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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영적 장자여! 네 소원대로 되리라!”
+ 본 문 : 마태복음 15장 21절 - 28절 (신약성경 26쪽)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멘!
어떤 교회에서 오늘 같은 주일날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설교를 하다가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천국 가려면 어떻게 해야죠?” 그랬더니 저 뒤에 앉아있던,
순진무구한 한 성도가 큰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목사님! 우선 먼저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제가 묻는 말에 정답이 아니더라도 대답 잘 하는 것, 그것은 잘 듣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먼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그게 무엇입니까?
‘건강’ ‘행복’ ‘축복’ ‘천국’...... / 이 모든 것을 한 단어로 묶으면 그것은 ‘성공’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공’ 입니까? ‘랄프 왈도 에머슨’ 은 성공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공이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이 성공입니다. 웃음은 행복이요. 건강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공이란? 존경받는 남편과 아내, 존경받는 부모,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입니다.
셋째로, 성공이란?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공경을 받는 것이 성공입니다.
넷째로, 성공이란? 정말로 믿었던 친구들로부터 배반을 당했을 때에도, 잘 참아내는 것이 성공입니다.
다섯째로, 성공이란?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 성공입니다.
여섯째로, 성공이란? 자신 때문에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성공입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라는 분이 말한, 이 여섯 가지 성공을 이루며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그러나 나는 성경적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내 소원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을 보면, 그의 불행이 가정이 없어서도, 물질적으로 힘들기 때문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가나안 여인은,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지금 불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행했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므로, 그의 불행을 한방에 날려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시는 순간,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도 전지전능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영적 장자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심으로 우리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져 모든 불행이 한 방에 사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께서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심으로 우리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져,
저와 여러분의 삶에 모든 불행이 한 방에 사라지도록 하려면,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 첫째로, 우리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성공이라는 단어로 장식한 사람들을 보면, 큰 소원을 가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전이 무엇입니까? 내 미래를 핑크빛으로 바꾸어 놓겠다는 꿈입니다. 열망입니다. 소원입니다.
이왕에 비전과 꿈, 소망을 가지려면, 무엇인가 되어지는, 남다른, 불타는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가슴에 불덩어리 같은 소원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는, 노래를 잘 할 수 있다는 소원을 가진 그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지금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는, 공부 잘할 수 있다는 뜨거운 소원을 가진 학생이 더 귀하게 보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원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내일에 대한 소원이 있는 사람은, 오늘의 그 어떤 역경과 고난도 절대로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에 대한 소원을 가졌기에,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귀하게 보입니다. 늘 행복하게 삽니다.
우리 인생의 비극은 무슨 일이 잘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현하고자 하는 소원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불덩어리 같은 뜨거운 소원이 있는 사람과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소원이 있는 그 모습에는 생기가 돕니다. 기쁨이 충만해 있습니다. 잘하겠다는 의욕이 넘쳐 흐릅니다.
그래서 소원을 가진다는 것은 사는 의미를 가지게 하는, 미래에 대한 설계도가 분명히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사는 의미를 가지게 하는 미래에 대한 가정 설계도가 있다면, 그 가정은 지금도 행복할 것이고,
앞으로도 분명히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가정으로, 반드시 업그레이드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는 의미를 가지게 하는 미래에 대한 생업 설계도가 있다면, 그 생업은 잘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사는 의미를 가지게 하는 미래에 대한 인생설계도만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도 한없이 행복할 것이고, 앞으로도 분명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과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사역을 하는 분명한 설계도가 있다면,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과 사역은 지금도 행복할 것이고, 계속해서 행복한 마음으로 감당할 것입니다.
다시 확인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미래설계도’ -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분명한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소원을 가지되, 불덩어리 같이 뜨거운 소원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예배 성공자, 그 소원을 이루는 기도응답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그는 사랑하는 딸이 질병에서 고침 받는 뜨거운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원을 이루어주실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 자신의 뜨거운 소원을 아뢰는 기도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기도제목을 아룁니다.
22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아멘!
그리고 마침내 “네 소원대로 되리라!” 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그의 소원은 성취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기도 무릎을 꿇고, 여러분의 소원을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아뢰는 기도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는 기적의 기도응답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소원이 성취되는 기도응답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습니까?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소원은 성취됩니다. 그러나 소원이 없으면 성취되는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인정하셨던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축복을 받은 것도, 그의 마음에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하나님께 일천 번제라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기쁨으로 만나 주셨고 “네게 무엇을 줄꼬?” - 너의 소원을 말해보라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네게 무엇을 줄꼬? 네 소원을 말해 보라!” 고 물으신다면, 대답할 소원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자, 옆에 분들에게 ‘당신의 준비된 소원은 무엇입니까?’ 하고 서로 서로 물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브에나비 스타 홈 엔터 테이먼트 코리아가 17개의 인터넷 사이트 이용자들에게,
“하나님이 네 소원을 말해 보라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하는 질문을 던졌더니,
약 4만 명이 응답을 하였는데, 그 결과 약 50%가 ‘돈벼락을 맞고 싶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솔로몬은 뭐라고 대답하였습니까?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누가 주의 백성들을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지혜로운 마음을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왕상 3:6~10)
지혜를 달라는 솔로몬 왕의 소원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 찰떡궁합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놀라운 지혜를 얻었습니다. 부귀영화라는 보너스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원이 성취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장 먼저 뜨거운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입만 열면, 여러분의 그 소원을 말로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소원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는 기적의 기도응답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소원이 성취되는 기도응답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습니까? 아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소한 것 때문에 싸우다가 큰 싸움이 되고, 결국 큰 불행을 자초합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여야가 사사건건 그렇게 싸우다가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그냥 단결합니다.
