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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70s] 08
보따리를 들고 온 더미, 선착장으로 걸어온다. 막 도착한 배에서
한 남자가 내린다. 더미, 배로 걸어가다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선 사람을 올려다본다. 동영이다.
더미: ! 어...어...(놀라서 말이 안나온다)
동영: (미소) 어디 가?
더미: (말문이 안 터져서 고개만 힘차게 끄덕거린다)
동영: 이렇게 이쁘게 차려 입은 거 보니까, 서울 가는 길이구나?
태을방직에서 채 용통지서 왔어?
더미: 예. (동영의 트렁크를 보고) 근데 아저씬 어쩐 일이에요?
동영: 글쎄...내가 왜 왔을까.. 살려구, 여기서.
더미: 장난치지 말구요. 진짜, 뭐 하루 왔어요?
동영: ...버릴 게 있어서.
더미: 뭘 버리러 여기까지 와요?
동영: 나. 날 버리러.
더미: 이 아저씨 봐! 우리 동네가 쓰레기통이에요?
아저씰 여따 버리게.
동영: 하하- (웃는다)
더미: (동영의 초췌한 몰골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갸웃)
근데..이상하다. 아저씨..왜 그래요? 뭔 일 났어요?
저번 때랑 영..다르네..혹시..빚 지구 도망 왔어요..?
동영: (미소) 응.
길 저편에서, 양자가 ‘더미야!! 더미야!!’ 부르며 뛰어온다.
양자: 더미야! (헉헉- 거리며 숨이 턱에 차서) 더미야..엄마,
말 줌 들어봐. 엄마가 잘했다는 게 아냐..
(하다 동영을 본다) ! 아니, 댁은 또 여기 뭐 하루 왔어?
동영: (웃고) 안녕하세요?
양자: 안녕 못하셔. 거기 땜에 내가 안녕할 수가 없어!
(더미를 잡고) 엄마가 잘못했어. 그니까 맘 풀구
얼른 집에 가자.
더미: (시선은 동영한테 두고, 갈 마음이 사라진)
놔아..놓으래니깐...
양자: 얼른 가자. 응? 가서 얘기하자.
더미, 못이기는 채 양자에게 끌려간다. 더미, 끌려가면서도
동영을 쳐다보고 있다. 동영, 그런 더미를 보며 미소 짓다가,
이내 표정 쓸쓸해진다. (눈물은 아버지 앞에서만)
씬34 맹골도, 언덕(낮)
동영, 바다를 보고 있다. 트렁크는 이미 묵을 곳에 가져다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앉아 있는.
동영, 주머니에서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꺼내든다.
(김홍석의 소리) 동영아.. 아버진..널...워싱턴에 보낼 수가 없구나.
늘, 국가가 먼저여야 한다고. 그렇게 살려고 애는 써봤는데...
안되는구나, 이번에는. 좋은 군 인도 못되고..좋은 아버지도 못되고..
동영: ...(여권과 티켓을 찢어 바다에 던진다)
씬35 태을방직, 준희의 사무실
여성복 출시를 위해, 수많은 샘플 옷들이 걸려 있다. 행거에,
마네킹에 여성복들이 걸려 있다. 디자인 초안들이,
보드에 잔뜩 붙어있다.
준희를 비롯한 직원들, 각자 앞에 디자인 북과 바자를
비롯한 글래머, 보그 등의 다양한 잡지를 놓고 앉아 있다.
이런 그림들 위로 디자이너의 설명이 계속되고 있다.
디자이너, ‘올 가을 세계 패션 경향은 라인이나 룩을 배제하면서
TPO에 구애 받지 않는 캐주얼한 스타일이 될 것 같습니다.
유럽 경향 분석결과, 스 웨이드? 가죽? 벨베틴을 소재로 한
브라운 블랙의 판탈롱 팬츠와 미니? 미디의 스커트가 계속
유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원색의 오버블라우스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롱 스카프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이런 소리 아웃 되고, 준희, 동영의 전화를 생각한다.
(동영의 소리) 뮌헨에 갔다 올게...한 오년쯤 걸릴 거야.
길면..한 십년쯤..걸릴지도 모르겠다.
준희: ...(생각을 털어내며 시계를 본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됐어요. 오늘은 이쯤 하죠. 내일도 같은 시간에 B팀
에서 개발한 디자인 검토합니다.
씬36 태을방직, 영등포 공장
준희와 창회, 공장을 돌아보고 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공정 라인, 직조되어 뽑아져 나오는 천들.
준희와 창회, 최비서를 대동하고 시찰하는 중이다.
창회, 준희에게 새로 나온 벨베틴을 보여주며 ‘이게 올 초가을
주력품이다..날실로 면사를 쓴 거야/시제품으로 봤을 때하군
느낌이 좀 달라요. 너무 어두워요’ 이런 식의 애드립 대사 주고받고.
준희: (일하는 여공들을 보다, 생각났다, 최비서에게)
그 앤 어디서 일해요? 뭐라더라 그 섬이? 더미?
