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사람들은 지구에서 한세상 살다가 죽으면 또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다고 믿어왔다. 망자는 또 다른 세상,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지만, 육신은 땅에 묻혀 무덤인 죽은 이들의 집에서 산다. 우리가 사는 집이 초가에서 기와집, 양옥, 아파트로 변했듯이 그들의 집도 흙무덤, 돌무덤, 납골묘, 납골당 등으로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신앙과 윤리는 사라지면서 합리적 이성으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판단과 실행이 자기중심적이다. 멀리 산 꼭대기에 있는 묘를 공동묘지로 옮기는 파묘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파묘는 묘를 다른 곳에 이장을 위해 없애는 것이다.
고대의 무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국 진시황의 황릉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곳은 주로 왕족의 무덤으로 새로운 삶으로 이어진다고 믿으며, 세상 삶에서 함께했던 물건을 함께 넣어 묻었다. 그것은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분이라 한다. 그 고분을 통해서 당시의 생활 풍습이나 관습, 환경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왕릉이 그러하다, 삼국 시대의 왕릉이 곳곳에 있다. 경주의 천마총이나 왕족들의 무덤을 경주 시내에서 쉽사리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도 널려 있다. 고령의 대가야 고분, 압량의 임당 고분, 불로 고분 등이다. 일전에 불로 고분을 다녀왔다. 그 고분은 삼국 시대의 것으로 십여만 평의 대지에 200여 기의 묘가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경전에 의하면 예수께서 무덤에 묻혀 사흗날에 부활했다. 제자들이 무덤에 가서 확인했더니 무덤을 막았던 큰 돌이 열려 있었으며 시신이 사라져 빈 무덤이었다. 무덤은 죽은 이의 집인데 빈 무덤이란 산 이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다. 해서 빈 무덤은 예수의 부활을 증명하는 것이며, 또한 상징이라는 문학적 수사법이다.
군위에 가면 대구가톨릭 공동 묘원이 있다. 가톨릭신자가 죽어서 가는 곳이며, 세상을 살다가 떠나 그곳에 잠들어 있는 이가 많다. 언제가 고인이 된 지인을 찾아갔으나 어디에 있는지 막막했다. 그래서 사무실을 찾았더니 그곳에도 세상 사람의 주소처럼 도로명과 지번이 있었다. 망자의 이름을 대었더니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 주소를 들고서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예부터 신과 인간은 밀접한 관계였으며,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믿었다. 그러나 신은 영원불멸이지만, 인간은 필멸이라며 신과 인간을 구별하였다. 인간은 어차피 죽어야 하는 운명이기에 운명을 사랑하라고 한다. 어느 공동묘지 입구에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고 쓰여 있다. 그러하니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