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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주둔군
하 근 찬
무덤이 하나 있다. 어찌나 큰 무덤인지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입을 딱 벌린다. 꼭 조그마한 산봉우리 같다.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잔디가 이 거창한 흙무덤을 곱게 덮고 있다.
박씨의 선조 되는 어떤 임금이 묻혀 있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무덤을 박씨 왕릉(王陵)이라고 부른다. 혹은 그냥 왕릉이라고만 부르기도 한다. 능 둘레에는 소나무가 서 있다. 아름드리 노송이 빽빽이 늘어서서 하늘을 향해 서걱서걱 가지들을 흔들고 있다. 아침 해돋이 때와 저녁 해거름이면 이 일대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소나무 줄기 사이로 좍 뻗어드는 아침 햇살. 그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능의 어깨에 맺힌 이슬들. 그리고 우거진 숲 너머로 스러져가는 저녁놀은 정말 볼 만하다.
하루에 두 번씩 이맘때가 되면 꼭 이곳을 찾아 나오는 사람이 있다. 머리에 어린애 주먹만한 상투를 튼 박첨지(朴僉知) 이다. 망태기를 메고 손에 낫을 든 박첨지는 먼저 숲속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닌다. 자라난 풀이 있으면 베고, 떨어진 솔방울이나 막대기 같은 것이 있으면 줍는 것이다. 다음은 능을 한 바퀴 돌며 두두룩한* 잔디를 두루 살핀다. 혹 그새라도 잡초가 돋아나 있으면 낫으로 곱게 도려내버린다. 그리고 능 곁에 앉아 허리에 찌른 담뱃대를 빼 든다. 박첨지의 콧구멍은 남달리 크다. 큰 두 구멍으로 연기를 푸우 내뿜으며 능의 위용(偉容)을 우러러보는 것이다.
“일등이지, 언제 봐도 일등이라니까. 우리 조상은 참 훌륭도 했지.”
박첨지는 왕릉 건넛마을에 산다. 손바닥맏한 논배미를 부치며 느지막이 얻은 딸 금례(今禮)와 함께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박첨지는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자기네 조상이 임금이라는 자랑, 그러니까 자기네 박씨가 일등이라는 자랑을 가슴에 지니고 상투를 기르며, 왕룽을 돌보는 것으로 큰 낙을 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첨지를 능지기 영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더러는 상투쟁이 영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누가 시키는 일도 아니고, 무슨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비가 오면 삿갓을 쓰곤, 눈이 오면 감발*을 하고, 박첨지는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능에 나타난다. 자기 집 마당은 지저분해도 상관없지만, 왕릉이 어질러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라도 능의 위용을 우러러보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이다.
묘한 늙은이다.
이른 봄, 어느 날 새벽, 박첨지는 목을 움츠리며 숲으로 들어섰다.
살에 감기는 바람결이 아직 쌀쌀했다. 숲속에 깔린 공기는 더욱 냉랭했다. 박첨지는 서릿발이 희끗희끗 돋은 소나무 줄기 사이로 걸음을 옮기며 둘레둘레 사방을 살펴나갔다. 밤새 한두 개씩 떨어진 솔방울 밖에는 별로 손볼 것이 없었다. 어정어정 능께로 걸어가다가,
“으?”
걸음을 멈추었다. 솔밭 저쪽, 냇물로 내려가는 빈터에 웬 낯선 물건들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무슨 자동차 같기는 한데 좀 괴상하게 생긴 것이 여러 개 희뿌연 서리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잘 보니 천막도 두어 개 눈에 띄었다. 어제 해거름까지도 아무 일이 없었는데 어찌된 일일까? 박첨지는 망태기를 덜렁거리며 그쪽으로 잰걸음을 쳤다. 자동차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바퀴가 여러 개 달린 괴상하게 큰 자동차였다. 그런 자동차가 여러 대 짐을 가득가득 싣고 있었다. 어떤 자동차의 등어리에는 무슨 연장인지 집게처럼 생긴 것이 우뚝 위로 솟구쳐 있기도 했다. 그리고 바퀴가 굵은 쇠사슬 같은 것으로 이어져 있고, 밭 가는 쟁기 비슷한 거창한 모습이 앞에 붙어 있는 얄궂은 차도 있었다. 멀뚱히 서서 두 눈을 굴렁거리던 박첨지는 얼른 시선을 천막 쪽으로 돌렸다. 천막 속에서 사람이 하나 나타났던 것이다. 턱없이 키가 큰 사람이었다. 바람기가 이렇게 냉랭한데 윗도리는 러닝셔츠 한 장이었다. 그리고 무슨 사람인지 머리카락이 온통 물을 들인 것처럼 노랬다. 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박첨지는,
“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도 노란 빛깔이었던 것이다. 움푹 꺼져 들어간 두 눈자위 속에서 노르스름한 눈동자가 기분 나쁘게 반질거리고 있었다. 꼭 고양이 눈깔 같았다. 박첨지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코는 또 왜 저렇게 클까. 좁다란 얼굴을 코가 온통 다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 밑의 짧은 인중과 합죽한 입, 그리고 앞으로 휘어져 나온 보보족한 턱.
“더럽게 생겨먹었네.”
박첨지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슬그머니 얼굴을 돌렸다. 박첨지를 보자, 그 괴상한 사람은 씽긋 웃으며 휙! 하고 휘파람을 날렸다. 그리고 건들건들 냇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물 위에 동녘 하늘이 불그레 어리고 있었다.
서양 사람이 왔다. 코가 삐쭉한 서양 병정들이 왕릉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진 것은 해가 두어 뼘가량 떠올랐을 무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서 왕릉으로 쏟아져나갔다.
아버지의 밥상이 나자, 금례는 얼른 부엌으로 날랐다. 그리고 설거지를 서둘렀다. 서양 사람은 대체 코가 얼마나 크단 말인가, 눈이 노랗다니 정말일까? 마음이 떨려서 일이 잘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그릇을 대강대강 물에 적셨다가 건져내기가 바쁘게 부엌문 밖으로 아버지를 살폈다. 박첨지는 마루에 나와 상투를 빳빳이 세우고 앉아서 무슨 화라도 난 사람처럼 담뱃대를 빡빡 빨고 있었다. 쉬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지가 않았다. 하는 수가 없었다. 금례는 허리에 동인 각띠*를 발끈 조르고, 부엌 뒷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울타리 구멍으로 빠졌다. 왕릉 숲에 사람들이 허옇게 끓고 있었다. 금례는 치마폭을 펄럭거리며 논길을 달렸다.
