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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56회>
씬 고을부 성 (낮)
피아간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상귀가 소리소리 지르며 장졸들을 독려하고 있다. 견훤과 최승우가 뒤에서 보고 있다.
상귀 모두 공격하라... 성벽을 타고 오르라... 닥치는 대로 불화살을 쏘아 날려라...
아우성이다. 백제군은 까맣게 성벽을 타고 오른다. 돌덩이가 떨어지고 장애물들이 백제병사들을 막으려 하지만 중과부적이다. 오르는 수는 많고 막는 병사들은 적다.
상귀 적은 수가 많지 않다. 어서 오르라. 어서 성벽을 넘어 저 문을 열어라. 쏘아라...
궁수들이 비오듯 화살을 퍼붓는다. 한쪽으로는 기어오르고 또 한쪽으로는 화살을 퍼붓고, 충차가 다가가 문을 때리기 시작한다. 고을부 성주는 발을 구르며 어쩔 줄 모른다.
씬 동 성안
성주는 어쩔 줄 모른다. 목청을 다하여 소리소리 지른다.
성주 모두들 적을 막아라... 폐하께서 곧 원군을 보내 주실 것이다. 모두 적을 막아라... 막아라...
그러나 성주가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다. 죽어 가는 병사들만 부지기수로 보인다. 또한 곳곳에 불길이 솟고 있다. 그의 눈에 엄청난 충차가 성문을 부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성주 부장.. 부장들은 어디 갔느냐? 저들이 성문을 부수고 있다. 쏘아라.. 저쪽을 향해 화살을 퍼부어라...
부장 (달려오며) 성주님, 중과부적이옵니다. 적은 너무 많고 우리는 너무 적사옵니다.
성주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 고을부가 무너지면 서라벌이 다 무너진다. 막아야 한다. 폐하의 군대가 올 때까지 막아야 한다.
부장 보내줄 군대가 어디 있사옵니까? 적은 일만이 넘는 대병이라 하옵니다. 우리는 불과 천여 명도 아니 되옵니다.
성주 싸워야 한다. 그래도 싸워야 한다. 아찬 김공께서 어떻게 해 주실 것이다. 그때까지는 싸워라.
그러나 화살은 여전히 비오듯 쏟아진다. 돌덩이 하나가 날아와 싸우던 병사의 안면을 맞고 함께 뒹군다. 부장이 피하다가 화살을 맞고 그대로 죽어 넘어간다. 성주가 놀란다.
성주 여봐라, 부장... 부장....
부장 성주님... 어서... 여기를 피하시오소서. 이제 한 시각도 더 지체할 수 없사옵니다. 적은 일만이 넘사옵니다.
성주 (부장이 죽는 모습을 보고) 오오... 도대체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어떻게 해서 백제국의 왕과 그 군대가 이곳까지 와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게 어찌 되었다는 말인가...? 싸워라.... 모두 죽기로 싸워라.. (성루를 계속 오가며 독전한다) 이곳을 내어줘서는 아니 된다. 모두 죽기로 싸워라... 싸워라... 돌을 던져라.. 화살을 퍼부어라.. 무엇들 하느냐? 피하지 말고 싸워라.
혼전이다. 피아간의 공방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씬 다시 성밖
견훤과 최승우가 전투를 보고 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전투는 거의 일방적이다.
견훤 안타깝네 그려. 다 망하고 썩어 문드러진 껍데기뿐인 이 신라에도 저런 장수가 있었네 그려. 우리 군사의 십분의 일도 아니 되는 병력을 가지고 저렇게 버티고 있네.
최승우 그러게 말이옵니다. 하긴 이곳이 서라벌의 황도 턱밑이 아니옵니까? 황도를 방위하는 수장이 저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끄덕이며) 일리가 있는 말일세. 하지만 이건 너무 무모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전원이 다 죽을 심산인 것 같네 그려.
최승우 그런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렇다면 시간을 오래 끌 필요가 없지 않은가? 상귀 장군에게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총 공격을 감행해야겠구먼. 그래서 빨리 끝을 내야겠어. 이보게, 애술 장군...?
애술 예, 폐하.
견훤 그리고 신덕 장군..?
신덕 예, 폐하
견훤 성은 그리 크지가 않네 그려. 상귀 장군의 좌우익을 돕도록 하게. 이러다가는 시간이 한참 걸리겠어. 즉시 성을 넘게.
두 사람 예, 폐하.
애술 부장들은 들으라. 폐하의 영이 떨어지셨다. 전군 공격하라..
신덕 전군 공격하라. 운제부대는 앞을 서라. 석포부대는 계속 돌을 날려라. 기마대는 성문으로가 충차부대를 도와라.
애술과 신덕이 이끄는 전군이 다 동원된다. 백제군은 그야말로 개미떼처럼 몰려가고 있다. 보병, 궁병, 기마병, 방패병, 공병 등이 무더기로 나아간다.
씬 동 성안
목이 터져라 싸우던 성주가 갑자기 멈칫하며 선다. 이번에는 대병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퍼부어도 그들을 넘고 오는 병사들을 당할 수는 없다. 이미 성문이 거의 부서져 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망루도 석포에 의해 다 부서지고 죽어있는 병사들이 산을 이룬다. 그는 중얼거린다.
