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월의 북한산은 찬란하더라
일출봉에서 바라본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명산을 두루 다녔더니 두 눈동자 밝아져
또 다시 부용 꼭대기에 오른다.
찬바람 홀연히 불어와 높은 곳에 앉았는데
바라보니 푸르고 평평한 숲이 펼쳐지네
名山歷遍兩眸明
又向芙蓉頂上行
倏爾冷風高處坐
蒼然平楚望中生
주) 부용은 삼각산을 일컫는 말로 보인다. 무명자 윤기(無名子 尹愭, 1741~1826)의 “북한산 산영루(北漢山 山映
樓)”란 시에 “깎아지른 세 봉우리 연꽃처럼 서 있고(芙蓉削出三峯立)”란 구절이 있다.
―― 김노경(金魯敬, 1766~1837,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三角山紀行詩軸』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4월 22일(월), 흐리고 바람, 오후에 갬
▶ 산행코스 : 효자2동 버스승강장,밤골,망운대,숨은벽능선,백운대,용암문,일출봉,기룡봉,반룡봉,시단봉(동장대),
복덕봉,보국문,성덕봉,보국문,태고사,중흥사,산영루,노적사,중성문,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북한산성
입구 버스승강장
▶ 산행거리 : 도상 14.3km
▶ 산행시간 : 8시간 28분(07 : 27 ~ 15 : 55)
▶ 갈 때 : 구파발역 1번 출구로 나와 버스 타고 효자2동 버스승강장에서 내림
▶ 올 때 : 북한산성 입구 버스승강장에서 버스 타고 구파발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27 – 효자2동 버스승강장
07 : 33 – 밤골공원지킴터
08 : 42 – 사기막봉(555m) 아래 갈림길
08 : 49 – 망운대(영장봉, 545m)
09 : 25 – 대동샘
09 : 48 – 안부
10 : 05 – 백운대(836.5m)
10 : 30 – 백운대 암문
11 : 02 – 용암문, 일출봉(618m)
11 : 35 – 기룡봉(589m)
11 : 43 – 시단봉(동장대, 601m)
11 : 55 – 582m봉
11 : 58 – 대동문
12 : 08 – 복덕봉(591m), 칼바위능선 갈림길
12 : 20 – 성덕봉(623m)
12 : 25 – 보국문, 점심( ~ 12 : 37)
14 : 21 – 태고사
14 : 50 – 중성문
15 : 40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15 : 55 – 북한산성 입구 버스승강장, 산행종료
2. 북한산 등산안내도
3. 인수봉과 설교벽
심춘순례. 오늘은 북한산이다. 사월이면 내가 즐겨 찾는 심춘순례 코스다. 다른 코스에도 풀꽃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불안하여 해마다 다니는 이 코스만 간다. 이제는 얼마쯤 가면 무슨 꽃이 있고, 어떠한 전경이 펼쳐질 것인지 훤히
안다. 이번에는 해마다 보는 풀꽃이나 풍경만을 보지 말고 다른 새로운 것도 보려고 한다. 혼자 가는 것이 호젓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기는 하지만 단점도 있다. 나도 모르게 내 눈에 갇혀 다른 눈으로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오늘은 일기예보에 종일 구름이 끼고 흐리다고 했다. 미세먼지도 나쁘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고 한다. 날이 흐린
것은 사진 찍기에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것보다 훨씬 낫다. 또한 미세먼지가 나쁘다 해도 근경까지 가릴 수는 없을
것. 북한산은 근경이 아름다운 산이다.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을 피하고자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다. 전철 타고 구파발역까지 가는 1시간 남짓이 한가하다.
그 시간이 무료하다. 휴대폰 유튜브 시청을 참는다. 휴대폰 전원사정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다. 엊그제 연인산
산행을 마치고 저녁 식사한 현리 오돌에 충전용 밧데리를 두고 왔다. 오돌 사장님에게 택배로 보내주실 것을 부탁드
린 상태다. 근래 들어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니는 경우가 잦다. 천마산에서는 카메라 렌즈 후드를 잃었고, 광덕계곡
에서 오른 회목봉에서는 안경을 두고 왔고, 청태산에서는 카메라 필터렌즈를 깨뜨렸고 손수건도 잃었다. 그러니
사진마다 비싼 사진이다.
