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쓴 인생 회고록(回顧錄)
한승연 시인의 시
글. 김광한
시인이나 문학평론가가 아닌 사람이 시인이 쓴 시에 대해 평을 한답시고 고상한 문자를 동원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처럼 보기 흉한 것이 없습니다. 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시를 써보지 못한 사람이 시를 평한다는 것은 오직 감상글의 수준을넘어설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제가 여해(麗海) 한 승연시인의 시를 그저 감상글의 수준에서 마감을 한다는 것에 대해 여간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한승연 시인의 근처에서 20여년이 넘도록 그 시인의 일거일동을 지켜보고 또는 동참해본 필자로서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고 하기에 몇자 적지 않으면 안될 것같아서 붓을 잡아 보았습니다.
사람에게는 그가 하는 일과 신분에 따라서 여러 계층으로 구분이 되듯이 문학도 문장의 이어짐과 특색에 다라서 시나 소설 희곡 등과 같은 장르로 구분이 되기도합니다.시(詩) 역시 더 구분을 하자면 장시(長詩)와 단시(短詩) 그리고 순수시와 문학시, 대중시 등으로 분류가 되기도 합니다. 노래 역시 대중가요, 클라식, 가곡,오라토리오 등으로 구분이 되는데 여해 한 승연 시인의 시를 시의 어느 장르에 꿰어맞춘다는 것은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수십권의 장편소설과 문자로 이루어진 모든 것에 평생을 투자한 시인에게 순수시니 문학시니 하는 말로 고리를 단다는 것은 마치 길가에 함부로 뛰어노는 망아지에게 고삐를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필자는 한승연시인의 시에 받침말을 붙인다면 그 지나온 긴 인생살이가 그랬듯이 고상한 가곡이나 엘레지나,뽕작보다는 가요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노래와 같은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사랑과 슬픔을 주제로 속삭이듯 콧바람을 내서 부르는 샹송이 아닌,그리고 젊은 아이들이 팔을 휘저어가면서 부르는 뜻도 가사도 모르는 노래가 아닌,콩비지에서 우려낸 진국물과 같은 인생의 굵은 눈물이 달려있는 그런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노래따라 세월따라 가요 반세기"에 나오는 모든 노래들이 가요무대에 올려지고 늙은 가수들이 구성지게 부르는 흘러간 노래에는 그 시대만이 갖는 애절함과 한과 설움이 곁들여져서 같은 시대를 살아온 낯모르는 사람들끼리라도 부둥켜 안고 합창하는 그런 노래,특수한 몇몇이 부르는 가곡이 아니더라도,명곡이 아니어도 혀꼬부라진 외국 소리라야 문화권이 맞는다는 얼치기 지식인들의 가식된 심정이 묻어있지 않은그런 노래 그런 시를 한 승연시인은 가슴으로 뱉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고복수의 짝 사랑,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황금심의 알뜰한 당신,오기택의 영등포의 밤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등등 한 시대를 울린 그 노래들은 명곡이 아니더라도 들으면 그 시절의 설움이 생각이 나서 눈물을 삼키게 됩니다.한 승연시인의 시 역시 쉽게 풀어나간 사연있는 귀절귀절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침묵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에 형식이 어쩌구 은유와 비유가 들어갈 자리에 없다는등 하는 소리는 그의 시 한편을 읽어보면 침묵을 하게 되는 이치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뉘엿한 석양 놀빛 눈시울에 붉어지는 소슬한 이 가을 한낮 한잔의 추억을 마시면서 나도 저 낙조처럼 지긋한 아름다움으로 늙어가고 싶다. 이웃의 허물을 감씨주며 모든 사람에게 늘 관대하는 그저 폭넓은 가슴으로 어지럽고 슬픈 세상을 원망하며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덜대기 보다 스스로 자신을 짓이기며 학대하기 보다 저 감동의 놀빛처럼 조금 빈곤하더라도 이웃에게 어떤 도움을 즐까 고민하는 그런 노인으로 중후하게 늙고 싶다.
<놀빛 가슴으로에서...>
이 한편의 시에 한승연시인의 진솔한 마음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소설을 많이 썼되 소설가처럼 행세하지 않았고 시를 쓰되 시인으로 남지 않았고 인간으로 남은 시인,그가 한승연시인입니다.손이 커서 항상 그 큰손에 뭣인가를 담아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기에 물질적으로 성공한 인생이 되지 못했던 지난날들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시인은 그래서 남자들보다 가슴이 넓고 그 넓은 가슴에 사바세계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사연을 안고 살아온 시인이지요.