이름이 그랬는데.
최비서: 아..맹골도 한더미씨요? 회장님께서 친히 이력서 주신
아가씨라 제가 알아봤는데, 그 아가씨 안 왔답니다.
준희: 그..래요? (고개를 갸웃하는)
씬37 김홍석의 집, 서재(밤)
준희와 빈, 앉아 있다. 김홍석, 책상에서 가져온 동영의 엽서를
준희에게 건넨다.
김홍석: 공항에서 보낸 거다.
준희, 김홍석에게 엽서를 받아 들고 읽는다.
(인서트) 동영의 엽서
(동영의 소리) 멀리 여행 갔다 생각하세요. 찾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빈: 장군님, 형 안 찾으실 건가요?
김홍석: 빈아, 난 동영이를 믿는다. 돌아올 때가 되면, 돌아오겠지.
빈: 아, 물론 그렇겠죠. 형이 잘못 될 거라고 생각진 않아요.
그냥, 형이 보고 싶어서요.
김홍석: (미소) 좋은 벗들이 있어서..동영인 행복한 놈이구나. 준희야.
준희: 네. 아저씨.
김홍석: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준희: 그게 잘 안 돼서요.. 너무 걱정이 되서 큰일이에요. (애써 웃는)
씬38 동영의 방(밤)
스킨 스쿠버복을 뒤적뒤적 하는 빈.
빈: (혼잣말처럼) 이거..어디서부터 찾아야 되나..
준희, 방을 둘러본다. 방 한쪽에 남한전도가 걸려 있다.
동해안의 울진, 장기곶, 서해안의 삽시도, 부안, 아래쪽의
진도를 중심으로 매물도, 조도, 맹골도, 진도를 중심
으로 집중적으로 붉은 표식이 되어 있다.
빈: 장군님, 뭔가 숨기시는 거 같지?
준희: 글쎄..
빈: 정치적인 게...걸린 거 같은데. 아무래도 찜찜해.
CIA가 걸려있다는 게..아무 래도 껄쩍찌근하단 말야..
준희: 넌, 이제야 찜찜하니? 좀..더 일찍 찜찜했음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알아 봐야 된다구 할 땐, 뒷짐 지고 있더니..
빈: 어디서부터 더터 봐야 되나..이거..
(일어나서 준희가 보는 지도를 본다)
준희: ..(지도를 보며 최비서의 말을 생각한다)
(최비서의 소리) 맹골도 한더미씨요? 그 아가씨, 안 왔답니다.
준희: (전도에서 맹골도를 찾는다. 손가락으로
작은 섬을 짚어본다) 맹..골..도...?
빈: ...? (본다)
씬39 맹골도, 외딴 집 안
동영, 집수리를 하고 있다. 전기선을 끌어 처마 밑에 설치를 하고,
소켓에 전구를 끼운다.
씬40 맹골도, 선착장
동영, 양근 아버지의 배에서 짐을 들고, 매고 내린다.
야전용품들이 들어 있는 배낭과 침낭 등.
(진도에서 사오는 길이다)
씬41 맹골도, 조합 앞(오후)
더미와 양자를 비롯한 잠녀들 따온 해물을 양근이
아버지에게 넘기고 있다. ‘춘자네. 엿근. 칠백이십원/
에이, 뭐야..다시 달어 봐요.’ 등등의 애드립.
정복 차림의 양근, 소매를 둥둥 걷어 올리고 단추도 한두 개
풀고 느슨한 차림으로 아버지 도와 해물을 수거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여자들 함지 끼고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잠녀1: 아우, 잘 생겼더라. 대처 총각이라 그런가 때깔이 달라.
어쩜 고?箚? 예뻐, 남자가. 귀 꼭 잡고 입이나 한 번
쪽쪽 맞췄음 좋겠더라. 혼자 틀어박혀 뭐먹구 사나 몰라.
양자: 그렇게 걱정되믄 니가 밥 싸다 나르지 그래?
누가 과부년 아니랠까봐 밝히기는..
잠녀1: 언니, 참 말두 걸지게 하네. 밝히긴..(흘기고) 헌데..
그 총각 진짜 정체가 뭐 야, 뭐하는 사람이래?
잠녀2: 글쎄 말야. 전번에는 헬리꼽타 타고 날아다니더니,
아우 궁금해죽겠다. 뭐하는 총각이지? (양근을 보고)
우리 동네 순경, 뭐하는 총각이야?
양근: (불어 터진) 내가 알아요.
잠녀2: 니가 모르면 누가 알아? 더미야? 너 아니?
더미: 빚지고 도망왔대요.
잠녀1: 장난친다. 진짜 뭐하는 사람이야? 더미 넌 알지?
양자: 우리 더미가 어떻게 알아!
잠녀1: 아, 왜 몰라? 언니네 집서 잠까지 자구 갔다메?
이 섬 구석까지 짐 싸 들구
들온 건 더미한테 맘 있어 그런 거 아냐?