참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엄청나게 큰 보습을 앞에 단 얄궂은 차가 우르릉우르릉 소리를 지르며 흙을 밀고 있었다. 벌건 흙이 보습 앞에서 뭉클뭉클 보기 좋게 끓어올랐다. 높은 데 흙을 깎아다가 낮은 자리로 갖다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끼익…… 소리를 내며 그 큰 덩치가 그 자리에서 삥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참 희한하지 예?”
“무슨 차가 저런 차가 다 있노.”
“재주도 용하지 예?”
“말통도 얄궂게 생겼다.”
“꼭 물레방아 돌아가는 것 안 같응교. 그죠?”
“글씨.”
아낙네들은 이런 소리를 주고받으며 신기해하였다. 남정네들은 남정네들대로 공론이 자자했다.
“힘도 시제.”
“황소 몇 마리 힘이나 될까?”
“서너 마리 힘은 안되겠나?”
“서너 마리? 이 사람아, 서너 마릴 가지고 저렇게 거창한 흙을 우째 밀어붙인다 말고.”
“그럼?”
“적어도 한 삼십 마리 힘은 될 끼다.”
“뭐, 삼십 마리? 암만 그래도 그렇게사 안될 끼다. 황소 한 마리 힘도 어디라고.”
“허허 내……”
제일 좋아서 날뛰는 것은 역시 애들이었다. 애들의 눈에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죄다 신기하고 이상스러웠다. 흙을 밀어다 붙이는 차는 물론이고, 짐을 잔뜩 싣고 있는 자동차들, 그 자동차에 그려진 별이랑 꼬불꼬불한 글자들, 커다란 천막, 그리고 병정들의 옷에 달린 단추, 계급장, 신고 있는 구두, 심지어는 무엇을 씹고 있는 그 입눌림까지가 신기해서 못 견디었다.
“멀 저렇게 씹어쌓노?”
“글씨.”
“맛있게 씹어쌓제?”
“잉, 딱딱 소리가 난다. 그쟈?”
“잉.”
금례는 처음엔 아낙네들의 뒤에 서서 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덧 그녀들의 앞으로 나와 서 있었다. 속눈썹이 짙은 서글서글한 두 눈을 곧장 깜짝거리며 애들 못지않게 재미있어했다. 가장 재미나는 것은 땅 고르는 차를 운전하고 있는 병정이었다. 작업모를 눌러쓴 그 병정은 차가 아낙네들이 서 있는 쪽으로 가까워질 때마다 휙! 휘익! 껄렁한 휘파람을 날려댔다. 그리고 혼자 뭐라고 씨부렁거리며 능글능글대고 웃는 것이었다. 그 웃는 눈이 분명히 노르스름한 빛깔이었다. 작업모 밑으로 나와 있는 머리카락도 치잣물을 들인 것처럼 노랬다. 그리고 온 얼굴을 차지하고 있는 듯한 겁나게 큰 코. 금례는 등골이 으스스 떨리는 것 같았다. 징그럽고 얄궂었다. 그러나 어찐 일인지 돌아서고 싶지가 않았다. 구경꾼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으나 금례는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자식 참 코도 억씨기 크제.”
삼단 같은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어깨 위로 드리우고 빨간 댕기를 곧장 만지 작거리며 저만치 멀어져간 차가 다시 가까워져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서양 병정들이 능 옆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박첨지는 아침저녁 하루 두 번씩 나가던 능으로 세 번이고 네 번이고 틈이 나는 대로 가서 돌보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질 않게 되었다. 병정들이 자리 잡은 터에는 어른의 키 두 배나 됨직한 높다란 철망이 빙 둘러쳐졌다. 그러니 병정들이 나와서 능을 어쩔까 하는 걱정은 별로 없었으나 마을 조무래기들이 말썽이었다. 병정들이 온 뒤부터 노상 능에서 들끓는 것이었다. 학교에 안 가는 것들은 아침 밥술을 놓기가 바빴고, 학교에 다니는 녀석들은 돌아와 책보를 내던지기가 바빴다. 뛰어가는 동작들도 전과는 달랐다. 전에는 뛴다 해도 고작 주먹을 쥐는 정도였으나 요즘 능으로 뛰어가는 걸 보면 고개를 까딱까딱 놀리며 토끼 새끼처럼 깡총거리는 것이 일쑤였다. 입에 무엇인지 잘강잘강 씹을 것이라도 들었을 경우에는 더욱 무르팍을 높이 쳐들며 깡충거렸다. 저희들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저희들이야 무르팍을 올려 뛰든지 내려 뛰든지 능에서 곱게만 놀아주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러나 애들은 어디를 가나 곱게 놀아주질 않았다. 그들이 놀고 난 자리에는 으레 골칫거리가 생겨 있었다. 무엇을 했는지 땅바닥이 여기저기 후벼파졌는가 하면, 나뭇가지가 우지끈 부러져 있기도 하고, 종이 부스러기는 물론 지푸라기나 새끼 오리 같은 것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기도 했다. 한번은 애들이 놀고 난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박첨지는 그만 쭉 미끄러졌다. 똥이었다. 어떤 녀석 이 볼일을 보았으면 개라도 좋아하게 그대로 둘 일이지 그게 뭐라고 풀을 뜯어서 얌전히 덮어놓았던 것이다. 박첨지는 뒤치다꺼리를 하느라고 가뜩이나 심사가 고약한 판인데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누런 것이 묻은 짚세기 바닥을 풀숲에 문질러대며,
“이누묵 손들 어디 두고 보자. 밑구녁을 안 째놓는가구마.”
하고 이맛살을 꿈틀거렸다.
그런 일이 있는 다음부터 박첨지는 능에 나갈 때마다 큼직한 작대기를 하나 질질 끌고 나가는 것이었다.
들길에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따스한 어느 날 오후였다. 박첨지는 작대기를 질질 끌며,
“만고강산 어으! 유라암할 제…….”
하고 어슬렁어술렁 왕릉을 향해 걸었다.
“삼신산이 어디메뇨.”
제법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가락을 뽑아나가던 박첨지는 왕릉 제단(祭壇)에 웬 사람들이 모여 들끓고 있는 것이 눈에 띄자, 삼신산이고 뭐고 다 걷어치워버렸다. 그리고 잰겉음을 쳤다.
