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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상천(魚上川)의 지명(地名)
향목(香木) 유영자
시골은 어디에나 마찬가지겠지만 많은 것이 변해도 지명(地名)은 잘 변하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어상천도 그렇다. 남편의 고향인 '어상천'은 충북 단양군에 속한 면소재지인데 해발 칠백 여 미터의 삼태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산골마을이다.
정남향인 우리 집에서 바로 보이는 건너 동네가 '서당골'인데 옛날에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옛날의 서당 대신에 자그마한 단층 슬레이트집에 '고추박사' 가 살고 있다. 고추박사는 원래 부산 사람으로 사업에 실패하여 제천에서 처가살이를 하다가 이곳에 땅을 사서 들어왔다고 한다. 아직 쉰도 되지 않은 젊은 사람인데,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이웃 농촌으로 고추농사에 대한 강의를 하러 다닌다고 한다. 어느 날 내가 그 집 앞을 지나다가 얼굴이 마주쳐서 몇 마디 말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인즉, 나의 남편이 시골에 들어오면 자신이 책임지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요새는 농사도 옛날 주먹구구식으로 지어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니 어디 한 번 고추박사에 기대어볼까 생각중이다. 고추박사는 서당골에 환생(還生)한 훈장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올여름에 병이 몹시 든 형편없는 고추밭을 보았다. 이웃에 물어보았더니 그것이 다름 아닌 '고추박사'네 것이라 하지 않는가.
서당골 바로 옆에 '팔매숲공원'이 있다. 작은 산봉우리인 이 팔매숲공원의 본래 지명(地名)은 '역마총'(驛馬塚)이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말을 묻는 장소이다. 경북 영주에서 소백산 준령을 넘어 영춘을 지나 이곳에 도착하면 말이 지쳐서 죽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공원 꼭대기에는 어상천 주민이 다 모일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 얼마 전에 이 마당에 정자를 짓고 잔디를 심었다. 이런저런 운동기구도 많이 들여놓아 어상천 주민의 쉼터로 손색 없을 정도로 잘 가꾸어 놓았다. 해마다 새해 첫날은 이 팔매숲공원에서 온 주민이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떡국을 나누어 먹으며 해맞이를 했다. 지난 새해에 우리 내외도 참석했는데, 해맞이가 끝난 다음에 동리 사람들은 돼지머리를 놓은 상 앞에 줄을 지어 서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았더니 빙그레 웃고 있는 돼지주둥이에 퍼런 지폐를 물리고 절을 했다. 한 해 동안에 재수가 있게 해달라는 기원(祈願)이었다. 우리 내외도 빠질 수 없어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돼지주둥이에 꽂힌 돈은 거두어 동네기금으로 사용한다니 허튼 짓만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팔매숲공원에는 몇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고목이 여러 그루 서 있다. 그 고목 아래에는 옛날 어상천의 온 동네 사람들이 사용하던 공동 우물이 있는데, 일명 '팔매숲샘'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그저 들쥐나 고양이 등의 목이나 축여주고 있을 뿐, 어쩌다 지나는 길에 들여다보면 물 길러 온 동네 아낙들의 수다처럼 낙엽이 어수선하게 떠 있었다.
팔매숲공원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남쪽 골짜기에 쏘옥 들어앉은 마을이 ‘딱박골’이다. 그 마을 끝자락 언덕배기에 하얀 집을 짓고 두 내외가 들어와 사는데 남자는 머리를 길러 뒤로 묶고 아내는 손수 기른 텃밭에 무공해 푸성귀로 밥상을 차린다고 한다. 나는 아직 그 부부를 본적이 없다. 동리사람들과 내왕을 하지 않고 산다니 어떤 분들일까 궁금하다. ‘딱박골’ 입구 낡은 기와집에는 아직 마흔 중반의 젊은 내외가 유기농을 하며 소박하게 살고 있다. 이런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젊은이들을 보면 농촌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딱박골’ 바로 앞이 장터로 내가 시집 와서도 몇 해 동안은 5일장이 섰다. 장날이면 깊은 산골에서 캐온 약초며 할머니들이 손수 가꾸어 팔러 나온 팥이며 콩 등 갖은 농산물이 바구니에 담겨 있다. 장터 한 귀퉁이에는 장꾼들을 상대로 한 국밥솥이 걸리곤 했는데, 막걸리 잔에 얼굴이 불콰해진 남정네들의 언성 높이는 모습도 더러 보였다. 모두가 지나간 추억의 풍경들이다. 지금의 장터는 하루에 너댓 번 제천에서 오는 버스 정류소 역할을 하고 있다. 작고 허름한 국수집이 두엇 되고 중국집도 하나 있다. 이 중국집에서는 언젠가 지나던 신문기자가 먹어보고 반하여 신문에도 나온 수타면(手打麵)을 판다. 혹시 어상천에 들르는 기회가 있다면 한번 드셔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장터에서 서북쪽으로 '절골'이 있다. 아직도 이 ‘절골’에는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간신히 초가지붕만 슬레이트로 바뀐 옛날 흙집이 몇 채 남아 있다. 물론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런 집 마당가에는 으레 큰 감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붉은 감이 가지가 찢어지게 열린다. 이런 집에는 또 이제는 그 감을 따먹기도 힘든 노인들만 살고 있다. 어떤 남자 분은 이곳 토박이로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기도 하는데, 아내는 도시에 돈 벌러 갔다고 했다. 시골의 이런 신종 '기러기부부'는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도시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으로는 ‘딱박골’에서 고개를 넘어가는 언덕에 텁석부리가 살고 있다. 아내는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저 ‘양짓말’에도 한 사람 있는데, 그의 아내는 안동 어느 식당에서 돈을 벌고 있으며 본인은 시골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요즘 시골의 새로운 풍속도다.