양근: 아줌마!
더미: (동시에) 아줌마 진짜 왜 그러세요.
잠녀2: 어떡하니~ 양근아. 잘하믄 너 남 좋은 일
시키구 헛물 키겠다~
양자: 이놈의 예편네가! (잠녀2의 함지를 휙- 뒤집고 일어난다)
잠녀2: 어머머머, 어머머머! (손으로 해물을 주워 담으며) 미쳤수!
양자: 왜 자꾸 그 인간하구 우리 더미하구 줄을 대!
심심하믄 가 소금 집어 먹구 라디오나 들어!
씬42 동, 조금 떨어진 곳(오후)
양자와 더미, 빈 함지를 들고 걸어간다. 양근, 쫓아온다.
양근: 더미야! 더미야!! (뛰어온다)
양자: (보고) 딴 데루 새지 말구, 바루 들어와. 나 먼저 갈 테니깐.
양자, 먼저 걸어가고, 양근, 손에 잡지책을 들고 더미에게 온다.
양근: (내민다) 목포 갔다 사 왔다. 쫌 지난 거래두 이쁜 옷 많더라.
더미: (흘겨보다, 양근의 배를 주먹으로 아프게 내지른다)
양근: (진짜 숨이 막혀서) 아! 왜 그래, 또! 치지 좀 마!
진짜 이러다 니 손에 죽을 것 같아! 기집애야!
더미: 내 편지 누가 니 맘대루 엄마한테 빼돌리래!
양근: 어! 어떻게 알았냐?
더미: 너, 부탁인데. 내 일에 신경 꺼! 내가 니 엄마 닭두
아니구, 니가 내 뼝아리 두 아니구! 제발 나 줌 나??!
그만 졸졸 따라다녀!
양근: 왜 나한테만 꽥꽥 거려! 기껏 지 생각해서 (잡지 흔들며)
헌책방 다 뒤져 사왔더니!
더미: 니네 누나나 갖다 줘!
더미, 쌩하니 뒤돌아선다.
양근: (배 쓰다듬으면서, 소리 지른다) 한더미! 넌 내꺼야!
누가 뭐래두 내 색시라구!! 그 자식 근처엔 얼씬두 마!
이 우양근이 눈에 불키구 볼 거야!
더미: (돌아서서 있는 대로 흘겨보다 종주먹 들어 보이고 간다)
씬43 양자의 집, 마당(밤)
양자, 발 닦은 물을 마당에 휙- 뿌린다. 더미, 세수하고 있다.
양자: 아예 거 들앉아 멱을 깜지, 왜?
더미: 괜히 시비야..세수하는데..
양자: (하품하면서 안방 쪽으로 가다 휙- 돌아서서)
너 혹시라두 밤에 대문 넘었다간 엄마 손에 초상칠 줄 알어!
더미: ... 밤에...괜히.. 뭐하루 나가. 졸려 죽겠는데..
양자: (걸어가며 중얼중얼) 그 놈은 뭐 하루 또 와서 내 속을
뒤집나. 재수 없는 년 등짝엔 걱정이 붙어산다더니..
내 꼴이 그 꼴일세..아구..내 팔자야.
더미: ...(엄마의 눈치를 본다)
씬44 더미의 몽타쥬(밤)
더미, 창고에서 몰래 숨겨 놓았던 동영의 밥을 챙긴다.
소쿠리를 들면 미리 한 그릇 떠서 숨겨 놓은 밥사발과 상추에,
김치, 홍어회 썬 것까지 제법 걸지다. 더미, 채반에 주섬주섬
챙겨 들고 안방 쪽 흘깃거리며 조심스럽게 사립문 쪽으로 간다.
씬45 맹골도 외딴 집, 마당(밤)
동영, 야전식으로 코펠과 버너에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더미, 채반을 들고 들어온다.
더미: 똑똑~~
동영: (보면, 더미다) 어쩐..일이야?
더미: (환하게 웃으며) 맹골도 주민 대표로 위문 방문 왔어요~
동영: ..
더미: 어, 근데 아저씨 밥두 해 먹네~ 불 꺼요,
아저씨. 오늘은요, 이거 먹어요.
(채반 내려놓으며) 짠! 별식으루 홍어 삭힌 것두 있답니다~
동영: ....
더미: (올려다보며) 홍어 싫어해요? 냄새나서 안 먹어요?
동영: 이 밤에 이러고 다니면 동네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더미: 예? (일어난다)
동영: 더미 지금까지 충분히 나한테 친절했고. 그걸로 충분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이런 식의 친절은 내가 원하는 게 아냐.
더미: 뭐예요? 내가 아저씨한테 찐따 붙을까봐 겁내는 거예요?
무식한 섬 껏하구 소문나서 빼두 박두 못할까봐
미리 못 박는 거예요?
동영: 미리 말해두지. 오버하는 거 아는데,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나, 더미하고 연애하려고 여기 온 거 아냐.
더미한테 마음 있어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가 좋아서, 살고 싶어 온 거야.
