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조명____김나영
김나영 / 1998년 《예술세계》로 등단했으며 시집 『왼손의 쓸모』, 『수작』이 있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한양대에 출강하고 있음.
∥시인이 뽑은 대표시____
욱 외 9편
오랫동안 나를 떠나지 않는 이름 하나 있지
죄와 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무렵이었던가
푸른 눈의 혁명가 이마에 키스를 할 무렵이었던가
그 도서관에서 우리는 눈을 맞췄지
때마침 화단의 맨드라미는 미친 듯 타올랐고
청춘을 장전裝塡한 우리는 두려울 게 없었지
사랑과 혁명을 도모하기에 우리는 충분히 위험했지
그때 ‘종욱’이었던가 ‘진욱’이었던가 ‘동욱’이었던가
혈기왕성하던 다혈질의 나와 함께
청춘백서를 필사하던 ‘욱’
체크남방 안에서 키우던 근육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쯤 착한 여자 만나 조용히 잘 살고 있을까
그를 이제 내 품에서 해방시켜줘야 할텐데
뾰족하던 그의 정신에도 둥글둥글 살이 붙어
적금통장 부풀리는 일에 전력질주하고 있을지 모를 일인데
사회적 동물이란 말을 그리 실천하고 있을지 모를 일인데
TV를 켜거나 신문을 뒤적거리다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흑백에서 칼라로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이라고
그가 내게서 와락! 돋아난다
푸른 주먹을 불끈! 쥔다
겉이 아니라 속을 바꿔야 한다고
내 안에서 수없이 종주먹을 꺼낸다
세상을 향해 ‘욱’ 어퍼컷을 날린다
코르셋
내 이목구비는 아버지를
빼닮았다 오래된 비유에 적합하도록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 얼굴에 확장된다
아버지와 내가 젖은 다시마처럼 겹친다
아버지의 피륙이 나의 피륙과 신표信標처럼
똑! 맞아떨어지려고 궁리한다
노심초사 아버지는 나를 감염시키려고 한다
비유는 나를 동반하고 이미지에 가까워졌다
아버지가 나를 입고 늘어지게 순환한다
끈적끈적 점철되는 나
아버지는 나를 연기하고 연기하려고 태어났을까
숨이 막혀요 아버지 이제 그만 나를 떠나세요
이제 그만 나를 호명 하세요
아버지가 나를 부를 때마다 내 이름이 비좁아요
짙은 화장을 해도 감춰지지 않는 아버지 얼굴
아버지의 일부가 헐어서 된 내게
복수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
태어날 때부터 헌것이던 나
죽어도 나는 새것이 되긴 틀린 틀
죽어도 단수가 되기 힘든 나
문득 문득 내가 없다,는 사실만 빈 빵틀처럼 사실적이다
호명 밖을 겉도는 나의 실체
내게 밀착하고 좀처럼 변형되지 않는
아버지의 오래된 눈웃음
들실과 날실처럼 뒤엉켜서 나도 주름처럼 웃는다
문학
지인의 공동 텃밭으로 푸성귀 수확하러 갔다
상추며 고추며 깻잎이 시퍼런 기세로 땅을 잠식하고 있었다
개중에 텃밭이라는 만만한 이름을 갈아엎고
따글따글한 땅콩부대를 매복해놓은 밭
참깻단을 아파치 요새처럼 세워둔 밭
치렁치렁한 고구마 줄기 아래 기름진 둔덕도 보였다
여기도 전쟁터다 어디로 눈 돌려도 먹고 사는 문제가 문제다
이 질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땅벌레가 되어
두 발을 푹푹 심으며 푸성귀를 땄다
초록빛도 지겨워질 무렵 인근 텃밭 저편
도서관 구석진 자리로 내몰린 시집 코너처럼
붉은 백일홍이! 먹거리 일색인 텃밭에 꽃을?
일부러 백일홍 씨앗을 채소와 함께 나란히 파종했을,
그것은 텃밭 주인의 공복이 쏘아 올린 꽃
그 어떤 기름진 소출所出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남으니까 먹어도
먹어도 공복의 중심은 비어 있으니까, 도넛 구멍처럼
손과 입술에 설탕가루를 잔뜩 묻히고
지루한 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의 지경에서
먼 부름에 답 하듯 경작했을,
우리들의 초상을 가만히 짐작해 본다
모래시계
1.
