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국회 탄핵 청문회(19일)와 관련, 야당 의원들이 증인으로 채택한 대통령실 관계자 출석을 두고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양측의 기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대통령실은 청문회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증인 출석 요구서 수령 자체를 거부했고, 급기야 '공문서'를 길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야당 의원들도 대통령실 전달이 완료됐다는 명분으로, 버려진 문서를 수거하지 않았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승원 전현희 장경태 이성윤 의원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날 오전부터 윤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에 불려 나올 증인 출석요구서를 들고 용산으로 몰려갔습니다.
국회증언감정법에 따르면, 청문회 당일로부터 7일 전까지 출석요구서가 송달돼야 하는데 이날이 마감시한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서 국회 법사위 행정실 관계자들이 서류를 전달하려 했으나 대통령실은 수령을 두 차례 거부하자 야당 의원들이 직접 출동했습니다.
경찰과 경호처 직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의원들을 막아서면서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졌는데, 의원들은 "(명박산성에 빗대) 윤석열산성이냐", "누구의 지시로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느냐"고 맞섰다고 합니다.
양측의 대치는 30분간 이어졌고, 김명연 대통령실 정무1비서관이 나와 "합법적 절차가 아니다"라고 수령 거부 의사를 공식화하자. 의원들은 대통령실 안내실에 출석요구서를 놓고 오는 방식(유치송달)의 우회로를 택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대통령실 관계자가 출석요구서를 다시 들고 나와 의원들이 서 있는 도로 위에 슬며시 내려놓고 빠르게 떠났고, 의원들까지 자리를 뜬 길바닥에는 '출석요구서'만 덩그러니 남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치에는 대화가 없나 봅니다.
<여의도에서의 대화는 답이 없다.
양 진영 간 차이를 넘어서 생산적인 결론을 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람들은 네 가지 함정에 빠지곤 한다. 회피, 굴절, 부인, 공격이라는 함정인데, 뉴욕대학교 교수인 켄지 요시노와 데이비드 글래스고는 이를 줄여서 '회굴부공'이라고 부른다('어른의 대화 공부', 황가한 옮김, 위즈덤하우스).
'회피'는 입을 다물거나 진심을 숨기는 대화법으로, 가장 흔한 부정적 대화 방식의 하나이다. '굴절'은 화제를 나에게 더 편한 주제로 바꾸는 것으로, 대화의 초점을 다른 주제로 이동하거나 확대 또는 축소시킨다. '부인'은 사실이나 상대방 감정의 진실성을 거부함으로써 반사적으로 일축하는 대화법이다. 마지막으로 '공격'은 전투적이고 사적인 비난을 하는 가장 난폭한 방식의 대화법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오직 '회굴부공'식 대화만 보인다.
'회피'의 경우를 살펴보자.
홍준표 대구시장이 작년 4월 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출마'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참이었다. 진행자가 "한 장관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하자, 홍 시장은 "이 전화 끊읍시다. 이상하게 말을 돌려가지고 아침부터 그렇게 한다"고 불쾌함을 드러내며, "전화 끊습니다"라고 말하곤 진짜로 전화를 끊었다.
국민의힘 내의 권력 지형과 총선 선거전략 등에 관한 건설적인 대화를 기대했던 청취자들은 아침부터 회피식 대화의 전형을 맛봤다.
6월 25일 국회 법사위에서 있었던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법사위원장 간의 대화는 '굴절'식 대화의 표본이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 국회법대로 하는 겁니다.
유상범 의원: 국회법에 위원장 마음대로 돼 있습니까?
정청래 법사위원장: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세요.
유상범 의원: 공부는 내가 좀 더 잘했지 않겠어요? 국회법은?
여당 간사 선임이 대화의 초점이었으나, 어느새 초점은 '누가 더 공부 잘했나'로 이동됐다.
보다 효율적인 상임위 운영에 대한 품격 있는 대화 대신,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법한 '누구 누가 더 잘하나'로 굴절된 대화였다.
'부인'식 대화는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양문석 경기 안산갑 민주당 예비후보의 과거 '노무현 불량품' 막말에 대해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적절한 조처를 취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당 안팎의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일어났다.
이재명 당시 대표는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잘못이 아니다"라며 관련 요구를 일축했는데, 제1야당 대표의 이러한 대화법은 민주당 일극 체제의 전조 증상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공격'식 대화법은 너무나 많아 이 지면에 다 담을 수가 없다. 힘들게 추려보자면, 민주당 박지원 당선자가 5월 1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진표 국회의장과 윤석열 대통령,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향해 "진짜 개○○들"이라고 말한 것이 있다.
채상병 특검법 처리 관련해 김 의장이 ‘여야 합의가 있어야 본회의를 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데 대한 반응이었다. 국회의장의 역할에 대해 '정치 9단'이라 불리는 5선 국회의원의 깊은 고찰 대신 사적인 감정이 폭주하는 공격적 대화만 남았다.
지난주 국회에서 의원들이 서로에게 했던 "입 닫아라" "정신 나간" 등의 표현도 공격적 대화의 예이다.
품위 있는 어른의 대화를 나누는 정치인들은 유니콘인가. 그들은 전설 속에나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한국일보.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처 : 한국일보. 오피니언 아침을 열며, 답 없는 여의도의 네 가지 대화법
제가 다른 글에서 ‘비판(批判,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부정적으로 말함)’과 ‘비난非難, 남의 허물을 드러내거나 꼬집어 나쁘게 말함)’을 읽었지만 솔직히 제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난’과 ‘비판’은 그 앞에 들어있는 비(非, 批)가 다릅니다. 비난의 ‘비(非)’는 잘못되거나 그릇된 것을 뜻할 때 쓰는 말이고, 비판의 ‘비(批)’는 밀치다. 상소에 대한 임금의 대답으로 쓰이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비방(誹謗)’이 있습니다. ‘비방(誹謗)’은 ‘남을 헐뜯고 비난하여 말함’입니다. 비방의 ‘비(誹)’는 ‘헐뜯다, 비방하다’의 뜻입니다. 말로 남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나마 비판과 비난은 그래도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은 비판과 비난이 아닌 '비방'이 일쑤이고, 그걸 넘어서는 '저주( 咀呪)'가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제가 무슨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할 일은 아닙니다. 더구나 ‘비방’을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고상한 분들은, 상대를 향해서 비판이나 비난이 아닌 비방만 일삼고 있으니 정말 시정잡배만도 못하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