더미: 누가 뭐래요! 나, 진따 안 붙는다구요! 그냥 궁금해서,
아저씨가 여기까지 뭐하루 왔나! 그게 궁금하고 맘 쓰여서!
저번에 아저씨 얼굴, 무슨 일 있어 보여서 서울 가는 거두
미루구 있었다구요!
동영: 서울은 나하고 상관없이 가. 궁금한 게 있으면 낮에 찾아오고.
더미, 동영을 노려보다 휙! 돌아서 두어 걸음 걷다가 다시 돌아와서
채반을 낚아채 듯 든다.
씬46 외딴집, 앞(밤)
더미, 채반을 들고 간다. 동영, 따라 나왔다.
동영: 잘 가. 밤길인데 조심하고.
더미: (돌아보고) 이 섬은 내가 더 잘 알아요! 댁이나 조심해요!
더미, 씩씩-거리면서 가고. 동영, 문가에 기대 서 더미의 뒷모습을 본다.
(소리) 동영의 트럼펫 소리.
씬47 맹골도 언덕(다른 날)
동영, 트럼펫을 불고 있다. 여름 옷 차림이다. 멀리서, 더미 함지를
이고 가 다가서서 그 모습을 본다. 더미도 여름옷 차림이다.
더미: 체..웃겨 진짜. 온 동네 시끄러서 못살겠네.
누가 듣기 좋다구 날이믄 날마 다 난리야.
한달만 더 들음 귀에 딱지 앉겠다! (흘긴다)
씬48 준희의 방(밤)
준희, 동영의 사진을 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어린시절의 꿈이 생각난다.
준희, 침대를 바라본다. 어린시절의 자신이 누워있다..
씬49 준희의 방(회상/새벽)
천둥, 번개가 친다. 어린 강희, ‘준희야...준희야...
죽지..마..준희야..’ 부르며 악몽에서 벌떡 일어난다.
강희의 눈이 온통 눈물 투성이다.
강희,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데, 어깨가 아프다..
손으로 어깨를 주무른다.
창 밖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또다시 요란한 천둥소리가 난다.
강희, ‘까아!!’ 비명을 지른다.
씬50 창회의 서재 앞/창회의 서재(회상/밤)
잠옷 차림의 강희, 베개를 들고 불빛 새어나오는 서재를 본다.
강희, '아빠...‘부르며 문을 연다.
창회가, 준희의 사진을 보다가 준희의 목도리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다.
창회, ‘준희야...준희야..’ 부르며 울고 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강희.
씬51 준희의 방(현실/밤)
준희, 와인을 마시고 있다. 와인 병이 거진 비었다.
잔, 내려놓고 동영의 사 진을 본다.
준희: 후후..(웃는다, 사진을 본다) 동영씨..나 말야
가끔..아주 가끔..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와인을 마시고)
난 강흴까? 준흴까? (사진을 보고) 책임 질 수 있어..그 말?
내가...준희든..강희든...있는 그래두 아낀다는 말...진짜야?
(웃는다) 진짠지.. 물어보고 싶은데..결정적으루 당신이 없네?
(쓸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또, 웃는다) 김동영씨...어딨는 거야...?
준희, 동영의 사진을 그리운 듯 바라본다.
씬52 빈의 방(아침)
빈, 스킨스쿠버 장비 챙기며 전화를 하고 있다.
책상 위에 군용 쌕, 놓여 있고 그 안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넣는.
빈: 몰핀 취급 안한다니까. 몰핀. 뱀, 빠빠야 분. 그런 구질구질한 건
말두 꺼내지마. (사이) 내가 돌대가리냐? 오경사한테 뽀록난
포인틀 또 쓰게? (벽에 붙여 놓은 동영과 똑같은 지도.
동영이 표시해 놓은 곳에 똑같이 표시해뒀 다. 빈,
진도에 동그라미를 친다) 니가 새 포인트까지 알아서 뭐해?
(사이)며칠 있다 보자. (끊고)
빈, 스킨스쿠버 장비 다 챙기고, 쌕은 둘러매고 밖으로 나가려다
수족관을 본다. 수족관에 먹이를 붓고.
빈: 과식하지 말고. 적당히들 먹고 있어. 형 갔다 올 때까지
천천히 노놔 먹어. 알았냐?
빈, 수족관을 두어 번 툭툭, 쳐주고 밖으로 나간다.
씬53 아세아복장학원 기숙사, 마루(아침)
식사 중인 장봉실, 방육성, 차연과, 기숙사 식구들. 장봉실은 독상 받고.
방육성과 차연은 겸상, 나머지 큰 두레상 두 개에 기숙사 학생들 앉아서
밥 먹고 있다. 연경, 피에르 방, 상희를 비롯해 학생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솥에 밥을 박박 긁어가며 열심히 먹고 있다.
빈, 커다란 배낭을 들고 들어온다. 연경 과 피에르 방, 빈이 반갑다.