올해도 밤골공원지킴터 몇 미터 전 국사당 앞 울타리에 큰꽃으아리가 피었을까? 멀찍이는 그 하얀 꽃이 보이지 않기
에 다가가 찾는다. 꽃봉오리가 맺혔다. 작년보다 나흘 일찍 와서 꼭 그만큼이다.
┫자 갈림길. 왼쪽은 밤골 계류를 무지개다리로 건너 사기막능선으로 가고, 직진은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그 좌우로
간다. 아무래도 풀꽃은 능선보다 골짜기에 더 많다.
처음 만나는 풀꽃은 애기나리다. 애기나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사진을 찍기가 아주 번거롭다. 카메라를 땅에 대고
모니터 틸팅 기능을 사용하려니 초점을 잡기가 쉽지 않고 또 안경을 꺼내어 모니터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나
모니터로 보는 다른 풀꽃도 그렇지만 애기나리의 선명한 모습에 금방 도취되고 만다. 이 순간이 늘 그립다. 매화말
발도리도 한창이다. 각시붓꽃은 작년보다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노송 아래 다북다북하게 피었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밤골공원지킴터에서 0.8km 정도 오르면 밤골계곡 유일의 폭포가 나온다. ‘물놀이 금지’라는 팻말은 이곳이 경치가
썩 좋은 곳임을 알려준다. 오늘은 수량이 많지 않아 잴잴 흐른다. ┳자 갈림길. 왼쪽은 사기막봉 아래 대슬랩으로
가게 되고, 오른쪽은 계류를 잠시 벗어나 평탄한 숲속 길을 지나다 다시 계곡 길을 계속 오르게 된다. 계곡은 너덜이
다. 지도 들여다보고 두 눈 부릅뜨고 인적 쫒는다. ┫자 갈림길. 왼쪽이 사기막봉능선을 올라 망운대로 갈 수 있다.
4. 큰꽃으아리, 밤골공원지킴터 앞 국사당 울타리에서
5. 애기나리
7. 족두리풀
8. 가운데는 숨은벽능선, 그 오른쪽은 백운대 파랑새능선
9. 백운대 파랑새능선
10. 숨은벽능선, 하단 부분은 빨래판바위
11. 앞은 숨은벽능선
12. 앞은 상장능선, 뒤는 도봉산
13. 뒤쪽은 원효봉
14. 앞은 상장능선과 상장봉(왼쪽 암봉), 오른쪽 멀리는 불곡산
15. 오봉, 그 왼쪽 뒤는 사패산
16. 파랑새능선 부분
17. 처녀치마
왼쪽으로 간다. 망운대에 올라 인수봉 설교벽과 숨은벽, 백운대 파랑새능선을 보려고 해서다. 망운대에서 보는 그곳
의 봄빛은 또 얼마나 찬란할 것인가. 곧추선 오르막이다. 돌길이거나 바위 슬랩이다. 사족 보행하여 오른다. 사기막
봉능선 갈림길에 올라 얼른 목책 넘고, 사기막봉을 오른쪽 사면 돌아 넘는다. 그리고 소나무 숲 지나 긴 슬랩을 오르
면 널찍한 암반인 망운대 정상이다. 이럴 줄 알았다. 인수봉, 숨은벽, 백운대가 눈부시게 화려하다.
무명자가 여기는 오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의 “깎아지른 세 봉우리 연꽃처럼 서 있고(芙蓉削出三峯立)”란 시구는
산영루에서보다는 여기에서가 더 적절하다. 바람이 세게 분다. 바람이 차다. 이 암반에 앉아 저 삭출(削出)한 부용
(芙蓉)을 바라보며 탁주를 한 잔 마시려고 어제부터 벼렸는데 추워서 도저히 그리 못하겠다. 망운대를 내리는 길에
상장능선과 그 너머의 도봉산, 또 그 너머의 불곡산을 바라본다.