서양 병정들이었다. 서양 병정들이 대여섯 사람 능 앞에 마련되어 있는 돌 제단에다가 무엇 인가를 푸지게 풀어헤쳐놓고 떠들어대며 먹고 있는 것이었다. 제단에 궁둥이를 반쯤 걸치고 앉아서 원숭이처럼 무엇을 까서는 곧장 입으로 가져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능에 비스듬히 기대앉아서 깡통을 빨고 있는 자도 있고, 제단 가에 엎드려서 무엇인가 날름날름 핥으며 장딴지를 흔들고 있는 자, 번듯이 드러누워서 방정맞게 손짓을 해가며 휘파람을 불고 있는 자…… 저희들 세상처럼 멋대로 놀고 있었고, 그리고 마을 조무래기들이 빙 둘러서서 입
에 손가락들을 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음.”
박첨지는 신음소리 같은 것이 목구멍을 기어올라오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작대기를 쥔 손에 절로 힘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나무 그늘에 우뚝 멈추어 서서 잠시 그들의 하는 수작을 지켜보았다. 능에 기대앉아서 깡통을 빨고 있던 작자가 별안간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입에서 깡통을 떼더니 마을 조무래기들을 향해 쳐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나 주이소!”
“나 주이소!”
“할로 할로, 나 주이소예!”
하고 손을 내밀며 떠들어댔다.
작자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깡통을 휙! 아이들 머리 위로 날렸다. 하늘로 솟아오른 깡통이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자, 아이들은 와아 소리를 지르며 앞을 다투어 몰려갔다. 깡통이 땅에 떨어지자 아이들은 사정없이 그 위로 덮치는 것이었다.
“으앗핫핫하…….”
작자는 재미가 나서 못 견디겠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제단에 궁둥이를 걸치고 앉아서 원숭이처럼 무엇을 곧장 까먹고 있던 자가,
“헤이 차식틀아!”
하고 입에 손가락을 넣더니 후익 괴상하게 큰 휘파람을 날렸다.
깡통은 결사적인 한 아이의 차지가 되고 딴 아이들은 괴상한 휘파람 소리에 모두 얼굴을 들었다. 얼굴들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휘파람을 분 병정은 이번에는 자기가 아이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던지기 시작했다. 빠딱빠딱한 종이에 싸인 것이 핑! 하고 공중으로 날아오르자 아이들은 다시 와아 하고 정신없이 설쳤다.
박첨지는 그 이상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마에 거꾸로 여덟 팔(八)자를 세우며 작대기를 번쩍 쳐들었다. 어린애 주먹만한 상투도 곤두섰다.
“이누묵 손들아아!”
고함소리가 숲속에 쩌렁 울렸다.
“이 빌어묵을 손들……”
박첨지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아이들을 향해 냅다 달려가고 있었다.
박첨지가 작대기를 쳐들고 달려오는 것을 보자 아이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은 메뚜기 튀듯 사방으로 보기 좋게 뺑소니를 쳤다. 뺑소니를 치면서도 어떤 녀석이,
“상투쟁이 영감·…‥”
하고 소리를 짙렀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상투쟁이 영감!”
하고 받았다.¨
“아―나 잡아라. 능지기 영감……”
“아―나 잡아라. 능지기 영감……”
박첨지는 화가 상투 끝까지 올라서 곧장 두 눈을 굴렁거리며 작대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숨이 차서 한 놈도 따를 수가 없었다.
이 광경을 본 서양 병정들은 모두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헤이 영캄 하바하바……”
“찹아라 찹아라一”
“후익― 후익―”
어떤 병정은 얼른 카메라를 꺼내더니 찰깍찰깍 사진을 찍어대는 것이었다.
마을의 밤은 호젓했다. 가물가물 등잔불이 켜졌다가는 가물가물 한 개씩 꺼져갔다. 그리고 마을은 어둠 속에 고요히 가라앉는 것이었다. 이따금 멀리 신작로를 향해 개 짖는 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을 흔들어놓을 뿐이었다.
그러나 서양 병정들이 들어온 뒤부터는 마을도 밤도 그렇게 호젓할 수만은 없었다. 이집 저집의 아랫방에서 등잔불이 아닌 눈부시게 밝은 불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불빛은 서양 병정들이 자리 잡은 곳으로부터 가느다란 줄을 통해서 오는 것이었다. 눈부시게 밝은 불빛이 쏟아져 나오는 방문에는 또 으레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는 볼 수 없던 가지각색의 얼룩덜룩한 베조각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꼭 그 베조각 같은 계집들이 그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들어앉았다. 그 계집들은 밤과 낮의 구별도 없었다. 언제나 팔다리와
앞가슴을 헤치고 있었다. 치마는 으레 무릎 위에 오는 것이었고, 남자의 속잠방이 같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끼고 있었다. 얼굴에는 또 왜 그렇게 요란하게 황칠*들을 하는지 정말 가관이었다. 그런 꼬락서니들을 하고 예사로 마을을 쏘다니는 것이었다.
“양깔보―”
“똥깔보―”
아이들이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을 리가 없었다. 마을 노인네들은 세상은 다된 세상이라고 한숨을 짓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비위가 상해서 못 견디는 것은 박첨지였다. 그러잖아도 왕릉이 어지러워져서 심사가 온전칠 못한 판인데 이건 또 어디서 낮도깨비 같은 것들까지 굴러뿌서 마을을 뒤흔들어놓다니…… 가뜩이나 큰 콧구멍을 더욱 벌름거리며 이마에 거꾸로 여덟팔자를 세웠다. 박첨지가 남달리 이맛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해하는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또 있었다. 금례 때문이었다. 서양 병정들이 들어오고, 마을에 그 도깨비 같은 계집들이 몰려든 뒤로부터 어딘지 모르게 금례의 몸가짐도 조금씩 수상해지는 것 같았다. 우선 그 입술부터가 그랬다. 전에는 별로 눈에 띄게 붉지가 않았는데 요즘은 아무래도 좀 그 빛깔이 수상한 것이다. 그 계집들처럼 그렇게 진한 빛깔은 아니었으나 그런 종류의 붉은 빛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전에는 참빗으로 빗어 넘겨 반질반질 곱기만 하던 머리숱이 요즘은 어쩐지 좀 곱슬곱술해진 것 같았다. 가르마도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콧잔등이로부터 직선을 그어 올라간 듯 반듯하기만 하던 가르마가 요즘은 자꾸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틈만 있으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 일쑤고, 그렇지 않으면 이웃으로 훌쩍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눈치를 챈 박첨지는 금례를 볼 때마다 무슨 화라도 난 사람처럼 두 눈을 크게 떴고, 재떨이에 담뱃재를 떨 때에도 전에 없이 큰 소리가 나게 땅땅 두들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례는 조금도 수그러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이 갈수록 어지러워지기만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금례의 마음을 걷잡을 수 없게 흔들어놓는 것
은 밤마다 이웃 도깨비네 방에서 일어나는 야릇한 곡조의 노랫소리와 망측한 광경 이었다. 남의 가슴속을 공연히 지근지근하게 긁어 일으키는 것만 같은 그 근질근질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금례는 오금이 저려서 가만히 배겨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서 어떻게든지 자리를 뜨고야 마는 것 이었다.
