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83)
상담(嘗膽)이 와신(臥薪)을 무찌르다
부차 발아래 넙죽 엎드린 구천
가슴엔 복수 칼날 갈고 있으니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뜯어보면 와신과 상담은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고행을 말한다.
춘추전국시대 장강 하류에 국경을 맞댄 오나라와 월나라는 항상 으르렁거렸다. 결국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다. 이 전쟁에서 오나라 왕 합려(闔閭)의 장남은 죽고 합려 역시 다리에 화살을 맞고 독이 퍼져 죽는다. 이윽고 차남 부차(夫差)가 왕위에 오른다. 부차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이를 악다물었다.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월나라의 왕 구천(勾踐)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부차는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첩을 끼고 자는 걸 단연코 거부했다. 바닥에 장작을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폈다. 그것이 장작 위에 눕는다는 와신(臥薪)이다. 옆을 지나다니는 신하들에겐 “부차야, 살부지수(殺父之讎·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잊었느냐!”라고 한마디씩 하게 했다.
구천이 오나라로 쳐들어왔다. 악에 받친 오나라의 부차가 맹렬하게 받아쳐 전세를 뒤집었다. 포위당한 월나라군이 전멸할 위기에 처하자 구천은 자결을 시도했지만 신하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하, 목숨을 부지하셔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부디 옥체를 지켜주십시오.”
승전국 오나라로 압송되어간 구천은 오나라 왕 부차 앞에 꿇어앉아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소인의 좁은 소견으로 귀국에 창끝을 겨눈 죄를 용서하시어 목숨만 살려주시면 대왕께 온몸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구천은 상의를 벗은 채 부차 발아래 머리를 찧으며 싹싹 빌었다. 부차는 큰 은혜를 베풀어 구천의 목은 베지 않았다. 구천은 부차의 노비가 되어 마차를 끄는 말을 닦아주고, 부차의 요강을 닦고, 겨울이면 신을 품에 안아 따뜻하게 했다.
구천의 비굴함에 부차는 쾌감을 느껴 껄껄 웃었지만 부차의 충신 오자서(伍子胥)는 구천이 가슴에 송곳을 숨기고 있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전하, 구천의 목을 쳐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껄껄, 걱정하지 마시오. 구천은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오.”
그러던 어느 날, 부차가 병환으로 드러누웠다. 어의가 진맥한 후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크게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전하의 대변을 맛봐야 병환을 가늠할 수 있는데….”
자식들도 신하들도 하인들도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피하기에 급급한데 한 사람이 엉금엉금 기어서 다가왔다. 구천이다. 구천은 부차의 매화틀 앞에서 숨을 크게 쉰 후 뚜껑을 열고 두 손으로 똥을 움켜쥐더니 혀를 내밀어 핥았다.
“대왕의 대변에 신맛이 감돕니다.”
어의가 무릎을 쳤다.
“전하, 신맛이 난다면 소인이 익히 알고 있는 병입니다. 석달 안에 전하께서는 일어나십니다.”
병석의 부차는 빙긋이 웃었다. 그 와중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섬뜩함을 느껴 몸서리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부차의 충신 오자서였다. 그 후 부차는 구천을 끔찍이 아꼈다. 오자서가 부차에게 구천을 경계할 것을 진언하자 부차는 “당신 같으면 내 똥을 맛볼 수 있겠어?”라며 핀잔을 줬다.
부차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구천을 손수 마차에 태워 월나라로 보냈다. 구천은 땅바닥에 엎드려 부차의 신발에 입을 맞추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충성하겠다고 맹세했다.
삼년 만에 구천은 월나라로 돌아왔다. 앉으나 서나 그의 곁엔 쓸개(膽)가 담긴 접시가 있었다. 그는 쓰디쓴 쓸개를 씹으며 치욕을 잊지 않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구천은 진기한 음식과 술을 오나라에 진상하고 경국지색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바쳤다. 또 반간계를 써서 오자서를 제거했다. 부차는 과욕을 부려 제나라와 싸우며 국력을 소진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심한 가뭄이 들어 군량미가 바닥을 드러냈다. 구천이 기다린 지 20년 만에 기회가 온 것이다.
“때가 왔다. 오나라를 쳐부수자!”
구천은 5만 대군을 이끌고 물밀듯이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구천이 부차를 사로잡았다.
“옛정을 생각해 내 너를 살려주겠다. 식읍(食邑) 100호를 줄 테니 거기서 왕 노릇을 하며 살아라.”
이 말을 듣고 부차는 “천하를 호령하던 내게 고작 일백식읍의 왕이나 하라고!” 하며 자결했고 오나라도 멸망했다.
첫댓글 재밋게 잘보고갑니다 ~~
감사합니다.
원수는 사랑하면 안된다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