‘절골’에서 보면 동쪽인 우리 집은 '어상천초등학교'와 담을 같이하고 있다. 초등학교 옆에 면사무소와 소방서가 있고, 그 옆에 '단산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이곳을 '함박거리'라고 한다. 그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지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늘 들려오는 곳이다. 우리 집 뒤쪽으로 양지바른 곳에 여나믄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양짓말'이다. 이 마을 샘터에서는 아직도 삼태산이 품었다가 쏟아내는 맑은 물이 콸콸 솟아나는데, 그 물은 '고수골'에서 흘러내리는 개울과 만나 우리 집 앞 논을 감싸고 동쪽으로 흐르다가 남한강과 합친다. 그 개울로 인해 이 동리가 ‘어상천(漁上川)’이라는 지명(地名)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고기가 올라오는 개울’이라는 뜻인가.
비 온 뒤에는 강(江)고기들이 샛강의 맑은 물을 따라 거슬러 오르는데, 지금도 강의 초입에는 꺽지나 쏘가리 새끼들이 철없이 거슬러 오르다가 천렵꾼들의 반두에 걸려 매운탕 냄비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어느 해 여름 천렵을 나갔다가 내 팔뚝만한 크고 미끈한 고기가 유유히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얼른 반두를 들이대었지만, 그 고기는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강(江)이 심심해서 오지(奧地)탐험을 나선 왕자가 아닌가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 늠름한 고기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잡았더라면 한 끼의 푸짐한 매운탕이 되었을 텐데 아쉬웠다.
남편이 어렸을 적에는 옆 개울에 쌀미꾸라지, 기름종개, 붕어, 장어, 중타리 등 많은 민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맛이 씁쓸해서 잡아도 먹지 못하는 '중타리'뿐이란다. 내가 시집와서 몇 해 동안은 이 개울에서 빨래를 했는데 걸레에서부터 크고 작은 빨랫감을 ‘다라이’에 가득 담아 와서는 넙적한 돌에 놓고 방망이로 팡팡 두들겨 빨았다. 농약이나 갖가지 가축의 분비물에 오염이 되지 않아 물이 맑고 많아서 좋았는데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돼버렸다.
'깊은골'은 ‘함박골’ 거리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어느 해 남편과 함께 나물을 캐러 들어갔다가 산짐승의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기겁을 하고 되돌아 나온 기억이 있다. '사고개'는 임현1리에서 연곡2리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인데, 그 마을도 그렇게 부른다. ‘사고개’ 앞에는 '우무실못'이 있다. 그 못에는 마을 노인들이 치어(稚魚)를 놓아기른다. 다 자란 고기를 일 년에 한번 마을 장정들이 힘을 모아 잡는데, 잡은 고기는 팔아서 그 돈은 어르신들을 위해 쓴다.
나는 아침산책을 '무드리'로 잘 가는데, ‘양짓말’을 지나면 '고수골'이다. 고수골에는 '일광굴(日光窟)‘이 있는데 이 굴은 거대한 석회암 동굴이다. 이 굴에서 몇 해 전 어느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주몽'이라는 텔레비전 연속극인데 주몽의 아버지가 갇혀 있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굴인데 위험해서 입구를 얼금얼금한 철망으로 막아놓았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증이 도지면 '못 참는 병'이 있다. 남편을 졸라 손전등을 들게 하고는 철망 아래 엉성한 개구멍으로 기어들어 굴을 살펴보았다. 굴 초입에서부터 장마에 쓸려 쌓인 듯 자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 일광굴 안에는 삼태산 정상에서 뚫린 천공(天空)이 있어 아침에 해가 뜰 무렵에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올려다보니 저 위에 동전만한, 흰 것이 떠 있었다. 아마도 그 천공인가 보았다. 나는 아침잠이 많고 게을러서 아직 그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언젠가 꼭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다. 그런데 이 굴(窟)은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자칫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는 낭떠러지가 있다니 말이다.