베조각을 드리워놓았다고는 하나 그 베조각이라는 것이 형편없이 엷은 것이고, 또 방 안의 불빛이 굉장히 밝은 것이고 보면 아무래도 실내의 광경이 방문에 비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꼭 활동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장승 같은 녀석이 땅개* 같은 계집을 안고 빙빙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비스듬히 나가떨어져서 그 거창한 코로 납작한 코를 사정없이 내리누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노랫소리도 숨이 가빠서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광경을 거의 매일 밤이다시피 울타리 구멍으로나 담 너머로 바라보게 되는 금례인지라, 그녀의 가슴속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침을 아무리 삼켜도 함할거리는 숨결을 누를 수가 없어 때로는 사정없이 허벅살을 집어 뜯으며 울타리 그늘에서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날씨가 차차 더워지기 시작하자 그 얼룩덜룩한 베조각이 드리워진 방문들이 밤으로도 활짝활짝 열렸다.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도 그 수작들을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방 안이 답답해지자 이번에는 시원한 밤하늘을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냇기슭이 가장 알맞은 장소였고, 왕릉의 숲속도 괜찮은 장소가 되었다. 왕릉 숲이 그런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자 박첨지는 눈에 심지를 세웠다. 그리고 입에 거품을 물며,
“개 같은 연놈들, 물건을 뽑아놓아야지.”
하고 뇌까렸다.
왕릉을 그렇게 알뜰하게 돌보는 박첨지였으나 밤으로까지 찾아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달이 너무 밝아서 죽은 할미 생각이라도 나는 때이면 그저 바람 쐬기 겸 어정어정 걸음이 가는 대로 숲으로 나가서 달빛에 젖은 두두룩한 능의 둘레를 돌며 시름을 잊고 돌아오는 수는 더러 있었으나, 밤으로 누가 왕릉을 어쩔까 해서 찾아나가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세상이 지랄같이 되고 보니 밤으로까지 보살피러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물론 작대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아무리 박첨지라고 해도 남이 좋아하는 것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다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숲속의 호젓한 그늘 같은 데서 뒹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이나 한번 뱉고 못 본 척 지나쳐주었다. 능만 다치지 않으면 선심을 써주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박첨지가 그렇게 선심을 쓰면 저쪽에서도 좀 체면을 차려주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염치가 없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하늘에는 솜을 한 뭉치씩 뜯어서 던져놓은 것 같은 구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구름 속으로 달이 묻혀버리면 사방은 앞을 잘 분간할 수가 없을 만큼 어두워졌고, 구름 속에서 달이 비어져나오면 사방은 다시 환하게 밝아지는 그런 밤이었다. 박첨지가 왕릉 숲에 이르렀을 때는 마침 달이 구름 속에 묻혀 들어간 때여서 숲속은 어두웠다. 능의 봉우리를 바라보았으나 그저 어둠 속에 희미한 자태가 느껴질 뿐 별다른 무엇이 눈에 띄지가 않았다. 박첨지는 능 곁으로 가 앉아 옆구리에서 담뱃대를 뽑았다. 어디서, 무슨 인기척 같은 것이 들리는 듯했으나 박첨지는 예사로 여기고 득!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밤 숲에 나와 앉아 담배를 빠는 것도 별미여서 박첨지는 콧구멍으로 연방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고 앉아서 박첨지는 난데없이 올 가을에는 아무래도 데릴사위를 보아야지, 그래서 함께 왕릉을 지키고 또 외손자를 보아서 대를 물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킬킬킬 웃는 소리와 함께 곧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박첨지는 입에서 담뱃대를 쑥 뽑으며 두 귀를 번쩍 세웠다. 먼 곳이 아니었다. 바로 가까운 곳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박첨지는 숨을 죽이며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능 위였다. 분명히 왕릉의 두두룩한 봉우리 위에서 그 소리는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박첨지는 온몸의 피가 얼굴로 치솟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검은 구름 속에서 달이 불쑥 비어져 나왔다. 사방은 별안간 환하게 밝아졌다. 어둠 속에 자태를 감추고 있던 왕릉도 수묵(水墨)으로 그린 듯이 선명 하게 드러났다. 선명하게 드러난 봉우리의 맨 꼭대기를 바라보는 박첨지의 두 눈은 무섭게 위로 찢어져 올라갔다.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에라잇! 개 같은 연놈들아!”
박첨지의 어디서 그런 아귀찬* 소리가 나오는지 몰랐다. 밤하늘이 쩌렁 울렸다.
“빨리 못 내려올 끼가구마!”
담뱃대를 옆구리에 쿡 찌르고 작대기를 두 손으로 불끈 틀어쥐었다. 그리고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능 위를 무섭게 쏘아보는 것이었다. 자지러져가던 두 그림자도 놀랐는지 후닥닥 자리에서 뛰어 일어났다. 일어나더니 계집은 얼른 저쪽 너머로 사라졌고, 사내녀석은 아랫도리를 끌어올리며,
“까땜! 싸나바베치!”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새까만 얼굴이었다. 새까만 얼굴에 하얀 이가 달빛을 받아 유난히 빛났다. 박첨지는 작대기를 번쩍 높이 쳐들며,
“뭐가 어째? 이누묵 자식아! 이리 내려오라니까구마. 단번에 때리눕혀놓을 끼이.”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새까만 얼굴은 별안간 입을 크게 벌리며,
“왓핫핫하…….”
웃어젖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후익.”
괴상한 휘파람을 날리더니 한 걸음 한 걸음 이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박첨지는 온몸이 바짝 굳어지는 것 같았다. 작대기를 틀어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자꾸 팔이 떨렸다. 아랫도리도 더욱 덜덜거렸다. 한 결음 한 걸음 내려오던 새까만 얼굴이 경사가 급해지자 우뚝 멈추어 서더니 두 팔을 위로 번쩍 쳐들고 곧 달려 내려와 덤벼들 시늉을 하며,
“오케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 두 눈은 웃음을 띠고 있기는 했으나 달빛을 받아 무섭게 번들거렸다.
