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79)
양귀비 찻집
왈패 두목 된 찻집 주인 춘매
알고보니 양귀비 물로 차 팔아
옥산댁은 요즘 얼굴에 수심이 잔뜩 껴 웃음을 잃었다. 옥산국밥집 장사를 그만둔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오대째 수십년 가업으로 이어온 국밥집을 그만한다니 가장 낭패를 본 사람들은 다리 밑에 사는 거지 떼다. 옥산국밥집에서 당일 끓여 팔고 남은 국은 다리 밑 거지들이 가져간다.
옥산국밥집은 밤새도록 우려낸 사골국에 푸줏간에서 산 막 잡은 소의 양지머리와 선지를 넣고 해가 뜰 때까지 푸욱 끓이다가 대파·부추·고사리·토란대를 넣고 한 식경 기다린다. 그러면 손님들이 몰려들어와 하얀 김을 뿜으며 막걸리 한잔을 곁들여 국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어느 날 길 건너 맞은편에 새로 풍진국밥집이 문을 열었다. 개업하는 날 사또도 육방관속을 데리고 그 집에서 국밥을 먹고 갔다. 저녁에는 주먹으로 살아가는 저잣거리 왈패들이 신장개업 집에 모여 새벽닭이 울 때까지 고성방가에 술판을 이어갔다. 이튿날부터 왈패들은 옥산국밥집에 몰려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국이 상했다느니 머리카락이 나왔다느니 돌을 씹어 어금니가 흔들린다느니 온갖 트집을 잡아 옥산댁을 괴롭혔다. 어떤 때는 뜨거운 국그릇을 던져 장돌뱅이 손님들이 혼쭐이 나 도망가기도 했다. 관아에 발고를 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넉달을 버티던 옥산댁이 국밥집 문을 닫았다.
쭈글쭈글한 상판대기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입술을 핏빛으로 칠한 길 건너 국밥집 늙은 여주인이 사또의 육촌 누님이라는 둥, 젊은 날 기생으로 사또와 분탕질을 치던 사이라는 둥 떠도는 소문이 분분했다. 옥산국밥집이 문을 닫자 풍진국밥집에 손님이 몰려들었다. 옥산국밥집과 경쟁을 할 땐 그래도 먹을 만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국밥 질이 말이 아니게 떨어졌다.
“소가 첨벙첨벙 국솥을 지나갔네.”
그런데도 손님이 계속 찾아와 이상했다. 순댓국밥집도 있고 국숫집도, 백반집도 있는데 풍진국밥집을 드나들던 손님들은 하늘이 두쪽 나도 그 집만 찾았다. 삼십리 밖에서도 일부러 그 맹탕 국밥을 먹겠다고 찾아왔다.
여주인 춘매는 국밥집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찻집을 열었다. 인삼차·생강차·둥굴레차·모과차를 파는 찻집엔 미어터지게 손님이 몰려들었다.
마귀할멈같이 삐쩍 마른 춘매는 컴컴한 찻집 구석에서 긴 곰방대를 물고 줄담배를 피워댔다. 찻집 손님은 모두 국밥집 단골들이다. 저잣거리를 주름잡는 왈패들은 풍진찻집이 아예 그들의 본부가 됐다. 절대적 힘을 자랑하던 왈패 두목은 부하들의 반란으로 흠씬 두들겨 맞고 인대가 끊겨 불구가 돼 사라졌다. 그렇지만 새로 두목을 뽑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왈패 두목이 된 자는 놀랍게도 마귀할멈 춘매였다. 온갖 주문이 다 들어왔다. 어느 날 기생이 찾아와 돈 보따리를 내밀자 유 진사 본처가 얼굴에 참혹한 자상을 입고선 보따리를 싸 친정으로 떠났다. 첩으로 있던 기생은 안방을 차지하게 됐다. 심지어 마귀할멈 춘매는 거금을 조건으로 살인청부까지 받았다.
매월 스무닷새가 되면 왈패들은 저잣거리 가게마다 보호세를 거둬들였고 관아에 내는 세금보다도 컸다. 마귀할멈은 기운이 넘쳐 젊은 부하 왈패가 하룻밤씩 자신을 보필하도록 했다.
어느 장날 거지 아이가 엿판을 메고 장사를 하는데 왈패가 보호세를 요구했다. 못 주겠다고 딱 부러지게 거절했더니 엿판을 걷어찼다. 거지 떼가 모여들었다. 시장 바닥에 왈패들과 거지 떼의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다. 예상을 깨고 왈패들의 완패로 싱겁게 끝났다. 왈패들은 흐느적거리며 퍼질러졌다. 왈패들은 모두가 앵속 마약에 취해 있었다. 마귀할멈 춘매는 국밥집을 할 때도 양귀비인 앵속대를 삶은 물로 국밥을 끓였고 찻집을 할 때도 양귀비 우려낸 물로 차를 끓였다.
관찰사가 보낸 이방·형방·병방과 포졸들이 들이닥쳐 마귀할멈과 왈패들을 포승줄로 묶고 사또도 압송됐다. 저잣거리 장사꾼들과 거지들이 힘을 합쳐 옥산국밥집이 다시 문을 열던 날, 사물패가 꽹과리를 치고 긴 상모를 돌렸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
결국은 국밥과 찾잔에 물들....그게 마약이었구먼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