사기막봉능선에 뒤돌아오고 곧장 숨은벽능선을 향한다. 바람이 점점 더 세게 분다. 바람에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할
것 같아 릿지를 오르지 못하겠다. 그 옆 왼쪽 안전한 길로 간다. 그러다 릿지에 올라 백운대 파랑새능선을 얼른 보고
내린다. 숨은벽능선 빨래판바위 아래 긴 슬랩을 핸드레일 붙잡고 밤골계곡으로 간다. 암릉 같은 너덜이 이어진다.
그 바위틈새에서 족두리풀꽃을 본다. 족두리풀꽃이 외눈 혹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좀 더 오르면 대동샘이다. 샘물이 철철 흘러넘친다. 가파르고 긴 너덜이거나 돌길인데 족두리풀꽃, 제비꽃, 개별꽃
등을 들여다보느라 힘 드는지 모르겠다. 약간 가파름이 수그러들고 파랑새능선 장군봉 왼쪽 안부로 이어질 듯한
희미한 인적이 보인다. 거기를 오를 용기는 없고 그 입구를 잠시 해작거린다. 뜻밖에 처녀치마를 본다. 꽃은 진작
졌다. 내 처음 북한산에서 보는 처녀치마다. 한 두 개체가 아니라 여기저기 수두룩하다.
데크계단 올라 호랑이굴 안부를 넘고 백운대를 향한다. 여전히 바람이 세게 분다.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이라 떠밀려
오르니 발걸음이 한결 수월하다. 백운대 정상. 미세먼지가 원경은 가렸다. 이곳 바위틈에 핀 진달래를 보고, 염초봉
과 원효봉, 노적봉을 보려고 올랐는데, 진달래는 끝물이어서 볼품이 없고, 노적봉은 여전히 (멋있다기보다는) 아름
답다. 백운대 아래 공터에서 요기한다. 검은 비닐봉지에 싼 탁주는 노란 양재기가 아닌 컵에 따라 마신다. 위장 음주다.
이 다음에 볼 경치는 등로 따라 만경대를 돌면서 백운대와 염초봉, 원효봉을 차례로 보고 나서, 노적봉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다. 바윗길이 하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닳고 닳아 여간 미끄럽지 않다. 경치에 취해 미끄러질라 걸음걸
음 조심한다. 노적봉 아래 안부 지나 만경대와 용암봉 사면을 길게 돌면 용암문이다. 용암문 지나면서부터 성곽 길
로 간다. 일출봉 오르는 길에 용암봉 병풍바위를 뒤돌아보려는 것이다. 오늘은 꽃만 꽃이 아니다. 봉봉이 부용이고
석화다.
풀꽃은 알록제비꽃을 볼 차례다. 작년에 본 성곽 길섶 그 자리에서 또 본다. 반갑다. 국가생물지식정보시스템이
적시하는 알록제비꽃의 생육환경이다. “전국의 낮은 야산이나 높은 산 등지의 산비탈 절 사면에 주로 생육한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의 비옥하고 보습성이 좋은 토양에서 자란다.” 보습성이 좋은 토양이라는데 바위틈에서 어렵사
리 자란다. 이번에는 금줄 넘어 기룡봉(589m)을 들른다. 인적 드문 돌계단 길 그 틈에서 알록제비꽃을 자주 본다.
18. 원효봉과 염초봉(앞)
19. 노적봉
20. 멀리 가운데는 불곡산, 맨 앞은 상장능선
21. 원효봉
22. 염초봉
23. 일출봉에서 바라본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인수봉
24. 중간은 영봉
25. 알록제비꽃
28. 동장대 앞 앵두나무
29. 각시붓꽃
30. 맨 왼쪽은 노적봉
31. 알록제비꽃
꼬박 성곽 길을 간다. 기룡봉을 잠깐 내리고 길게 오르면 시단봉 동장대다. 동장대 앞 앵두나무 꽃도 끝물이다.
이다음에 오른 582m봉 정상(오룩스 맵은 여기를 시단봉이라고 한다)에는 제단이 있다. 무엇을 향한 제단일까, 둘러
보면 방향이 약간 틀어졌지만 노적봉과, 만경대, 인수봉이 석화(石花)로 보인다. 제단 앞에 각시붓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582m봉 내리면 대동문이다. 대동문 옆의 키 큰 고광나무는 아직 피지 않고 꽃봉오리가 맺혔다.