“영캄! 오케이?”
그러자 버티고 섰던 박첨지의 두 다리가 형편없이 흔들렸다.
“뭐가 우째? 뭐가 우째?”
하면서도 곧장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는 것이었다.
새까만 얼굴은 허연 이빨을 몽땅 드러내 보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후익.”
괴상한 휘파람 소리와 함께 급한 경사를 요란스럽게 굴러 내려오는 것이었다. 꼭 한 마리의 사나운 짐승 같았다. 박첨지는 질겁을 하고 마구 뺑소니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씩씩거리며 도망을 치다가 무슨 물줄기 같은 소리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능 위에서 굴러내려온 새까만 얼굴은 뒤쫓아올 생각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볼일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박첨지가 돌아보자 새까만 얼굴은 킬킬킬 웃으며 물건을 박첨지 쪽으로 번쩍 쳐드는 것이 아닌가. 거창한 오줌발이었다. 달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저 개 같은 놈 보래. 이누묵 자식아……”
박첨지는 다시 고함을 질렀다.
“이리 안 올래구마! 이리 안 올래구마!”
작대기로 공연한 땅바닥만 탕탕 두들기며,
“단번에 때리눕혀 놓을 끼이, 단번에…….”
하고 떵떵 울리는 것이었다.
그날 밤, 박첨지는 밤이 이슥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상은 참 더럽게 된 세상이라고 두 눈을 멀뚱거리며 곧장 한숨을 쉬곤 했다. 조상네에게 죄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궁리에 궁리가 꼬리를 이었다. 첫닭이 홰를 칠 무렵에야 박첨지는 무슨 묘안이라도 떠오른 듯 옳다! 그러면 되겠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그제야 잠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박첨지는 상투에 물을 묻혀 새로 반듯하게 틀어 올렸다. 그리고 조반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활개를 치며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윗마을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윗마을 박진사네 집 대문 앞에 이르자 박첨지는 짚세기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대문을 밀었다. 사랑에 앉은 박진사는 방금 조반상을 물린 듯 그르륵 트림을 하며 긴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박첨지를 보자,
“아침부터 우짠 일인가?”
하고 허연 수염을 쓰다듬어 내렸다.
“진사어른!”
박첨지는 마루 끝에 궁둥이를 걸치며 대뜸,
“야단났심더.”
했다.
“야단나다니?”
박진사는 약간 이맛살을 찡그렸다.
“왕릉이 말이 아닙니더. 서양 병정놈들 때문에…….”
“와,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 글씨, 왕릉을 무신 저거들의 놀음 장손 줄 아는 모양이지예. 왕릉 제단에다가 음식을 벌려놓고 지랄삥을 하는가 하면 밤으루는 또…….”
“밤으로는 뭘 우짠단 말인가?”
“아 글씨…….”
“뭘 우짜는데?”
“헐레를 붙지* 않겠능교. 그 빌어묵을 것들이, 왕릉 위에서……”
“뭐? 왕릉 위에서 헐레를?”
“예, 내 참 기가 막혀서……”
“음.”
박진사의 허연 수염이 덜덜 떨렸다.
“담을 쌓아야 되겠심더. 아무래도……”
“……”
“삥 둘러가며 담을 쌓아놓아야지 안 그러다간 절딴나겠심더.”
말없이 듣고 있던 박진사는,
“그러세. 담을 쌓도록 허세.”
했다. 그리고,
“고이얀 것들 같으니라구.”
하고 내뱉으며 담뱃대로 재떨이를 땅땅 두들기는 것이었다.
박씨 문중(門中)회의가 소집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었고, 그 모임에 부쳐서 왕릉의 담쌓기 문제는 마침내 결정을 보았다. 왕룽의 둘레에 사람이 뛰어넘을 수 없을 만한 높은 담을 쌓는다는 것은 예사로운 노릇이 아니라고 난색을 하는 이가 많았으나, 박첨지의 열을 띤 목소리 앞엔 아무도 감히 맞서질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왕릉의 담쌓는 역사(役事)의 총책임을 박첨지가 도맡게 되었다. 부락별로 부역을 나오는 순차도 구체적으로 의합을 보았다. 회의를 가진 그 이튿날부터 담쌓기 역사는 즉각 시작되었다. 일이 시작되자박첨지는 누구보다도 얼굴에 활기가 넘쳤다. 순차에 따라 부역을 나오는 문중의 젊은네들의 앞장을 서서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는 것이었다. 아침으로도 여느 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났다. 날이 아직 새기도 전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금례를 깨우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조반도 여느 때보다 월등히 일렀다. 남들은 이제 겨우 일어나 기지개를 켤 무렵 박첨지는 벌써 지게를 지고 왕릉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집을 나가면 하늘에 별이 돋아나야만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점심도 내가야만 되었다.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점심을 차려서 왕릉까지 이고 나가느라고 금례도 꽤 애를 먹었다. 그러나 그 반면에 덕을 보는 점도 컸다. 종일 안심하고 제멋대로 놀아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금례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는 일 없이 이웃으로 쏘다닐 수 있게 된 것을 무엇보다도 다행으로 여겼다. 밤으로 울타리 가에서나 담 너머로만 듣던 그 야릇한 곡조의 노랫소리를 직접 그 방으로 찾아가서 들을 수가 있게 되었고, 그 얄궂은 계집들과 친해져서 여러 가지 이상스러운 맛이 혀끝에 감기는 서양 병정들의 과자를 얻어 씹을 수가 있었고, 그녀들이 사용하는 갖가지 서양화장품을 조금씩 찍어서 얼굴에 바르며 그 기가 막히는 향기에 두 눈을 스르르 감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들이 밤으로 서양 병정과 함께 끌어안고 돌아가는 괴상한 춤을 조금씩 배우며 킬킬킬 웃어대기도 하는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금례의 화장은 그녀들을 닮아갔고, 치렁치렁 땋아 늘인 머리도 조금씩 조금씩 짧아져가는 것이었다. 박첨지는 왕릉의 역사에 정신이 팔려서 금례의 그러한 변모가 잘 눈에 띄질 않았다. 저녁에 돌아오면 밥술을 놓기가 바쁘게 나가떨어져서 드르릉드르릉 코를 골아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금례는 저녁으로도 살금살금 마을을 다닐 수가 있었다. 서양 병정이 자러 오지 않은 방을 찾아가서 밤이 이슥토록 히히거리며 놀다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한번은 그렇게 이슥토록 히히거리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서양 병정에게 덥석 끌어안긴 일이 있었다. 골목 샅을 꺾어도는 판인데 장승처럼 커다란 그림자가 우뚝 앞으로 다가서는 것이었다. 술내가 물씬 풍겼다. 금례는 놀라 얼른 돌아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서양 병정은 금례의 허리를 불끈 안고 있었다. 금례는 질겁을 하고 몸을 뒤틀었다. 하나 소용이 없었다. 서양 병정은 능글능글한 코를 금례의 목덜미에 갖다가 연방 문질러대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마을 노인 한 사람이! 에헴! 하고 골목길로 들어섰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무슨 변을 당할는지 모를 뻔했다. 정신없이 집으로 도망쳐온 금례는 그날 밤 아무래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곧장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얼얼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서양 병정이 코를 문질러대던 목덜미께가 이상스럽게 스벌거렸다. 서양 병정의 몸에서 풍기던 노릿한 냄새도 코끝에서 야릇하게 감돌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도 금례는 두려움 없이 밤마을을 다니는 것이었다. 으슥한 골목 샅을 혼자 걸으면서 오히려 또 한 번 서양 병정과 부딪쳐보았으면 싶은 생각이 머리를 쳐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왕릉의 담쌓기 역사는 의외에도 빨리 진척이 되지 않았다. 부역꾼들의 수효도 날이 갈수록 줄고 일하는 품도 하루하루 시들해갔지만, 그 거창한 능의 둘레에 담을 쌓아 올리는 일이 애당초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달이 거의 되었으나 담은 이제 겨우 두어 뼘 가량밖에 높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박첨지는 조금도 꺾이는 기색이 없었다.
