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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정치의 대가
글쓴이 서보혁 / 등록일 2026-10-06
2025-26년 국제 분쟁의 양상은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관련 전문연구기관들의 보고서를 보면 2025년에 최소 65개의 국가 기반 분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들 분쟁에서 연간 24만명 이상이 사망하는데, 이 규모는 1994년 르완다 학살, 2021년 에티오피아-티그레이 분쟁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규모이다. 특히 민간인 피해가 이 기간 중 7만6000명 이상으로 전년도 대비 급증하였다.
분쟁이 특정 지역으로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고, 국제전과 내전,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고,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되고 있는 점이 최근 분쟁의 특징이다. 그 결과 민간인의 목숨과 경제 및 생활 기반이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국제 분쟁의 양상이 심각해졌는데
이들 분쟁 중 내전이 50개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복잡한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주로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 양상을 띠는 내전은 20년을 초과할 정도로 만성적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 수단과 미얀마 내전 등에서 보듯이 최근 1, 2년간 내전은 전 세계 분쟁 사망자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모든 분쟁이 그렇지만 특히 내전은 식량 부족, 토양 및 물 오염, 성폭력, 나아가 혐오와 광기의 일상화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인간 생활을 어렵게 한다.
더 주목할 점은 내전이 국제화되는 추세를 띤다는 사실이다. 어떤 학자는 “순수한 의미의 내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이다. 내전이 국제화되는 데에는 식민통치를 했던 나라나 지정학적인 이해를 가진 강대국의 개입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수단 내전, 시리아·예멘 전쟁이 그렇다. 또 민간군사기업이 자원 채굴 및 보호, 용병 제공, 무기 공급 및 보수 등의 방식으로 내전에 개입한다. 말리, 부르키나파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또 초국적 범죄망과 연결된 내전도 있다. 미얀마, 멕시코, 에콰도르 국경지대에서 마약 공급을 둘러싸고 정부군, 반군, 군벌, 밀매업체 등이 얽혀 분쟁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런 국제 분쟁 양상이 한국, 한반도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불안하기는 해도 한반도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남한을 적대시하고 비무장지대(DMZ) 일대를 요새화하고 있지만, 남한 정부는 ‘평화공존’을 추구하며 긴장 완화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주류 국제정치학은 전쟁의 발발 원인으로 국가 간 이익의 근본적 충돌과 강대국들 간 세력균형의 붕괴를 꼽는다. 현재 주요 국제 분쟁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고, 미국과 중국 간에 전쟁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도 이런 현실주의 시각에 기반한다.
그러나 세력균형이 깨지고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도 소통을 하거나 상황을 관리하는 식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분쟁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는 주장의 설득력이 커지는데, 대표적으로 국내정치적 요인, 지도자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분쟁을 조장하거나 묵인한다는 주장이다. 그 출발은 정치적 경쟁세력을 ‘우리의 안전과 순결을 위협하는 적대세력’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를 명분으로 해서 상대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폄훼·비하하는 언사는 필수 메뉴이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쥐, 벼룩이라고 했고, 르완다 분쟁에서 후투족 극단주의 세력(Hutu Power)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로 불렀다. 이와 같은 일종의 인지 왜곡을 통해 상대를 제거하는 데 따른 죄책감을 사전에 없애고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한다. 그런데 혐오정치는 정치인의 선동만이 아니라 거기에 대중이 호응할 때 혐오와 배제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해 지지세력의 국회의사당 폭력 점거를 방조했고,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란법 발동 가능성을 언급했다.
혐오와 배제의 정치를 경계해야
민주국가에서도 내전은 쉽게 발생할 수 있고 피의 충돌을 겪을 수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국제전을 벌일 수도 있다. 내전을 경계해야 할 이유이다. 민주국가에서 혐오와 배제의 정치를 막으려면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합법적인 자격을 가진 정치인이 반민주적 행태를 공공연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도 소수 정치인들이 특정 지역, 사건, 인물을 비하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들의 혐오정치는 북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소비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혐오와 긴장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정치인을 유권자들이 뽑아주었다. 내란을 내란이 아니라고 하고, 5·18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동이라고 말하는 정치인을 뽑은 유권자가 성찰해야 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노무현)이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는 혐오정치는 민주주의와 평화 진영이 연합해 제어할 과제이다.
■ 글쓴이 : 서 보 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서]
『군사주의 - 폭력의 이데올로기와 작동방식』(박영사, 2024)
『코리아 인권 -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책세상, 2022)
『한국 평화학의 탐구』(박영사, 2019)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