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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영적 성숙의 달☜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
마5:4-5절) 감각(感覺)이 있는 사람
우리나라 여자 골프가 미국의 프로 골프대회를 휩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리 키즈’라고 해서 박세리 선수가 미국 골프대회에 우승하는 것을 보고, 어렸을 때부터 다른 것은 하지 않고, 골프만 친 아이들이 자라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K-Pop 가수를 뽑을 때, 수천 명의 지원자들 중에서 몇 십 명을 뽑아서 세계적으로 노래와 춤만 훈련시키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놀랄만한 그룹이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유능하고, 똑똑한 아이들을 뽑아서 축구면 축구, 골프면 골프, 바둑이면 바둑, 컴퓨터면 컴퓨터하는 식으로 훈련을 시키면, 대단히 유능한 사람들이 탄생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특별히 잘 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즉 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이나 음악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나 듣고, 은혜 받으면, 눈물이나 흘리는 것 밖에 없고, 또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경쟁(競爭)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늘 상처나 받고, 밀리는 재주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복(福)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자들이며, 땅을 자신의 기업으로 차지할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도저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5:4절)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Ⅰ.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
사람의 몸에는 감각(感覺)이 있어서 다치거나, 불에 데면, 큰 통증(痛症)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자동차 사고로 몸이 부서지거나, 혹은 불에 크게 데여서 화상(火傷)을 입게 되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苦痛)을 겪게 됩니다.
또 몸 안에 병(病)이 생겨서 염증(厭症)이 생기든지, 아니면 이상이 오게 되면, 이유를 알 수 없이 머리, 배, 가슴이나, 몸 전체가 아프게 됩니다. 어떤 때는 그 고통이 너무나도 커서 죽고 싶기도 하고, 또 이 통증만 없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에 통증(痛症)이 있어야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며, 이 통증을 통해서 병(病)의 원인(原因)을 찾아서 그 병(病)을 치료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큰 수술(手術)을 하려면, 통증(痛症)을 잠시 없애야 하기 때문에 전신 마취(痲醉)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신(全身)마취가 된 동안에는 고통(苦痛)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수술(手術)이 끝나고, 의식(意識)이 회복되면서 마취(痲醉)가 풀리게 되면,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중환자(重患者)실에 아무런 의식(意識)이 없이 누워 있는 분들은 전혀 통증(痛症)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통증(痛症)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것이며, 통증(痛症)을 느껴야 병(病)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영적(靈的)인 감각(感覺)이 있습니다. 이 영적(靈的)인 감각(感覺)이라는 것은 죄(罪)가 있을 때, 스스로 수치심(羞恥心)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가 올바른 모습을 가지도 있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애통(哀慟)하며, 울 수 있는 감정(感情)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심한 전신(全身)화상을 입어서 얼굴이나, 몸이 많이 변형(變形)이 된다면, 그런 자신의 모습에 애통(哀慟)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本人)이 너무나 심하게 망가지고, 변(變)했는데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매춘 여성, 도박 중독자, 조직 폭력배 같은 경우에는 사실 도덕적(道德的)으로 너무나 많이 망가져 있지만, 본인(本人)은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렇게 망가진 모습을 보고, 가장 안타까워하고, 애통(哀慟)할 사람은 그들의 가족(家族)일 것입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이나 폭력 단체에서 끄집어내어서 정상적인 사람이 되게 하려고 몸부림을 칠 것입니다.
예수님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시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복(福)있는 사람은‘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실패(失敗)한 인생이며,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병원(病院)에 가서 진찰(診察)을 받는 것은 돈을 자랑하러 가거나, 세상의 성공(成功)을 뽐내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환자(患者)이기 때문에 그 병(病)을 치료받으려고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물(被造物)이면서도 감히 하나님을 무시(無視)하고, 자기 멋대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한 죄인(罪人)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인정(認定)하는 사람이 복(福)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천국(天國)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이 천국(天國)의 모든 복(福)을 다 주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한번 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구원(救援)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祝福)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우리의 무디어졌던 영적(靈的)인 감각(感覺)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실 영적(靈的)인 감각(感覺)이 마비(痲痹)되어 있었기 때문에 죄(罪)를 짓고, 부끄러운 일을 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영적(靈的)인 감각(感覺)이 살아나게 됩니다.