성주 도대체 전령은 어찌 되었느냐? 황도로 간 전령은 어찌 되었어? 막아야 한다. 물러나서는 아니 된다. 모두 여기서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나 싸울 병사가 없다. 이제는 거의 죽어갔다. 그리고 도망치는 군사들이 보인다.
성주 도망치지 마라. 도망쳐서는 아니 된다. 어서 싸워라.. 백제의 도적들에게 이 성을 내어줄 수는 없다.
씬 다시 성밖
성주가 성루를 미친 듯 오가며 독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애술과 신덕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비오듯 화살을 날리고 있다. 드디어 성문 쪽에는 우람한 소리와 함께 문짝이 부서져 나가는 것이 보인다. 함성과 군사들이 밀려들어간다. 성벽을 넘은 군사들도 이제는 수월하게 넘기 시작한다. 견훤이 웃고 있다.
견훤 드디어 성문이 부서졌네 그려. 서라벌의 문이 열렸어. 그리고 저기를 보게. 상귀 장군이 운제를 타고 성루에 올랐네. 하하하... 끝난 모양일세.
최승우 그런 것 같사옵니다, 폐하.
그들의 시야로 그 성루가 선명하게 보인다. 몇 안 남은 신라군들이 도망치고 있다. 그러나 성주는 계속 소리치고 있다.
씬 그곳
성은 이미 거의 함락되었다. 파도처럼 군사들이 밀려오고 있다. 부서진 성문으로, 그리고 까맣게 성벽을 타고 올라온 군사들로 성안은 수라장이다. 성주 혼자 그렇게 남아 있다. 상귀가 부장들과 함께 다가온다. 함성소리가 진동한다.
상귀 하하하... 참으로 장하다. 그 적은 병력으로 끝까지 우리와 싸우겠다는 것은 칭찬 받을만하다. 이제 너는 졌다.
성주 ..............
애술 (다가오며) 대단하다. 나는 잘 싸우는 장수만 보면 참으로 좋아 보이는 사람이다. 항복하거라. 폐하께 잘 말씀드려주마.
신덕 항복하라. 이미 성은 함락되었다.
성주 항복이라니...? 나는 신라의 화랑이다. 항복은 없다. 그것은 화랑의 수치다.
그때, 최승우와 견훤이 함께 온다. 그리고 가까이 이르러 본다.
견훤 우리 장수들이 모두 너를 장하다 하는구나. 나도 그렇게 보느니라. 이미 신라의 운명이 다하였고, 오늘 서라벌의 운명이 끝났느니라. 목숨을 보전해주마. 검을 버려라.
성주 하하하.... 네 이놈. 너도 신라의 장수였다. 이제 도적이 되어 왔는데 내 어찌 도적에게 무릎을 꿇으랴? 네 이놈.... 내가 오늘 너의 목을 베리라. 이야...........!
전광석화, 성주는 들고 있던 검을 치켜세우며 그대로 견훤에게 달려가는데 또 다른 기합소리 하나가 허공을 가른다. 신덕이 그의 허리를 베었다. 칼을 든 채 그대로 멈춘 성주. 비스듬히 무너지는 것을 다시 애술이 기합소리와 함께 검을 그으면 그의 목이 공처럼 굴러 떨어지고 몸체만 남았다가 그대로 무너진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견훤이 혀를 차고 말한다.
견훤 무릇 장수라면 이쯤은 되어야 한다. 목숨을 거두기는 했지만 얼마나 장부다운 죽음인가? 시신을 수습해 주어라.
장수들 예, 폐하.
견훤 그리고 이보게,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시간이 꽤 지체되었네 그려. 속히 서라벌 황궁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최승우 이를 말이옵니까? 서두르시오소서. 이들이 이곳을 막으면서 전령을 띄웠을 것이옵니다. 혹시라도 저들이 다시 군사를 모아 막는다면 그만큼 또 지체가 될 것이옵니다. 지금쯤 고려군도 우리의 이동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견훤 그럴 테지... 자, 제장들은 서둘러라. 군사를 속히 정비하라. 다시 행군할 것이다. 속히 정비하라.
애술 군사들을 정비하라.. 정비하라..
신덕 군사들을 정비하라...
다시 또 소란스럽기 시작한다. 그 소란스러움을 보는 견훤과 최승우의 표정 위로 다급히 달리는 말발굽 소리.
씬 길
시골길을 신라군 전령이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 그렇게 카메라 앞을 스쳐 멀어지면서...
씬 서라벌 황궁 외경
즐거운 아악 소리가 풍요롭게 들리고 있다. 수문장과 궁을 지키는 군사들이 한가롭게 오가고 있다. 아악소리, 더욱 커지면서...
씬 동 포석정
가을 단풍이 불타고 있다. 백여 명의 무녀(몇 명이 아님)들이 꽃을 수놓은 듯 춤추고 있다. 악공도 수십 명이 넘는다. (두세 명이 아님) 그야말로 영화로운 신라의 전성시대처럼 보인다. 수많은 궁녀들이 환관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포석정 주변은 연회를 즐기는 신료들로 가득하다. 김응겸, 유염과 연식, 효렴, 김부, 영경들이 보인다.