2016년 5월 8일 오전 2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3층짜리 주택 옥상에서 그 집에 세 들어 살던 미국 국적 남성 A씨(31)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 여성 L씨(26)가 추락해 숨졌다. 두 사람은 옥상 난간에서 키스를 하다가 L씨가 밑으로 떨어졌고, A씨가 L씨를 잡으려다 함께 추락했다. 두 사람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 <Yes! Top News>, 《YTN》
2.
애도는 못하겠어, 박수를 칠 뻔했어, 아무리 살아도 나는 저 커플의 키스 체위 근처에도 못 미칠 거야, 앞뒤 가리지 않았어, 진정 미친 거지, 온몸을 걸고 키스해 봤나 저들처럼, 엉겁결의 추락사든 육욕이든 사랑이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난간 입술, 그 달콤한 난간에서의 최후, 최선이란 저런 것이지, 그 순간 만큼은 코리아드림도 이태원의 불나방 같은 생활도 저 멀리 던져 버렸을, 별도 달도 뜨지 않는 옥상 난간쯤이야 문제도 아니었을, 오직 키스의 각도로 환하게 빛났을 그 난간은 얼마나 아찔한 높이였을까, 지상으로 추락할 때 함께 공유했던 그들만의 제국은 얼마나 붉게 빛나다가 으깨졌을까
3.
앞 베란다든 뒷 베란다든 넘쳐나는 게 난간인데, 우리 집 난간에 화분이 허리 터지게 자리다툼을… 난감하네, 매일 밤 남실남실대는 달빛이 우리 집에 와서 다 죽네, 나도 한때 눈꺼풀에 콩깍지 쓰고 난간 위를 걷던 고양이였지, 좀 더 짧아도 좋았을 치마는, 좀 더 붉어도 좋았을 립스틱은, 선 하나 넘지 못해 미수에 그치고 말았던가, 내 영혼의 비계를 밟고 숨 가쁘게 밀착해 오는 느-으윽대 같은 숨결 하나 없어, 나 낭패狼狽의 허리를 더듬네, 남아도는 난간에 허리 한 번 늘씬 걸치지 못하고, 사철 푸르딩딩한 불구처럼
4월 32일
내일 도착할 선물을 오늘 기다린다 아침이 오는 방향으로 누워 있으면 귓속으로 초록물이 차오른다
기다리는 자세에 따라 선물은 부풀거나 왜곡되거나 축소되거나 못 쓰게 되거나 루머가 되기도 한다
어떤 선장은 먼 항해를 시작할 때 우울한 기운이 도는 선원은 배에 태우지 않는다
나의 연혁은 나쁜 예감과 자주 입을 맞춘다 내 안에 다리를 저는 행려병자 같은 신이 내 기도를 받아먹고 살고 있다
5월은 서른한 개의 초록빛 상자를 풀어 헤치기 시작 한다
가도 가도 4월
- 시인의 최근 신작시
아담의 굴레 외 4편
여자의 치마 길이보다 더 아찔한 승객들의 시선이
어린 연인들을 꿀꺽꿀꺽 훔쳐 본다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꼭 부둥켜안고 있는 그들은
누가 봐도 서툰 연애질을 막 시작한 가스통 같은 청춘들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한 쌍의 바퀴벌레 같아보여도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들킬 수 있는 용기
저렇게 들켜야, 저렇게 감출 수 없어야 진짜 연애다
누가 뭐래도 저 순간만큼은 세상의 중심인
저들의 자력에 내 눈길이 쩍쩍 달라붙는다
부러움과 민망함 사이에서 지직거리다가 나는
그들 뒤에 실핀 같은 눈길을 꽂고 뒤따르는데
계단을 나비처럼 팔랑 팔랑 올라가는 여자 뒤에서
재빨리 자켓을 벗어 가파른 치마를 감싸는 남자,
저렇게 시작된다, 코밑이 까뭇까뭇한 남자의 일생은
여자의 치마 둘레, 그 아득한 원주율을 평생 돌고 돈다
무화과
고환처럼 생긴 과일,
사타구니로 먹어야 하나?
