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antiyesu.org/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저, 승영조 역(자료제공회원:전동주)
앞서의 증거를 되돌아볼 때, 우리 두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교의 전통 ‘역사’가 역사상 가장 큰 은폐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스도교의 원천인 영지주의 가르침,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참된 뿌리인 이교도의 미스테리아는 가혹하게 억압을 받아 증거가 대규모로 말살되었고, 로마 교회의 정치적 목적에 어울리는 거짓 역사가 날조되었다. 공식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닥치는 대로 처형을 당해서, 이윽고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좀더 최근의 역사를 돌아보면 고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 초에 극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후, 과거 정권에 몸담았던 공무원을 포함한 엄청난 인구가 공산당에 가입했다. 왜? 살아남고 싶으면 공산당원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과거 정권에 연루된 사람은 인민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와 유사하게, 일단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자, 교인의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왜? 그리스도교인은 특혜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성직자는 세금을 낼 필요도 없었다! 평화롭고 성공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교인이 되지 않으면 ‘의견을 달리하는’ 이교도, 곧 하나님의 ‘적’ 으로 낙인이 찍힐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스탈린 선전자들이 그들의 전제정치를 미화시키고, 그들의 도그마가 참되고 선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사악하게 역사를 날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선전자들은 교인들에게 거짓말을 주입시켰다.
공산주의처럼 그리스도교도 처음에는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결국에는 권위주의적인 독재정권을 만들어 냈다. 근년에 공산주의의 독단적 편협성은 중국과 캄보디아의 광신적 청년 공산주의자들을 부추겨 문화혁명이라는 재앙을 불러왔다. 이때 그들은 풍요한 고대의 유물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고, 수많은 지성인들을 학살했으며, 그들의 사회는 위기에 처했다.
마찬가지로 약 1천500년 전에, 광신적 그리스도교 수도사들도 문화혁명을 일으켰다. 그때 고대의 경이로운 유적과 이교 신앙의 문화적 업적이 잿더미가 됨으로써, 서구문명은 1천 년이나 퇴보하고 말았다.
이교도 유산을 그처럼 막무가내로 파괴한 것은 서구 역사상 최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잃어버린 유산의 규모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교도의 신비주의와 과학적 탐구 정신은 독단적 권위주의로 바뀌었다. 로마 교회는 영적 구원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인하며 위협과 폭력으로 그들의 신조를 강요했다. 고대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잿더미가 되는 동안,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문자주의자의 근본주의 신앙이 승리 했음을 이렇게 선포했다.
<성서>의 권위에 입각한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인간의 모든 정신력보다 <성서>의 권위가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피라미드와 파르테논 신전을 세웠지만, 유럽 지역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몇 백 년이 지나는 동안 벽돌집을 짓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BC 1세기에 포시도니우스는 행성들의 궤도를 충실하게 반영한 태양계의 아름다운 공전 모형을 만들었다. AD 4세기 말경에는, 하나님이 매일 밤마다 하늘에 별을 설치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간주되었다. BC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불과 몇 퍼센트의 오차 이내에서 지구의둘레를 정확히 추산해 냈다. 그러나 AD 4세기 말경에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이단자로 몰렸다.
우리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교 신앙이 그토록 원시적인 반면, 문자주의 그리스도교가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면, 왜 이교 신앙은 그토록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왜 참종교는 그토록 몽매한 1천년의 암흑시대를 불러왔는가?
첫댓글 예수는 신화다 라는 책에서 뽑은것인지 그 두 저자분들의 다른 책에서 뽑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있지만 타자치기다 죽음이라 넘 반갑게 복사해 갑니다. 감사올립니다.