경애왕 참으로 즐거운 날이올시다. 오늘로 꼬박 이틀 째 밤을 세웠는데도 피곤한 줄 모르겠구려.
김부 대야성의 함락을 기뻐하고 반기는 연회이옵니다. 폐하께오서 그토록 즐거워하시니 신들은 또한 반갑고 기쁘옵니다.
효렴 대야성에 이어서 고려는 다시 또 용주성을 함락시켰다고 방금 전 장계가 올라왔사옵니다.
연식 백제는 그야말로 지리멸렬이옵니다, 폐하.
유염 ............ (비웃는다)
경애왕 암, 그렇고 말고.. 백제의 그 도적 견훤이가 그럼 언제까지 갈 줄 알았소이까? 고려는 우리 신라와 더불어 백제를 곧 멸망시킬 것이오. 내가 말하지 않았소이까? 그 도적 견훤이가 우리 신라의 황궁 앞에서 짐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말이오.
유염 하하하, 폐하. 듣고 보니 참으로 장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신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옵니다.
김응겸 그러하옵니다. 어디 백제의 왕 뿐이겠사옵니까? 고려의 왕도 결국은 폐하께 무릎을 꿇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다시 신라의 천년영화를 시작하셔야 하옵니다.
경애왕 (탁자를 치며) 하하하... 듣던 중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오. 들으셨소이까, 황후? 짐을 보고 백제와 고려를 모두 꿇려서 옛 영화를 찾으라고 합니다.
황후 좋은 말씀이옵니다. 하오나 고려는 우리의 우방이 아니옵니까?
유염 우방이 아니옵니다, 황후마마. 고려도 우리 신라를 삼키려는 수많은 늑대 중의 하나이옵니다. 누구도 믿을 주변은 없사옵니다.
연식 닥치시오. 고려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우호적이었소이다. 지금 이 연회를 왜 열고 있는지 모르시오? 대야성을 우리와 함께 함락시킨 그 기쁨을 기리는 것이오.
유염 하하하.. 알겠소이다, 알겠소이다.. 언성을 낮추십시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올시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폐하?
경애왕 그렇고 말고... 자, 이 연회는 내일까지 사흘 낮밤을 열기로 한 연회이올시다. 모두 실컷 마시고 즐기도록 하십시다. 우리는 천년신라의 영광을 반드시 되살려야 합니다. 자, 마십시다. 모두들 드십시다. 여봐라, 그 처용무는 이제 그만 추고 활달한 검무를 추어 보거라. 신라 화랑들의 옛 기상을 보고 싶구나.
유염 처용무는 그만 거두고 검무를 추랍신다. 악공들은 무얼 하느냐? 소리를 내어라.
처용무를 추던 무희들이 들어가고 다른 무희들이 나오면서 활달한 검무가 이어진다. 악공들의 소리는 더욱 풍요롭다. (음악 좀 다시 부탁합니다. 매일 똑같고 너무...) 경애왕은 가가대소한다. 황후도 그렇게 즐거워하고 유염과 김응겸은 뭔가 의미있는 시선을 계속 주고받으며 황궁 문 쪽을 본다. 그 위로 다급한 말발굽 소리들이 크게 들려오면서...
씬 동 황궁 정문 앞
말 울음소리와 함께 전령이 말고삐를 잡아채며 말한다.
전령 급보요. 고을부성에서 왔소이다. 적군이 들어왔소이다. 백제군이 왔어요.
수문장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고을부에 누가 와..?
전령 백제의 왕이 수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왔소이다. 어서 폐하께 알려주시오. 고을부가 위급하오이다. 어서 알려주시오.
수문장 (다가가며) 지금 그렇다면 고을부에서 오는 전령인가?
전령 그렇소이다. 너무 급하오. 어서 폐하께 알려 주시오. 백제의 왕이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왔소이다. 어서 알려주시오. 급하오이다.
수문장 이 사람아, 말도 아니 되는 소리는 그만 하게. 지금 안에서는 폐하께서 연회 중이실세. 백제의 왕이 어떻게 서라벌 턱밑까지 올 수 있다는 말인가?
전령 급하다고 하였소이다. 어서 알려주시오, 어서....
그러나 수문장은 너무 여유가 많다. 이리저리 전령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말한다.
수문장 기다리게. 여봐라, 안에 가서 알려 드려라. 거짓인지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백제의 왕이 고을부에 왔다고 전해라.
문을 지키던 군사 하나가 대답하며 안으로 사라진다. 수문장이 보다가 다시 묻는다.
수문장 이보게, 자네 눈으로 보았는가? 정말로 백제의 왕이 고을부까지 왔다는 말인가?
전령 그렇소이다. 보았소이다. 급하오. 아찬 김공께서는 어디에 계시오? 그분이 먼저 알아야 하오이다. 그분을 뵙게 해 주시오.