은혜(恩惠)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이 지은 죄(罪)에 대한 부끄러운 감정(感情) 즉 수치심(羞恥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남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일단 죄(罪)를 짓기만 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이런 영적(靈的)인 감각(感覺)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에서 너무나도 변형(變形)되어 있고,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을 보고, 애통(哀慟)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이 주신 모습에서 너무나 변형(變形)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 하다가 나중에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 앞에 애통(哀慟)하게 됩니다.
여기서 애통(哀慟)한다는 것은 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마 장애(障礙)를 고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평생 장애인(障礙人)으로 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서 애통(哀慟)하기만 하면,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신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고, 예수님 앞에서 울면서 애통(哀慟)하는 자마다 아름다운 인생을 되찾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가 많은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막달라 마리아 같은 경우에는 무려 일곱 귀신이 들려서 미친(狂)여자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애통(哀慟)했을 때, 그 모든 정신병(精神病)이나, 발작(發作)은 다 떠나고, 아름다운 여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변(變)한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귀한 향유(香油)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곧 자신의 아름다움을 되찾은 여인의 행동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外貌)를 되찾기만 해도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가 아름다운 내 자신의 내면(內面)을 되찾게 된다면, 그 감격(感激)은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것입니다.
Ⅱ.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慰勞)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 후서를 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고후1:3절)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위로(慰勞)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누군가가 그것과 똑같은 것을 주든지, 아니면 더 좋은 것을 가지고 보상(補償)해 줄 때,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지금 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罪)의 후유증(後遺症)으로 너무나도 괴물(怪物)같이 변형(變形)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人生)도 정말 정신(精神)나간 사람의 인생처럼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신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애통(哀慟)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원래 망가지기 전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 영혼(靈魂)을 살려주시고, 감정(感情)을 회복시켜 주시며, 병(病)든 육체를 치료해 주시고, 가정(家庭)을 회복시켜 주시며, 직장(直腸)과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아름답게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나중 인생이 처음인생 보다 수십 배, 수백 배, 가치(價値)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位置)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정상적(正常的)인 상태에 있을 때에는 예배 때마다, 은혜(恩惠)가 임하고, 기적(奇蹟)이 일어나며,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價値)를 잃어버리면, 축복(祝福)이 없는데도 있는 줄 알고, 엉터리 축복(祝福)에 속아서 그 귀한 인생을 허비하며,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은 마귀(魔鬼)에게 속게 되어 마땅히 받아야 할 축복(祝福)을 놓친 채로 받을 필요도 없는 재앙(災殃)과 고통(苦痛)을 받으면서 방황(彷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같이 울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주(主)의 백성들에게 영적(靈的)인 심령 부흥(復興)을 주시고, 능력(能力)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의 위대한 모습을 되찾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慰勞)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드릴 때마다 우리 인생을 조절(調節)해야 하고, 애통(哀慟)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가 되며, 축복(祝福)의 예배가 되어 하나님의 위로(慰勞)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Ⅲ.하나님의 위대한 작품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애통(哀慟)해서 전신(全身)을 치료받았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 그것은 온유(溫柔)한 사람의 모습이 되어서 나타나게 됩니다.