속는줄 뻔히 알면서도 선뜻 내주는 성품때문에 풍요로운 물질생활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이런 한승연 시인의 마음을 가상하게 여긴 하느님께서 그에게 한자루의 붓을 쥐어주신 것을 시인은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제 천천히 늙어가고 있는 황혼의 노을,그것은 쩨쩨한 마음으로 평생을 아등바등 살고 있는 속물들의 앙가슴으로 파고들어서 그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메시지를 이 시집에서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요무대와 같은 시, 가요무대에서 흘러 나오는 모든 노래에는 쉽지만 깊은 애환과 설움과 아픔이 담겨있습니다. 한 승연시인의 시가 이와같습니다.읽어보면 딱딱한 구석이나 현학적인 수사(修辭) 한자 없지만 남의 눈물을 닦아주는 노래,남과 함께 고 웃는 시인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인생 60년 이상을 살았다면 누구나 한권정도의 자서전 정도는 남길 수 있다지만 그 자서전의 내용이 문제가 되겠지요.시로 쓴 회고록, 그 자서전은 재미가 있습니다.그러나 읽는 사람들에게는 재미가 있지만 그 당사자는 아픔이 분명했겠지요.가슴에는 수없이 많은 칼날이 박혔지만 이를 빼내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촉박한 인생의 남은 날들을 마치 세딸들에게 버림받은 할머니가 죽어서 묻힌 무덤위에 피어났다는 할미꽃이 되어서 이제 그것을 시로 남기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몰라도 그렇게 몰랐을까, 어머니의 서러운 죽음이 마치 아버지의 한량끼, 그 풍류 탓인 양 화살촉처럼 탱탱하게 목줄 세워 쏘아 올리던 그 아팠을 낱말들
사모(思慕)에서...
선주(船主)의 딸로 태어나 유년시절의 풍요로움을 한껏 누리다가 세상이란 난적앞에서 갈길 몰라 방황하던 처녀시절,그리고 부모의 말씀을 거스리고 사랑하던 사람과 야반도주를 한 일, 그리고 이어지는 삶의 굴곡들,남들보다 많이 울고 부모 속썩힌 것만큼 가슴에 깊은 멍과 함께 바람구멍처럼 뚫린 빈 공간,그래서 진방남의 불효자는 웁니다란 노래가 시가 되어서 나오고 가슴의 빈공간을 시와 소설로 메꾸려고 밤새 글쓰다보니 몸이 망가져서 찜질방이 주거가 되다시피한 지금,서리가 되어 내린 머리카락 한 올을 잡고 멀거니들여다보는 주마등처럼 지나간 날들이 아픔이 되어서 되돌아오기도 하지요.많은 소설과 시를 썼지만 그 주제는 언제나 인과응보(因果應報),뿌린대로 거둔다는 평범하지만 어김없는 진리를 시와 소설로 평생을 써나간 한 승연시인,이제 어느정도 업장도 소멸이 됐을텐데 하면서 웃는 시인의 얼굴에 화색이 돋습니다.
남의 말을 너무 잘 믿어서 그를 속이려면 식은 죽먹기 보다 더 쉽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실제로 한때 신앙에 탐익을해서 몸이 아픈데도 성경귀절대로 살려다가 혼쭐이 나기도하고 몇번이나 속았어도 여전히 속인 사람을 믿는 이런 방면의 전과자이기도 하지요.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을 질책하다가도 그 사람을 만나면 다시 손을 잡아주는 어쩌면 세상살이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은 저쪽나라에 주민등록이 돼있는 그런 한 승연시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여간한 축복이 아니지요.할미꽃 연가는 바로 이런 자신의 시로 쓴 회고록으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성으로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머리와 얼굴에 시간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아예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시인의 마음을 누군가는 알아줄 것입니다.그리고 한승연시인이 쓴 수맣은 주인공들, 주인공들에게 바친 역시 수많은 용어들,미움보다사랑이 복수보다 용서가 많았던 모든 문장들이 언젠가는 그가 쓴 글들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1942년 전남 구례 출생) 작품집 소설
*바깥바람 *그리고 숲을 떠났다. *갈망 *묵시의 불 *이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 사랑 *역사의 수레바퀴 * 시집
*소라의 성 *내가 사랑하는 이유 *등신불 수화
제 1회 허난설헌 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한국 펜클럽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