수문장 그분은 이 연회에 참석 안 하신 것으로 알고 있네마는... 어쨌든 기다려보게. 안에 기별을 넣었으니... 백제의 왕이 왔다...? 백제의 왕이...? 에잉....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있나? 어떻게 여기까지 온단 말인가, 오기를...?
수문장의 말에 전령은 더욱 더 답답하다. 그 초조한 모습에서...
씬 동 포석정
연회는 계속되고 있다. 검무는 사라지고 광대들의 묘기가 한참이다. (고구려 벽화 참조) 막대기를 길게 발에 부착하고 광대들이 자유자재로 춤을 추어가며 오가고 있다. 아악소리는 흥겹고 신료들은 계속 웃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유염과 김응겸은 계속 초조한 눈빛을 주고받는데... 드디어, 환관 하나가 다가와 유염에게 뭔가를 속삭인다. 유염이 크게 놀라며 눈을 꿈뻑인다. 그리고 무언가를 다시 귓속말로 전해준다. 환관이 다시 돌아간다. 기다리고 있던 군사 하나와 또 다른 군관들이 함께 간다. 눈빛이 심상치 않다.
씬 그곳
유염과 김응겸이 한쪽에서 만나고 있다.
유염 왔소이다. 백제의 왕이 왔소이다.
김응겸 오, 그렇소이까?
유염 다행히 도중에 큰 장애가 없었으나 지금 고을부에 이르러 길이 막혀 한참 전투 중이라고 하오이다.
김응겸 오, 그렇소이까? (주변을 보며) 고을부는 아찬 김률의 수하들이 맡고 있는 성이 아니오이까?
유염 왜 아니겠소이까? 황궁의 외곽은 모두 김율의 소관이지요.
김응겸 그러면 큰 일이 아니오이까?
유염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태가 급하여 전령이 원군을 청하러 황궁 밖에 와 있소이다. 우리 아군은 군사가 천여 명도 채 아니 되고 백제군은 일만이 넘는다고 하였소이다.
김응겸 다행이지요. 드디어 저 박씨왕의 시대가 끝이 나는 모양이올시다. 그런 줄도 모르고 큰 소리라니... 허면, 전령은 어찌할 것입니까?
유염 어찌하다니요? 전령을 없애고 소식을 차단해야지요. 이미 그리 일러 보냈소이다.
김응겸 잘했소이다. 박씨왕의 시대도 이제 하루면 끝이겠구먼...
그런 그들의 음험한 모습에서...
씬 다시 황궁 정문 앞
여전히 전령이 기다리고 있다. 정문의 사잇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던 군사와 그를 따라온 군관들이 함께 나오고 있다.
군관 네가 고을부에서 온 전령이냐?
전령 그렇소이다. 시각이 급하오이다. 지원군은 어찌되었소이까? 폐하의 영은 떨어지셨소이까?
군관 하하하.... (다가가며) 네 이놈, 어디서 그런 황당무계한 거짓말을 하느냐? 백제의 왕이 어떻게 서라벌까지 올 수 있다는 말이냐?
전령 사실이오. 내 눈으로 보았고 성주님이 보내서 왔소이다. 급하오, 폐하를 알현케 해주시오.
군관 폐하께서는 네 놈의 목을 베라고 하셨느니라. 얘들아, 이 놈을 끌어내어 목을 베라.
전령 뭐라고...?
군관의 말에 군사들이 에워쌓는다. 그러자 전령이 위기를 느끼고 보다가 그대로 날아드는 칼을 피하면서 어깨를 베이고 말 위에 튕겨 오른다.
군관 저놈을 잡아라.. 막아라.... 활을 쏘아라.
전령은 그렇게 도망친다. 화살이 수없이 지나쳐간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사라진다.
군관 에이... 저 놈을 놓치다니. 어서 서둘러라. 서둘러라. 어서 궁 안에 알려라.
군사들 예...
군사들은 서두르고 아쉬워하는 군관의 표정에서..
씬 저자거리
상처를 입은 전령이 계속 달리고 있다. 전속력으로 달려 어느 골목길을 돌아서 달려간다.
전령 (소리) 모두다 놈들이 짜고 한 일이다. 어서 알려야 한다. 이 일을 알려야 한다.
그렇게 달려 사라져 간다.
씬 또 다른 길
견훤의 대군이 오고 있다. 군사는 그 끝이 없고 기치창검은 숲을 이루고 있다. 성을 공격하는 장비들과 수천의 기병대와 창병대, 방패부대들이 질서정연하다. 마치 구름떼가 몰려오는 것 같다. 백성들이 황당해서 보고 있다. 그렇게 지나쳐 가면서...
최승우 폐하, 신라의 서라벌 땅이옵니다.
견훤 그렇구먼.. 일찍이 짐이 여기서 군관생활을 한 적이 있었어. 그래서 서라벌은 잘 알지.
최승우 신도 알고 있사옵니다.
견훤 이 서라벌에서 죽은 궁예왕도 만났었고, 그때는 어렸던 왕건아우도 만났지.
최승우 허허허.. 그러셨사옵니까? 하오나, 고려의 왕은 이제 아우가 아니지 않사옵니까?
견훤 하하하... 그런가? 그건 자네가 모르는 소리일세. 한번 아우를 했으면 영원히 아우인 게야.