‘굿모닝~ 빈씨, 웬일에요? 이 시간에 얼굴을 다 보여주구요~
어! 형!’ 인사한다. 방육성과 차연도 아는 척 한다.
장봉실, 아들을 바라본다.
빈: (배낭을 내려놓고, 연경의 옆에 앉으며)
누나, 내 밥 없어?
연경: (밥솥 보면, 밥 없다) 없긴 왜 없어요! 여기.
(자기 밥그릇을 얼른 밀어준다)
빈: (웃으며 연경의 밥을 먹는다)
피에르: 그거, 형..김치 국물 묻었는데.
이거 먹어. (자기 밥 밀어주는)
상희: (피에르 밥보고) 그거나, 그거나..
피에르: 형 어디 가?
빈: 남해안. 뭐 필요한거 있으면 말해요.
차연: (생뚱맞다) 난, 코티분!
방육성: (장봉실의 안색을 살피며, 차연에게 눈치 준다)
차연: 왜요..? 왜? 빈이가 말하래잖아요..
빈: 이모님. 코티분은 내가 서울 와서 하나 사줄게요.
차연: 어머머..어머머..이모님, 이모님..(기분 나쁘다)
연경: 빈씨..난 이쁜..조개껍질.
피에르/상희: 욱..(하고 토하는 흉내)
빈: 알았어, 누나. 밥 값 해야지. 배낭에 꽉, 꽉! 채워다 줄께.
연경: 아니..난 이쁜 조개껍질 딱..하나면 되요..
피에르/상희: 욱욱..(토하는 흉내)
연경: (아랑곳 않고, 빈의 귀에) 그 안에 빈씨..마음만 채워다
주면..좋겠어..
피에르 방과 상희, 입 막고 마당으로 뛰쳐나간다.
빈: (숟가락 놓고, 배낭을 든다) 여사님은 뭐 필요하신
거 없으세요?
장봉실: ..
빈: 없으신가보네. 다녀오겠습니다. (일어난다)
방육성: 장빈! 가지 마! 너 또 뭔 사고 칠라 그래!
사골 쳐두 우리 행동반경 안에서 치란 말야! 빈아!! (일어난다)
씬54 앙상블 앞(새벽)
‘경축, 장봉실 선생 오사카 엑스포 한국대표 디자이너로 선정’
플랜카드가 붙어 있다.
윌리스 지프가 서 있다. 빈, 윌리스 지프로 가다가 플랜카드를
한번 돌아본다. 고개 한번 끄덕이고, 짐 싣는.
(장봉실의 소리) 꼭, 가야겠니?
빈, 돌아보면 따라 나온 장봉실이다.
빈: 필요한거 있으세요? 생각나셨어요?
장봉실: 너. 내 아들 빈이 필요해.
빈: (굳는다)
장봉실: 이제 그만 하면 안 되겠니? 지금까진..그래. 그냥 답답해서.
니 안에 답답한게 쌓여서..그런 줄 알았어.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빈아, 이제 그만하면 안되겠니..
빈: 하하-(웃고) 여사님, 왜 이러세요. 소름 끼칠라 그래요.
아, 이런. 벌써 소름 돋네.
장봉실: 빈아..
빈: (차다) 그쯤에서 멈추세요.
장봉실: 우리..너무 늦은 거니?
빈: 빠르고 늦고가 있나요? 여사님과 저. 좋잖아요.
이대로. 난요, 딱 이대로가 좋아요. (차에 올라탄다)
들어가서 식사 하세요.
빈, 시동 걸고 음악을 튼다. 요란한 음악을 울리면서 달려가는 지프.
장봉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다가온 방육성,
장봉실 옆에 선다.
장봉실: 저..애가 태어났을 때. 너무 미웠어..아주..오랫동안
미워했어. 이제...저 애가..나한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는데..이젠 빈이 날 미워하네..
방육성: ...(안타까운 표정으로 장봉실을 본다)
장봉실: (지프가 사라진 길을 바라본다)
씬55 고창회의 저택, 마당(아침)
준희, 짐을 가져와서 윌리스 지프 뒷좌석에 놓고 조수석에 탄다.
빈: 의외다. 회장님이 선뜻 허락을 다 하시고. 며칠이나 걸릴 진
나도 장담 못하겠는데.
준희: 널 믿으시나 보지. 아빤, 니가 뭐하고 다니는지 모르시니까.
빈: 여사님을 믿으시는 거 아닌가? 회장님, 혹시 우리 여사님한테
마음이..? 가만 있어봐. 그럼 너하고 나 촌수가 복잡해지는 거 아냐?
준희: 장난치지 마. 농담도 하지 말고. 내 머릿속 지금도 충분히 복잡해.
빈: (준희의 어깨를 툭, 친다)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마. 믿어.
찾을 수 있다고. 형, 만나서 스쿠버나 하고, 아예 여름휴가
보내고 온다. 그렇게 믿어. 감이 좋잖아~
준희: (피식- 웃는다)
차, 출발한다. 차가 달리자, 준희의 목에 감긴 긴 스카프가
바람에 날린다.