‘고수골’을 지나면 야트막한 산이 하나 나오는데, 그 너머를 '무드리'라고 한다. ‘무드리’는 동네가 외지고 길이 포장되지 않아 어상천의 오지(奧地)에 속한다. 무드리로 며칠을 가다보면 싫증이 나서 이번에는 단산중고등학교 앞 공원인 '조산데미'를 지나 학교 뒤편에 있는 산길로 '용바우골'까지 간다. 그 길도 싫증이 나면 '싱깃들' '덕거리' '너븐돌재'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나중에는 '이별모랭이'에까지 가서는 발길을 멈추고 지명(地名)을 생각하다가 그만 서글퍼져서 되돌아오고 만다.
그 외에도 어상천에는 예스러운 지명이 많다. ‘뒤재’, ‘농우재’, ‘방두재’,는 어상천의 주변 산등성이고 ‘어리산’, ‘큰골’, ‘항골’, ‘작은골’, ‘군사봉’, ‘투구봉’, ‘시루산’,은 크고 작은 골짜기와 산 이름이며 ’임빙골‘, ’배나무골‘, ’덕거리‘ 등은 마을 이름이다. 옛사람은 가고 없는데. 옛날의 지명만 남아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댓글 아유~~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시골가서 살고싶은데 도시를 너무 좋아하는 넘에편한테는 씨알도 안멕히네요 ㅎㅎ
아이들 다 크고 독립하고 나면 나혼자라도 작은 텃밭 일구고 소일하며 살고싶은 소망으로 꿈꾸고 있답니다^^
그러시군요. 어쩜 저랑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글을 읽어 내려가다보니 마치 제가 그 길을 걷는 것 처럼 이슬에 발도 젖어보기도 하고 더우면서 한기가들어 몸이 흔들 이기도합니다.그런데요 읽어 내려 가다가 아~ 어찌 이 많은 지명을 기억 하실 수 있을까 감탄하며 읽을때에 ~ 지명이 생각 안 나 서글퍼 되돌아 오셨다에서 찐한 정이 느껴 집니다.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오정은님께서도 행복하기시를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어상천,서당골,,,등등 마을 이름들이 정겹네요~
옛날에 많이들어본 동네이름도 생각나고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지명이 이리 많은 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 합니다
새해에도 건강 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두애님께서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요.
어상천 함박골엔 친척이 살고있는데..
마당한쪽에 샘물이 퐁퐁 나온답니다
어느댁이실까요?
저는 어상천 주민은 어상천 9반. 우체국 주위 분들과만 알고 지냅니다.
동네분들은 저를 알지만 저는 잘 모릅니다.
저의 시아버지께서 어상천에서 평생 교편을 잡으셨어요.
즐겁습니다
가보고 싶어집니다
미소도 함께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옛지명들이 정겹습니다
어릴때 할머니집,외갓집 동네에가고있는것같은 느낌들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잘읽었습니다
어상천면 심곡리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타지로 나왔어요
어상천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듯 고향마을이 눈에 선합니다
특히 겨울에 눈이 올때면 더더~ 생각이 많이나요
감사합니다
@유영자(부산) 다리 건너가 어상천 중고등학교 예요. 학교는 이태 전에 폐교 되었어요.
@유영자(부산) 감사합니다
어린시절에 아버지랑 엄니따라 걸어서 어상천장보러 많이 갔었네요
도로옆에 있는 어상천중고등학교도 생각이나네요
삼촌들이 다녔답니다 ^^
@함춘희(울산북구) 그러셨군요.제가 시집와서도 한 동안 장이 섰는데. 이젠 안서지요.
하마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늘 건강하기길요. ^^
@유영자(부산)
감사합니다
좋은글읽고 마음이 풍족합니다.
일 년에 서너번 영춘면에 갑니다.
정말 가고 싶은 곳 단양,
좋으 곳에 사시며, 맛있게 글 쓰시는 영자님이 정말 부럽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봄부터 가을까지만 시골서 지냅니다.
겨울은 부산에서 납니다.행복하세요.
ㅎㅎㅎ어상천이야기가 넘나 재밌습니다...옛지명도 정스런이름들이고...참 재밋게 사시네요..
저는 형제들같이 모여사느라 (남동생, 여동생, 언니)동네주택도 없고)꽃키우고 채소가꾸고 참 재밌어요..
아~ 겨울엔 부산계시네요..
........감사합니다.너무늦게 댓글을 보는 군요. 고맙습니다..현재는 부산에 머물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길요. 향목 유영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