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드 다운 Upside Down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 하루에 한 알은 꼭 먹으려고 한다.
저녁에 먹으면 사과의 당분이 체지방으로 축적될 수 있기 때문에 꼭 아침에 눈뜨자마자 찾아먹는다.
에덴동산부터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사과는 인류사의 중요한 순간에 자주 등장한다.
17세기 캠브리지 대학생이었던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 누워 있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사과는 왜 하늘쪽이 아닌 땅쪽으로 떨어지는 것일까?
만유인력은 중력에 대한 법칙이다. 중력은 질량 있는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뉴턴에 의하면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의 중력은 각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의 떨어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1687년에 발표된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3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여기서 M과 m은 각 물체의 질량이고 r은 두 물체 사이의 거리이며,
G는 뉴턴이 식을 발표할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은 상수로서 뉴턴상수로 불린다.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하는데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까지 동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신인 후안 디에고 솔라나스 감독의 데뷔작 [업사이드 다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도입부의 나레이션을 통해 [업사이드 다운]에서만 이루어지는 이중 중력의 법칙을 설명하고
이것은 영화적 상상력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만난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업사이드 다운]에서 이중 중력의 법칙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1. 모든 물질은 그것이 속한 세계의 중력에 영향을 받는다.
2. 물체의 무게는 역물질, 즉 반대 세계의 물체로 상쇄될 수 있다.
3. 역물질에 접촉한채 몇 시간이 지나면 맞닿은 물체가 타버린다.
최첨단의 문명이 발달하고 풍요로운 상부국과,
발전이 멈추고 폐허에 가깝게 변해버린 궁핍한 하부국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공존하는 이 놀라운 영화적 상상력은, 우리를 아찔하게 만든다.
상부국에 사는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갈 수 없고 하부국에 사는 사람은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두 세계는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거꾸로 바라보고 대화할 수 있게 상하로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이원론적 대립구조는 역으로 서로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힘을 만들어낸다.
[업사이드 다운]에서 중력은,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살고 있는 남녀가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가 되기 위한 힘을 배태하기 시작한다.
하부국에 살고 있는 어린 아담은,
< p>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들며 신비한 분홍꽃가루를 실어나르는 벌들을 따라 지혜의 산에 오르다가
상부국에 살고 있는 어린 에덴을 만난다.
아담의 할머니가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드는 벌을 설명할 때 화면에 벌의 움직임이 그려지는데
이것은 탱고를 출 때 모든 땅게로스들이 기본적으로 하는 오쵸(ocho) 동작,
즉 옆으로 누운 8자 모양과 똑같다.(오쵸는 스페인어로 숫자 8을 뜻한다)
두 아이들은 청소년이 될 때까지 우정을 키워가는데,
아담은 밧줄을 던져 에덴의 몸을 묶게 하고 중력의 힘을 거슬러 하부국으로 에덴을 끌어온다.
하지만 이중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이 세계에서 에덴의 몸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기 때문에
바위의 움푹 패인 곳에 등을 대고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의 몸이 거꾸로 중력을 향하는 곳에서 하는 그들의 키스는 그만큼 간절하고 애닯다.
하지만 국경감시대의 추격을 받고 도망치던 에덴은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이 끊어지면서 상부세계로 추락하고, 10년의 세월이 흐른다.
영화의 주요 내러티브는 10년후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담은 빠른 속도로 주름을 펴주는 안티에이징 크림을 계발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상부국에서 생붕계되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방송에 출연한 에덴이 트랜스월드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에덴이 죽은줄 알고 있던 아담은 자신의 안티에이징 기술을 이용하여 트랜스월드 인턴사원으로 입사한다.
트랜스월드는 일종의 무역회사로서 하부세계의 석유를 싸게 사들여 전기로 바꾼후 하부세계에 비싸게 파는 등
두 세계의 사로 다른 점을 이용하여 사업을 한다.
상부세계와 하부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이자 위아래의 접촉이 가능한 공간이다.
중력의 법칙을 이겨낼 수 있게 몸에 납덩이를 숨기고 상부세계로 잠입한 아담은
에덴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아담을 기억하지 못한다.
10년전 추락할 때 머리를 부딪쳐 그때까지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10년만에 재회한 아담과 에덴이 첫번째 데이트를 하는 공간으로 설정된 곳은,
트랜스월드 밖에 있는 도스문도스라는 탱고 카페다.
중앙에서 오케스트라가 탱고 음악을 연주하고 천정과 바닥에서는 상부국과 하부국 사람들이 각각 탱고를 추는,
두 세계가 거꾸로 마주보는 이 탱고 카페 도스문도스는,
잃어버린 기억을 생각하며 에덴이 칵테일을 마시는 단골 카페이기도 하다.
아담을 만나기전, 도스문도스를 혼자 찾아간 에덴이 탱고를 추는 장면이 있다.
에덴 역의 커스틴 던스트는 카페에 있던 남자와 홀딩한 후 께브라다같은 동작을 하다가,
오쵸 아뜨라스를 하면서 땅게로의 백사까다를 받는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까데나(cadena, 사슬) 동작은, 거꾸로 뒤집힌 두 세계의 아찔함을 숨막히게 보여준다.
Dos Mundos 두 개의 세계라는 카페 이름도 영화적 상상력을 압축해 보여주지만,
탱고 춤과 음악은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버린 두 남녀의 애절함을 드러내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Dos Mundos라는 곡을 비롯해서 탱고곡 El Ultimo Cafe가 새롭게 편곡되어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