외설적인 생각을 팬티처럼 벗기고, 벌리고, 쪼갠다
수백 마리의 정자가 고물거리는 듯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있는 수정란인 듯
아니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자웅동체인가
꽃 피는 시절을 건너뛰고 과일에 도착할 수 있다니
진화인지 변종인지 분분해도 무화과는 주렁주렁 익어간다
내 눈은 꽃에서부터 멀어진 뿌리를 겨냥하고
혀끝은 과육의 맛을 탐하는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지 안에서 여자가 돋아난다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치마 안에서 남자가 돋아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뒤엉켜버린 몸이
틀려버린 몸이라고 비난하는 천개의 입술들이
두 갈래 길 앞에서 망설였던 로버트 프로스트와
남자를 벗고 여자를 갈아입었던 하리수를 생각하며
무화과를 먹는다 밖으로 한 번도 발설하지 못했던 꽃을
입안에서 붉게 으깨지는 무화과를 먹는다
나뭇잎 소인
단풍 숲을 산책하다가 빠져나올 무렵이었습니다
작고 빨간 나뭇잎 하나가 나를 뒷굽처럼 들어올렸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떠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간이 닭의 간처럼 쬐그맣고 팔딱팔딱 뛰던
세계지도 한 장이 전 재산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배달의 기수처럼 나는 자꾸 자꾸 걸어나갔습니다
길과 길을 양쪽 옆구리 끼고 걷는 동안
세계에는 몇 번의 전쟁과 테러와 지진과 물난리가 있었고
나는 몇 켤레의 신발을 갈아탔고, 간은 가끔 두근거렸습니다
세계지형이 약간 틀어졌다는 소식이 가끔 들렸습니다만
그네를 밀듯이 길은 내 등을 떠밀었습니다
낡은 세계지도 한 장이 전 재산인 사람에게
아무리 낭비해도 남아도는 게 길입니다만
어디로 배달되는 우편물이기에 나는
발이 퉁퉁 부어도 도착할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뒷굽에 나비 한 마리 따르지 않는 길을 공무원처럼 갑니다
단풍을 뒤집어 쓴 계절이 귀신처럼 다시 번집니다
밥줄 1)
1) 지렁이가 지나간다. 땅이 숨을 쉰다. 지렁이가 똥을 눈다. 밀과 보리가 자란다. 들판이 자란다. 동물이 자란다. 수억 마리 지렁이 떼가 남긴 똥이 지구 표면에 푸른 때를 입힌다. 지렁이 덕분에 지구가 ‘푸른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다. 믿거나 말거나.
루왁커피Luwak Kopi는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는 코피와 긴꼬리 사향고양이를 의미하는 루왁이 결합한 이름이다. 인도의 녹슨 철창 안에 사향고양이를 떼로 가둬놓고 오른손으로는 커피콩을 먹인다. 토할 때까지 멕이고 또 멕인다. 왼손으로는 샤향고양이 똥구멍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똥을 빼내고 또 빼낸다. 요즈음엔 사향고향이 대신 원숭이를 쓰기도 한다. 이 황금빛 똥에서 걸러 낸 커피는 한 잔에 4~5만원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비싼 커피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중국 사천성의 중경에 사는 박쥐는 모기를 잡아먹고 산다. 딱딱한 키틴질로 된 모기 눈알은 박쥐의 위에서 소화되지 않고 배설된다. 박쥐 똥을 명주보자기에 담아서 물에서 씻어내고 또 씻어내면 보자기 안쪽에 깨알보다 작은 모기눈알이 달라붙는다. 이 눈알 한 숟가락 정도를 얻으려면 대두 한 말 정도의 박쥐 똥이 필요하다. 이 모기 눈알로 만든 모기눈알요리는 최상의 진미다, 부르는 게 값이다. 지금도 중국 사천성 캄캄한 동굴 안에는 허리가 휘어지게 밤새도록 박쥐똥을 주무르고주므르고주므르며 똥통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다.