씬56 맹골도 해안
반바지 차림의 동영, 해안 바위 위에 맨발로 앉아 있다.
떨어진 곳에서 더미, 미역을 말리고 있었다.
쭉- 돌 위에 미역이 널려있다.
씬57 동, 동영 있는 곳
동영,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여름의 폭염이다.
동영, 바다낚시를 한다.
동영, 바다속으로 걸어드러간다.
씬60 동, 더미 있는 곳
더미, 쭈그리고 앉아 마른 미역을 광주리에
옮겨 담다가 동영을 본다.
더미: 헤엄도 잘 치네.. 우리 동네 잠녀로 눌러 앉을 생각이야?
더미: ?? (일어서서 본다)
씬61 바다
동영의 머리가 올라왔다. 다시 바다로 가라앉는다.
씬62 더미 있는 곳
더미: 뭐야..왜..저래..? (궁금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목을
빼고 본다. 동영의 머리가 다시 한번 올라왔다 내려간다)
더미: 뭐...지..(잠시 생각하다, 뛰어간다)
씬63 해안가
동영, 헤엄쳐서 오고 있다. 힘들어 보인다.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더미, 헉헉- 거리며 뛰어와 철벙철벙 발을 담그며
동영 쪽으로 간다.
더미: 왜 그래요! 쥐났어요!!
동영: ...(허우적거리며 걸어온다)
더미: (동영 쪽으로 더 들어간다) 아저씨!! 쥐났냐구요!!!
동영: (종아리까지 잠긴 채 더미를 본다)
더미: (동영에게 다가가) 아저씨!! 이봐요!! (동영을 부축한다)
동영, 진땀을 흘리고 있다.
더미, 동영을 물 밖으로 끌어낸다. 동영의 다리에
나 있는 상처를 본다.
보라색으로 일정부분이 퉁퉁 부어있다. 물 밖으로 나와 보면,
작은 이빨 자국 두개가 나 있고 피가 흐른다.
더미: !! (동영에게) 범치한테 물렸어요!!!
씬64 해안 모래톱(시간경과)
더미, 진땀을 흘리고 정신을 잃은 동영을 본다.
더미, 동영의 다리에 있는 상처에서 독을 빨아 빼내기 시작한다.
더미, 빨고 뱉고. 빨고 뱉고를 반복한다.
씬65 동, 시간경과(석양)
더미, 동영의 상처에 신으로 떠온 바닷물을 붓는다.
더미, 다시 뜨려고 일어서는데 자기도 모르게 휘청-한다.
더미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더미, 털퍼덕 무릎 꿇고 앉는다.
가쁜 호흡을 몰아쉰다. 더미, 그대로 모래사장에 푹- 쓰러진다.
씬66 동, 장소(밤)
더미와 동영, 쓰러져 있다.
동영, 정신이 든다. 몸을 일으켜 자신의 상처를 확인하다 쓰러져 있는
더미를 보게된다.
동영: 더미...? (다가간다)
더미: (의식이 없다)
동영: (볼을 툭툭- 치면서) 더미야!! 더미야!!
씬1 맹골도, 해변(밤)
깨어난 동영, 아직도 중독이 완전히 안 풀렸다.
겨우 몸을 일으키다, 쓰러져 있는 더미를 발견한다.
동영: 더미? (다가간다)
더미: ...(얼굴에 진땀이 배어있고, 창백한 입술. 의식이 없다)
동영: ! (사태가 파악된다) 더미야! 더미야!!
(얼굴을 손으로 쳐본다)
동영, 더미를 흔들어 보지만 더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씬2 맹골도, 언덕(밤)
맨발에 윗옷까지 벗은 채 동영, 풀숲을 헤치며 더미를 업고
달리고 있다. 스스로도 아직 몸을 채 가누지 못한 상태라
힘겨워 보인다.
씬3 동영의 몽타쥬(밤)
동영, 더미를 업고 들어와 쓰러지듯 야간 침상에 눕힌다.
동영, 더미의 이마를 만져 보고 심장에 귀를 대어 본다.
동영, 석유버너에 불을 붙여 코펠에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짐을 마구 뒤지 면 홍차나, 혹은 차 통이 나온다.
코펠 안에 홍차를 붓는다. 동영, 식은 홍차를 가져와 더미를
부축하고 더미의 입을 억지로 벌린다.
볼을 눌러 입을 벌리고 홍차를 입에 붓는다.
‘뱉어!! 헹궈서 뱉어내야 해! 뱉으라니까!! 부탁이다!
제발!! 더미야!! 더미야!!’ 동영, 더미를 붙잡고 애원을 한다.
동영, 더미의 입에 홍차를 흘려 넘겨주고.. 의식없는 더미,
가까스로 입에 머금은 홍차를 흘려 낸다.
동영, 그렇게 몇 번이고..몇 번이고 더미의 입안을 소독한다.