최승우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적으로서 대병을 거느리고 오고 있을 것이옵니다.
견훤 그래도 아우는 아우일세. 헌데 말일세, 파진찬...? 정말 그 아우가 공산으로 오기는 올까...?
최승우 만에 하나 고려의 왕이 오지 않는다면 신의 목을 내어놓겠사옵니다.
견훤 하하하.. 사람하고는.. 해본 말일세.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말일세. 와야지. 암, 꼭 와야지... 그래서 이번의 만남으로 다 끝내야지. 죽이든 살리든 간에 말일세.
최승우 폐하, 어쨌든 그 일은 다음의 일이옵니다. 지금 폐하께오서 신라의 황궁인 월성으로 가고 계시옵니다. 폐하께서는 남문을 지나시고 신라 천년의 상징인 임해전 쪽으로 들어가실 것이옵니다.
견훤 하하, 그렇게 되겠지... 감개가 무량하이. 짐이 서라벌로 와서 황궁의 정문을 들어가고 있다니... 감개가 무량해. 헌데, 월성까지는 아직도 한참 걸리겠구먼..?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어둠이 내려야 도착할 것이옵니다. 월성에 도착하게 되면 아마도 상당한 저항이 있을 것이옵니다.
견훤 저항이라...? 그래봐야 그 저항이 얼마나 크겠는가? 한 시각 꺼리도 아니될 것이야.
최승우 하오나 폐하, 신라가 비록 썩었다 하나 아직도 몇몇 중신들은 여전히 화랑정신을 고집하고 있사옵니다.
견훤 화랑정신이라..? 하하하.... 정신은 있으되 이미 몸이 안 움직이는 신라일세. 신라는 너무 늙었어. 정신이 있으면 무엇하나...? 몸이 늙으면 다 소용이 없는 것이야. 하하하...
그들 그렇게 간다.
씬 김율의 집 외경
김율 (소리) 무엇이라..? 백제의 대군이 고을부까지 왔어..?
씬 동 집안 마당
김율이 전령과 마주서 있다. 가솔들이 보고 있다.
김율 백제의 황제가 직접 대군을 끌고 왔다는 말인가..? 고을부까지..?
전령 그러하옵니다, 아찬 어른.
김율 믿기지가 않는구먼. 조정안에 반역의 무리가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들과 내통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소리 없이 여기까지 이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 황궁에는 알려드렸는가? 폐하께는 알려드렸는가?
전령 예, 아찬 어른. 하오나 역적의 무리들이 남문을 가로막고 신을 베고 죽이려 하였사옵니다.
김율 무엇이라...?
전령 폐하께 전하는 소식을 차단하려고 한 것 같사옵니다. 급하옵니다, 아찬 어른. 지금쯤 고을부성이 함락되었을 지도 모르옵니다.
김율 이럴 수가 있는가..? 그예 이런 꼴을 당한다는 말인가? 너는 들어라.
전령 예, 아찬 어른
김율 나는 곧 군사를 모아 월성으로 갈 것이다. 너는 이 길로 밤낮으로 달려 고려로 가거라. 가서 전하라. 신라의 황도 서라벌이 도적들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있다고... 신라에 정변이 발생하여 역적들이 도적들을 황궁으로 끌어들였노라고... 어서 가라. 밤낮으로 달리면 이틀길이면 갈 수 있을 것이니라.
전령 예, 아찬 어른
김율 오오.. 이 일을 어이할꼬..? 드디어 나라가 도적들에게 수모를 당하게 되었구나.. 오오... 여봐라...
부장들 예, 아찬 어른.
김율 월성으로 갈 것이다. 군사들을 모아라. 측근들을 모두 모아라.. 그리고 갑옷과 검을 대령하라.
그들 예, 아찬 어른.
김율 오오.. 이제 믿을 곳은 고려 밖에 없구나. 하지만 저들이 우리를 돕기에는 너무도 시간이 없구먼... 오오...
그런 김율의 표정에서...
씬 고려 황궁 외경
씬 동 편전
왕건을 위시하여 복지겸, 최응, 김행선, 왕규, 최지몽, 태자 무들이 함께 모여 있다. 심각한 표정들이다.
복지겸 지난 번 병부령의 특별한 청으로 세작들을 널리 보내 견훤왕의 근황을 추적했었사옵니다. 그들의 첩보에 의하면 병부령의 의심이 정확했사옵니다.
왕건 백제왕이 서라벌로 갔다는 말이오..?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저들은 깃발을 감추고 평범한 군사들로 가장하여 몇 갈래로 나뉘어서 요 며칠동안 서라벌로 달려갔다 하옵니다.
김행선 서라벌로 말입니까?
무 저들이 왜 저토록 급하게 서라벌로 가야하옵니까?
최응 어차피 삼한을 통일하는 군주는 누가 되었든 먼저 신라의 서라벌을 얻어야 합니다. 서라벌은 본래 신라의 옛 이름입니다. 그리고 신라 황도의 상징이지요. 저들은 서라벌로 가서 친 백제적인 왕조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수순은 그 왕조가 왕통을 받들어 백제에 바치게 함으로써 삼한통일의 기회를 선점 하려는 것이지요.