자국에 이익이 생기는 일이라면, 그렇게 싸우던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싸워 이길 전략을 세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국익이고 뭐고 우리끼리 속된 말로 박 터지게 싸웁니다. 그래서 무시당합니다.
우리는 민족끼리 싸웠습니다. 그것이 6.25사변 아닙니까? 정말 망신스러운 전쟁이었습니다.
지금 여야는 말할 것도 없고, 공생공존 해야 할 회사에서도 노사간에 망할 때까지 싸웁니다.
그래서 지구촌 사람들이 세계에서 싸움 제일 잘하는 나라? 그러면 대한민국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하면, 이쪽에서는 남한사람, 저쪽에서는 북한사람에게,
좋은 말로는 군대 좀 보내달라고 요청하는데, 사실은 싸움 잘하는 싸움꾼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게 되면, 외국에까지 가서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남의 나라 전쟁해주고 있습니다.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런 싸움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흔히 봅니다.
거리에서 앞차가 안 가니까, 클락숀을 빵빵 울려댑니다. 앞차가 서더니 너 내려와 그리고 싸웁니다.
버스 기사가 정차시에 급제동을 걸었다고, 승객이 갑자기 폭력배로 돌변하여 운전기사를 두들겨 팹니다.
교회 안에서도 잘 싸웁니다. 한국교회같이 교역자와 평신도간에 잘 싸우는 나라도 드뭅니다.
“마귀들과 싸울지라!” 하는 찬송을 부르면서, 서로에게 마귀라고 삿대질을 하면서 싸웁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잘 싸울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뜨거운 소원이, 그 마음에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부가 그 마음에 서로 사랑하는 부부,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소원이 있다면 안 싸울 것입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자기 개인보다는 부강한 나라가 되는 소원이 있다면, 절대로 안 싸울 것입니다.
경제하는 분들이 자기 치부보다는 부강한 나라가 되는 소원이 있다면, 절대로 부정한 짓을 안할 것입니다.
목사와 모든 성도들이 영혼구원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있다면, 부흥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부부생활, 행복한 가정생활, 건강한 신앙생활을 우리 모두 소원합시다.
뜨거운 소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소원대로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바르게,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갑시다.
이렇게 소원을 간절하게 기도하면 “네 소원대로 되리라!” 반드시 그 소원대로 성취될 줄로 믿습니다.
+ 둘째로, 내가 가진 뜨거운 소원대로 이루어지려면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임종을 앞두고, 누구나 후회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내가 좀 더 섬기고, 나누고, 베풀면서 살 걸, 너무 인색하게 살았구나 하는 후회이고,
둘째는, 사랑하는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며 살 걸, 내가 너무나 분주하게 살았구나.
셋째는, 그때 내가 더 참았어야 했는데, 참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는구나 하는 것이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이만큼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먼저 아는 체를 합니다.
“주 다윗의 자손 예수여!” - 그런데 예수님은 아는 체도 하지 않으셨고, 그냥 지나가버립니다.
이런 경우 보통 사람 같으면, 정말 기분 나빠서 아마도 이렇게 한마디 던졌을지도 모릅니다.
‘여보시오. 내가 사람 같지 않습니까? 아는 체를 하고 인사를 했으면 받아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은 그런 예수님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부릅니다.
보다 못한 제자들까지도 ‘아니 예수님, 그래도 그렇지 좀 아는 체라도 해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뭐라고 한 말씀하셔서 보내시든지 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고서 거들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번엔 한술 더 떠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고,
말씀해 버리십니다. 이건 완전히 무시 정도가 아닌, 여인을 개로 취급하는 모욕까지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의 여인은 조금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인내하며, 소원을 아룁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주여! 주님의 말이 옳습니다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아멘!
이렇게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 선포와 함께 그 여인의 딸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하는 사람이 소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인내가 뭡니까? 인내란? 어려움을 잘 견디고, 그 어려움이 지난 뒤의 축복을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어려워도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아니 합니다. 분노가 치밀어도 잘 참습니다.
이처럼 인내하는 사람은 말을 아낍니다. 행동도 서둘지 아니 합니다.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름 없는 한 가나안 여인을 보세요. 얼마나 여유 만만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오히려 상대방의 말을, 곧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긍정해 주고 난 뒤, 자신의 말을 하잖아요.