페루 연안 섬 전체가 수백만 마리의 바닷새 배설물의 퇴적층인 구아노Guano로 뒤덮여 있다. 유럽 전체 인구 중에 구아노 똥으로 키운 열매를 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 1852년 페루가 구아노의 가격을 올리자 미국은 로보스섬을 침공했고, 1865년 스페인은 친차섬을 점령했다. 당시 페루 당국은 똥을 담보로 대규모의 설탕플랜테이션에 투자했다가 채무불이행을 맞게 되고 마침내 태평양전쟁까지 발발하게 된다. 이른바 똥독 오른 세계 열강이 치른 구린내 나는 똥의 전쟁이란 말씀.
로마로 가는 길
천천히, 제발 좀 처언처어어니 가자고, 이 청맹과니야, 그렇구나 너는 속도의 한 가지 사용법밖에는 배우질 못했구나, 여태 속도에 다쳐봤으면서, 속도에 미쳐봤으면서, 일찍 도착하면 일찍 실망할 뿐, 빨리 피는 꽃이 빨리 진다는 말도 이제 그만 할게, 수직의 길이든 평평한 길이든 우회전도 하고 좌회전도 하고 슬슬 좀 가자고, 길가에 쑥부쟁이 허리가 흐드러져 있으면 향기도 휘청 끌어 당겨보고, 길 가다가 바람미술관이 있으면 내려서 바람의 설계도를 관람하다가, 또 길 가다가 배고프면 그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에서 탁자 위에 눌러붙어 있는 시간의 각질과 고양이 낮잠 같은 느린 공기에 스며들어 보다가, 한 집 건너 한 집으로 도열해 있는 카페에 가서 한 잔의 커피가 있는 풍경에 우리가 천천히 겹칠 때까지 있다가 가면 안 되겠니, 로마에 누가 있어서 가는 건 아니잖아, 파리로 우회해서 가는 건 어떨까
체험적시론
시선의 권리,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까
‘3포 세대’, ‘5포 세대’란 신조어로 우리나라 청년층을 정의하고 있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게 만드는 시대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던 그 많은 청춘들은 어디로 가고 없을까. 철없는 연애도 한때다. 철들고 나면 연애의 감정은 사라지고 관성과 굴레에 매이게 되는 것을. 그래서 더 귀하게 훔쳐보았던 지하철의 어느 연인들.
올해 처음으로 생무화과를 먹어 보았다. 상큼 달콤한 과육 사이 톡톡 터지는 식감이 묘했다. 그러나 정작 눈길이 머문 것은 맛 보다는 무화과의 묘한 생김새였다.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시선의 권리는 그렇게 찾는 것이니까. 사람이든 식물이든 태생부터 다수의 종種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출발이 다르다. 그 차이와 윤리적 감수성을 짚어보고 싶었다.
가을 숲에 들면 종종 나뭇잎이 뒷굽에 박혀 따라올 때가 있다. 그 나뭇잎이 소인消印이라 상상하면 사람은 배달하는 중이라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실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디론가 배송 중인 하나의 우편물이 아닐까. 인생은 나그네라는 비유는 낡았지만 얼마나 절적한가.
사람의 입에서 항문까지의 길은 한 줄의 말랑말랑한 파이프다. 이 질기고 긴 관은 밥줄이다 싶으면 똥줄이고, 똥줄이다 싶으면 밥줄이다. 시에서 어떤 정보는 옷을 잘못 입히면 설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민 끝에 주석을 본문으로 배치했다.
사는 게 목적과 쓸모의 투성이다. 환금성 가치에 어긋나면 돌아보지도 않는 것이 이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의 처세법이다. 만약에 구름과 바람과 들꽃과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과 한 잔의 커피가 없다면 속도와 쓸모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까.