5:5절)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셔서 아름답게 회복시키셨을 때. 나타나는 우리의 모습은 온유(溫柔)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좀 실망(失望)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은혜(恩惠)를 받고, 온전하게 되었을 때, 엄청난 지식(知識)을 가진 학자(學者)의 모습이나, 도덕성(道德性)을 가진 인격자(人格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납지 않은 온순(溫純)한 사람의 평범(平凡)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 철저하게 강(强)한 자가 약(弱)한 자를 잡아먹고 사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강(强)한 자가 되려고 하지, 약(弱)한 자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컷 고쳐서 회복(回復)시켜 놓은 모습이 전혀 공격적(攻擊的)이지 않은 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납고, 공격적(攻擊的)인 세상에서 온순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예수님께서‘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납다는 것을 전제(前提)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치 야생동물(野生動物)과 같아서 사납고, 공격적(攻擊的)인 본성(本性)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은 어린양들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이리 가운데 양(羊)들을 보낸다면, 이것은 절대적으로 불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곳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내시는 것일까? 이것이 곧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作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리 가운데 보내는 양(羊)들은 원래부터 양(羊)들이 아니었습니다. 즉 이 양(羊)들도 처음에는 모두 다 이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이리들에게 은혜(恩惠)를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완전히 다른 종류(種類)로 만드시는데, 성공(成功)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완전히 바보 같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勝利)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신 가장 위대한 일이 곧 이리 같은 우리들을 양(羊)으로 만드시는데, 성공(成功)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장차 메시야가 오면‘사자가 어린 양과 함께 뛰놀고. 어린 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리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은 사자(獅子)와 같이 사납고, 독사(毒蛇)와 같이 독(毒)이 있어서 사람을 물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의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모두 다 빼서 공격(攻擊)할 수 없게 하시고, 혀 밑에 있는 독(毒)을 빼서 순(順)한 말(言語)을 하게 하십니다.
맹수(猛獸)들과 양(羊)은 사는 목적이나, 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맹수(猛獸)는 약(弱)한 짐승들을 잡아먹으면서 삽니다. 그러나 양(羊)들은 풀을 먹기 때문에 다른 짐승을 잡아먹을 필요가 없고, 자신의 털이나 고기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적(目的)입니다.
그래서 맹수(猛獸)는 사나울수록 유리하지만, 양(羊)은 사나운 것이 하나도 유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국 맹수(猛獸)들도 언젠가 모두 다 사냥을 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나운 짐승들이 너무 많이 번식(繁殖)하게 되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맹수(猛獸)들은 자기 힘이 있고, 성질(性質)이 사납고, 동작(動作)이 빨라서 겁나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사람이나, 자연(自然)의 재해(災害)가 더 무섭습니다. 그러나 맹수(猛獸)들이 우글거리는 들판에서 양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양(羊)들에게는 목자(牧者)가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牧者)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羊)들을 주야(晝夜)로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목자(牧者)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목자(牧者)의 음성(音聲)을 듣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들릴 때, 목자(牧者)는 우리에게 가까이 와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牧者)는 우리의 다친 부분을 싸매어주시고, 병(病)을 고쳐주시며,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를 해주십니다.
목자(牧者)는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까? 바로 하나님의 보물 창고가 있는(교갱원)하나님의 축복(祝福)의 장소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 땅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역시 돈이 있는 사람들이고, 공격적(攻擊的)인 투기(妬忌)꾼이지, 가난하고, 온순(溫順)한 사람들은 땅을 차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적(人間的)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땅을 차지하기는커녕 살아남을 자신조차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놀라운 것은 곧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결혼(結婚)도 할 자신이 없고, 집(대장동 아파트)도 살 수 없고, 회사도 경영할 수 없는데,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100%기적(奇蹟)이고, 하나님의 능력(能力)입니다. 즉 지금 살아있는 것이 기적(奇蹟)이고, 카페를 통하여 복음으로 만나는 것도 기적이고. 집을 사고, 차후 좋은 예배당을 믿음으로 건축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도 모두 다 축복의 기적(奇蹟)이고, 숨 쉬는 것이나, 죽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축복의 기적(奇蹟)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 전체(全體)가 기적(奇蹟)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고, 불만(不滿)입니다. 더 잘 되어 있어야 하고, 좋은 것을 차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은 결국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사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祝福) 없이는 행복(幸福)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어도,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그 땅은 불모지(不毛地)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아무리 큰 기업(企業)이나, 아무리 넓은 땅도 불모지(不毛地)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복(福)이 오게 하는 자들은 사나운 맹수(猛獸)가 아니라, 온유(溫柔)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복(福)이 오게 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사나워져서는 안 됩니다. 즉 교회(공동체)가 사나워서도 안 되고, 교인(敎人)이나, 목회자(牧會者)가 사나워져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계신 것이 곧 기적(奇蹟)입니다. 앞으로 기적(奇蹟)은 계속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12:10절)...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을 축복(祝福)하는 복(福)된 성도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새벽(冬)5-6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교갱원 설립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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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심방(尋訪) 및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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