씬4 양자의 집, 안방(밤)
(라디오 소리) 그리하여..개구리를 살려준 은공으로 형윤낭자는
가족들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
내일 이 시간에는 은혜 갚은 뱀 각시 설화로 찾아뵙겠습니다.
입체야담. 극본에 박서림. 연출에 허환이었습니다.
방안에는 더미와 같이 먹으려고 준비한 겸상이 놓여져 있다.
양자, 밥상 앞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가,
마지막 멘트가 나오기 시작하면. ‘아구..잘됐네..거봐 응,
개구리두 은혜를 갚는데.. 은혜 모르는 것들은 머리
검은 짐승들밖엔 없지.사람이 젤루 독해,사람이’
중얼거리면서 라디오를 끈다.
양자: 근데..미역 걷으루 간 년이 해가 다 빠지도록
어딜 쏴 돌아다니나? (일어서서 마루문을 열어 본다)
양숙이 들어왔다구, 양근이네 마실갔나?
양자, 시렁 위에 얹어 놓은 댓병 소주를 내린다.
밥뚜껑에 따라서 마시고.
‘캬...좋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야..이만한 낙이 있나’
구시렁거리며 술을 따라 마신다.
씬5 동영의 외딴 집 몽타쥬(밤)
동영, 야전용 구급약 상자에서 해열제를 꺼내, 잘 삼키도록
입으로 반을 깨 물어 자른 다음 더미의 입에 넣어준다.
더미, 보라색으로 변했던 입술에 조금 핏기가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오한에 덜덜 떨기 시작한다.
동영, 큰 코펠에 떠온 물로 수건을 적셔 짠다.
더미의 얼굴에 맺힌 진땀을 닦아준다.
더미의 옷 전체가 젖어 있다. 동영, 망설이는데.. 더미,
이까지 부딪치며 온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한다.
동영, 더미의 옷을 벗겨 낸다. 더미의 목과 속치마로 가려진
어깨 부분을 정성껏 수건으로 닦아 내기 시작한다.
더미, 악몽을 꾸고 있다.
(인서트) 대구 미8군부대에서 총을 맞던 장면이 어지럽게 지나간다.
동영, 수건으로 더미를 닦아 주다 어깨에 있는 총상을 본다.
동영: ..(총상을 만져본다)
동영, 더미의 몸에 모포를 정성껏 덮어 주고 있다.
더미의 어지러운 꿈이 고통스럽게 계속된다.
더미, 입술을 달싹거리며 뭐라고 말을 한다.
동영, 무슨 말인가 들어보려고
더미에게 얼굴을 기울인다.
(플래쉬) 더미, 미군에게 애원하는 장면이다.
더미: .....알..러..뷰....
동영: ! (놀라는.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더미: 알...러...뷰... 잘..못했어..요..(눈물이 솟는다)
동영: ...(손을 뻗어 더미의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준다)
더미: 알..러..뷰...(허공에서 손을 휘젓는다)
동영: (더미의 손을 힘주어 잡아준다)
더미, 마치 동영의 손을 잡으면 살 수 있다는 듯...손을 꼭 움켜쥔다.
동영, 자신의 손에 모든 것을 내 맡긴 듯 의지하는 더미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씬6 동영의 외딴집(시간경과)
자신도 몸이 회복되지 않은 동영, 잠들어 있다.
더미의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어 있는 동영. 문득, 나지막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 그 소리에 깨어나 바라보면. 더미, 동영의 손을 잡고
편안한 얼굴로 자고 있다.
동영, 다른 손으로 더미의 이마를 만져본다.
열이 많이 내려 있다.
동영,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여며 주려고 더미에게 잡힌 손을
빼려고 하면. 더미, 결코 놓지 않겠다는 듯이 깍지 낀 손을
풀지 않는다.
동영: ..(땀에 젖어 붙은 더미의 머리칼을 쓸어준다)
씬7 양자의 집, 마루(새벽)
문이 활짝 열려져 있다. 열린 문 안으로 밥상과 술병이
그대로 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양자, 더워서 마루에
나와 잠이 들었다.
요란하게 코를 댕댕 골면서 잠든 양자,
모기에게 물렸는지 자신의 몸을 벅벅 긁는다.
양자: (잠이 안 깬) 더미야...엄마..물 좀.... 더미야..엄마..물..
양자, 하품을 하며, 일어나 앉는다. 눈을 긁적긁적 긁다가 열린
안방 문으로 손 넣어 더듬더듬 탁상시계를 꺼내 본다.
새벽 3시가 막 넘어가고 있다.
양자, 탁상시계 놓고 자리에서 어기적거리며 일어난다.
씬8 양자의 집, 더미의 방(새벽)
양자, ‘더미, 자냐?’ 하면서 들어온다.
양자, 불을 켠다. 텅 빈 방안. 이부자리도 펴지 않은 방.
양자: ..(불길한) !! (혹여나 싶은, 짚이는 바가 있다)
양자, 불도 안 끄고 나가 허둥지둥 신발을 꿰찬다.