∥김나영 시인을 주목한다____
유쾌한 시의 뿌리
- 김나영의 신작시를 중심으로
이태희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 월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에서
김나영의 시는 유쾌하다. 그의 시는 감추지 않는다. 소위 내숭을 떨지 않는다. 어떤 시는 너무 솔직해서 약간 민망할 때도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내 마음마저 호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시인은 1998년 《예술세계》로 등단하여 2006년 첫 시집 『왼손의 쓸모』, 2010년에 두 번째 시집 『수작』을 간행한 바 있다. 두 시집에서도 금번 신작시에서도 그 유쾌함과 호탕함은 변함이 없었다. 이 글은 이번 신작시를 통해 그 유쾌함의 뿌리를 살피는 데 목적을 둔다.
여자의 치마 길이보다 더 아찔한 승객들의 시선이
어린 연인들을 꿀꺽꿀꺽 훔쳐 본다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꼭 부둥켜안고 있는 그들은
누가 봐도 서툰 연애질을 막 시작한 가스통 같은 청춘들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한 쌍의 바퀴벌레 같아보여도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들킬 수 있는 용기
저렇게 들켜야, 저렇게 감출 수 없어야 진짜 연애다
누가 뭐래도 저 순간만큼은 세상의 중심인
저들의 자력에 내 눈길이 쩍쩍 달라붙는다
부러움과 민망함 사이에서 지직거리다가 나는
그들 뒤에 실핀 같은 눈길을 꽂고 뒤따르는데
계단을 나비처럼 팔랑 팔랑 올라가는 여자 뒤에서
재빨리 자켓을 벗어 가파른 치마를 감싸는 남자,
저렇게 시작된다, 코밑이 까뭇까뭇한 남자의 일생은
여자의 치마 둘레, 그 아득한 원주율을 평생 돌고 돈다
-「아담의 굴레」 전문
「아담의 굴레」는 시인이 지하철에서 만난 젊은 청춘 남녀의 얘기다. 시인은 지하철이라는 공공장소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부둥켜안고 있는 그들”이 누군가에게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인은 “사람들에게 들킬 수 있는 용기”를 높이 산다. 나아가 “저렇게 들켜야, 저렇게 감출 수 없어야 진짜 연애”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한편으로 그 젊은 연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제목이 가리키는 ‘아담의 굴레’는 뭐지 하다가 돌연 아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어지는 장면은 그 청춘 남녀가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다. 여자는 말 그대로 “팔랑 팔랑”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가고, 남자는 타인의 “아찔한” 시선을 차단하며 올라간다. 앞의 공공장소에서 거리낌없이 포옹하는 컷과 이 계단 컷은 이 시대 청춘 연애의 극명한 풍속도다. 이 지점에서 시인의 통찰이 빛난다. 여자의 아찔한 치마 둘레를 평생 돌고 도는 것이 남자의, 아담의 굴레라는 것! 덧붙여 사족으로 말하면, 솔직하고 용기 있는 청춘들도 그 아득한 남녀의 원주율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여기서 확인하는 시의 유쾌함은 단칼에 베는 호탕함, 그리고 그것들을 감싸는 따뜻함이다.
고환처럼 생긴 과일,
사타구니로 먹어야 하나?