“오늘은 또 와 이 사람들밖에 안 나왔노? 시러베아들놈들 같으니, 조상의 무덤도 하나 옳게 지킬 생각을 못하는 것들이 새끼사 어지간히 까질 러놓더구나.”
이렇게 핏대를 세우며 부역꾼들의 앞장을 서는 것이었다. 젊은네들처럼 많은 분량의 흙을 질 수는 없었으나 그들이 두 번 나를 때에 박첨지는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져다 나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첨지가 앞장을 서서 일을 하고 있는 어느 날 오후 서양병정 한 사람이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잠시 일손들을 멈추고 이마에 내 밴 땀을 씻었다. 가까이 온 서양 병정은 박첨지 앞으로 다가서더니 가볍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싱긋 웃는 것이었다. 모자에는 은으로 만든 것 같은 네모진 것이 두 개 빤득거리고 있었다. 다른 부역꾼들은 모두 얼굴에 웃음을 띠며 그 서양 병정을 바라보는데, 박첨지만은 이 녀석은 또 무슨 짓을 하러 나타난 것일까 싶은지 약간 화가 난 사람처럼 뚝뚝한 표정을 지었다. 거수경례를 붙이고 난 서양 병정은 여전히 웃음을 띤 얼굴로 손짓을 섞어가며 무어라고 띄엄띄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모두 등신처럼 그의 손짓과 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을 다 했는지 서양 병정은,
“오케이?”
하고 다지는 것이었다.
오케이라는 말만은 모두 귀에 익은 말이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수군거리자 서양 병정은,
“노인 오케이?”
또 한 번 다지는 것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보나 그 표정으로 보나 결코 해로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을 어쩌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박첨지는 두 눈을 껌벅거리며 멍청하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젊은 축에서 누군가가,
“오케!”
하고 덩달아 소리를 질러버렸다.
서양 병정은 대답을 한 사람 쪽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오케이, 오케이.”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서양 병정들과는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점잖은 품이 흐르는 것이었다.
“장교 아니가.”
“그렇나?”
“그것도 아직 모르나? 은으로 만든 거 두 개면 대위 아니가.”
“아, 대위가? 글씨 좀 다르다 싶으더라.”
젊은네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며 박첨지는 멀어져가는 서양 병정의 후리후리한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왔다 가는지 그 속셈을 알 수가 없어 역시 불안했다. 잠시 후, 서양 병정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에서 트럭 한 대가 굴러 나오기 시작했다. 등에 무엇인지 집게처럼 생긴 괴상한 기계가 우뚝 솟구쳐 있는 트럭이었다. 트럭은 정문을 빠져나와 부르릉부르릉 소리를 지르며 냇물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냇가에 가서 정거를 한 트럭은 등에 솟구친 기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익……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계가 아가리를 짝 벌렸다. 흡사 사람의 손 같았다. 끼익…… 소리와 함께 그 기계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더니 덜컥! 하고 땅에 푹 처박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끼익…… 위로 솟구쳐 올랐다. 솟구쳐 오른 데 보니 그 기계의 손아귀에 흙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그 흙을 트럭 위의 궤짝에 갖다가 좔 쏟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번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부역꾼들은 아까 그 서양 병정이 무슨 말을 하고 갔는지 비로소 짐작이 가는 것이었다. 고개들을 끄덕거리며 서로 마주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박첨지도 남달리 큰 콧구멍을 하늘로 쳐들며 흐……웃었다. 흙을 수북하게 퍼 실은 트럭이 덜커덩덜커덩 냇가에서 기어 나와 왕릉 쪽으로 굴러오자 부역꾼들은 모두 일손을 멈추고 트럭을 맞았다. 트럭은 부역꾼들께로 와서 정거를 하더니 부르릉……하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흙을 실은 등의 궤짝이 벌떡 곤두서는 것이 아닌가. 자갈과 흙이 한꺼번에 좌르르 쏟아져 내렸다.
“야―”
“야一”
“희한하다. 희한해……”
모두 놀라 입을 딱 벌렸다. 박첨지도 상투를 곧장 끄덕이며,
“좌우간 이상한 작자들이라니까. 이상한 작자들……”
하고 중얼거렸다.
담 높이가 서너 뼘가량 되었을 무렵,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참 의외의 일이었다. 박첨지는 처음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서양 병정들이 어디론지 감쪽같이 떠나버리고 만 것이었다. 여느 날처럼 누구보다도 먼저 왕릉으로 나온 박첨지는 서양 병정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터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여러 개 되던 천막도 그렇게 많던 자동차도 어디론지 죄다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빙 둘러쳐졌던 철망도 깨끗이 걷혀버렸다. 못 쓰게 된 판잣조각이나 종이상자, 혹은 깡통 같은 것만 더러 흩어져 있을 따름이었다. 어쩌면 그 많은 병정들이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거짓말처럼 떠나버릴 수가 있을까? 박첨지는 어처구니가 없어.