씬9 맹골도, 언덕 길(새벽)
동영, 모포에 더미를 잘 싸서 업고 내려오고 있다.
더미, 동영에게 푹- 업혀 쌔근거리면서 자고 있다.
반대편에서 헐레벌떡 뛰어 올라오는 양자.
동영과 양자, 마주친다. 양자, 더미를 업고 있는 것을 보고.
양자: 너, 우리 딸한테 무슨 짓 한 거야!
(동영의 멱살을 틀어쥔다)
동영: 사정은 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더미부터요.
찬바람 쐬면 안 좋습니다.
씬10 양자의 집, 더미의 방(새벽)
\동영, 더미를 눕힌다. 양자, 보면 더미 속치마 바람이다.
양자, ‘아이고..더미야.. 아이구...맙소사...더미야.. 손발 차건 것 줌 봐..
이 일을 어쩌나.’ 하면서 손발을 주무른다. 동영, 어떻게 해야 싶어 본다.
양자: (더미의 속치마 바람이 의식된다) 뭘 봐!!
(이불을 목에까지 끌어당겨 덮는)
응, 이날 이때까지 물질 했어두 범치한테 물린 놈은 당신이 두 번째야!
배암이 백지루 널 물어! 물만 하니까 물지!
응, 죽을라믄 지나 죽지! 왜 내 딸까지 이 꼴을 만들어!
동영: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양자: 아! 뭘 보구 섰어, 안나가구! 죄송이구 나발이구 얼른 나가!
양자, 동영에게 베개를 집어 던진다.
씬11 양자의 집, 마당(새벽)
양자, 부엌에서 김이 설설 끓어오르는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나온다.
그때까지 마당에 서 있는 동영.
양자: 우리 집 마당에 말뚝 박았어? 왜 안 가구 그래!
동영: 더미씨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양자: 몰라 물어?! 엄한데 섰다 벼락 맞는다구
니 놈 땜에 죽을 뻔 한 일이 있었 지!
동영: ...총에 맞은 게 언젠가요?
양자: ! (속으로 덜컹, 하지만..대야를 내려놓고) 총...뭔..총..
동영: 그 흉터..총에 맞은 상천지, 개한테 물린 상천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양자: !
동영: 전쟁 중에 이 섬엔..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 압니다..
언제 그런 건가요?
양자: 댁이..건 알아 뭐하나? 결혼두 안한 우리 더미 멀건
속살 본 것 만해두 분통이 터지는 판에.
당신이 그딴 건 알아서 뭐해!
동영: 돕고 싶습니다..왜..그토록 상처가..마음속에 깊게 남았는지
..제가, 도울 수만 있다면 돕고 싶습니다.
양자: 이런 오지랖 넓은 놈. (대야를 들어 동영에게 물을 뒤집어씌운다)
동영: ..
양자: (대야를 패대기치며) 돕구 싶어! 돕구 싶으믄 당장 나가!
너만 우리 동네서 나가면 돼! 허고 많은 섬 중에
왜 하필 맹골도야! 니가 나가주는 게 우리 더미 돕구,
나 돕는 길이야! 당장 나가!!
양자, 잡아먹을 듯이 동영을 노려본다.
씬14 해안 언덕(다른 날, 낮)
동영, 바다를 보며 서 있다. 회복이 된 더미,
언덕으로 걸어온다.
동영, 인기척에 돌아보면 더미다. 더미, 동영의 옆에 선다.
더미와 동영, 아무 말이 없다. 잠시 서로를 바라만 보는 두 사람.
동영: 괜..찮아..?
더미: (고개 끄덕이고) 괜찮아요...?
동영: (고개 끄덕인다)
두 사람, 다시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기만 한다.
동영: 고마워...살려줘서..
더미: 고마워요...살려줘서..
다시,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더미: 언제...가요? 아저씨...언제 여기 떠나나요?
동영: 안가. 난 여기 있어. 더민? 더민 서울 가는 게 소원이지..?
언제 갈..꺼야?
더미: 소원도 바뀔 수 있다는 거....알았어요..
동영: (본다)
더미: 안가요, 나. 아저씨가..안가면..나도 안가요..
여기 있을 거예요...(눈물이 글썽 하다, 뚝- 떨어진다)
동영: 왜...울어..
더미: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몰라요..나두. 아저씬..아저씨
맘을 다 아나요.. 다 말할 수 있나요...?
난 아닌데...난 모르겠는데...
동영: ...
더미: (눈물을 가득 담고 동영을 본다) 아저씨가...죽을지도
모른다고...생각했어요.
심장이..터져버리는 줄 알았어요...심장이 터져 아저씨보다
...내가 먼저 죽겠구나...그 마음 밖에 없었어요..
그게..다에요..내가 아는 건..그게 다에요..
더미, 격정에 못 이겨 동영의 목에 매달린다.
동영, 그런 더미를 꼭 안아준다.
두 사람, 그렇게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서로를 감싸 안는다. (Dis)
<8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