대는 사포리아(Saphoria)의 진지를 떠나 동쪽으로 진격해 ‘하틴의 뿔’이라 불리는 언덕에 야영지를 차렸던 것이죠.
7월 4일 하틴 전투(the Battle of Ḥaṭṭīn)전투에선 물의 유무로 승패의 향방이 결정되었습니다. 해가 떠올랐을 때 예루살렘 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죠. 완벽하게 살라딘의 함정에 걸려든 예루살렘 군... 여름 사막의 혹독한 더위와 갈증에 온종일 시달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살라딘의 군대에게 속수무책으로 굴복해야 했으며 기 드 뤼지냥은 그대로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후 살라딘은 전진을 계속했고 티베리아, 아크레의 거대한 항구가 항복하게 됩니다. 갈릴리와 사마리아 지방 요새들도 차례로 살라딘에게 항복합니다. 그나마 자파 지역만이 저항다운 저항을 보여주었을 뿐이었죠. 살라딘군은 해안을 따라 진군했고 가톨릭 지배 하의 도시들은 잇따라 굴복합니다. 9월 4일에는 아스칼론이 항복했고 티레만이 공격을 모면했을 뿐이었죠. 남은 건 예루살렘 뿐이었습니다.
포위된 성지의 방어를 지휘하던 인물은 이벨린의 발리앙(Balian of Ibelin)이었습니다. 요새의 벽은 튼튼하고 도시를 수호하려는 가톨릭 주민들의 열기는 높았지만... 방어는 기껏해야 한 무리의 기사들과 전투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수백 명의 일반 시민들에게 의존하는 형편이었습니다. 9월 20일부터 포위 공격이 시작되었고 발리앙은 곧 투항하게 됩니다.
1187년 10월 2일 이슬람력 583년 라자브(Rajab, 이슬람력 7월) 27일, 살라딘은 도시로 입성했습니다. 그의 군대 기강은 철저했죠. 성안의 누구나 신변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떠한 학살이나 약탈 행위도 벌어지지 않았죠. 가톨릭 교도들은 티레로 피신하는 것도 허용되었고 발리앙과 그의 여왕은 세 줄로 줄을 지어 모여서 성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의 장면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하틴의 전투는 끝이 납니다.
이것을 제가 음악과 함께 동영상으로 제작해 보았습니다. 음악만 듣는다면 무슨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줄 알겠지만...
그런거 아닙니다. 미사곡은 더 장엄하고 신성하고... 저절로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실제로 제가 당해보고...
음악의 위대함을 찬양했죠. 특히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 될 때... 신성함에 기절하는 줄... 이래서 성당하면 음악이구나...
영화의 감동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동영상이 잘 돌아갈지 의문이네요. 용량이 22메가에 달하네요. 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기약 없는 다음을 기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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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벨린의 발리앙 ㅜㅜ 살라딘 때의 예루살렘 왕국 이야기가 참 재밌었는데요. 살라딘, 콘라드, 리처드 1세 ㄷㄷ 살라딘니뮤ㅠ
글, 동영상 전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라딘 인기가 좋군요... 흠~
오랜만에 발리앙으로 플레이해봐야겠군요. 덕분에 크킹이 더 재밌어집니다ㅎㅎㅎ항상 잘 읽고 갑니다!
해보다 보면... 속터집니다. 100% 기 드 뤼지냥이 날려먹습니다. ㅎㅎㅎ
정말 잘읽고있습니다 아주 흥미깊게 읽고있네요
감사합니다.
아 저도 이 노래 좋아해요.우연히 크킹 접했다가 정식으로 빠지게 한 노래지요 ㅠㅠ
저 노래만 넣고 게임합니다.
살라하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 이븐 사디 이븐 마르완 알 아이유비는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풀 네임 다 적으시네요...
@shyisna 중고등학교 다닐적에 정말 존경하던 인물이었거든요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만든다고 4시간 넘게 걸렸어요. ㅠ.ㅠ
발리앙! 영화에 빠져서 인물에 대해서도 검색을 몇차례 해본적이 있음 ㅎ
바리사누스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고 하더군요
예... 과거엔 라틴어로 글을 적었으니...
정말 잘 읽었습니다. 지금껏 정말 유익하게 잘 읽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야밤에 읽어내리니 재미나게 술술 읽히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쉽게 쓸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알아가는 것이 이 게임의 숨겨진 묘미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알고 플레이하면... 재미가 두 배입니다.
시빌라는 영화랑 다르게 그렇게 시발년이었다죠
예... 참으로 나쁜 여자였습니다. 아니... 멍청했죠.
그리고 신롬황제와 영국왕, 프랑스왕의 3차 십자군이 조직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안가면 위신 추락하니까요. 또 교황이 파문 날립니다. 나쁜 넘이라고...
@shyisna 근데 게임에선 그게 잘 구현이 안되있잖아요......
항상 기다리는 연재글입니다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킹덤 오브 헤븐에서 너무 미화를 시켜서 그렇지, 발리앙이나 레몽은 왕국의 진정한 충신이나 앞서가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나름 야망이 있고, 그걸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다행히도 운대가 잘맞아 적당한 노선을 타게 된
전형적인 중세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예루살렘 왕국이 망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몇대 후에 이블랭 가문에서 왕이 나온데도 어색하지 않을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의외로 만만치 않게 욕을 먹기는 해도...
1차 십자군의 주요 멤버들이 정치적으로 순수하기는 더 순수했을지도 모르겠더군요.
그냥 개인적인 사견입니다...
제 사견이지만... 어떤 면에선 영화가 등장 인물들을 미화시킨 건 사실입니다. 발리앙도 출세지향적인 인물이었죠. 예루살렘 왕국이 없었다면 그 가문 자체도 존재할 수 없었죠.
십자군 참가자들 자체가 모험적인 기질이 다분한... 말씀과 같이 초기 멤버 일부만이 순수했죠.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대단치 않은 인물도... 후세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달라집니다. 발리앙도 감독에 의해 재해석 되어 다시 오늘날 역사에 재거론된 것 뿐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알 정도로...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저 가문의 존재 조차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그 영향력이 미미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발굴이죠.
우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