왕건 그럴 것이야. 그 점은 충분히 납득이 되네 그려. 허면, 어찌하면 좋은가? 이를 알았으면 서둘러야 되는 것이 아닌가?
최응 물론 서둘러야 하옵니다. 용주와 대야성에 있는 장수들을 서라벌로 보내시오소서. 또한, 저들의 급한 곳을 찔러 더 이상 서라벌에 오래 머무를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급하옵니다.
왕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저들은 벌써 서라벌에 거의 다 당도하였을 것이야. 용주와 대야성의 장수들을 보낸다 하여도 이미 늦었네 그려.
최응 물론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더 이상 백제군이 서라벌에서 오래 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책이옵니다.
왕건 방법이 있는가?
최응 두 성의 장수들을 서라벌로 급파하면서 또한 수군을 동원하여 남해안을 치는 것이옵니다.
김행선 남해안을 쳐요..?
최응 그러하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옵니다. 백제의 후미인 남해안을 침으로써 저들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서라벌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도록 하는 것이옵니다.
복지겸 듣자하니 참으로 묘수 중에 묘수이옵니다. 근자에 들어 바다에서 싸우는 일은 없었사옵니다. 그 옛날 나주전투 이후 이렇다 할 해전이 없었사온데 이럴 때, 대선단을 거느리고 백제의 후미를 드려 친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왕규 신도 듣자하니 참으로 계책 중에 계책 같사옵니다.
왕건 (끄덕이며) 그럼 그리 하세. 마침 우리 수군은 이곳 황도인 예성강과 나주에 집결해 있네. 남해까지 가기는 하룻길이야. 허면 그리하세.
최응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왕건 헌데, 그 동안 서라벌은 그럼 어찌되는 것인가? 백제군에게 짓밟히는 것이 아닌가? 만약에 저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고 그대로 서라벌에 눌러 앉아 있다면 어찌 되는 것인가?
최응 그럴 리는 없을 것이옵니다.
왕건 아니야, 그럴 수도 있어. 충분히 있지... 서라벌이 어디인가? 삼한의 중심일세. 아무래도 이번 길은 짐이 직접 가야할 것 같구먼.
최응 아니옵니다. 아니 가셔도 되옵니다.
왕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백제의 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그 큰 성 두개를 버려가면서 서라벌로 갔어. 짐 보고 앉아서 보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서라벌은 우리에게도 중요해. 짐이 가야겠어. 짐이 직접 가야겠어.
씬 동 황후전
오씨가 놀래서 유씨를 보고 있다.
오씨 군사들이 동원되고 편전에서 회의가 거듭되고 있다고..?
유씨 그렇다 하옵니다, 황후마마.
오씨 지난 번 얘기처럼 정말 큰 전쟁이란 말인가..?
제조상궁 이미 황도에 남아있는 전 장졸들에게 소집령이 내렸고, 군수물자들을 맡고 있는 관청들이 역시 모두 동원되어 있다 하옵니다.
김상궁 아마도 무슨 일인가가 크게 있는 듯 싶사옵니다, 황후마마.
오씨 제조상궁이 가서 좀 더 소상히 알아보게. 도대체 무슨 일로 저리들 하시는가 말일세.
제종상궁 예, 황후마마
씬 동 편전
회의는 계속되고 있다. 최응은 계속 만류하고 있다.
최응 폐하, 다시 한번 생각하시오소서. 이곳에서 서라벌까지 가심은 큰 무리이옵니다. 쉬지 않고 몇 일 낮밤을 가셔야 하옵니다.
왕건 지금 서라벌에 백제의 왕이 와 있네. 길이 멀고 아니 멀고가 무슨 문제인가? 갈 것일세. 이미 군은 동원되어 있네. 내일까지 출병하도록 해 주게나.
최응 아니 되옵니다, 폐하. 차라리 신이 가겠사옵니다.
왕건 아니야... 자네는 여기 시중과 더불어서 우리 정윤과 함께 황도를 지켜주게. 이번에는 내가 혼자 다녀옴세.
최응 (답답하다) 폐하...
왕건 듣고 보니 사정이 너무도 급박하이. 서라벌의 사정이 풍전등화야. 전령을 즉시 띄우게. 배현경, 홍유, 윤신달, 왕충 장군들로 하여금 용주와 대야성을 각각 나누어 맡게 하고 김락과 김언, 전이갑, 의갑형제 그리고 내 의제 신숭겸 장군과 박수문 장군 형제를 서라벌로 가라 하게. 도중에서 만날 것이야.
최응 다시 한번 아뢰옵니다. 친정은 한번 더 생각하여 주시오소서.
왕건 마음이 급해서 그러하이. 서라벌에 백제의 왕이 와 있어. 어찌 나보고만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는가? 이보시오, 시중..?
김행선 예, 폐하
왕건 다행히 북쪽은 조용하다 하니 만약을 대비해서 아우들인 유금필과 박술희 장군을 오라 하여 이 황도에서 다음 영을 대기토록 하시오.
김행선 예, 폐하.
