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81)
입춘
금이야 옥이야 아끼던 복실이
보신탕 장수에 팔려간 이후…
여섯살 홍구는 서당에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집으로 오다가 주막집 개들과 뒹구는 시간이 더 많다. 주막집 삽짝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마루 밑에 삽살개 어미가 새끼 일곱마리를 낳아 오글오글 어미 젖을 빠는 게 너무 귀여워 홍구는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 쪼그리고 앉아 그걸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집에 오면 언제나 어머니에게 등줄기를 얻어맞는다. 저고리고 바지고 개털투성이다.
하루는 저녁나절에 홍구 어미가 부지깽이를 들고 앞치마를 펄럭이며 주막에 들어와 마루 밑에서 어미 삽사리와 함께 잠이 든 홍구를 끄집어내 집으로 데려가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어느 날 밤에 홍구는 제사상에서 명태 한마리를 훔쳐 책 보따리에 쑤셔뒀다가 서당을 마치고 오는 길에 삽사리에게 먹였다. 명태를 반쯤 뜯어 먹었을 때 홍구 어미가 달려와 빼앗아 가기도 했다. 그날은 손바닥으로 등줄기를 맞는 게 아니라 부지깽이 타작을 맛봤다.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주막집 주모 할머니가 삽사리 새끼 한마리를 홍구에게 줬다. 홍구는 강아지를 금이야 옥이야 품에 안고 지냈다. 어떤 날은 책 보따리 속에 넣어서 서당에 데리고 갔다가 그 속에서 똥을 싸 서당이 발칵 뒤집히고 모두가 코를 움켜쥐기도 했다. 훈장님 회초리에 홍구 종아리엔 피가 났다.
홍구는 강아지를 복실이라고 이름 지었다. 복실이는 홍구가 하도 챙겨 먹여 쑥쑥 자랐다. 1년이 지나자 중개가 됐다. 서당을 다녀온 홍구가 기절할 뻔했다. 개장수가 마당에서 홍구 어미와 흥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홍구가 얼른 복실이의 목줄을 풀어버렸다. 복실이는 펄쩍펄쩍 뛰어 뒷산으로 내달렸다. 어머니와 개장수가 “어어” 하는 사이 줄행랑을 놔버렸다.
복실이가 가는 곳은 뻔했다. 뒷산 골짜기 동굴처럼 움푹 파진 곳으로 바닥엔 두껍게 낙엽이 깔려 있고 가마니가 펼쳐져 있다. 위에는 동네 공사판에서 훔쳐 온 각목이 서까래처럼 걸쳐져 있고 솔가지로 덮인 지붕이 있다. 홍구와 또래 친구들의 본부다. 그들이 오글오글 모이는 이곳에 복실이도 빠질 수 없는 일원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며 복실이는 최고 인기다. 서로가 따습다고 복실이 옆을 차지하려 했다.
어둠살이 내리자 홍구가 이야기를 꺼냈다.
“복실아, 내 말 잘 들어. 저녁밥은 내가 이따가 챙겨서 가지고 올 테니까 너는 여기서 가마니 덮고 자야 하는겨. 너는 집으로 오면 깨갱깨갱이야.”
손날로 목을 따는 시늉을 했다. 복실이는 말귀를 알아듣는 양 눈만 껌벅거렸다. 홍구는 집으로 달려와 부엌에서 밥을 훔쳐 돌부리에 차이며 허겁지겁 본부에 다다라 복실이에게 밥을 주고는 혼자 그곳에서 자라고 신신당부하고 내려왔다.
이튿날 아침밥을 챙겨 본부로 올라갔더니 복실이는 사라졌다. 바보 같은 놈이 지난밤에 풀풀 집으로 내려온 것이다. 기다리고 있던 개장수가 복실이를 얌전하게 끌고 갔다. 보신탕집으로 달려갔지만 복실이는 이미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었다. 홍구는 서당에도 가지 않고 울며불며 갈고리를 들고 보신탕집을 부수기 시작했다. 훈장님과 어머니가 와서야 홍구의 난동은 멈췄다.
“홍구야, 아버지 약값이 떨어져 내가 몹쓸 짓을 해뿌렸다. 미안하구나.”
홍구는 어머니 치마에 얼굴을 묻고, 어머니는 홍구 등을 토닥이며 서럽게 울었다.
아직도 설움에 북받쳐 어깨를 들썩이는 홍구를 데리고 훈장님은 서당으로 가 “홍구야, 개도 좋지만 먼저 네 아버지가 병석에서 일어나는 게 중한 일이지, 안 그래?”라고 얘기했다. 홍구는 눈물 콧물을 닦고 훈장님과 겸상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밤이 되면 때때로 홍구가 잠들고 나서 보신탕집 주인이 진국을 한그릇씩 들고 왔다. 홍구 아버지와 그는 친구 사이다. 홍구가 하루는 서당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서당 친구 오목이 “우리 아버지가 너 좀 보자 하더라”는 것이다. 그의 집에 따라갔더니 오목 아버지가 닭을 두마리나 줬다. 홍구 아버지 건강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어느 날 아침, 그날이 바로 입춘(立春)이다. 주모 할머니가 삽살개 새끼 한마리를 안고 와 홍구에게 선물했다. 다시는 팔지 않기로 홍구 어미한테 다짐받고!
홍구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거름지게를 손보기
시작했다.
첫댓글
감동적 입니다 어릴적 제 추억 입니다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어릴때 병아리.강아지 좋아하면 축산학과 나와서 시골에서 소키우는 사람됩니다 .저 처럼 .항상 재미있게 보고갑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추억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