칼바위능선 갈림길을 지나 약간 내리면 보국문이다. 내 갈 길은 오른쪽 계곡인데 성덕봉(623m)을 들르지 않을 수
없다. 거기는 보현봉과 그 아래 주변의 형제봉, 백악산, 인왕산, 안산 등을 볼 수 있는 일대 경점이다. 가파르고 긴
성곽 돌계단 길이다. 다리 뻐근하게 올라 성덕봉 정상이다. 눈이 시원한 가경이 펼쳐진다. 한편, 남산이 속진 세계의
고도다. 보국문으로 뒤돌아내려 바람 없는 북사면 공터에 자리 잡고 점심밥 먹는다.
완만한 내리막이다. 대동문 갈림길 지나고 대남문 갈림길 지나고 계류와 함께 간다. 숲속 약간 열린 틈으로 멀리
보이는 백운대와 만경대가 아까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오늘 들꽃 순례의 주요 목적이기도 나도개감채를 친견할 때
가 다가왔다. 여기던가, 저기던가, 눈으로 등로 주변을 더듬으며 천천히 내린다. 인적이 있는 풀밭이 나오면 따라
가곤 한다. 경리청상창지까지 내려왔다. 그 아래 오래된 낮은 담 밑에서 한 송이 나도개감채를 본 것을 시작으로 그
주변이 온통 나도개감채 꽃밭이다.
국가생물지식정보시스템은 나도개감채의 분포지로 남양주시, 양양군, 인제군, 정선군, 태백시, 평창군, 화천군,
봉화군 등지를 들고 있다. 여기 북한산 후미진 골짜기가 비록 넓지는 않지만 그 서식지라니 놀랍다. 배낭을 벗어놓
고 차근하니 한 송이 한 송이 들여다본다. 1시간이 넘게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어지럽다. 이제 그만 가자
하고 배낭 추스른다. 직박구리 지저귀는 소리일까, 산골짜기가 한층 적막하다.
이골 저골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합세하여 너른 등로다. 태고사 갈림길이다. 태고사를 들른다. 그곳 귀룽나무의 안부
가 궁금해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귀룽나무는 구름처럼(북한에서는 ‘구름나무’라고 한다) 흰 꽃이 피었다.
긴 돌계단 한 차례 더 오르면 대웅보전이다. 대웅보전에서 앞마당에서 건너편 용출봉을 살짝 보고 내린다. 태고사
아래는 중흥사다. 적막한 절집 옆 계류가 법문한다. 중흥사 아래 계곡 주변의 귀룽나무 꽃도 볼만하다.
산영루 지나고 노적사도 들른다. 노적사에서 노적봉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산비탈을 한참 오른다. 노적봉이 여태와
다른 삭발한 모습이다. 노적봉을 내려 중성문을 지나고 길 옆 법용사 지나 선봉사와 보리사를 들른다. 두 곳 절 마당
에서 바라보는 의상봉이 준봉이다. 등로는 차도와 계곡 길로 나뉘고 계곡 길로 간다. 물구경하다 원효봉과 백운대이
며 만경대를 올려다본다. 사월 북한산의 산빛이 곱디곱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지나 주차장에서 뒤돌아보는 의상
봉과 그 뒤 용출봉은 손바닥에 땀이 배게 한다.
구파발역 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찬란한 북한산 연봉들을 바라보니 마음은 버스에 내려 저기를 다시 가고 싶다.
32. 형제봉, 백악산, 인왕산, 안산, 멀리 가운데 관악산, 중간 왼쪽은 남산
33. 보현봉
34. 백운동계곡, 멀리 가운데는 백운대
35.1. 나도개감채
35.4. 태고사 귀룽나무, 수령 180년, 경기도 보호수다
36. 왼쪽부터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37. 백운대
38. 염초봉
39. 백운동계곡 계류
40. 왼쪽은 의상봉, 오른쪽 뒤는 용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