“허허어.”
웃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작자들이라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서양 병정들이 떠나버리자 왕릉의 담쌓기 역사는 절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박첨지는 화가 나서 이 마을 저 마을을 쫓아다녔으나 결국 허사였다. 쌓아 올리던 담이니 마저 쌓아 올려야지 하고 말들은 했으나 아무도 일을 하러 나와주질 않는 것이었다. 박첨지는 주먹을 흔들면서,
“조상의 무덤도 모르는 시러베아을놈들! 시러베아들놈들!”
하고 뱉어붙였으나 별수가 없었다.
왕릉의 담은 서너 뼘 높이에서 그쳐버리고 말았다.
서양 병정들이 떠나자 마을에서는 얼룩덜룩한 베조각들이 하나둘 걷히기 시작했다. 짐을 꾸려가지고 그 계집들도 어디론지 떠나가는 것이었다. 그 계집들이 하나 둘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자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것은 박첨지였다. 그 낮도깨비 같은 꼬락서니들을 보지 않게 되어 속이 다 쑥 내려간다고,
“으으윽.”
게트림을 하며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 금례도 다시 차분해지겠지. 올 가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서방을 맞춰주어서 얼른 손자를 보아야지 싶은 것 이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박첨지는 어느 날 아침, 얼굴이 노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아버님, 용서하여주이소. 돈을 많이 벌어갖고 돌아오겠심더.
불효 여식 금례 올림
머리맡에 이런 쪽지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한 자 한 자 뜯어읽고 난 박첨지는 눈알이 노래지는 것을 느끼며 뒤로 벌떡 넘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꼬박 사흘 동안 박첨지는 자리에 누워 두문불출하였다. 금례가 옷보따리를 싸들고 양갈보들을 따라 도망을 쳤다는 소문이 마을에 펴지자, 박첨지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아침저녁, 왕릉으로 나갈 때도 남의 눈을 피해서 살짝 마을을 빠져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고마운 것은 세월이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차차 마을 사람들도 도망친 금례를 잊어주었고, 박첨지도 한숨과 함께 모든 것을 팔자소관으로 돌려버릴 수가 있었다. 이따금 바람결에 금례의 소문이 흘러오기도 했으나, 그럴 때마다 박첨지는 언제 자기에게 그런 딸년이 있었더냐 하고 얼굴을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첨지는 아무래도 내던져버릴 수가 없는 한 가지 일이 있었다. 왕릉을 지킬 후손이 끊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데릴사위를 보아서 왕릉을 돌보게 하고, 또 그 손자를 키워서 능을 지키게 하려고 했던 것이 어쩌면 이렇게 덧없이 되어버리고 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박첨지는 해질녘이면 쌓아올리다 그만둔 왕릉의 담 옆에 서서 넋 나간 사람처럼 먼 산을 바라보는 버릇을 지니게 되었다. 봄철이나 가을철 같은 때 징징징…… 하고 먼 마을에서 풍물 치는 소리라도 흘러올라치면 박첨지는 한숨과 함께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떠날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첨지는 한 해 한 해 놀랄 만큼 초췌해갔다.
가을이었다.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바람에 우쭐우쭐 시원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새보는* 소리가 한가롭게 들렸다. 박첨지는 논배미에 허수아비를 한 개 만들어다 세우고 있었다. 얼굴이 거창하게 큰 허수아비였다. 그것을 논 한가운데에 꽂아놓고 밖으로 나온 박첨지는 논둑에 앉아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뻐끔뻐끔 담배를 빨며 허수아비를 바라보았다.
“그놈 신수가 꼭 나 같구나. 콧구멍은 와 저렇게 우로 붙었노. 히히히……”
혼자 킬룩킬룩 웃고 있는데, 저만치 신작로에 버스가 한 대 지나가다가 서는 것 이었다. 박첨지는 무심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스에서 웬 멋쟁이 여자가 한 사람 어린아이를 데리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을 내려놓고 버스는 다시 부르릉…… 먼지를 날리며 달려가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여자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머리랑 옷을 매만졌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논길로 접어드는 것이었다. 한 손에는 웬 빨간 빛깔의 백이 들려 있었다. 박첨지는 저런 멋쟁이 여자가 마을을 찾아오는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여 딱딱 후여―”
“아랫녘 새는 아랫녁으로 후여 딱딱 후여―”
“후여 후여 후여―”
새 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시끌작했다. 점점 가까워져오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던 박첨지는 별안간 표정이 이지러졌다. 두 눈썹이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이마에 여덟팔자가 거꾸로 푹 파이는 것이었다. 가까워져오던 여자도 박첨지를 보자 주춤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다음 순간 잰걸음으로 다가오며,
“아부님 !”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금례였던 것이었다. 금례는 박첨지 앞으로 다가서며,
“아부님, 그동안…….”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방긋 웃었다. 그러나 그 눈에는 분명히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박첨지는,
“음.”
하고 입을 꾹 다문 채 금례의 모습을 무섭게 뜯어보는 것이었다.
그 반질반질하던 숱 좋은 머리는 어디로 가고 꼭 새집 쑤셔놓은 것 같은 머리가 어깨를 덮고 있었다. 치마는 무릎이 곧 내다보일 것만 같은 짧은 것이었고, 굽 높은 빨간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꼭 몇 해 전 그 낮도깨비들 같은 얼굴 화장·……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된 녀석이란 말인가? 박첨지는 금례가 손을 잡고 있는 어린아이를 내려다보았다. 파란 운동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눈깔이 노란 빛깔이 아닌가. 운동모자 밑으로 내다보이는 머리칼도 노릿노릿했다. 박첨지가 어린아이를 내려다보자 금례는,
“철아, 외할아버지시다. 인사드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어린아이는 냉큼 운동모자를 벗더니 고개를 까딱 숙이구나서 박첨지를 쳐다보며 노란 눈으로 생글 웃는 것이었다. 꼭 노랑탱자* 같았다. 박첨지는 으음…… 하고 그만 울상을 하며 고개를 무겁게 돌려버리는 것 이었다.