왕건 마음이 급하구먼. 출병할 것일세. 병부령은 즉시 서두르라. 내일 아침까지는 출병하도록 조치를 하라. 알겠는가, 병부령?
최응 (할 수 없다는 듯) ....예, 폐하
씬 인서트
전령이 기를 꽂고 달리고 있다. 그렇게 사라져 가면....
씬 평양성 일각
유금필, 박술희, 왕식렴들이 서있다.
유금필 장계를 보니 용주성도 얻었고, 그 철옹성이라는 대야성도 함락시켰다고 합니다. 우리 고려의 경사올시다.
박술희 왜 아니겠사옵니까? 허허허... 거 숭겸형님과 김락장군이 아주 큰 일을 한 것 같습니다, 형님.
왕식렴 그런데 대야성에서 백제 황제의 깃발만 있었고 황제가 없었다는 사실이 아주 묘하다고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뭔가가 있는 모양인데... 아직 그 상황을 파악 못하고 있는 것 같소이다.
유금필 그나저나 모두들 전장터로 나가 공을 세우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북방에서 허송세월이라니.. 답답합니다.
박술희 하하하.. 그거야 형님께서 북쪽 사정에 워낙 밝기 때문이 아니옵니까? 이 아우 술희야말로 정말 답답합니다, 형님. 허허, 참.
씬 다시 송도 황궁 밖 (밤)
군사들이 출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말 울음소리와 장졸들의 이동소리가 부산하기 그지없다. 최응이 보고 있다. 한숨을 계속 쉰다.
씬 동 대전
왕건이 출병준비를 하고 있다. 갑옷과 어검이 준비되어 있다. 두 황후가 놀라서 보고 있다.
오씨 폐하께서 직접 전투에 가시옵니까?
왕건 사정이 화급하게 되었소이다.
유씨 언제 떠나시는 것이옵니까?
왕건 내일 아침으로 떠날 것이오. 지금 신라가 위급지경에 있소이다. 서라벌이 말이오. 내 이번에는 그곳으로 가서 견훤왕에게 조물성에서의 빚을 갚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서두르는 것이에요.
유씨 하오나 폐하...
왕건 아,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시오. 이것은 백제와 우리 고려의 황제들이 겨루는 자존심 싸움이오. 자존심 말이오. 알겠소이까? 반드시 서로간에 결단을 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두 여인 .............?
씬 서라벌 월성
어둠 속으로 백제의 대병이 계속 밀려가고 있다. 횃불들이 불야성을 이루며 몰려오고 있다.
씬 그 월성 안
갑옷차림의 김율이 부장들과 더불어 먼 성밖을 보고 있다.
김율 결국 이런 날이 왔구먼 그래. 백제의 도적들에게 이 신성한 황도가 짓밟히다니.... 너무도 원통하구나.
부장 아찬 어른, 황궁 안에서는 아직도 연회가 계속 중이라고 하옵니다. 도적들이 집 앞마당에 오고 있는데도 이를 모르는 모양이옵니다.
김율 (눈물) 우리 신라가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지는 오래이니라. 대야성 함락에 우리 신라군 몇 명이 참가하였다고 해서 폐하께서는 사흘 밤낮을 연회를 열고 계신다. 내 하도 어이없어 그곳에 참석을 아니 하였어.
부장 아옵니다. 하옵고 아찬어른, 저들이 전령을 죽이려 하였고 황궁의 문을 닫아 걸은 것은 대신들 속에 반역의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옵니까?
김율 물론일세. 허나, 황제의 마음이 닫혀있으니 어이하겠는가? 삼일의 연회라니..? 지금이 어느 때인가 말일세.
부장1 (달려오며) 아찬 어른, 백제의 대군이 성 밑에 이르고 있사옵니다.
김율 보고 있느니라.
부장1 일만이 넘는 대병이옵니다. 월성을 지키는 군사는 다 도망치고 고작 오 백도 아니 되옵니다.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김율 도망칠 자는 치라 하라. 그리고 싸울 자는 싸우라. 백제의 개가 되어 사는 것보다는 신라의 충신으로 죽는 것이 아름다울 것이니라. 모두 전투준비를 하라. 전투 준비를 하라.
부장들 전투 준비를 하라...
소라소리, 북소리들이 들려온다. 군사들은 모두 이미 성루에 붙어 무기들을 들고 밑을 보고 있다. 견훤들이 점점 더 다가온다.
씬 동 성밖
견훤이 장수들을 이끌고 성 근처에 도착했다. 성루에 김율이 서 있다. 신덕이 말한다.
신덕 거기 성 위에 있는 장수는 누구인가..?
김율 나는 신라의 아찬 김율이니라. 웬 도적들이 신성한 신라의 황도에 들어왔는고....?
최승우 폐하, 저자가 바로 신라의 마지막 충신이라는 김율이옵니다. 스스로 성을 맡겠다고 나온 것 같사옵니다.
견훤 아니 되었군. 신라의 방어군이 오백이라 하였든가..?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긴 이야기 할 게 뭐 있겠는가? 항복을 한번 권해보고 아니 들면 빨리 성문을 열게나, 애술장군..?