외설적인 생각을 팬티처럼 벗기고, 벌리고, 쪼갠다
수백 마리의 정자가 고물거리는 듯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있는 수정란인 듯
아니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자웅동체인가
꽃 피는 시절을 건너뛰고 과일에 도착할 수 있다니
진화인지 변종인지 분분해도 무화과는 주렁주렁 익어간다
내 눈은 꽃에서부터 멀어진 뿌리를 겨냥하고
혀끝은 과육의 맛을 탐하는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지 안에서 여자가 돋아난다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치마 안에서 남자가 돋아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뒤엉켜버린 몸이
틀려버린 몸이라고 비난하는 천개의 입술들이
두 갈래 길 앞에서 망설였던 로버트 프로스트와
남자를 벗고 여자를 갈아입었던 하리수를 생각하며
무화과를 먹는다 밖으로 한 번도 발설하지 못했던 꽃을
입안에서 붉게 으깨지는 무화과를 먹는다
-「무화과」 전문
무화과를 먹으며 펼치는 시인의 상상력이 다채롭다. 우선 생김새에 대한 묘사가 매우 도발적이다. 민망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눙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시도 유쾌하다. 그러나 단순한 외양묘사에 머물지 않고 엉뚱한 상상으로 도약한다. “바지 안에서 여자가 돋아”나고 “치마 안에서 남자가 돋아”난다는 상상이 그것이다. 무화과를 먹으며 이런 “뒤엉킨 몸”을 떠올린 이유는 무화과의 모습에서 기인한다. 무화과 속을 보며 “수백 마리의 정자”와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있는 수정란”을 동시에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런 자웅동체로서의 연상이 가져온 결과다. 그런데 이어지는 “두 갈래 길 앞에서 망설였던 로버트 프로스트와/ 남자를 벗고 여자를 갈아입었던 하리수를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시는 다만 “꽃 피는 시절을 건너 뛴”, 그래서 “한번도 발설하지 못한 꽃”이기도 한 무화과를 먹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 미진한 독후감의 실마리를 친절한 시인 자신의 시작메모에서 밝혀주고 있다. 시인은 “사람이든 식물이든 태생부터 다수의 종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그 출발이 다르다. 그 차이와 윤리적 감수성을 짚어보고 싶었다.”고 적었다. 미숙한 독자를 일깨워주는 일침이다. 옳거니, 다수와 다른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하는, 다른 것인데 틀렸다고 말하는 세태를 짚어본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틀려버린 몸이라고 비난하는 천개의 입술”은 세상 사람들을 뜻하고, “하리수를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틀렸다고 비난했던 그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으로 읽힌다. 결국 꽃 없는 무화과, 그 색다른 과일을 먹으며 솔직하고 유쾌한, 그러면서 잘못된 세태에 일침을 가하는 작품인 것이다.
지렁이가 지나간다. 땅이 숨을 쉰다. 지렁이가 똥을 눈다. 밀과 보리가 자란다. 들판이 자란다. 동물이 자란다. 수억 마리 지렁이 떼가 남긴 똥이 지구 표면에 푸른 때를 입힌다. 지렁이 덕분에 지구가 ‘푸른 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다. 믿거나 말거나.
루왁커피Luwak Kopi는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는 코피와 긴꼬리 사향고양이를 의미하는 루왁이 결합한 이름이다. 인도의 녹슨 철창 안에 사향고양이를 떼로 가둬놓고 오른손으로는 커피콩을 먹인다. 토할 때까지 멕이고 또 멕인다. 왼손으로는 샤향고양이 똥구멍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똥을 빼내고 또 빼낸다. 요즈음엔 사향고향이 대신 원숭이를 쓰기도 한다. 이 황금빛 똥에서 걸러 낸 커피는 한 잔에 4~5만원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비싼 커피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중국 사천성의 중경에 사는 박쥐는 모기를 잡아먹고 산다. 딱딱한 키틴질로 된 모기 눈알은 박쥐의 위에서 소화되지 않고 배설된다. 박쥐 똥을 명주보자기에 담아서 물에서 씻어내고 또 씻어내면 보자기 안쪽에 깨알보다 작은 모기눈알이 달라붙는다. 이 눈알 한 숟가락 정도를 얻으려면 대두 한 말 정도의 박쥐 똥이 필요하다. 이 모기 눈알로 만든 모기눈알요리는 최상의 진미다, 부르는 게 값이다. 지금도 중국 사천성 캄캄한 동굴 안에는 허리가 휘어지게 밤새도록 박쥐똥을 주무르고주므르고주므르며 똥통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다.
페루 연안 섬 전체가 수백만 마리의 바닷새 배설물의 퇴적층인 구아노Guano로 뒤덮여 있다. 유럽 전체 인구 중에 구아노 똥으로 키운 열매를 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 1852년 페루가 구아노의 가격을 올리자 미국은 로보스섬을 침공했고, 1865년 스페인은 친차섬을 점령했다. 당시 페루 당국은 똥을 담보로 대규모의 설탕플랜테이션에 투자했다가 채무불이행을 맞게 되고 마침내 태평양전쟁까지 발발하게 된다. 이른바 똥독 오른 세계 열강이 치른 구린내 나는 똥의 전쟁이란 말씀.
