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 오미마을을 답사를 다녀와서 새로 오신 김대학님, 김명수님, 최선희님(본인이 신입이라 말씀)에 대한 환영의 의미로 작은 읽을거리를 올려봅니다.
이전에는 답사기를 쓰면 답사 일정을 따라가며 서술하였으나 근래에는 생각이 바뀌어 그렇게 쓰지 않고 현장에서 느낀 단상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적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오미마을을 다녀왔으니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마을 입구 팔각정에서 간식을 먹으며 나누었던 이야기 중 종가와 불천위에 관련지어 적습니다.
불천위 : 불천지위(不遷之位)의 줄임말이다. 신주를 조매(祧埋)하지 않고 계속 봉사한다고 하여 부조위(不祧位)라 부르는 곳도 있다. 불천위를 두는 사당을 부조묘(不祧廟)라고도 부르는데 불천위에는 나라에서 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와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한 유림불천위(儒林不遷位)가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천위 : 예전에, 큰 공훈을 세워 영구히 사당에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사람의 신위를 이르던 말. -출처 : 국어사전
祧埋祭(조매제)란 고조 이전의 먼 조상의 혼령을 한 곳에 모아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옮길 때 하는 제사.
조매한다는 말은 신주를 묘소에 매장한다는 말이다.
불천위(不遷位)란 말 그대로 신주(조상의 위패)를 옮기지(조매) 않고 사당에 두고 계속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이다.
한자 그대로 보면 아니 불(不), 옮길 천(遷), 자리 위(位)이다. 여기서 위는 위패 즉 신주를 말하는 것으로 불천위란 신주를 옮기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신주를 옮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작금에는 민간 모두가 양반이랍시고 4대 봉제사를 하니 고조할아버지까지는 명절 제사와 기제사를 지내고 현조(5대)부터는 신주를 선산 묘소에 묻고 가을 시제만 지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예전(禮典)편에 규정한 것을 보면 사대부(士大夫)이상이 사대(四代), 육품(六品)이상이 삼대(三代), 칠품(七品)이하는 이대(二代), 일반서인은 부모만을 제사(기제사와 명절제사)지내도록 되어있다. 그 당시는 전제군주제도로서 계급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제사의 봉사대상까지도 계급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
사대부의 품계가 정3품 이상으로 봐야 할 것 같으나 명확히는 모르겠다.
일반서인은 당대 제사를 지냈으며 그 제사도 형제간에 돌아가면서 모셨다고 한다. 지금도 제주도에는 이런 풍습이 남아있다.
임진왜란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맏아들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 주고 제사의 의무도 부과하면서 종가를 중시하는 문화도 생겨난 듯하다.
종가는 한자로 ‘宗家’라고 쓴다.
여기서 宗자는 한자자전에 찾아보면 ‘마루, 일의 근원, 근본, 사당, 가묘, 종묘, 우두머리,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마루란 '건축물의 마루'가 아니라 '등성이가 진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라는 의미이다.
서울에 종묘(宗廟)가 있으며, 종교(宗敎)란 말은 가장 뛰어난 가르침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여기에 모두 宗자가 쓰인다.
내 소견으로는 철학이 종교보다 더 뛰어난 가르침 같은데, 나이가 더 들어 죽음의 공포가 현실화되면 종교가 철학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게 되려나?
宗은 宀 + 示로 되어 있다.
宀은 집을 의미하고, 示는 제기(祭器) 위에 제물을 차려놓은 형상을 기호화한 것이다.
그래서 宗은 제사를 받들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집을 의미한다.
한자에 示가 들어간 글자는 제사나 귀신, 의례 같은 것과 관련된 글자가 많다.
祀(제사 사), 神(귀신 신), 社(토지의 신 사), 禮(예절 예), 福(복 복), 禍(재난 화) 등등...
말머리를 돌려 조선시대에는 '봉제사 접빈객'이라 하여 제사를 잘 모시고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양반이 지켜야할 도리라고 생각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형벌을 받는 시대였다. 천주교(서학)가 전래된 후 천주교도가 유교의 제사의식 거부하는 것을 신분질서의 부정과 국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천주교를 박해했다.
이렇게 제사를 중시하는 것은 국가가 백성을 교화하는 목적과 나아가서는 성리학적 이념을 구현하는데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즉, 효를 강조하여 사회를 순화시켰으며 나아가 이 정신이 충으로 이어지길 원했을 것이다. 효나 충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본다면 지나치게 효나 충의 이름으로 순종 내지는 복종하게 하는 것은 개인이 독립적 주체로 나아가는데 벽이 될 수도 있다.
개인과 국가의 관점에서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느냐 개인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느냐의 차이가 바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가르는 기준일 것이다.
오늘날 사회는 바야흐로 지식정보사회이다. 삶의 무늬가 옛날과 너무 달라졌을 뿐아니라 매우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관혼상제 문화도 또한 많이 변해가고 있다.
전통은 답습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니, 너무 형식에만 얽매이지 말고 현 시대에 맞는 옷을 입혀 계승해야할 가치와 정신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제가 쓴 것은 마음가는 대로 끄적여 보았습니다. 잘 쓰려면 힘이 들어 불편하고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분들도 읽는 사람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글 올려 주시면 카페도 풍성해지고 우리 안문답도 한 뼘 더 자랄 수 있는 거름이 되리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