그렇습니다. 인내는 오래 참음이라는 사랑의 속성입니다. 인내는 기다림이라는 사랑의 속성입니다.
일곱 살 난 개구쟁이 아이가 있었는데, 보통을 초월하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그날도 밖에서 말썽을 피우고 들어와 한바탕 야단쳤는데, 좀 잠잠한가 싶더니 이젠 집에서 난리법석입니다.
화가 난 엄마가 또 야단을 치기가 그래서 ‘너 니 방에 가서 오늘 네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 지,
깊이 생각해 보고 회개 기도를 드려!’ 하고서, 제법 신앙적으로 대처를 하고 방문을 닫고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애 방에서 기도소리가 두런두런 나는 거예요. 역시 신앙적으로 교육하기를 잘했구나 생각하고,
엄마 말을 듣고 기도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해서, 아이를 위해서 맛있는 간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있다가 애가 지 방에서 나와서 엄마에게 ‘엄마 나 생각도 해보고 기도도 드렸어!’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대견하다는 듯이 ‘그래, 그러면 이제부터 너 참 착한 아이가 되겠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엄마! 오해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내가 얌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말썽을 피울 때마다 엄마가 오래 참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요.”
그렇습니다. 오래 참음은 내가 먼저 가져야 하는 사랑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참아야 합니다.
존 레소노라는 사람이 죄를 짓고 감옥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출감 23일을 앞두고, 조금만 참으면 그 지긋 지긋한 감옥생활을 마치게 되었는데 탈옥을 합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을 향하여 그의 어머니가 조용히 타일렀습니다. ‘애야 평생 불안하게 쫓겨 다니다가,
더 큰 죄 짓고 벌을 받아 평생 고생하지 말고 새 출발을 해라.’ 하면서 그를 교도소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정상은 참작되었지만, 탈옥한 죄로 5년을 감옥에 더 있게 되었습니다.
23일만 기다렸으면 자유의 몸이 되는데, 기다리고 참지 못해 1826일을 고생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참고 기다리지 못하여, 인류역사의 불행의 씨앗인 이스마엘을 낳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잘 참고 기다리면 이삭의 축복이 주어지지만, 참고 기다리지 못하면 불행한 이스마엘이 주어집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영적 질병들이 있습니다.
영적 게으름이라는 질병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일주일에 교회 한 번 나오는 것도 힘들어합니다.
주일 오후예배나 수요예배를 드리는 일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새벽기도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이 영적 불감증이라는 질병인데, 감격이 없습니다. 깨달음도 없습니다. 냉담합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기주의라는 영적인 질병도 있습니다. 말로는 주님의 뜻대로 하자 하면서도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모든 게 자기중심입니다. 영적인 열기가 없습니다. 자기가 불리할 것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질병 중에 하나가,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는 질병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품은 소원이 성취되고, 축복된 신앙인이 되려면 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의 인내를 배우라! 그리고 본을 받으라!
그렇게 욥처럼 참고 기다리면 욥처럼 되리라! 네 소원대로 갑절의 축복을 받으리라!”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음악에도 쉼표가 있습니다. 쉬면서 생각하고, 참으면서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런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우리 주님은 축복을 선포하십니다. / “네 소원대로 되리라.” 아멘!
+ 셋째로, 내가 가진 뜨거운 소원대로 이루어지려면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선언하신 마지막 축복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 28절 말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멘! -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큰 믿음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소원이 이루어지는 큰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에게만 기대를 건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앙과 삶의 승부를, 어디에 걸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진심으로 권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에게만 여러분의 신앙과 삶의 승부를 걸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축복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 “네 소원대로 되리라!” 믿습니까?
여러분! 믿음은 머리로 이해하고 믿는 게 아닙니다. 심장 뜨겁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라야 합니다.
머리는 지식을 말하고 깨닫게 하지만,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사람답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머리로 사는 사람은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무엇이나 계산하고 따지는 타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뜨거운 심장으로 사는 사람은,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로 뜨거운 심장으로 믿는 이 믿음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신앙과 삶의 승부를 걸고 사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라야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 “네 소원대로 되리라!” 믿습니까?
여러분! 믿음은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주여! 믿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참 믿음은 말이 먼저가 아니라,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하는 손과 발이 먼저 움직입니다.
마지막에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비난과 조롱과 억울함에도 인내, 곧 참을성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있고, 그 하나님의 평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행동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행동하는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 행동하는 믿음은 이처럼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는 기적이 있습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신앙도 삶도 모두 승리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엔가 포기했다는 것은 믿음이 나약해졌다는 신호입니다. 믿음은 용기입니다. 힘입니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그 어떤 무시와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어떤 무시와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큰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 어떤 무시와 비난에도 더 겸손했던,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큰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영적 장자인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과 삶이 성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여러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하나님만이 이룰 수 있는 큰 소원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은 그 큰 소원이 이루어지기까지 오래 참음과 기다림을 가지고, 주님을 예배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주님께만 승부를 거는 강하고 담대한 큰 믿음을 가지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아멘!
다시 한 번 이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