애술 예, 폐하. 너 김율은 들어라. 우리 폐하께서 항복하면 살려주신다 하신다. 천명이 넘는 고을부 성도 두 시각만에 깨어졌느니라. 오 백의 군사로 어찌 싸우겠느냐? 성문을 열어라.
김율 하하하.... 이미 죽음을 각오했는데 무엇이 두렵겠느냐? 어서 오너라, 이 도적들아...
애술 폐하, 공격을 해야겠사옵니다.
견훤 그리 하게.
애술 공격하라. 궁수부대는 불화살을 날려라. 기마부대는 앞을 서라. 공격하라..
신덕 공격하라...
명령과 동시에 수천의 기마부대가 성밖을 휩쓸며 들어간다. 그 뒤로 운제부대가 따르고 삽시간에 성 밑은 다리가 놓여지고 전투장으로 변한다. 견훤이 묵묵히 보고 있다. 상황은 고을부와 다름이 없다. 돌덩이와 불덩이들이 성안으로 수없이 날아들어간다.
씬 동 성안
김율 모두 여기서 죽을 것이다. 후퇴는 없다. 최후까지 싸워라. 돌이건 화살이건 있는 대로 퍼부어라..
그러나, 엄청난 물량의 공격이다. 비오듯 쏟아지는 돌덩이와 화살들, 그리고 불덩이들이 날아와 곳곳에 불바다를 만들고 있다.
부장들 싸워라... 우리는 여기서 죽는다...
김율 우리는 마지막 화랑이다. 화랑답게 죽을 것이니라. 최후의 일인까지 싸워라... 싸워라....
그 혼란스러운 전장터의 모습과 김율의 독전이 보인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열이 심한 싸움이다. 김율의 군사들이 속절없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죽어가고 있다. 화살, 돌, 불기둥, 그리고 쓰러지는 숱한 병사들의 모습에서 김율의 얼굴이 겹치며...
씬 동 황궁 남문
수문장과 군관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그 위로 웃음소리들...
씬 인서트 (포석정)
연회는 계속되고 있다. 경애왕의 술취한 모습과 신료들의 웃음소리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 중 유염과 김응겸이 함께 있는 곳으로 군관 하나가 다가와 뭔가 속삭인다. 그러자 그들의 모습이 더욱 긴장하며 경애왕을 본다. 경애왕은 계속 즐겁고...
씬 다시 월성 밖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계속 일방적이다. 이미 까맣게 성벽을 오르는 군사들이 보인다. 최승우가 도리질을 한다.
최승우 안타까운 일이옵니다.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저렇게들 싸우고 있사옵니다. 저 김율이라는 자는 참으로 대단하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래서 충신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일세. 허나 어쩌겠는가? 우리는 이 성을 넘어야 하고 저 김율이는 막아야 하고...어린 아이와 어른의 싸움일세. 성문이 곧 열리겠네 그려.
씬 동 성안
백제군이 사방에서 성벽을 넘어오고 있다. 석포가 날아들어 장대를 다 부수어 놓았다. 독전을 하느라 북을 치던 병사도 화살과 돌벼락을 맞고 떨어져 죽는다. 부장이 죽고 다시 또 성벽을 넘어오는 병사를 막던 부장1도 죽는다. 김율은 점점 혼자가 되어 간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목이 터져라 소리친다.
김율 너희들은 신라의 군사들이다. 명예를 위해 죽어라. 신라의 군사들이여. 최후의 일인까지 싸워라. 싸워라....
김율은 다시 검을 들고 앞에 몰려드는 백제군들을 베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그는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달려가 불길이 치솟고 있는 반쯤 기울어진 높은 망루에 서서 북을 치기 시작한다. 미친 듯 친다. 그는 미쳤다.
김율 일어서라... 다 일어서라.. 신라의 장졸들이여..백성들이여... 모두 일어나 도적을 물리쳐라. 도적이 왔다... 다들 잠에서 깨어나라. 도적이 왔다. 도적이 왔다... 깨어나라.. 모두 깨어나라...
드디어 그 북소리가 멎는다. 북에 불이 붙은 것이다. 북이 찢어진다. 그래도 그는 친다. 그의 모습을 견훤들이 보고 있다. 침묵이다. 김율은 드디어 불덩이에 싸이고 북이 떨어져 뒹굴고 김율도 하나의 불꽃으로 망루와 함께 서서히 땅으로 진다. 군사들의 함성이 일고 있다. 뒹구는 북에서... 디졸브되면 다시 성밖 견훤의 그 감동 같은 표정에서 다시 디졸브 길게...
씬 그곳 월성
견훤들이 입성을 한다. 군사들이 환호한다.
최승우 폐하, 드디어 월성에 오셨사옵니다. 이제 곧 남문으로 가실 것이옵니다. 그 남문을 열면 천년신라의 궁궐이옵니다. 이제 아무도 폐하를 막을 군사는 없사옵니다. 서라벌에 오신 것이옵니다, 폐하. 서라벌에 오신 것이옵니다.
견훤 ................
최승우도 제장들도 모두 들뜬 표정이다. 최승우의 소리에 이어 굳어진 견훤의 그 감격같은 표정에서......
<156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