금례가 서양 병정의 아이를 낳아가지고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마을 사람들은 무슨 경사(慶事)라도 생긴 것처럼 히히덕거리며 박첨지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박첨지네 사립문은 안으로 굳게 닫혀있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울타리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가 오줌이라도 누러 방문을 열고 나올라치면 마을 사람들은,
“자 얼굴 좀 보이소. 꼭 서양 병정들 닮았지예?”
“그 씨를 받았는데 그럼 안 닮을까?”
“히히히…… 입 있는 덴 저거 어메를 좀 닮았지예?”
“그렇구만.”
“귀엽게는 생겼네예.”
“글씨, 박첨지 외손자 잘 봤구만.”
“핫핫하……”
“헷 헷헤…….”
하고 떠들어댔다. 조무래기들은 울타리에 구멍을 뚫고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다.
금례가 튀기를 데리고 돌아온 날부터 꼬박 나흘 동안 박첨지는 침식을 전폐하고 누워서 천장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 목을 매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낯이 없을 뿐 아니라 조상네에게 죄스러워서 도저히 살 수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닷새째 되는 날 아침, 박첨지는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가 일어나는 것을 보자 금례는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세숫물을 방으로 떠다 바친다, 새 수건을 내다 바친다, 야단이었다. 그러나 박첨지는 조금도 표정이 풀어지질 않았다. 움푹 껴져 들어간 두 눈자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그대로 서려 있었다. 그리고 물을 묻혀서 새로 반듯하게 상투를 틀어 올리는 손이 경련을 일으킨 듯 가늘게 떨렸다. 조반을 몇 술 뜨고, 담배를 몇 모금 빨았다. 그리고 박첨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멀뚱히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아침나절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침나절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점심도 한 술 떴다. 그리고 박첨지는 방문을 열고 비슬비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왕릉을 한 바퀴 돌아보자는 심산이었다. 어지러웠다. 그러나 박첨지는 어금니를 물고 마루 끝에 가 앉아서 발에 짚
세기를 꿰었다. 그때 였다.
“외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첨지는 얼른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외손자라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어디에서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뒷간 곁에 있는 거름더미 위에서였다. 보리갈이 때 쓰려고 틈틈이 풀을 베다 쌓아 올린 두두룩한 거름더미 위에 올라가서 노란 녀석이 쪼그리고 앉았다가 박첨지를 보자 날 좀 보라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발딱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엉덩이를 좌우로 간들간들 흔들며 생글생글 웃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박첨지는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싸늘한 기운을 느끼며,
“음.”
신음소리를 했다. 그러자 노란 녀석이 빨간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박첨지는 가볍게 치를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번쩍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죽더라도 왕릉의 담을 마저 쌓아 올려놓고 죽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작대기나 짚고 마지막으로 왕릉을 한 바퀴 돌아보려던 박첨지는 뒤란으로 돌아가 지게를 지고 나서는 것이었다. 금례가 그것을 보고,
“아부님, 뭐 하실라고 그러십니꾜? 몸도 편찮으신데 누워 계시지 예.”
근심스럽게 만류를 했으나 박첨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랫도리가 약간 휘청거렸으나 단단히 어금니를 물고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왕릉을 향해 어정어정 걸어가던 박첨지는 또,
“외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노란 녀석이 두 손을 양쪽 호주머니에 찌르고 간들간들 따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박첨지는 염라대왕 같은 상을 지으며 주먹 하나를 번쩍 쳐들어 보였다.
“이누묵 손아! 어딜 따라오노, 어딜…….”
그러자 아이는 노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첨지를 바라보더니 또 빨간 혓바닥을 쏙 내밀어 보이는 것이었다. 박첨지는 하도 같잖고 어이가 없어서,
“허어.”
해버렸다. 그리고,
“으음.”
하며 돌아서서 능을 향해 휘청휘청 잰걸음을 쳤다.
두두룩한 왕릉의 위용이 저만치 ˙바라보이자 박첨지는 가슴이 뻐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두 눈에 뜨거운 것이 핑 도는 것이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박첨지는 녹아 나오는 코를 팽 하고 풀어 던졌다. 그리고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쌓아 올리다가 그만둔 담은 그나마 비바람에 씻겨 군데군데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박첨지는 오늘따라 견딜 수 없는 노여움이 왈칵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시러베아들놈들, 시러베아들놈들……”
박첨지는 곧장 중얼거리며 냇기슭으로 내려가 지게에 흙을 퍼 담기 시작했다. 뒤따라온 아이는 처음으로 와보는 숲이 신기한지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고 다녔다.
가을해는 짧았다. 어느새 서녘 하늘이 물들기 시작했다. 박첨지는 오늘의 마지막 짐을 지고 일어섰다. 아랫도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박첨지는,
“시러베아들놈들!”
하고 아랫배에 힘을 주며 뚜벅뚜벅 걸었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그러나 용케 몸을 가누며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때마침 먼 마을에서 징징징 풍물 치는 소리가 은은히 흘러오기 시작했다. 박첨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아랫배에 더욱 힘을 주었다. 흙을 부릴 장소까지 거의 이르렀을 때였다.
“외할아버지.”
아이녀석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바로 눈앞의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박첨지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왕릉에서였다. 왕릉의 두두룩한 어깨쯤을 애녀석이 기어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기어오르다가 박첨지를 내려다보며 노란 눈으로 생글 웃는 것이었다. 박첨지는 온몸의 피가 왈칵 얼굴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저누묵 호로새끼! 이리 안 내려올 끼가! 앙?”
숲속이 쩌렁 울리도록 핏대를 세웠다. 그러나 아이는 곧장 생글생글 웃으며 빨간 혓바닥을 날름날름 내보이는 것이었다.
“앙? 안 내려올 끼가!”
박첨지는 꼭 실성한 사람 같았다. 지게를 받칠 생각도 않고 마구 앞으로 내달으려는 것이었다. 내달아질 리가 만무했다. 아랫도리가 휘청 꺾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앞이 노랗게 빙 돌았다. 박첨지는 지게를 진 채 앞으로 고목처럼 꿍! 나가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흙과 지게 밑에 깔린 박첨지는 두 손을 뻗어 풀을 쥐어뜯으며 허옇게 이를 악물었다. 상투가 바르르 떨렸다. 이 광경을 내려다보며 애녀석은,
“헤헤헤헤……”
노랗게 웃고 있었다.
징 ― 징징징징 ― 가물가물 멀어져가는 박첨지의 귀에 먼 마을에서 흘러오는 풍물소리가 길게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었다.
『전후정예작가신작15인집』 (육민사 1963); 『한국소설문학대계』 37권 (동아출판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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