-「밥줄」 전문
「밥줄」은 본문이 없는 독특한 시다. 시 본문이 모두 각주로 내려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 편집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해설 원고를 부탁한 편집위원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확인해 보니 시 내용 전체를 각주로 처리한 것은 매우 의도적인 것이었다. 시작메모에서 시인은 “시에서 어떤 정보는 옷을 잘못 입히면 설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민 끝에 주석을 본문으로 배치했다.”고 밝혔다. 본문을 각주로 내림으로써 결국 각주가 본문이 되는 이 독특한 형식은 시에서 다루는 주제와도 맞아 떨어진다. 이 시는 밥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똥에 관한 것이고, 똥에 관한 것이면서 밥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입에서 항문까지 이어진 긴 관은 밥줄이면서 똥줄이다.
시인은 「밥줄」에서 네 가지 똥을 언급한다. 첫 번째, 지렁이 똥은 지구의 온갖 동식물들의 성장에 바탕이 되며, 지구가 ‘푸른 별’일 수 있도록 한다는 이야기다. 생태계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지구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번째, 커피콩을 먹인 사향고양이의 똥에서 걸러낸 ‘르왁커피’ 얘기다. 오른손으로는 커피콩을 “토할 때까지 멕이고” 왼손으로는 “똥구멍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똥을 빼내는 잔인함을 고발한다. “비싼 커피” 앞의 “잔인한”이라는 표기가 눈에 띈다. 비싼 커피에 잔인함이 숨겨져 있다는 기호다. 마치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처럼. 세 번째, 모기를 잡아먹은 박쥐의 똥에서 걸러낸 모기 눈알 요리가 최상의 진미라는 얘기다. 이 시에서는 무엇보다 “캄캄한 동굴 안에서 허리가 휘어지게 밤새도록 박쥐똥을 주무르고주므르고주므르며 똥통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위에서는 잔인하고 비싼 커피에 희생되는 사향고양이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최상의 진미를 위해 “허리가 휘어지는” 노동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주무르고주므르고주므르며”에서 ‘주무르다’를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박쥐똥을 주무르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효과를 지닌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주무르다’가 ‘주므르다’로 바뀌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므르다’는 ‘주무르다’의 옛말인데, 굳이 모음변화를 준 이유는 무엇일까? 위에서 “잔인한”이 감추어진 ‘잔인함’을 드러내는 표기였다면, ‘무’를 ‘므’로 바꾸어 표기한 것은 ‘허리가 휘어지’는 노동의 강도를 시각적으로 표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너무 주무르느라 모음의 허리도 닳았다? 진짜? 믿거나 말거나. 네 번째, 바닷새의 배설물이 굳어진 ‘구아노’이야기다. 비료로 쓰이는 이 구아노 똥이 키운 열매를 먹지 않은 유럽 사람이 없고, 이 똥 때문에 태평양전쟁까지 발발했다는 해석이다. 똥을 둘러 싼 익살스러운 이야기는 결국 비정한 삶의 이야기이다.
「밥줄」은 본문을 각주로 내림으로써 특별한 시적 장치를 동원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 현실이 오히려 시적이거나 극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 속에는 지구를 푸른 별로 만들어주는 지렁이 똥도 있지만, 허리를 휘게 하고, 잔인하고, 구린내 나는 똥으로 넘친다. 똥을, 똥줄을 잘 보면 밥줄이 보이고 그 너머 생명의 질서도 보인다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길’에 대해 다루고 있는 「나뭇잎 소인」과 「로마로 가는 길」도 매우 흥미롭고 유쾌한 작품이나 게으른 천성에 미적거리다가 마감시간에 쫓겨 미처 다루지 못함을 용서하시라. 금번 신작시 들여다보기를 통해 김나영 시인의 시가 보여주는 유쾌함이 인간적인 따뜻함과 세상을 향한 외침, 순간의 장면에서 전체를 꿰는 통찰에 기반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풍성하고 왕성한 시의 식탁, 유쾌함과 통쾌함이 넘치는 맛깔스런 시의 향연을 또 기대해 본다.
이태희/ 196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이 있고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근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